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아침부터 평소 루틴처럼 스마트폰 배터리 잔량을 확인할 겸 스마트폰을 본 용운은 의아해했다.
“뭐야, 왜 또 이렇게 알림이 많지?”
평소 같았으면 앉아서 차근차근 무슨 내용의 댓글들이 달린 건지 확인부터 했겠지만 오늘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따가 상행 나간다고 배웅하는 행사가 있을 거라고 했지.”
오가는 산길조차 얼어버리는 더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마을의 팔 수 있을 만한 물건들을 꾸려 상행(商行)을 다녀오곤 했는데 출발 전 그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배웅하는 것이 신교 사람들의 관습이었다.
교주인 나로선 빠질 수 없었기에 평소와 같이 여유있게 알림창이나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교주님, 상행 인원들 출발 준비를 모두 끝마쳤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한여사님의 인도를 따라 나오니 꽤나 많은 수의 야크의 등에 그동안 모아온 판매하려는 물건들이 나눠서 실려 있었다.
“수장군님, 제가 말씀드린 물건들은 꼭 구해주셔야 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옷은 말씀드린 방법대로 팔아주셔야 합니다. 그냥 아무 상인에게 팔 그런 물건이 아니에요.”
“아직 나이도 어린 교주님이 이토록 노파심이 많은 분이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군요. 하하. 알겠습니다. 당부하신 주의사항들을 모두 지켜 최대한 좋은 가격으로 팔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수장군이 표두로 참가했기에 오고 가다 도적들에게 물건을 털릴 일에 대해선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퍽이나 다행스러웠다.
‘아무래도 편의점에서 택배로 보내고 집 앞까지 물건을 배송받는 편한 세상이 아니니까...’
물론 21세기조차도 다른 나라의 경우 집 앞에 택배를 쌓아둔다고 해서 한국처럼 아무도 배송물품을 건드리지 않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기는 치안 상황이 좋지 않은 남미의 국가들처럼 언제나 탈취의 위험이 존재하는 세상이었다.
‘경계인원까지 참여해야 하다보니 사람들을 쓰는 인건비에 사람들이 먹을 음식들까지 따로 챙겨야 해서 오로지 운전자가 카고에 물건을 싣고 배송지로 나르는 이전의 세상에 비하면 쓸데없이 물류비용이 너무 높아.’
“와아....교주님도 정말 멋지신데 마니도 정말 오늘은 유난히 아름답구나.”
“그러게 말이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아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네 그려.”
다진은 내가 준 선물이 퍽이나 만족스러웠는지 사람들을 배웅하는 곳에 잘 차려 입고 나왔다. 평소보다 더욱 도도한 컨셉으로 꽤나 패션을 잘 소화하고 있어 선물해준 보람이 느껴졌다.
‘꾸며놓으니 이쁘긴 하군.’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들으며 괜스레 내가 기분이 좋아질 때쯤 사람들의 수근거림이 들려왔다.
“그나저나 두 사람이 저렇게 있으니 한폭의 그림같지 않수?”
“맞네 맞네. 아주 천생연분이 따로 없어.”
“교주님은 천신님 같고 다진이도 항아님같은 게 하늘에서 내려온 것만 같다니까.”
“저 모자도 그렇고 다진이가 걸치고 있는 건 누가 만들어준거지? 본인이 직접 만든 건가?”
“나중에 가서 물어보자구. 정 뭐하면 한여사님께 물어보면 알려주시겠지.”
“그래, 그나저나 두 사람 다 정말 곱다 고와.”
‘음, 다진이가 듣고 기분 나빠할지 모르겠네.’
사람들의 말을 듣고 슬쩍 돌아본 다진은 이미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교주님, 말씀하시죠.”
“아! 예.”
교장 선생님이라든가 대대장 훈시는 길어봐야 듣는 사람들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일하러 가는 사람들 붙잡고 오래 일하고 싶지 않아서 짧게 안전한 상행을 하고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는 말로 축약하고 가야할 사람들을 보냈다.
“왠지 마을이 휑하니 썰렁해진 것 같네.”
“그러게요.”
“근데 넌 어디 아프냐? 얼굴이 빨간 것 같은데. 감기 기운 있는 거 아니야?”
“아니요. 괜찮아요.”
다진의 이마에 손을 올려 열을 재봤더니 살짝 체온이 높은 것 같았다. 자신이 만들어준 옷이 좀 추운가 싶어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데 다진이 성큼성큼 집으로 걷기 시작했다.
“야야, 너 그 옷 너무 추워서 그런 거 아니야?”
“아니라구요!”
“근데 왜 이렇게 뜨거워?”
“정말. 아까 뭣 좀 가지러 갔다 오느라 움직였더니 더워서 그런 거예요. 후우, 더워라.”
“그러냐?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
이 세상은 감기에 걸렸다가 폐렴으로 악화되어 죽을 수도 있고 각종 질병으로 쉽사리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세상이었기에 되도록 조심해야할 부분이었다. 신교의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무예를 수련해서 튼튼한 것 같았지만 건강은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것이기에 용운은 주변 사람들의 위생과 건강을 챙기지 않을 수 없었다.
“...”
“뭐? 안 들려.”
“됐어요. 못 들었으면.”
다진이 방으로 잘 들어가는 것까지 본 용운은 아침부터 빠진 기력을 챙길 겸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히잉, 자꾸 왜 요 입이 지 혼자 떠드는 거지. 교주님한테 그럴려고 한 게 아닌데. 평소엔 잘만 알아들으면서 중요할 땐 못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건지 싶고.”
침상에 널브러진 다진은 용운이 만들어준 옷과 장신구들을 착용하고 예쁘게 차려입고 나갔는데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얼굴이 발개진 걸 숨기느라 애를 쓴 건데 용운이 이를 착각하고 감기 있는 거 아니냐면서 이마에 손을 댈 땐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참아내느라고 무진 애를 썼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다시 용운의 손이 자신의 이마 위에 올라왔을 때를 떠올리자 괜스레 얼굴이 저절로 또 달아올랐다. 용운과 좋았던 순간들을 눈을 감고 복기하고 있는데 엄마는 들어온다 소리도 하지 않고 문을 벌컥 열었다.
“아이고야, 우리 딸내미, 정말 팔자 드럽게 좋다~ 지 아버지는 돈 벌러 나가서 위험한 산길을 해치고 도적들로부터 물건도 지키느라 한동안 노상에서 잠도 편히 못 잘텐데. 우리 딸은 아버지가 일하러 가자마자 드러누워서 팔자가 좋구나.”
“어, 엄마는! 그냥 잠깐 옷 갈아입기 전에 쉬고 있었던 거거든?”
“어디 보자. 얼굴은 또 왜 벌겋게 달아올랐니? 사람들이 이쁘다 이쁘다 하니까 진짜 니가 이쁜줄 알고 기분 좋아서 그러나? 교주님이 예쁘게 만들어 주신 옷 입고 있으니 이뻐 보이는 거지. 저기 넓은 도시로 나가면 너 같은 애는 널렸다 널렸어.”
“엄마! 무, 무슨 내 얼굴이 빨개졌다 그래. 내가 뭐 사람들이 이쁘다고 해서 빨개진 줄 알아? 그리고 갑자기 들어와선 왜 자꾸 뭐라고 잔소리만 늘어놓는 건데.”
“그럼, 무슨 야시런 생각하고 있길래 얼굴이 벌개진 건데?”
옆구리를 쿡쿡 찔러가며 장난을 치는 엄마에게 정곡이 찔린 다진은 엄마의 들을 밀면서 이럴 거면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 이럴 거면 왜 왔어. 나 옷 갈아입을 거니까. 나가~”
“사람들이 그 옷 니가 만든 줄 착각하길래. 어떻게 말해줄까 싶어서 물어보러 왔다. 왜!”
“사람들이 그런 것도 물어봐?”
“아무렴, 교주님이 워낙 우리 다진이한테 옷이랑 가방이랑 이쁘게 만들어 주셨어야지. 그냥 사실대로 말할까?”
“음음, 내가 만들었다고 해. 교주님이 만들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막 교주님 귀찮게 하고 그럴지도 몰라.”
“헤엥, 동네방네 소문내야지. 우리 다진이는 그런 거 절대 만들 줄 모른다고.”
“아니거든? 나도 교주님한테 배우면 돼. 그러니까 사람들한테도 내가 만들었다고 해야 돼. 내가 아니라 교주님을 생각하라고, 한여사!~”
“니 하는 거 봐서.”
“엄마!”
건너집에서 다진과 한여사님이 뭘 하는지 서로 대화가 오가는 소리가 뭉개져서 들려왔다.
“시끌시끌하네. 저 집은. 어디보자~ 스마트폰은....충전이 다 됐네~”
아침에 보려고 하다 못 본 알림을 보기 위해 너튜브를 켜자 수백개의 댓글이 쌓여 있었다.
“뭐야, 구독자 수가 10만? 왜 이렇게 늘었지. 뭐 때문에 이렇게들 보러 온 거야?”
-기만자다. 기만자가 나타났다.
-여러분, 수백년 전 과거에 떨어져도 손재주만 있으면 예쁜 여자친구가 생깁니다.
-아...아군인줄 알았는데 적군이었구요. 포격지원 바람. 포격지원 바람.
-울지 말고 똑바로 말해봐.
-그나저나 저 여자분 성함이 뭘까? 엄청 아름다우시네.
-윗분 여자분 이름 알아서 뭐하게요?
-아니...그냥, 궁금해서 그러지.
-그럴 수 있죠. 근데 누군가의 호의나 호기심이 상대방에게 폐가 될 수도 있다는 말 들어보셨는지?
-야! 편들어 주는 척하는 니가 더 나빠. 차라리 욕을 해.
-근데 여성분 외모도 외모인데 채널 주인장 옷이랑 아이템들 만드는 솜씨에 놀라는 건 나뿐?
-동의하는 2인. 조만간 눈치빠른 사람은 쇼핑몰에 저 옷 베껴서 팔아먹올 듯.
-안 봐도 뻔한 각이구요.
-하아, 나도 저렇게 날 위해서 지극정성으로 옷 만들어주는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거울 보고 오세요, 손님. 손님 얼굴은 아이돌 비주얼 센터급이 아니시잖아요.
-외모 지상주의 결사반대! 사람들이 말이야. 사람은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심성을 봐야 하는 거라구!
-예쁘고 잘 생긴 사람들은 그런 말 안하던데...그리고 요즘은 잘 사는 집에 태어난 예쁘고 잘 생긴 사람들이 더 착하대요.
-다음 생엔 재벌집에 태어나든가 해야지. 돈이 없든가 못 생기든가 하나만 해야 되는데.
“재밌는 댓글들도 있고 이상한 댓글들도 있고... 가 아니라 뭐라고??”
댓글 알림창에 뜬 댓글들만 보다 보니 어느 영상에 달린 댓글인지 모르고 있었다. 무슨 영상인데 이런 댓글들이 달렸나 싶어 열어보니 다진이 오늘 입고 있던 옷을 입고 신이 나서 환하게 웃고 있는 영상이 올라가 있었다.
“다진아...언제 이런 걸 찍었어. 아...어떻게 하지? 영상을 지워야 하나?”
다진이 때문에 어이없게 나 홀로 컨셉을 잃어버리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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