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우리가 시켜먹는 피자에 비하면 내가 만든 이 피자들은 토핑도 부족하고 그 위에 뿌리는 소스같은 것도 마땅하지 않았지만 신선한 재료의 맛 덕분인지 아니면 처음 먹는 피자의 맛때문인지 사람들은 정말 맛있게 먹었다.
“하하하, 교주님, 이번엔 새로운 음식을 만드셨다고 빨리 와서 먹어보라기에 왔는데 맛의 충격이 이런건가 싶습니다.”
태걸욱 아저씨는 수염에 토마토 소스가 묻은지도 모르는지 양 손에 피자를 한 조각씩 들고서 좋아했다.
“많이 드세요.”
“교주님께서 왜 새빨간 이것을 꼭 구해오라고 하셨는지 이제야 알겠군요. 이 음식의 이름을 교주님께서 피자(나눌 피披 사랑할 자 慈)라고 하셨는데 이름 그대로 정말 사랑을 나누는 음식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 모두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요. 사랑에 빠진 것처럼 말이죠.”
‘그냥 pizza입니다만...’
경수와 준보는 이미 화덕에 달라붙어 번갈아 가며 숙련된 직원처럼 익은 피자를 꺼내면서 슬쩍슬쩍 한조각씩 챙겨 먹고 있었고 마을 아주머니들은 내가 만들던 것을 지켜보시더니 어느새 나를 밀어내고 자연스럽게 피자를 만들어내고 계셨다.
“보기 좋네.”
“그러게요.”
아쉬운 것이 없는 건 아니었다. 피자가 느끼해질 때쯤 입을 개운하게 해줄 피클과 콜라가 그리웠다.
‘목구멍이 막힌다 싶을 때 시원~한 콜라 한잔 들이켜면 딱인데 말이지.’
불행 중 다행히도 콜라를 대신할 대체재는 며칠 전 만들어 잘 익고 있었다.
‘스읍. 빨리 숙성이 끝났으면 좋겠네.’
보리와 홉과 효모 그리고 물이 모여서 만드는 마법의 음료. 현대에선 편의점만 가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음료지만 여기선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캔맥주를 따서 먹고 싶었지만 이곳에선 맥주를 먹기 위해선 양조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다행히 동절기가 시작되고 있어 계절도 적절했다.
‘만약 여름이었으면 미생물의 오염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지.’
토굴을 파서 넣어둔 곳에서 익어가고 있는 맥주통이 다음에 올 때까지 무사히 잘 익기를 바랐다.
“교주님, 내려가기 전에 이렇게 잘 먹고 내려가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다행입니다. 입에 잘 맞는 것 같아서.”
“신기해요. 얼마 전에 농사에 돕기 위해서 데려왔다는 물소의 젖으로 만든 치즈가 이렇게 잘 어울린다니. 야크의 젖으로 만든 치즈만 먹다가 이렇게 부들부들하면서 길게 늘어지는 치즈를 먹으니. 치즈란 게 이럴 수도 있구나 싶더라구요.”
인도와 네팔 지역에서 키워지는 물소를 데려온 덕분에 진짜 모짜렐라 치즈를 만들 수 있었다.
‘물소까진 기대하지 않았는데...’
차가운 공기 속에서 유럽의 크리스마스 축제처럼 피자냄새가 가득한 행사가 끝이 나고 사람들은 그동안 준비해온 최종 이사를 준비했다.
‘고도가 높은 이곳에 계속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정해진 곳을 오가는 이목(移牧)을 하는 신교의 사람들은 계절에 맞춰 여름엔 올라왔다 겨울이 되면 상대적으로 따뜻한 아래쪽으로 이동해서 겨울을 나는데 이번에는 온돌방도 있고 이러저러한 일이 있어 내려가는 시간이 늦춰졌던 것이었다. 그러나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이제야 내려가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어쩐지 내년에는 이곳에 빨리 오기를 기대하게 될 것 같아요.”
“그래요?”
한여사님이 바라보는 그곳엔 신교의 사람들이 모여 살던 터전이 그림같은 풍경처럼 남겨져 있었다.
“후아, 확실히 여기는 공기가 위쪽보다 훈훈하다.”
“그러게요.”
같은 강원도라도 최전방과 전방의 온도가 다른 것처럼 아래쪽으로 내려오자 분명 영하의 날씨인데도 훈훈하게 느껴졌다.
‘러시아 사람들은 영하 20도가 되면 날이 풀렸다고 한다지?’
겨울 이주를 한꺼번에 하는 게 아니라 미리 짐을 옮겨놓고 마지막 짐만 챙겨서 내려오는 것이라 그렇게 많은 수고가 필요하진 않았다. 내년 여름이 되어 올라갈 때도 마찬가지로 미리 옮길 수 있는 짐들을 몇차례에 걸쳐 나눠서 옮겨 놓고 이동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겨울이 한랭건조하여 차가운 바람이 피부 표면에 팍팍 박히는 느낌이라면 천산의 겨울은 한랭습윤하여 습도를 머금은 차가운 바람이 피부 밑으로 스며드는 느낌이다.
이곳의 겨울은 못해도 3~4일에 한번씩 눈이 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전에 비해 왕래하지 않고 각자의 집에 콕 들어박혀 자가격리를 하는 것처럼 지낸다.
“심심하네요.”
이전이었다면 바느질을 하느라 바빴을 다진은 내가 저지른(?) 일 덕분에 바느질할 필요가 줄어들어 지금 내 옆에서 뒹굴거리며 겨울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심심하냐?”
“네, 툭하면 내리는 눈만 치우면 밥 먹고 딱히 하는 것도 없으니까 심심해 죽겠어요. 예전엔 바느질하느라 바빠서 몰랐는데.”
심심해하고 있는 다진과 밖에 쌓인 눈을 보고 있자니 내 머릿 속에 떠오르는 동계스포츠가 있었다.
“다진아, 기물 챙겨.”
“네? 또 뭐 신기한 거 하려구요? 또 맛있는 거 만들어주려구요?”
“잔말말고 따라와.”
장작용으로 잔뜩 쌓아둔 나무는 너무 짧아서 적합하지 않아 밖으로 나오자 입김이 길게 뿜어져 나왔다.
“후우아, 뜨끈한 온돌방에 있는 게 좋았는데. 살짝 춥다.”
“그러다 살찐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이게 인생 아닐까요? 이전에는 먹을 것도 별로 없고 일만 하느라 겨울만 지나가길 바랬는데 이번 겨울은 안 그래서 너무 좋아요. 이상하게 심심한 것만 빼고.”
“내가 안 심심하게 해줄게.”
밖으로 나온 우리는 길게 자란 나무들이 많은 곳으로 와서 나무를 잘라내어 끌고서 제주도의 고팡 역할과 비슷한 곳으로 쓰이는 창고 앞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검기로 내가 생각했던 적당한 사이즈만 자른 뒤 나머지는 장작들이 쌓인 곳에 옮겨 놓고 창고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정리한 뒤 앉았다.
다진은 이제는 습관처럼 숨도 조용히 쉬면서 용운이 뭘 하는지 지켜봤다. 거의 사람만한 크기의 나무는 용운의 손을 통해 대략 두 주먹정도 될 너비의 길다란 나무 조각이 되었다. 용운의 눈이 슬쩍 자신의 발쪽을 향하기에 다진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용운이 이내 집중해서 칼을 몇 번 왔다갔다 하자 길다란 나무 조각은 양 끝이 하늘을 향해 말려 올라가고 판판하게 되었다.
‘도대체 뭘 만드는 거지? 작대기는 아닌 것 같고.’
좀 더 긴 나무 판과 약간 짧은 나무 판을 2짝씩 만든 용운은 지팡이처럼 생긴 작대기도 똑같이 2짝씩. 그러니까 총 4개의 작대기와 4개의 길다란 판자조각을 만들었다.
기다리라고 하더니 잠시 나갔다 온 용운은 판자조각 밑에 야크의 지방을 문질러서 미끄럽게하고선 이윽고 나무들을 몇차례 훑어보더니 이전에 기물을 들고 있을 때면 으레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다 됐나 보네.’
“이게 뭐에요, 교주님?”
“널 심심하지 않게 하고 너의 옆구리 살을 홀쭉하게 만들어줄 물건?”
“응응...뭐? 제 옆구리가 어쨌다구요?”
“혼자 중얼거렸잖아. 옆구리에 자꾸 살이 올라서 걱정이라고, 아니야? 자, 나가자.”
난 다진이 화를 낼 타이밍을 빼앗으며 자연스럽게 창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와 다진의 앞에 쪼그려 앉아 다진의 발을 움켜쥐자 다진이 비명을 질렀다.
“교, 교주님! 아무리 저희가 친해도 그렇지. 이게 뭐하는 거죠!.”
“왜?”
다진은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없어도 그렇지 감히 다 큰 아녀자의 발을 덥썩 움켜쥐는 용운의 대담함에 놀라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왜...왜 제 발은 갑자기 잡는 거죠?”
“발 밑에 이거 묶어야 하니까 그렇지.”
“응? 묶어요? 뭘?”
자신과 다르게 아무런 생각이 없는듯한 용운은 자신의 양쪽 신발을 나무 판에 끈으로 고정하고선 일어나 작대기 두 개를 건넸다.
“이걸로 뭐하라구요?”
“알려줄테니 기다려봐. 나도 신고.”
용운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자신의 발을 나무 판에 묶더니 일어났다.
“자, 이제 어떻게 하는지 기초를 알려줄 건데 처음엔 쉽지 않을 거야. 천천히 따라해봐.”
체대생 친구를 따라 겨울에 리조트에서 스키장 알바를 했던 걸 떠올리며 다진에게 스키 타는 법을 몇차례 반복하여 알려주자 몸 쓰는 법이 둔한 게 아닌지라 다진은 곧잘 따라 했다.
“항상 발끝을 각으로 모으는 게 중요해. 발 끝이 벌어지면 어떻게 된다?”
“넘어져요.”
“그래, 넘어져. 넘어지는 법을 배우긴 했지만 이왕이면 안 넘어지는 게 더 좋겠지?”
“네.”
약간 경사진 곳에서 몇 번 내려가며 폼을 익힌 다진을 데리고 이 정도면 초급자 코스 정도 되겠지 싶은 위치까지 자신과 다진의 발에 묶인 끈을 풀고 스키와 폴을 들고 올라갔다.
“교주님, 어디까지 올라가요?”
“조금만 더”
“조금만 조금만. 몇 번 째에요?”
“진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돼.”
“한번만 더 하면 10번째거든요?”
“그럼 그만 물어보든가.”
“그럼 그만 올라가요.”
‘흠, 눈 때문에 발이 푹푹 빠져서 힘들어하는 거 보니 나중에 설피도 만들어야겠네.’
“다 왔어.”
“진짜죠?”
“그래.”
연습할 때처럼 용운이 다진의 발을 잡고 끈을 묶어주자 다진은 얼굴이 확 달아올랐지만 굳이 내색하진 않았다. 그렇게 다진이 멍한 사이 용운은 자신의 스키까지 다 묶었다.
“자, 이제 다 묶었으니까 아까 내가 가르쳐준 대로 쭈욱 내려가면 돼.”
“여기서? 저기로요?”
뭐하려고 여기까지 올라오나 설마 설마 했더니 용운은 발에 깔판을 달고 내려가자는 것이었다.
“천천히 내려오면 돼. 천천히. 내려와 보면 알아. 너도 무조건 좋아하게 될 거야. 그럼 먼저 갈테니까 따라 내려와~~”
말을 마친 용운은 자연스럽게 작대기를 짚어서 밀더니 순식간에 미끄러져 내려갔다.
“이게 재밌다고? 교주님이 미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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