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막상 댓글들을 가지고 다진이에게 뭐라고 하기도 뭐했다. 다진이는 이 영상이 너튜브로 올라가는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고 왜 찍는지에 대해서도 그 이유를 몰랐다.
‘확인도 안하고 그냥 무지성으로 영상을 올린 내 잘못이 가장 크긴 하지. 이건 그냥 내버려두는 걸로 해야겠다.’
“그나저나 오늘은 뭐 해요?”
용운의 뒤에는 뭔가가 복잡한 것이 잔뜩 그려진 그림들이 보였다. 저런 그림들이 책상에 쌓이고 나면 용운은 본 적 없는 것들을 만들어내곤 했었다. 며칠 전 자신이 입었던 그 아름다운 작품들처럼 말이다.
“이거 만들려면 대장장이 아저씨부터 보러 가야 돼.”
“태걸욱 아저씨?”
‘그래, 우리 태밀레. 이제 태 아저씨가 갈릴 시간이다.’
“이번에도 뭔가 특이한 걸 만들어 달라고 하시는군요. 튼튼한 바늘도 필요하고 또, 저번에 자동베틀을 만들 때 사용했던 ‘톱니바퀴’라는 것도 필요하고. 이것들을 가지고 또 뭘 만드시려고 그러십니까?”
말보다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빨랐다. 내가 만들어온 설계도를 본 태걸욱 아저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재봉기(裁縫機)?”
내가 만들고자 하는 기계는 우리나라에선 재봉틀이라 부르고 외국에선 소잉 머신(sewing machine)이라 하고 일본을 통해 들어온 덕분에 ‘미싱’이라는 이름이 더 유명한 바로 그 기계였다.
한때, 혼수용품이라 하면 지금은 흔해진 TV나 에어컨이 아니라 재봉틀이었던 시대도 있었다. 지금은 전기를 연결해서 자동으로 돌아가는 재봉틀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그나마도 재봉 작업을 취미로 갖고 있는 이가 아니라면 구매하지도 않는다.
바짓단을 줄여야 한다거나 옷감이 튿어지면 그저 집 근처에 있는 세탁소에 가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재봉기가 뭐하는 데 쓰는 물건입니까?”
“뜻하는 바 그대로의 물건입니다. 옷감을 이어 붙여 옷을 제작할 수 있는 장치이죠.”
“이것만 있으면 저번에 만드신 자동베틀처럼 바느질이 저절로 된단 말입니까? 허!”
약간 오해가 있는 것 같아 정정해줬다.
“아! 자동베틀처럼 저절로 움직이는 건 아니고 옆에 있는 이 둥그런 형태를 돌리면 바늘이 위 아래로 오가면서 바느질을 해준다 이거군요. 하지만 이조차도 어찌 보면 바늘이 저절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 아닙니까, 교주님! 허어! 일월신이시여!”
너무나 머쓱할 정도로 칭찬이 가득한 말이 이어지는 통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뒤통수를 긁적이는 일뿐이었다.
‘찬양이 너무 과도해서 이럴 때면 항상 어색해...뭐라고 대꾸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스틸맨에 나오는 것처럼 망치를 두드려 바늘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할까도 했지만 무동력 재봉틀까지 일일이 만들자니 너무 영상이 길어질 것 같았다.
내가 목적한 영상은 재봉틀을 만드는 영상이 아니라 전기가 필요 없는 무동력 재봉틀을 가지고 옷을 만드는 것이었다.
“가능하겠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교주님께서 친히 어떻게 만들면 될지를 이토록 소상하게 그려주셨는데 뭐가 어렵겠습니까?”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완성된 물건을 가져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빨리 아니어도 되니까. 잘 만들어만 주세요.”
“믿어주십시오.”
서로의 인사치레(?)가 끝난 후 대장간을 나오자 어쩐 일인지 다진의 눈에서 빛이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 교주님께서 ‘바느질’을 저절로 해주는 장치를 만드셨다! 이거죠?”
‘옆에서 다 들어놓고 또 뭔 소리야. 그거 아니야. 다진아~’
“저절로 되는 거 아니라니까. 한 손으로 바늘이 움직이게 원형 틀을 돌려야 하고 한 손으로는 옷감을 잡고 바느질할 부분을 가져다 대고 있어야 돼. 서로 이어지는 부분은 잘 잡고 있지 않으면 방향이 틀어지기도 하고. 아무튼 사람의 두 손이 다 필요한 장치야. 그러니까 저절로 움직이는 건 아니야.”
재봉틀의 최종 진화형을 알고 눈으로도 본 내게 있어 이 재봉기는 인류 역사에서도 대략 100년도 더 뒤쳐진 수준이었다.
“아니죠. 바늘을 넣고 빼고 눈알 빠져라 반복적으로 할 필요 없이 바늘이 저절로 움직이는 거라면서요. 교주님, 교주님은 신이에요! 저절로 움직이는 바늘이라니! 오오오오오!”
‘태걸욱 그 양반도 그러더니 얜 또 왜 이렇게 오버액션이야...’
다진이는 한참이고 재봉기를 만든 너에게 앞으로 잘하겠다면서 날뛰더니 마지막엔 두 손을 꼭 부여잡고 글썽글썽한 눈빛으로 나에게 말했다.
“이 손이 바로 나의 인생을 구원해준 금손인가요?”
“얘가 미쳤나...”
“미쳤죠. 아무렴. 앞으로 세상은 재봉기를 가지고 있는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게 될 거에요! 그러니 어떻게 안 미칠 수 있겠어요. 중원이여, 기다려라! 우리가 만든 재봉기를 보고 충격과 공포에 빠질 준비를 하고서!!!”
“이거 무기 아니야. 다진아. 정신차려. 그리고 재봉기를 들고 어딜 가.”
“교주님은 몰라요. 재봉기가 가져올 여성들의 해방을.”
“그 정도냐...?”
“네...바늘이 제 손을 찌를 때마다 바늘을 구부러뜨려 버리고 들고 있던 옷감을 집어 던지고 싶었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어요. 근데 바늘이 싸구려 나뭇조각도 아니고 그랬다간 엄마한테 제 허리가 부러졌겠죠? 하지만 이 재봉기가 완성되고 나면 이젠 제 인생에 그런 날은 없을테니 얼마나 좋게요?. 옷감도 교주님께서 만들어 주신 자동베틀이 있으면 저절로 만들어지고. 바느질도 기계에 넣고 스윽 하면 된다는 거잖아요.”
“저절로가 아니...됐다...”
저번에 다진이 옷이랑 내 옷을 가지고 바느질을 하느라 무슨 규화보전을 익혔던 동방불패처럼 현란한 바느질을 해야 했던 것 때문에 귀찮아져서 재봉틀을 떠올리고 설계도를 구해서 만들려고 했던 것인데 생각보다 일이 커진 것을 이때는 잘 몰랐다.
“교주님! 교주님! 제가 왔습니다. 이 태걸욱이가 교주님께서 고안하신 재봉기를 들고 왔습니다!.”
“오셨어요?”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많이는요. 이제 고작 3일 지났는데요?”
“이미 어떻게 만들지를 세세히 적어주셨는데 3일이면 긴 시간이죠. 이런 대단한 보물을 저에게 맡기고 3일이나 지났으니...죄송합니다. 사실은...”
아저씨는 자신이 만든 물건을 교주인 나에게 보이기에 앞서 시범차 설계도에 적어준 사용설명서를 따라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어제 저녁에 부인과 함께 작동을 시켜보았다고 했다.
“놀라웠습니다. 바늘 허리가 아니라 바늘의 앞쪽에 꿰인 실이 진정 제가 만든 물건인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알아서 옷감에 끼워져서 바느질이 되더군요. 원형틀을 돌리는 대로 이렇게 착착하고 말이죠. 제가 만든 이 물건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사실에 저도 놀랐지만 그런 저보다 제 부인이 더 놀라며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더군요.”
“그...그정도였나요?”
“대장장이라고 해서 굶어죽을 걱정은 없겠다 싶어 결혼했는데 평생 자기 부려먹을 농기구나 칼같은 거만 만들어서 가져다주던 인간이 처음으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물건을 가져다 줬다면서 이 ‘재봉기’를 품에 끌어안고 우는 것이 뭡니까...품에 꼭 쥐고 안 놓으려고 하는 걸 겨우 떼서 가져왔습니다.”
태걸욱은 자신의 부인에게 교주님께 이 물건을 가져다 드려야 한다고 말을 겨우 꺼냈다면서 혹시 자신의 부인에게도 재봉기를 만들어 줘도 되는지 물어봤다.
‘내가 뭐 재봉기 가지고 무슨 특허를 내서 돈 벌 것도 아닌데...’
“마음대로 하세요. 태걸욱 장로가 직접 만들겠다는데 제가 말릴 이유가 없지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교주님. 다행이네요.”
“저기 이렇게 고생했는데 보수는 어떻게...”
“엊그제 주신 설계도와 사용 설명서같은 보물까지 다 챙겨 주셨는데 무슨 염치로 제가... 보수는 감히 바라지도 않습니다. 앞으로 교주님께서 명하신 물건이라면 하늘이 무너진다고 해도 만들어릴테니 언제든지 와서 명해주십시오. 크하하하하.”
그런 건 감히 원하지도 않는다며 첫인상과 다르게 마치 굽실거리는 돌쇠처럼 허리를 숙여 감사를 전한 태걸욱은 지금부터 자신의 부인에게 줄 재봉기를 만들러 가봐야겠다면서 휙하니 가버렸다.
“헤에, 그게 바로 우리의 ‘구원자’님이신가요?”
태걸욱이 난리치고 간 덕분에 내 옆에는 태걸욱의 난리를 듣고 찾아온 다진이가 ‘마이 프레셔스’를 외칠 것 같은 광기어린 눈빛을 쏟아내며 서 있었다.
‘뭐야, 얘 무서워!’
금송아지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 소중한 듯 부드럽게 재봉틀을 쓰다듬는 다진을 겨우 진정시키고 나는 그동안 기다리며 준비해놓았던 재료들을 차곡차곡 꺼냈다.
“털 달린 양가죽은 뭐하려고 꺼내요? 이럴 게 아니지. 내가 바느질할 모직물들 싸그리 챙겨올게요.”
“이걸로 옷을 만들거니까. 이 가죽으로”
“어? 옷감만 바느질이 되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지. 태걸욱 아저씨한테 내가 괜히 바늘을 최대한 튼튼하고 가늘게 만들어 달라고 한 줄 알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거 잘 찍어둬.”
다진이 옆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촬영을 준비를 시작함과 동시에 재봉틀에 실을 연결한 나는 가죽과 가죽 사이를 가져다 대고 오른쪽 핸들에 손을 얹고 위에서 아래로 살살 돌렸다.
핸들이 돌아가기 시작하자 바늘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가죽과 가죽 사이를 사람이 공들여 바느질을 하는 것처럼 꼼꼼하게 연결했다. 본을 미리 떠두고 거기에 맞춰 가죽까지 다 재단해준 덕분에 재봉틀로 하는 바느질은 그리 오래지 않아 순식간에 끝이 났다.
‘이래 가지고선 영상 분량이 나오려나.’
만들고 자 하는 스타일대로 양가죽이 바느질을 통해 다 연결된 뒤 나는 저번에 쓰고 남은 설표의 발톱을 버튼을 자크를 대신해서 잠갔다.
“우와~~~~~~~~~! 순식간에 옷이 만들어졌어요! 교주님!”
“그래.”
“한 식경도 안 걸리고 옷이 만들어지다니. 이건 말도 안돼! 내가 뭘 본거지? 교주님, 재봉기는 저 줄거죠? 그치요? 제가 앞으로 교주님께 지금보다 더 잘할게요.”
“그렇게 갖고 싶어?”
“네. 교주님. 제발요. 제발. 제발.”
촬영이 끝나자마자 경악에 가득 차선 내 어깨를 꽉 쥐고 있는 이 손으로부터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벗어나기 위해선 악마에게 제물을 바치듯 최초의 재봉틀을 바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난 내가 만든 ‘무스탕(leather jacket)’을 보면서 멋있다고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진이는 정작 비행사들이 입을 법한 폼나고 따뜻한 가죽 재킷보다 자신을 지루한 바느질로부터 구원해줄 재봉틀에 더 열광했다.
다진은 사자왕에 나오는 아기 사자를 치켜세웠던 원숭이 샤먼처럼 재봉틀을 들어올리며 포효했다.
“엄마! 나 재봉틀 얻었어! 기다려! 한여사! 우리 고생 끝 행복 시작이야.”
‘그러지마...다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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