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20화 (20/132)

20화

“드르륵 드르륵”

이게 무슨 소리냐고? 내가 만든 재봉기가 이제는 집집마다 보급되어 재봉기가 돌아가는 소리다.

이 시대에는 각자의 집에서 손바느질로 옷을 만들어 입었기에 시집을 가기 위한 여자들의 필수 스킬이 바로 바느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여자들의 바느질을 대신해 재봉틀이 몇 번 돌아가고 나면 그들의 수고는 끝이 나게 되었으니 재봉틀을 집에 들이지 않으려는 집은 어디에도 없었다.

각자 뭔가를 대가로 줬는지 대장장이들이 미친듯한 생산속도로 뽑아낸 재봉틀을 필수용품으로 자기들의 집에 들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교주님 덕분에 이젠 얼마나 편해졌는지 몰라, 그렇지 않아 다들?”

“그러게 말이야. 이토록 편하게 살 수 있었는데 왜 그리 미련하게 어두운 불빛에 의지해서 손 찔려가며 바느질을 하고 살았나 싶어.”

“올 겨울에도 바느질만 할 생각에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교주님 덕분에 이젠 해방이잖아. 저녁에 밥 먹고 애들 얼굴 볼 시간이 생겼다니까. 우리 애들하고 제대로 이야기도 나누고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지.”

“진짜 살맛 난다. 살맛 나! 요즘은 자동베틀이 옷감도 만들어 주고 재봉틀로 살짝 몇 번 움직이면 바느질이 끝나버리니까. 이렇게 편한 때가 또 있나 싶어.”

빨래를 하러 나온 아낙네들의 대화가 정겹게 들린다.

“아우, 손 시려. 빨리들 하고 가자고. 바느질할 걱정을 덜어서 좋긴 한데 한겨울에 빨래하는 건 어떻게 안되려나.”

“그러게 말이야. 이 놈의 자식들은 도대체 지 어미를 힘들게 하려고 작정을 하고 풀밭을 가서 뒹굴고 오나. 맨날 옷을 이렇게 더럽혀놓는지 모르겠어. 빨래를 해도 해도 뭔 놈의 때꾸정물이 계속 나와.”

“그래도 올 겨울은 따뜻해서 좋지 않아? 빨래하고 집에 가서 온돌방 데우느라 끓여놓은 솥에 있는 뜨꺼운 물로 손 녹일 거 생각하니 벌써부터 좋네.”

“뜨끈한 온돌방 아랫목에 누워 있으면 일이고 나발이고 다 귀찮아지는 게 이러다 야크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그렇지 않아?”

“크크큭, 우리 남편도 처음엔 온돌방같은 거 번잡스럽게 뭐하러 놓냐고 그냥 살던 대로 살자고 하더니 웬걸? 지금은 온돌방 놓고 가장 좋아하는 게 남편이라니까. 요즘은 뭐라더라? 온돌방 밖은 위험하다나? 별 시답잖은 소리하면서 바닥에 찰싹 붙어가지곤 할 일하러 안 나가려고 해서 내쫓아버렸지.”

“아주 이러다가 바닥에 달라 붙어버리겠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밤에 잠들기 전까지 노동으로 가득 찬 이 시대의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피곤했다.

약당(藥黨) 소속이라든가 대장장이같은 기술자가 아닌 평범한 남자들은 나무를 해서 장작으로 파는 벌목꾼들이자 양과 야크 떼를 모는 목동이었으며 여자들은 밭농사를 짓고 바느질을 하면서 살아왔다.

어린 아이들도 바빴다. 부모님을 도와 함께 목동일을 한다거나 밭일을 하고 오후에는 신교의 일원으로서 소속이 확정되기 전까진 수련도 해야 했다. 입문 과정에서 특정한 재능이 발견되면 신교를 위해 싸우는 무인으로 발탁된다던가 의약당에 들어간다던가 대장장이 소속이 된다던가 하는 식이었기에 부모들도 오후 수련만큼은 무조건적으로 보내는 편이었다.

먹는 것이 부족한데다 위생이 좋지 않았던 과거로 인해 동네에 노인들이 많은 것이 아니었지만 오래 산 노인들은 디지털 사회가 아니라서 그런지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기에 충분한 지혜가 있었고 무엇보다 지식이든 무력이든 강했다.

‘원로원 노인네들하고 한번 보긴 해야 되는데...내가 가면 눈에서 하트가 쏟아져 나올 것처럼 부둥부둥하는 게 어색해서...잘 안 가게 된단 말이지.’

100년 전 신교가 멸망의 위기에 다다랐을 때 천산에 자리를 잡고 지금의 터전을 만드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이들의 직계 자식들이 바로 지금의 원로원이었다.

이들은 이제 아이들을 가르치는 스승이 되어 신교의 미래를 기르고 신교의 손실된 무공들을 복원하기 위해 연구하는 연구원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이젠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만들어 입는 옷이 많이 퍼진 것 같네.”

대중문화가 꽃피우기 이전에 문화란 것은 물처럼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었다. 왕에게서 귀족으로 귀족에서 평민들로.

신교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속한 내가 입는 것이 이곳의 유행이 되는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편하면서도 어딘가 멋스러운 옷들에 익숙해졌다.

특히나 남자들은 무스탕의 맛을 잘 알았다. 비행기는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비행기 조종사도 아니지만 멋있는 옷을 입는데 굳이 그 직업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 법 아닌가.

“무엇보다 따뜻하니까.”

기모를 대신해 안쪽에 달린 양털과 바람을 막아주는 양가죽이 주는 온기는 기존에 입던 얇은 솜옷과는 비교할 수 없이 따스했다.

산골동네의 사람들의 패션이 세련되게 바뀌자 상행을 나갔던 다진이네 아버지가 사람들과 함께 돌아왔다. 어마어마한 물자들과 함께.

“교주님,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저야 뭐 잘 지냈죠. 와...뭐가 많네요?”

“교주님이 알려주신 덕분입니다.”

“말씀드렸던 방법이 잘 먹혔나봅니다.”

“양모로 만든 모직물과 양가죽으로 만든 옷의 따뜻함을 싫어할 사람들은 없었으니까요.”

양모로 만든 모직물들과 가죽으로 만든 옷은 신교에서 내가 만든 첫 번째 특산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신교에선 필요한 물자들을 구하고자 할 땐 양들을 데리고 가서 판매하기도 했지만 양들을 끌고 내려가서 판매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험한 산길을 데리고 가는 중에 발을 헛디뎌 다리가 부러지거나 비탈길에서 굴러 죽어 발생하는 손실분이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가는 중에 살이 빠지니 근수가 빠져 처음 마을에서 데려갈 때와 비교하면 제 값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미리 이야기하셨던 대로 포대(布袋) 상단주를 만나기 전에 깔끔하게 씻고 마을에 유행 중인 옷을 차려입고 갔더니 제가 입은 옷감에 굉장히 높은 관심을 보이더군요.”

수장군은 키도 크고 체격이 괜찮아서 우리가 만든 옷을 선보이기에 좋은 모델감이었다. 눈 앞에서 멋있는 모델이 라이브 패션쇼를 하는데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좋은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보기만 해도 아는 법이다.

“내년에도 또 물량을 가져다 줬으면 좋겠다면서 ‘선점’을 하고 싶다고 할 땐 교주님의 선견지명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상인이라면 금덩어리가 눈앞에 굴러다니는 형국인데 선매(先買)를 하고 싶지 않을 수가 없을테니까요.”

다행히도 수장군은 어떻게든 장기 계약서를 쓰려는 수작에 넘어가지 않고 내년 상황을 보고 결정하자면서 미뤘다고 했다.

“잘하셨습니다. 잘하셨어요.”

“그렇습니까? 사실 전 이해가 잘되지 않습니다.”

“어떤 점이요?”

“미리 판매계약을 맺는 것이 왜 나쁜지 말입니다. 우리 입장에선 안정적인 거래선이 생겨서 고정적인 수입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닙니까?”

수장군의 의문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선매계약을 맺는 것이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경우가 있고, 아닌 경우가 있는데 내 판단에 이번 경우는 아니었다.

“선매계약을 맺는 게 좋은 것은 비슷한 상품을 판매하는 경쟁자들이 많을 때입니다. 우리의 경쟁자가 많은가요?”

시장에서 독점적인 위치에 있는 판매자는 굳이 구매자의 의도를 따라가며 값을 깎아줄 필요가 없었다. 다른 상품들과 차원이 다른 뛰어난 상품은 오히려 웃돈을 받아도 모자란 것이 독점판매다.

‘내가 10대 때 용산을 오고 가면서 용팔이들에게 한두번 당했어야지.’

‘손님, 맞을래요?’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때의 용팔이들은 배짱장사를 했다. 그럴 수 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독점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장지배력이라고도 하는 독점력은 판매자에게 있어 누구나 꿈꾸는 힘으로 당시에 용산의 전자상가처럼 전자제품들과 관련된 각종 제품들을 구매할 만한 루트가 다양화되어 있지 않은 환경에서 용팔이들은 독점적인 판매자의 지위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입장이었다.

지금이야 시대가 바뀌고 상거래의 형태가 진화하면서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되고 택배로 컴퓨터를 구매하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간단하게 다운받을 수 있게 되어 굳이 용산을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구매처가 다양해졌고 그로 인해 용산의 전자상가는 이전의 입지는 전혀 볼 수 없을 정도로 몰락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때 용산을 오가던 10대들만 잘 받들어 모셨어도 지금처럼 추락하진 않았을텐데...한번 떠나간 손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이지.’

“상단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물건을 살 사람들은 많아요. 그리고 이번에 우리가 판 물건을 산 사람들이 우리를 대신해 열심히 알려줄 겁니다. 우리 상품이 얼마나 좋은지 말이죠.”

우리가 굳이 사람들에게 홍보비용을 들여 우리 제품이 좋다고 고생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방법이! 감히 상상도 못했습니다. 좋습니다. 좋아요!”

내 의견을 듣더니 수장군이 무릎을 탁 치며 좋아한다. 한참을 자신이 어떻게 꼬득임을 버텼는지를 떠들더니 그 다음엔 이렇게 편하게 좋은 값을 받고 전부 팔아본 것은 처음이라면서 이야기를 하기에 나는 슬슬 확인을 해야겠다 싶어 입을 열었다.

“제가 꼭 구해달라고 했던 ‘그건’ 구해오셨겠죠?”

“물론이죠. 쉽진 않았습니다.”

수장군은 사람을 불러 내가 부탁한 ‘그것’을 내 눈 앞에 가져와 보여주며 의아해했다.

“교주님께서 이걸로 뭘 하려고 하시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신교의 사람들이 앞으로 먹고 살 걱정 없이 살게 해줄 방책입니다.”

“이게 말입니까?”

수호진은 확신에 가득 찬 눈빛을 하고 자신감을 보이는 교주가 도대체 ‘이것’으로 뭘 하려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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