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꼭끼오~~~~~~~~~~~~~~~~~~~”
평온한 아침잠을 깨우는 빌어먹을 닭의 울음소리. 알람처럼 매일 정해진 시간에 울면 좋으련만 닭은 알람이 아니기에 우는 시간이 제멋대로다. 무엇보다 닭 하나가 울기 시작하면 이 닭이고 저 닭이고 울어대기 시작한다.
“빌어먹을 닭들, 다 컸으니 이제 잡아먹든가 해야지.”
계란도 먹을 겸 닭고기로 단백질도 공급할 겸 들여온 닭들이 새끼를 치고 늘어나면서 작은 양계장 수준이 되었는데 요즘은 살짝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양계장을 집 주변에 너무 가깝게 지은 것 같아.”
양계장의 이전 계획과 함께 1차 출하 계획이 잡히는 순간이었다.
이전의 감자와 옥수수 그리고 딱딱한 추르피로 시작했던 아침은 이제 없다. 요즘은 버터와 계란 그리고 밀가루로 만들 수 있는 고소한 향이 물씬 풍기는 갓 구워낸 빵과 오믈렛이 나를 반긴다.
“맛있네요.”
“교주님께서 기존의 먹을 것을 대신하여 만드신 이 부(餢)[빵]라는 것에 버터를 발라먹으면 아침부터 호화로운 왕의 삶도 부럽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보드라운 계란 부침(스크램블)에 암염을 솔솔 뿌려 먹으면 하루를 기운차게 시작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죠.”
수장군이 찬사를 하는 식탁에는 모닝빵과 버터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크루와상이 갓 짜낸 야크 젖과 함께 놓여져 있었다.
‘크루와상 한번 만들어 보겠다고 고생 좀 했던 거 생각하면...그래도 맥주 만들겠다고 뺑이 쳤던 것에 비하면 수월했다고 해야 하나.’
구독자 수가 늘어나면서 무슨 무슨 업적을 달성했다며 생겨난 포인트 덕분에 자료를 찾는 것에 장애물은 없어졌다.
빵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밀가루와 달걀이 확보되자마자 빵을 만들려고 했을 때, 난 빵을 만드는 데 다른 것들만큼 필요한 재료가 하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바로‘효모’였다.
때문에 빵을 만들기 위해 나는 효모부터 만들어야 했는데 찾아본 것에 따르면 천연효모를 만드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당 성분이 많은 과일을 골라 껍질째로 잘게 갈아준 뒤 물을 섞어 공기 중에 자연 상태로 존재하는 효모가 당분을 먹고 잘 증식할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일을 가지고 효모를 배양하기 위해선 약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처음만 고생하면 앞으로 만들 빵들은 씨간장처럼 사용할 씨반죽(?)을 가지고 효모를 무한증식시켜 수월해지겠지만,
빵도 아니고 고작 빵에 필요한 재료인 효모만 만드느라 일주일이나 참을 인내심이 내겐 없었다. 시간을 단축할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어느 영화의 포스터에 박힌 문구처럼 나는 포인트를 써서 인터넷 사이트를 뒤적거린 끝에 그 방법을 알아냈다.
해답은 ‘누룩’이었다. 누룩을 이용하면 배양을 하면 배양 시간은 1~2일 이내로 단축시킬 수 있게 되는데 그 이유는 누룩에 존재하는 다양한 미생물이 효모의 증식을 촉진시키기 때문이었다.
배양 과정이라는 게 무슨 동물 사료 주듯이 이것 저것 섞어주면 자동으로 배양이 성사되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단체 미팅을 하는 것처럼 주선자인 인간이 개입을 하여 잘 섞어주고 중간중간 퍼 올려 공기를 주입해줘야 분위기가 살아난 미팅처럼 확실히 배양이 되었다. 그렇게 발효가 되어가면서 거품이 나기 시작하면 매칭이 된 커플들처럼 알아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도록 주선자인 나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다. 1일 정도 냅두면 쌀이 익어 밥이 되듯 1차 발효가 끝나는데 빵을 만드는 과정은 사실 여기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짜 마트나 빵집에서 편하게 빵 사먹는 사람들은 이 고생 모른다.’
밀가루를 가지고 만들어 둔 1차 발효를 끝낸 효모를 부어 반죽을 해준 뒤 6시간은 숙성을 해야 빵도 아니고 빵에 쓸 발효종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 다음 과정은 2차 발효였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빵 반죽이 아니라 빵에 넣을 발효종이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친 지금에는 씨반죽이 있어 이런 작업들을 모두 생략할 수 있었지만 처음에는 모든 걸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많은 작업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만든 발효종에 밀가루, 계란, 버터. 우유 그리고 꿀 등을 넣으면 드디어 빵반죽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빵반죽을 만들고 바로 오븐에 넣으면 끝나는 게 아니라 찬 곳에서 또 약 5~6시간 정도의 숙성을 시켜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난 반죽은 길게 늘어나면서 그 안에 구멍이 송송 보이는 상태가 된다. 드디어 오븐 역할을 대신할 화덕에 넣을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다. 화덕에 이 숙성된 반죽을 넣고 적절하게 구워내면 그제서야 식탁에 올라 김이 올라오는 고소한 빵이 되는 것이었다.
“밥해먹는 게 더 편할 줄은 몰랐지.”
여기서 제빵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조건을 말하지 않았는데 그게 바로 ‘계량’이었다. 이 빵이란 것들은 철저하게 과학적 매칭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인위적인 산물의 극치였는데 조금이라도 뭐가 오바하거나 부족하면 제대로 맛이 살지 않거나 빵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몇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는지...칼국수는 그냥 반죽해서 숙성시키고 자른 뒤에 팔팔 끓이면 짜잔하고 되는데.’
현대에서 지낼 때야 그냥 빵가게에 가서 빵을 살 때마다 빵집주인들이 폭리를 취하는 게 아닌가 싶어 ‘한국은 밀가루 좀 들어간 게 뭐 이리 비싸나?’ 했건만 빵을 만들고 필요한 정보와 재료들을 준비해가며 직접 빵을 만들어 보자 빵으로 유명한 나라들과 다르게 한국은 빵이 싼 게 오히려 이상한 나라였다.
우유의 가격은 시장원리에 따라 오르고 내리질 못해서 과생산이 되고 있음에도 가격이 높게 유지되어 있었고 노란색이 상징인 버터는 외국에서 전량 수입을 해야 했다. 빵을 만드는데 필요한 밀가루도 국산이 아니라 대부분의 수입이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이라고는 몇 개 없는 상황에서 빵에 필요한 재료들을 모두 그러모아 사람과 장비 혹은 시설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빵이었으니 저렴할 수 있을까.
‘아침빵 먹으면서 별 생각을 다하게 되네. 그나저나 고소하네. 이게 제대로 된 아침식사지.’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참다운 의미를 알지 못한다고 말했던 괴테의 명언은 고난과 역경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에 대해 논하지 말라는 것으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의미가 살짝 달랐지만 대부분의 제빵사들조차 나처럼 모든 재료를 자급하기 위해 수고를 해본 적은 없으리라.
‘진짜 처음으로 만든 빵 먹을 때 눈물 났다고.’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소비하는 동물이라는 걸 여기에 오고 나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숨만 쉬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추운 겨울에는 자동으로 칼로리가 빠져나간다. 인간의 몸은 산소를 이용해 열량을 태워 체온을 유지하려고 하는 항온동물이니까. 그 말은 곧 뭐한다고 왔다 갔다하면 금방 배고파진다는 소리였다.
‘아이야 뛰지마라. 배 꺼질라~’ 라는 보릿고개의 배고픈 시대를 반영한 트로트 노래 가사처럼 아직은 성장기여서 그런지 아침을 부족하게 먹지 않아도 점심시간만 되어도 허기가 졌다.
30살이 가까워지면서 이전하고 다르게 소화가 잘 안되는 것 같아 라면 2개만 먹어도 속이 부대끼는 것 같았던 예전과 다르게 지금 내 육체의 내장은 뭐든지 집어키고 녹여내는 활화산같았다. 그리고 그런 식욕은 다진도 다르지 않았다.
“교주님, 찜닭을 만들 거라구요? 그게 무슨 음식인데요. 이름만 들으면 닭이 들어가는 것 같은데 그거 맛있어요?”
닭이라는 걸 태어나고 한번도 먹어본 적 없는 다진은 닭을 가지고 요리를 만들겠다고 하자 궁금한 게 많아 보였다.
“응.”
‘일본인들도 좋아하는 안동찜닭인데. 너한테 이게 맛이 없을 리가 있겠니.’
무슨 기대를 하는 건지 찜닭이 뭔지도 모르면서 입맛부터 다시는 다진과 나의 눈 앞에는 지금 아침부터 시끄럽게 울던 닭들 중 두마리가 깨끗하게 해체되어 있었다. 내장이 사라진 채 하얀 속살을 드러내면서.
흔히들 사람들의 생각에 안동찜닭이라고 하면 찜닭 앞에 붙은 안동이라는 명사 때문에 왜인지 그 역사가 못해도 조선시대까지 올라가서 세도가문의 착취의 역사가 담겨져 있을 것만 같았지만 내가 알아본 바로는 안동찜닭이란 음식은 조선시대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음식이었다.
해방 이후에 경상도는 입지상 소나 돼지를 키우기에 별로 적합하지 않다 보니 닭을 많이 키워 양계장이 많았다. 그런 가운데 1980년대에 안동시에 존재하던 시장에 있던 어느 가게에서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한 마리 닭을 최대한 푸짐하게 여러 사람이 나눠 맛있게 먹기 위해 만들어낸 음식이 안동찜닭의 탄생비화였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통념과 다르게 안동찜닭은 탄생한 지 겨우 4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어린(?) 축에 속하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칼칼한 맛을 살리기 위해 청양고추까지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냥 고추도 아니고 청양고추는 제주산 고추와 태국산 고추를 잡종 교배하여 얻은 품종이기에 이 시대에 중원에 존재할 가능성은 1도 없는 고추였다.
‘아! 칼칼한 맛 매렵다. 나중에 청양고추를 만들든가 해야지.’
한국 음식 특유의 매운 맛을 기대하기도 어려웠지만 다진이도 그렇고 신교의 사람들은 매운 맛에 적응되어 있질 않아 기껏 만들어 봐야 나만 행복한 음식이 될 가능성이 높아 청양고추에 대한 아쉬움은 우선순위에서 밀어둘 수밖에 없었다.
찜닭에 쓸 굴소스랑 고향의 맛같은 조미료가 있다면 음식을 만드는 난이도가 대폭 낮아지겠지만 산간내륙 지방인 여기에서 굴소스를 만들 대량의 굴을 조달하는 것은 이 시대에선 황제나 가능할 법한 사치였다.
‘한끼 해 먹자고 그런 짓거리를 할 순 없지. 하지만 꿈은 간직해두자. 언젠가 이뤄낼 날이 오겠지. 내가 청양고추도 구하고 굴소스도 구할 거야!’
문명의 최첨단 조미료를 구할 수 없으니 과감하게 지금은 이 모든 걸 포기한 나는 지금 당장 준비할 수 있는 재료를 만들기로 했다.
찜닭하면 닭 말고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달고 짭조롬한 맛의 소스와 그 소스를 듬뿍 머금고 촉촉한 상태가 되어 있는 ‘당면’이 아니겠는가.
TMI가 발동한 김에 부연설명을 좀 더 하자면 당면이라고 하니 당나라 시대에 만들어졌을 것 같은 당면은 원래 당면이 아니라 호면(胡麺)이 본명이었다. 그 이름에 담겨 있는 오랑캐 호자에서 알 수 있듯 당면은 사실 당나라 때가 아니라 청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면이었다. 왜 당(唐)이라는 한자가 붙게 되었냐면 당이 중국을 뜻하는 접두사처럼 사용되어 중국 국수라는 의미로써 당면이라고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아직 이 세상엔 없는 국수다 이 말이지. 이제 넌 당면이 아니라 용운면 내지 천마면이다. 중국 놈들아. 너희들의 당면은 이제 없다! 크크큭. 김치를 니들 거라고 주작한 너희들에 대한 나의 자그마한 복수다.’
닭요리를 만드는가 싶었던 용운이 당면을 만들기 위해 전분을 뽑아내려고 감자들을 갈자 이 같은 연유를 모르는 다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찜닭이라면서 그냥 닭만 넣고 끓여서 찜을 하면 돼지. 왜 뜬금없이 감자를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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