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털실로 만들어낸 첫 번째 옷감을 가지고 용운은 옷을 만드는 영상을 만들기로 했다. 전생에는 한 벌에 수십만원씩 하다보니 비싸서 쉽사리 사 입을 수 없었던 양모 재질의 니트와 바지 그리고 가디건 등등 입고 싶었던 고급옷들을 말이다.
‘아크릴 소재 말고 진짜 울이 90% 이상 들어간 니트는 비싸서 감히 쳐다도 못봤는데...’
용운이 직접 옷을 만들겠다길래 다진은 의아해했지만 촬영을 할 때는 조용히 하는 것이 둘의 암묵적 원칙이었기에 나중에 물어보기로 하고 용운이 만드는 모습을 촬영하며 지켜봤다.
끈으로 자신의 사이즈에 맞춰 떠둔 본에 맞춰 옷감을 검기로 말끔하게 잘라내고 절정공수의 안법(眼法)과 손놀림으로 털실을 이용해 생각해둔 스타일에 맞춰 옷감을 이어 붙이는데 그 모습이 마치 미싱을 이용해 박아내는 것처럼 빠르고 정확했다. 다진이 용운의 바느질 솜씨에 놀라는 사이 용운은 손으론 바느질을 하면서도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나중에 미싱도 만들어야 되겠네. 일일이 바느질 하는 건 너무 생산성이 떨어져.’
옷을 제작할 때 필요할 법한 도구라든가 장비들이 무엇인지 체크해볼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 직접 해봐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음, 역시 그냥 책으로만 보거나 영상으로만 봐선 모르는 게 참 많구나.’
상의와 하의 그리고 겉옷까지 모두 만들어낸 용운은 이어 자신이 만든 옷을 피팅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상을 마쳤다.
“교주님, 옷이 되게 신기하게 생겼어요.”
“그래?”
용운이 울(wool)로 만든 니트웨어(knit wear)들은 중원의 패션 스타일에 익숙한 다진에게는 꽤나 독특한 것이었다. 그러나 용운이 입은 옷에선 처음 본 것임에도 이상하게 알 수 없는 멋스러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근데 또 멋있어 보여요.”
다진의 칭찬에 살짝 기분이 좋아진 용운은 자신도 모르게 다진에게 입을 열었다.
“너한테 어울리는 옷도 만들어줄게.”
“네?”
신교의 사람들이 비록 지금은 이목 생활을 하며 살아가고는 있다고 하지만 그 근원은 중원의 것이었다. 따라서 바느질을 한다거나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존의 남성들이 할 법한 일이 아니었건만 용운이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옷을 만들어 준다고 하자 다진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지.’
“교주님이요? 제 옷을요?”
“응. 만들어줄게. 기대해.”
“음...네.”
다진은 남자인 용운이 만들어 줄 옷이 기대되면서도 한편으론 기대해선 안될 금기(禁忌)를 어길 것을 기대하는 느낌에 묘한 설렘을 느꼈다.
“하아, 왜 그랬지....”
자신을 보고 멋있다면서 눈을 반짝이는 다진의 눈빛때문이었다. 전생의 마이수일 때 자신은 여자들의 단순한 호의와 애정을 구분 못했다가 낭패를 본 적이 많았다. 상처가 한번 두 번 쌓여가면서 경험적으로 마이수는 여자들에게 철벽을 쳤다. 그게 편했으니까.
괜히 기대감을 품었다가 설레발을 치면 그나마 존재하던 공적인 호의조차 사라지고 서로의 인간관계에 파탄만이 남았다
“그래서 다진이 보여주는 미소도 최대한 공적으로 대하려고 하는데...말이지. 호르몬이 넘쳐나는 사춘기의 육체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말이 헛나왔어.”
쓸데없이 떠오르는 잡생각을 지워내기 위해 몰입한 덕분인지 완성한 다진의 옷은 자신의 눈에 꽤나 아름다워 보였다. 소공녀들이 입었을 법한 빈티지 스타일에 한복의 치마를 살짝 섞은 원피스였다.
중원 사람들의 노출에 대한 민감도를 감안하여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도록 치마의 길이를 길게 했는데 그 모습이 왠지 다진이 입었을 때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이것만 주기는 좀 부족한데...”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쇼핑을 가면 어머니는 옷을 사면 신발이 안 어울린다며 신발을 구매하시고 신발을 사면 가방이 안 어울린다고 하셨던 기억이 있던 용운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의 스타일을 맞추는 것이 스타일의 완성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셨다.
“‘줄 땐 어정쩡하게 주지 말고 과하다 싶을 만큼 줘라. 그래야 받는 사람도 고마워한다.’ 라고 하셨지...”
한동안 혼자 할 것이 있다고 하자 어딘가 서운해 보이는 기색을 비치는 다진을 떼어 두고 용운은 혼자 하얀 가죽이 아름다운 설표(設豹)와 백여우를 사냥하러 다니기도 하고 약간의 탄력이 있는 나무를 찾아서 잘라오기도 하는 등 자신이 생각하기에 필요한 재료들을 모으러 다녔다.
“이제 다 모았네. 인터넷만 있으면 한번에 클릭해서 집 앞까지 오는데 매번 재료 구하는 것도 일이다. 일. 그나저나 한번 만들어볼까? ”
추운 겨울 이곳에선 머리의 열기를 지켜줄 모자는 필수였다. 용운은 러시아 스타일이 나는 털모자를 시작으로 퍼(fur)가방, 여우 털이 목 주변을 감싸는 모직코트 그리고 한겨울에도 따뜻하게 발을 지켜줄 털구두를 완성시켰다.
“나...보기보다 손재주가 엄청 좋을지도?”
만들어둔 것들을 한번 전체적인 느낌을 보고자 나무를 깎아 다진이 마네킹까지 만들어서 걸쳐보자 그 모습이 꽤나 그럴 듯했다.
이런 제작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들은 필요한 재료부터 공수하여 아이템들을 만드는 것까지 용운의 스마트폰을 통해 영상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자, 그냥 생각나서 만들어 봤다.”
막상 주자니 부끄러워져서 남은 모직으로 명품 쇼핑백을 흉내내서 만든 가방에 담아 다진에게 줬다.
“이게 저번에 말한 건가요?”
“에이...빨리 가져가. 무겁다. 크흠.”
용운은 약간 얼이 빠진 자신의 손에 억지로 넘겨주듯 쥐어 주더니 감사의 말도 듣지 않고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얘기 좀 더 하고 가시지. 한동안 바쁘다고 하면서 방에도 못 들어가게 하시더니...”
자신이 들고 있는 가방은 용운의 말대로 꽤나 묵직했다. 찬찬히 가방부터 살펴보자 용운이 건네준 가방의 겉에는 달과 해의 모습이 한가운데에 자수로 새겨져 있어 달에 산다는 항아님이나 쓸 것만 같았다.
“예쁘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동물의 발톱은 마감질이 잘 되어 있어 다진의 얼굴이 비춰질 정도로 매끄러웠다. 걸려 있는 발톱형상의 고리를 끌러서 가방을 열자 그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이게 다 뭐야? 진짜 교주님이 이걸 혼자서 만드신 건가?”
너무나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물건들에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린 다진은 허겁지겁 뛰어가 방문을 걸어 잠그곤 가방 안에 있던 것들을 조심스레 하나씩 꺼냈다.
“와아...정말 예쁘다. 이 부드러운 것 좀 봐. 부들부들해.”
손으로 쓰다듬자 다진의 손으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은 처음 느껴보는 촉감이었다.
굳이 어떤 걸 어떻게 입어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아도 지금까지 살아온 여자의 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입어야 한다고.
경험적인 자신만의 감을 따라서 모자부터 시작해서 구두까지 신고 겉옷과 가방까지 손에 살짝 걸친 다진은 자아도취(自我陶醉)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혼자서 예쁘게 차려 입고 한참 기분을 만끽하던 다진은 서둘러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어머니를 찾아갔다.
“엄마, 엄마! 이것 봐라~”
“아니! 이것아. 뭔 일 났어? 아니...그게 다 뭐니?~”
“예쁘지. 예쁘지. 교주님이 주셨다~~~~~”
“이걸 교주님께서 너한테 다 만들어 주셨다고?”
“이렇게 입으니까 나 달에 사신다는 항아님 같지 않아? 예쁘지, 그치?”
한여사의 눈에도 다진이 입은 태가 고운 것이 항아님들 아니면 공주님들이나 입을 옷들처럼 꽤나 고급스럽고 우아한 것이 보기 좋았다.
“어디 한번 보자.”
다진의 곁에 다가가 비를 피할 때나 입을 법한 도롱이 모양의 하얀색 겉옷부터 손으로 대보자 평소에 자신들이 입던 거친 옷감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부드럽지. 부드럽지. 손이 아주 그냥 스르륵하고 미끄러지는 느낌이라니까.”
“진짜로 부드럽구나.”
‘이거 백여우인가? 어떻게 이렇게 부드럽게 잘 다듬었지?’
머리에 씌워진 하얀색 털모자는 따뜻해 보일 뿐만 아니라 안에는 여우의 털가죽이 붙어있어 추운 겨울에도 전혀 추울 것 같지 않았다. 도롱이 모양으로 생긴 옷의 안을 들춰보자 재질이 모자와 같았다.
‘이 가죽은 설표같은데...’
겉옷을 잠시 벗게 하고 보자 입고 다진이 있는 치마와 윗옷이 떨어져 있지 않고 붙어있었다. 이 특이한 옷(원피스)은 이번에 교주님께서 새로 만드셨다는 자동베틀을 통해 만들어진 옷감이 분명했다.
“그 옷감을 가지고 이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 교주님께서 참으로 대단한 걸 만들어 주셨어.”
“응응. 나도 놀랐다니까.”
약간의 탄성이 느껴지는 나무를 아래에 덧대고 만든 털신(구두)과 뭘 넣기에는 퍽이나 작아 용도가 불분명한 가방(핸드백)까지 세세하게 살펴 본 한여사는 자신의 딸이 받은 선물이 아무리 많은 돈이 있다고 해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귀한 보물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보아하니 요것은 지가 얼마나 대단한 물건을 받았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네.’
“그렇게 좋냐? 좋아?”
자신이 뭘 받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예쁘고 부드러워서 좋다는 철없는 딸에게 괜히 샘이 나서 딸에게 퉁명스럽게 굴었다.
“그럼~ 어떻게 안 좋겠어?”
“그래, 좋겠다. 좋겠어. 이 어미는 맨날 이렇게 다 낡아빠진 거친 옷만 입고 다니는데...”
“어...엄마...미안. 내가 교주님한테 하나 더 만들어달라고 부탁할까?”
철없는 것이 철없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기에 한여사는 자신의 딸의 엉덩이를 세게 쳤다.
“이것아. 이것아. 교주님이 아무리 어릴 때부터 동기처럼 자랐다고 해도 그렇지. 이런 귀한 물건을 그렇게 쉽게 달라고 하니?”
“이게 귀해?”
“천지사방을 둘러봐라. 어딜 가야 그런걸 구할 수 있겠나. 저기 황궁에 산다는 공주님이나 이런 걸 갖고 계실까 싶다. 넌 교주님께서 이토록 정성을 기울여서 좋은 물건을 주셨는데 귀한 줄도 모르는게야? 안되겠다. 이리 내라. 이런 귀한 물건을 받고도 귀한줄 모르는 니가 갖고 있어선 안될 것 같으니. 내 교주님께 이런 보물은 받을 수 없다고 다시 돌려 드려야겠다.”
“어, 엄마!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이게 좋은 건 알고 있거든? 내가 용,이 아니라 교주님께 잘 할게. 알았지? 그러니까 그런 소리 두 번 다시 하지도 마.”
“철없는 것아. 교주님께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기회가 될 때마다 감사하다고 하고 그 마음을 다해서 항상 정성으로 모셔야 한다.”
갑자기 근엄하고 진지한 상태가 되어버린 엄마의 분위기에 다진은 알았다고 하면서 혹시라도 다시 돌려주라는 소리가 나올까봐 서둘러 엄마에게서 도망쳤다.
다진은 고맙다는 소리를 하고 싶어 용운의 방에 찾아왔지만 어쩐 일인지 방이 비어 있길래 자신의 모습이 과연 예쁜가 싶어 일전에 봐뒀던 것을 떠올리며 기물을 켜서 용운이 하는 것처럼 손바닥을 기물에 보여주고 촬영을 시작했다..
“됐다. 와, 이런 모습이었구나. 진짜 이렇게 입으니까 내가 봐도 정말 항아님같네.”
익숙한 듯이 자연스럽게 동영상 모드로 촬영을 하며 자신의 모습을 만끽하던 다진은 용운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후다닥 서둘러 기물을 껐다.
“뭐하러 왔...”
‘엄청 예쁘네.’
“고맙다고 하려고 왔지요.”
“그래?”
마네킹에 입혀놨을 때도 꽤나 잘 어울리는 모양새라고 생각했지만 옷의 주인은 따로 있는 법인지 다진이 입고 있는 그 모습이 퍽이나 예뻐서 마치 연예인처럼 느껴져 용운은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둘 사이의 어색한 기류가 가득 차서 서로 머뭇거리고만 있을 때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여사가 찾아와 용운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저녁준비가 다 되었다고 알렸다.
몇 번이고 다진에게 준 선물에 감사하다고 하는 말에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정말 귀한 물건을 주셨어요. 마니, 너도 빨리 고맙다고 못해?”
“어...교주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천천히 오세요. 넌 빨리 나와. 괜히 귀한 거 입고 돌아다니다 더럽히지 말고 가서 옷 갈아입고 와.”
“내가 애야, 엄마?”
“니가 그럼 내 애지. 니가 내 엄마니?”
“그럴까, 우리 딸?”
“매를 버는구나. 수.진.다.마.니.”
“엄마야! 왜 갑자기 이름을 전부 부르는데~~~~! 난 엄마가 그러면 무섭다니깐? 히익!”
둘이 멀어지며 벌이는 찰진 티키타카를 듣던 용운은 아무 생각 없이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화장실을 가기 전까지 편집해줬던 영상들을 한번에 업로드 시켜놓고 저녁밥을 먹으러 갔다. 그때 알아야 했다. 영상을 업로드하기 전엔 꼭 한번 확인을 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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