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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26화 (26/132)

26화

감자를 갈아 만든 전분은 중국 당면이라고 하는 넓적한 당면과 우리가 잡채를 해먹을 때 먹는 얇은 당면이 되어 찜닭에 있는 소스의 맛을 듬뿍 머금었다. 이로 인해 다진은 당면을 흡입하면서 맛있는 고기를 먹는 것만 같은 만족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후르릅 후르릅”

한국 간장보다 짠맛이 적고 단맛이 더 강한 노추(老抽), 혹은 노두유(老豆油)라고 불리는 중국 간장이 찜닭에 잘 맞아서인지 찜닭은 기존의 안동찜닭에 익숙한 용운의 입에도 착착 감기는 맛이었다.

“교주님, 우리 이거 맨날 해먹어요.”

햄스터마냥 입에 한가득 음식을 머금은 다진은 먹으면서도 찜닭에 대해 강렬한 식탐을 드러냈다.

‘다진아, 너 도도한 이미지는 이제 버린 거니? 처음에는 감자도 잘라서 오물오물 씹어먹었던 것 같은데...지금은 물 먹는 하마같다.’

그러나 이내 다진의 귀여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맛있냐? 매일 먹고 싶을 만큼?”

“네!! 하루 삼시세끼 꼬박꼬박 먹고 싶은 맛이랄까. 닭고기와 당면 그리고 야채와 국물이 모두 딱 어울려서 질리지가 않는 맛이에요.”

“언제는 피자를 그렇게 먹고 싶다며.”

“하아...이렇게 맛있는 음식들이 있는지 여태까지 모르고 살았으니 18년동안 헛살았던 게 틀림없어요. 전 너무 억울해요. 에잇. 화나니까 더 먹어야겠다.”

‘지금 시대에선 황제도 못 먹어본 음식이 찜닭일걸...’

잠시 탄식을 토하던 다진은 이내 자신의 앞에 놓인 자기 얼굴만한 닭다리를 찢어 입에 넣었다.

“움움.”

“천천히 먹어. 먹다 체할라. 기껏 맛있게 음식 먹고서 체하면 나중에 쳐다보기도 싫어져.”

“에이, 전 아니에요.”

‘나도 아닐 줄 알았지.’

LA갈비를 맛있게 먹고 체하는 바람에 몇 년간 어머니가 해주신 LA갈비에 대한 입맛이 떨어져 외면했던 기억이 있는 용운으로선 동의할 수 없는 소리였다.

3개월이 넘게 잘 먹여 키운 덕분인지 우리가 먹고 있는 닭은 한국에서 먹던 치킨에 비해 매우 컸다. 보통 한국의 쬐깐한 닭은 1인 1닭이 충분히 가능할 정도로 작지만 이번에 공수하여 키운 닭은 1인 1닭을 하기에는 사실 매우 큰 편이었다.

‘이게 닭이지. 그동안 먹어온 건 닭도 아니야. 그건 병아리와 닭의 중간단계였지. 이를테면 닭아리? 츄릅’

닭다리를 뜯고 있자니 백년손님인 사위가 오면 장모가 씨암탉을 잡아준다는 말이 떠올랐다. 시대가 바뀌며 옛말이 되어버렸지만 과거에 장모가 씨암탉을 잡아준다는 것은 사위에 대한 최고의 대접이자 자신의 딸을 잘 부탁한다는 의미였을 것이었다. 알을 낳을 수 없는 폐계(廢鷄)나 노계(老鷄)와 다르게 씨암탉은 말 그대로 알을 낳을 수 있는 귀한 식량 생산 수단이자 자산 증식 수단이었으니까.

이곳에서 지금에서야 닭을 키울 수 있는 것을 떠올려 보면 닭은 언제고 키울 수 있는 가축이 아니라 식량사정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을 때 키울 수 있는 가축이었다. 그러니 식량사정에 여유가 없던 마을에서 닭이 아침에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없던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본인들도 먹을 것이 부족한데 닭을 먹일 남는 사료가 어디 있겠는가. 양과 야크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계였을텐데.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이제 날이 풀리고 나면 산비탈에는 다락밭을 만들어 그곳에서 밀, 옥수수, 콩, 보리 등 식량자급을 확보할 거고 그걸 바탕으로 닭의 숫자도 더 늘리고 물소도 더 늘릴 수 있을 것이다.

‘먹을 게 부족해서 가축을 키우고 싶어도 키우지도 못하고 더 늘리지도 못했다니...가난이 죄로구나.’

계획대로 진행되면 언젠가 우리가 축산업으로 대기업이 된 하X처럼 우리도 닭을 생산해서 파는 수직계열화를 진행하여 이 세상에서 그런 위치에 오르는 날이 올 것이다.

“다진아, 앞으로 내가 맛있는 거 많이 먹여줄게. 죽을 때까지”

“네?”

다진은 갑작스런 용운의 말이 ‘결혼하자’라는 고백처럼 들리는 것 같았다.

‘뭐야...닭 먹는데...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뭔가 분위기를 잡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닭날개를 뜯고 있는데 저런 이야기를 하다니 소녀의 감성이 깨지는 것 같으면서도 내심 마음이 들떴다. 들뜬 마음을 숨기고자 괜히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 그러세요.”

닭 한 마리를 집어킬 기세로 먹던 다진이 갑자기 깨작깨작 먹어대자 용운은 닭이 큰 탓에 1인 1닭은 무리였나 싶어 이제 배가 다 찼는지 물었다.

“다진아, 배불러? 역시 혼자 먹기엔 많았지? 혹시 더 먹기 힘들면 남은 건 그냥 내가 다 먹을까?”

“아니, 뭐라구요?”

‘뭐야, 내 닭고기 뺏어먹을라고 수작 부린거야? 하아,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 이씨’

“아직 다 안 먹었거든요? 내건 내가 다 먹을 거니까 건들지 말아요!”

‘뭐야, 배부른 거 아니었어?’

용운에겐 살쾡이처럼 하악질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자신의 닭이 놓인 그릇을 사수하는 다진에게선 강력한 생존본능같은 것이 느껴졌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다 못해 살짝 차갑게 바뀐 분위기 속에서 둘은 만든 찜닭을 모두 먹어치우며 시식회를 마쳤다.

어색해진 시식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스마트폰을 켜자 구독자 30만 돌파를 축하한다며 한가지 알림이 떠 있었다.

<<앞으로 너튜브 천마TV를 통해 발생하는 수익을 사용할 수 있는 계좌가 오픈되었습니다.. XXXX-XX-XXXXXX>>

“뭐야? 이걸 어디다 써. 계좌에 돈이 들어와도 뭔 의미가 있나 그냥 그림의 떡이지. 그나저나 다진이는 갑자기 왜 기분이 뚱해진거지?”

용운은 너튜브를 정보를 찾아내기 위한 포인트 벌이용으로나 생각했지 구독자가 얼마가 늘건 조회수가 얼마나 늘어나건 자신과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딱히 관심이 가지 않는 알림이었다. 천마 채널이 아무리 성장해봐야 천마 채널로 얻는 수익을 사용할 곳이 없었다.

며칠 뒤 양계장 1차 출하를 축하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아놓고 큰 솥에 대량으로 찜닭을 하자 라운지 안에 찜닭의 향기가 가득 찼다. 아이들이 고기에 흥분했다면 어른들은 교주님께서 새로이 만들었다고 소문이 자자한 술도 나온다는 말에 코가 벌렁벌렁한 상황이었다.

“야! 너, 황금 열쇠 까서 무림맹주한테 잡혀가지고 정파 감옥에서 3번 휴식하는 거 나왔잖아. 왜 벌써 주사위 굴려!”

“3번 지났거든?”

“거짓말 하지마! 너 아직 3번 안됐거든? 내가 몇 번 쉬는지 보고 있었는데!”

애들 노는 모습은 어디고 다 비슷한가 싶었는데 같이 놀던 남자애가 여자애한테 규칙을 안 지킨다고 하자 여자애가 성질을 냈다.

“빨리 주사위 안 주면 오빠 밀쳐버린다?”

“너 진짜! 나쁜 아이구나!~~”

“오빠는 키도 작으면서~”

“반말 쓰지마!”

게임에서만 보던 패드립을 나누는 걸 지켜보는 것 같아 얼굴이 살짝 찌푸려질 때 반전이 일어났다.

“키도 작으면서요~”

“장난하니? 예쁘면 다냐?”

“그래! 나는 예쁘면 다야.”

“그래!! 니 다해라!”

‘싸우는 거야? 뭐야? 황천의 뒤틀린 애정표현 뭐 그런건가?...’

남자 아이가 주사위를 여자 아이에게 던지듯 건네주며 씩씩거릴 때쯤 동네 할머니께서 두 아이를 중재를 시도하였다. 할머니께서 자꾸 싸우고 시끄럽게 굴면 놀이판 뺏어버린다고 으름장을 놓자 두 아이들은 다시 조용히 하고 다시 게임을 시작하였다.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들 근처에서 두 아줌마들이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려왔다.

“요즘 걱정이에요. 처음엔 눈에서 하는 놀이도 잘만 하던 애들이 이제는 맨날 모여서 서로 주사위만 굴리면서 교주님이 만들어주신 중원제패 놀이에 빠져 지내잖아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통 나갈 생각도 안하고 맨날 저거만 하려고 한다니까요. 아무리 재밌어도 그렇지.”

“그러게. 조용히 놀기만 하면 뭐라고 안하겠는데 하다가 지면 뭐가 그리 화가 나는지 흥분하면서 놀이판을 뒤집기도 하더라니까. 그런 거 보면 지 아버지가 바둑 두다 지면 하는 꼬라지랑 똑같다니까. 그 꼴이 얼마나 보기가 싫은지.”

“옛날엔 하도 안 들어오려고 해서 빨리 들어오라고 소리쳐야 했는데. 이젠 하도 안 나가니 이상하게 그 꼴이 얼마나 또 보기 싫은지 몰라요. 사람 마음이란 게 참...”

“훈이 엄마네도 그래?”

“아유, 집 안에서 잘 놀면 좋은데 지들끼리 떽떽거리면 얼마나 보기 싫은데요. 밖에서 그러면 안보이니 그러려니 하는데.”

본의 아니게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게임 폐인을 만들어낸 것은 아닌가 싶어 뜨끔했다.

‘밖에서 놀기에 재밌는 놀이들을 알려줘야지. 저걸 안하려나...’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는 사이 찜닭이 완성되어 사람들에게 맥주와 함께 분배되었다..

“히야...이게 교주님이 만드셨다는 그 ‘맥주’라는 거구만.”

“거품같은 것이 뽀글뽀글 올라오는 걸 보니 이게 그 목구멍을 탁 때리면서 시원하게 만들어준다는 그건가보이.”

기대에 찬 사람들은 그 와중에도 먹질 않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꼭 회식 자리에 앉은 사장님이 된 것 같네.’

작년 한해 고생한 여러분들의 공로를 치하하며 올 한해도 열심히 살아 더 풍족한 미래를 안겨주겠다는 연설 아닌 연설을 하고 건배를 외치자 맥주를 마시면서 새해맞이 행사가 시작되었다.

“크아아, 이거 곡주랑 다르게 시원하니 뒷맛이 깔끔하구만.”

“찜닭이랑 먹어보게. 서로 번갈아 먹으면 더 맛이 좋아.”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피맥을 먹어봤던 수호진과 태걸욱은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찜닭과도 잘 어울리까 싶었지만 교주님이 만드신 음식이 맞는지 기가 막히는 조합이었다.

“황제도 안 부러운 맛이야.”

“그러게. 주씨 황족들도 이런 맛은 모를걸? 신교라서 다행이야! 교주님 만세!”

“만세!”

갑작스러운 태걸욱의 만세 소리에 사람들은 분위기에 휩쓸려 만세 창을 해댔다.

‘아...갑자기 북쪽의 김씨 뚱땡이가 된 기분인걸...’

본인의 앞에서 외치는 만세 소리에 얼굴이 머쓱해졌지만 신교의 사람들의 얼굴은 북쪽에 억지로 동원된 사람들의 경직되고 인위적인 느낌의 표정과 다르게 진심이 느껴지는 것 같아 나름 다른 거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이는 그동안 내가 일으킨 변화들이 신교의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유명세에 비해 올라온 영상 퀄이 너무 아쉽다..”

천마TV의 유명세에 커뮤니티에 가끔식 짤이 돌아다니는 걸 본 한 여자는 천마 TV의 영상들을 훑어보며 아쉬움을 느꼈다.

분명 감각 있는 사람이 잘 찍은 것은 맞았지만 정식으로 영상촬영에 대해 배운 것 같지는 않았고 감각적으로 찍은 영상 자체의 퀄리티에 반해 컷 편집은 거의 되지 않았는지 편집툴을 전혀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 올린 것처럼 날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이펙트라든가 자막같은 것들은 전혀 추가되지 않은 영상들은 얼마 전까지 방송사 PD를 하다 때려치고 나온 방송 전문가의 눈에는 발전시킬 여지가 꽤나 충분해 보였다.

“한번 연락을 해 봐? 좀만 다듬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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