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용운이 만든 자동베틀의 뛰어남은 누구보다 마을의 여자들이 가장 잘 알았다. 자동베틀 덕분에 앞으로 매일 늦은 밤까지 어두운 등불 아래 바느질을 해가며 옷감을 만들어야 하는 노동과는 멀어질 것을 여인들은 자동베틀을 보는 순간 직감했다. 여자들은 자신들을 극한의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준 용운을 향해 아이돌을 보며 환호하는 팬클럽 회원들처럼 거센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열광했다.
“우리 이젠 드디어 저녁에도 편하게 잘 수 있는 걸까?”
“없는 살림에 아이들한테 옷 하나 넉넉하게 해주지 못하는 게 너무 마음 아팠는데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되는 거네. 교주님 만세!”
“교주님! 사랑해요!”
“감사해요! 교주님!”
마을의 여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는 그 와중에도 자동베틀은 용운이 만들어둔 털실을 이용하여 계속해서 옷감을 길게 뽑아내고 있었다.
용운이 만든 자동베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태걸욱과 장인들은 직접 용운이 만든 시설이 있는 곳으로 와서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여자들이 자신들의 노동해방에 감격해서 환호를 내질렀다면 장인들은 용운이 만든 장비의 정교함과 자동베틀에 담긴 심오한 기술적 원리에 탄복했던 것이었다.
“이...이게 우리 교주님이 만든 물건이란 말입니까?”
“흐르는 물의 힘을 이용해 알아서 옷감을 만드는 기계라니...오! 신이시여!”
“교주님! 여기 물의 힘을 받아 귀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혼자 돌아가는 이 장치를 무엇이라고 합니까?”
“이봐들! 거기만 보지 말고 여기를 보라고 여기! 여기에 우리들이 가야할 기술의 미래가 담겨 있어. 촘촘히 조각나 있는 부분이 서로 맞물려서 힘을 전달하는 작은 조각들 말이야.”
“저번에 어지간해선 찌그러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금속을 달라고 하시더니 이 부분에 쓰려고 하셨던 건가? 그땐 안 그래도 온돌방을 위한 자재들을 만드느라 바빠 죽겠는데 뭘 해달라고 하셔서 성가시게만 생각했는데...”
장인들을 모두 가르친 대목장이자 대장장이의 우두머리인 태걸욱은 온돌방이라는 걸 책으로만 보고 만들었다고 했을 때만 해도 교주님의 지혜가 꽤나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늘 ‘자동베틀’을 본 순간 그조차도 과소평가였음을 깨달았다.
‘아아! 교주님의 지혜는 감히 내가 평가할 수준이 아니었구나! 아아! 이것은 신의 지식이다.’
자동베틀에 녹아든 여러 가지 기술만 해도 꽤 오랫동안 탐구하고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그 방안이 무궁무진할 것 같았다. 이토록 뛰어나신 교주님을 따른다면 분명 신교가 권토중래(捲土重來)하며 중원의 무리들을 모두 발아래 두게 될 것이라는 신녀님의 마지막 예언이 실현될 것이 분명했다.
‘이젠 한치의 의심조차도 거두리라. 앞으로 교주님에 대해 불신(不信)하는 이들이 있다면 내 친히 나서서 그 생각을 고치고 말 것이야. 후웁.’
“교주님, 참으로 참으로! 대단한 물건을 만드셨습니다. 이런 기물을 만들 수 있는 대단한 분은 고금 이래 교주님이 최초일 것입니다.”
“그...그래요?”
용운은 너튜브와 검색의 결과로 간단하게 축소한 모형을 만들어 보고 키웠을 뿐인데 이를 본 장인들의 이글거리는 눈빛과 넘치는 존경의 표시에 살짝 어이가 없었다.
“이번에 만든 물건도 결국 모두 교주님의 심오한 지혜 속에 한치의 오차 없이 존재하겠군요. 저번에 만들어주신 책은 정말 잘 보았습니다.”
교주가 전해준 책은 서역의 사람들이 쓴다는 ‘아라비아 숫자’라는 것을 가지고 각 자재별 수치를 간단하면서도 명쾌하게 표현해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식으로 전체적으로 만들어져야 하는지 그 제작 과정 중에서 필히 주의해야할 사항까지 적혀 있어 자신들 같은 장인이라면 가히 비전 중의 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책이었다.
교주님께서 온돌방이란 물건을 만들어주라고 하신 덕분에 마을 사람들의 집집마다 온돌방을 만드느라 꽤나 힘든 과한 노동을 할 때만 해도 장인들 사이에선 교주님에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살짝 억울한 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울분(?)은 오늘 이 순간. 모두 깨끗하게 사라졌다.
“혹시라도 빠진 부분이 없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세세하게 수치와 주의사항까지 모두 다 갖춘 그러한 제작도(製作圖)라는 것을 보고 개안(開眼)하는 것만 같았는데 이번 자동베틀에 대한 책을 보면 얼마나 더 발전을 할지 기대가 됩니다.”
‘아...이 아저씨. 이게 목적이었구만. 그래, 내 드려야지. 열심히 무럭무럭 자라서 언젠가 알아서 업무를 떠맡을 우리 공밀레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야. 흐흐흐. 지금은 내가 갈리지만 미래엔 그대들이 갈려야 할 것입니다.’
“조만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분명 교주님께서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여 책을 제작해서 주겠다고 하셨는데 어인 일인지 그 순간 태걸욱과 장인들은 이상스레 서늘한 바람이 등허리를 지나가는 것 같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가,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해야할 일인걸요.”
그날부터 용운이 그만하라고 하기까지 마을의 양떼들은 하나같이 헐벗게 되었다. 태걸욱과 그 부하들에 의해 집집마다 있던 물레가 양털을 실로 만들기 적합하게 개조되었다. 이후 각자의 집에서 만든 털실을 자동베틀로 가져와 차례로 자신의 집의 옷감을 만드는 걸 지켜보며 수다를 떠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참말로 신기하네~ 어쩜 저렇게 지 혼자 옷감을 쭉쭉 뽑아낼까.”
“교주님이 이런 것도 만들어주시니 얼마나 좋은지. 이러다가 교주님이 알아서 빨래도 해주는 장치같은 것도 만들어 주시는 거 아닌가 몰러.”
“크크큭, 아무리 교주님이라도 그건 어렵지 않을까?”
“이 사람들이! 복에 겨워 아주 똥을 싸네. 똥을 싸.”
“에이, 남사스럽게. 무슨 그런 드러운 소리를 해?”
“왜? 나중엔 밥도 알아서 해주고 물도 우물이나 강가에서 떠다 쓸 필요 없이 알아서 척척 집에서 나오는 장치도 만들어주실 거라고 하지?”
“우리가 좀 심했나?”
“조금 그런 것 같네.”
“근데...그런 게 있으면 정말 좋겠네. 밥하느라 강가에서 물 길어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맞아. 겨울되면 물도 꽁꽁 얼어서 빨래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잖아. 손도 시리고.”
“에휴, 지겹게 또 겨울이 찾아오네 그려.”
이와 같은 대화는 자동베틀이 문제 없이 돌아가는지 지켜보고 있던 용운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 마치 군인들이 눈을 대하는 것만 같은 그 대화는 용운에게 묘한 기시감을 불러 일으켰다.
‘아...수도관...’
쿠X같은 전기밥솥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리지만 상수도와 하수도가 주는 이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용운이었다. 보일러를 켜고 수도꼭지만 돌리면 저절로 뜨거운 물도 콸콸콸하고 흘러나오는 화장실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르는 요즘이었다.
한번 온수로 몸을 씻을라치면 어렵사리 한여사님과 다진이 길어온 물을 데워 써야 하는 통에 번거롭기가 여간스럽지 않았다. 그렇다고 스스로 직접 물을 길어 오려고 하면 교주님께서 그런 일을 하게 내버려 둘 수 없다고 나서서 움직이는 통에 미안해서 도저히 자주 씻을래야 씻을 수가 없었다.
온돌방이 생기고 나서 물을 상시 데워 쓰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으나 물을 매번 떠서 물지게로 지고 오는 것은 중노동이었다..
‘언젠가 만들긴 해야 되는데...’
수도관을 만들기 위해선 배관을 먼저 만들어야 했는데 맑은 상태로 물을 이동시키려면 배관이 오염되지 않도록 구리라든가 철광석이 나오는 광산을 대대적으로 개발하여 대량의 금속을 뽑아내야만 했다.
이제 겨우 물레방아를 이용한 자동베틀이란 방적기를 만든 용운이 거기까지 도달하는 것은 많은 자금과 노동력을 필요로 할 것이 분명했다.
“일단은 올겨울부터 잘 보내고 천천히 진행해보자.”
“근데 이상하단 말이지.”
용운은 자신에 관해 한가지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은 그저 온돌방이나 짓고 자동베틀이나 만들었는데 수련한 적도 없는 무공이 상승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은 수호진 장군은 대련이 끝나고 왜 그런지 알겠다고 했다.
“다진이 말을 듣자하니 교주님께서 직접 나무를 베고 돌을 잘라 온돌방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랬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크기에 맞게 반복적으로 나무를 베는 것은 검술수련에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아무 의지 없이 반복적으로만 칼질을 하는 수련보다 훨씬 말이죠. 정확하게 심혈을 기울여서 했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돌을 포를 뜨듯이 한 장 한 장 잘라낼 때 섬세하게 검기를 사용하셨다고 하던데 이는 자연스러운 기의 수발과 더불어 기의 운용에 크게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그래요?”
“육체적인 수련과 기술적인 수련을 반복적으로 매일같이 하셨을 뿐만 아니라 제작도라는 것을 만들면서 심상으로 그리고 이를 옮기는 과정까지 했으니 이는 심상수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연 무공이 늘어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교주님께선 수련을 한 적이 없다고 하셨지만 교주님의 생활이 모두 수련의 한 과정이었습니다.”
어쩐지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것만 같은 수장군의 아부같았지만 실제로 검기가 이전보다 굵어지고 힘도 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베고 찌르는 검이 이전과 다르게 자연스러워졌다는 걸 감안하면 영 틀린 말도 아닌 것 같기는 했다.
‘근데...아저씨가 내가 온돌방이나 자동베틀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저렇게 잘 아시지? 초절정 고수정도 되면 그게 딱 보면 보이나?’
아무리 수호진이 교내에서 활동하는 이들 중에 손꼽히는 고수일지언정 물건만 보고 그 제작과정을 한눈에 꿰뚫어볼 수는 없었다.
‘밤이고 낮이고 교주님 이야기만 해대는 마니 이야기를 잘 들어준 보람이 있구만. 딸자식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말을 요즘 체감하고 있었는데...이렇게라도 도움이 되는구나, 마니야.’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용운은 자신도 열심히 수련을 해서 초절정고수가 되면 앞으로 너튜브에 들어갈 물건들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까 싶었다.
‘한번 열심히 해봐?’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움츠리고 있는 거대한 기는 어쩐 일인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너튜브 컨텐츠들을 만들면서 조금이지만 그 기운이 녹아서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용운은 앞으로 이전의 용운처럼 매일 일정한 시간을 따로 빼서 수련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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