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보일러가 보편화되어 있고 여름은 습한 한국에선 양탄자는 그리 보편적인 아이템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건조한 기후이거나 냉량한 기후에 적합한 아이템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곳에선 그렇기에 매우 적합한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양털로 만든 실을 가지고 커다랗게 천을 짠 다음에 벽에 걸거나 바닥에 깐다는 거지?”
용운의 설명을 들은 다진은 양탄자라는 단어가 어떤 기능을 할 물건을 말하는지에 대해 확실히 이해했다.
‘확실히 이걸로 창을 막아두면 틈 사이로 밖에서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아줘서 좋을 것 같아.’
나무로 덧댄 창을 통해 막아두긴 했지만 바람이 많이 불 때면 집 안은 차가워져서 실내에서도 꽤 옷을 두툼하게 입고 있어야만 했다.
“근데 우리도 이제 온돌방이 있으니까 양탄자라는 거 필요 없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우리 동네는 겨울에 좀 춥잖아. 온돌방이어도 그 위에 덮어놓는 깔개가 있으면 따뜻한 온도가 더욱 오래가니까 양탄자가 있으면 더 좋지. 난방의 효율이 달라진다고.”
어릴 적 겨울에 가본 시골 할머니 집을 떠올리면 분명 온돌방에도 이불을 깔아놓거나 호랑이라든가 꽃무늬가 들어가 있는 두툼한 담요가 방바닥에 놓여져 있었다.
“어떤 식으로 만드는지는 내가 하는 걸 영상으로 찍으면서 한번 봐봐.”
“알았어.”
다진에게 설명을 모두 마친 용운은 옷을 만들고 양탄자를 만들기 위해 많은 양털을 실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고, 왜 만들었는지 모를 또 하나의 물레는 자신의 차지가 되었다.
“교주님 혼자 다 할 거라면서요?”
“이건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게 좋지. 굳이 영상에 길게 넣을 것도 못 되고.”
‘어느 세월에 혼자 이걸 다 실로 만들고 있냐.’
“아! 저번에 그 벽돌처럼 말이죠?”
“어! 그렇지.”
알아서 찰떡같이 이해해준 다진 덕분에 둘은 말없이 물레소리만이 가득한 작업장에서 양털실을 만들었다. 용운이 지루해 죽을 것만 같았던 것과 다르게 다진은 좋았다.
‘일석이조(一石二鳥)란 말이지.’
용운의 말대로면 양털로 옷을 만들테니 이렇게 실을 뽑아 용운과 함께 옷을 만들면 자신의 작업량을 대체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좋은 건 용운과 함께 뭔가를 하는 것이었다.
“근데 교주님, 양털은 계속 자라잖아요. 그럼 양털이 자라는 족족 잘라서 실로 만들면 우리는 이제 옷감 걱정같은 건 안해도 되는 거죠?”
‘양이 무슨 황금알을 낳는 거위냐?’
자신의 질문에 용운은 적당히 하라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봤다.
“왜!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양도 그렇게 바싹 털을 다 깎아놓으면 겨울에 추워서 죽지 않을까?”
“아!”
한겨울에는 간혹 우리 안에 집어넣은 양들도 동사(凍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털을 벗겨놓은 양이 맨몸으로 혹한의 추위를 이겨내는 것이 불가능하리라는 건 당연한 거였다.
“그럼 양털 깎는 건 요즘이 딱 마지막 기간이라는 거네요.”
“그렇지. 깎은 털이 어느 정도 자라야 겨울이 와도 이겨낼 수 있을테니까.”
“양탄자가 바람을 막기 위해 벽에 거는 거라면서 축사에도 양털로 만든 양탄자라는 걸 주위에 둘러 쳐주면 좋지 않을까요?”
좋은 아이디어였다. 다진에게 칭찬을 해주곤 다음에 그렇게 하자고 했다.
모든 양털을 실로 만들고 나서 해야할 일은 이제 옷감을 만드는 일이었다. 씨실과 날실을 엮어 하나의 옷감으로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장비는 바로 ‘베틀’이었다.
“이제 가죠.”
“어딜요?”
“베틀 있는 곳이요.”
당연한 걸 뭘 묻냐면서 이건 내가 너보다 전문가라는 눈빛을 강하게 뿜어대는 다진에게 용운은 손바닥을 들어 막았다.
“무슨 소리야. 만들 건데.”
“베틀도 만들어요?”
마을에 몇 없는 베틀은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사용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 베틀은 목화실을 이용해서 만드는 베틀이라 양털에서 뽑아낸 실을 사용하기엔 규격이 맞지 않았다.
“양털실은 목화로 만든 실에 비해 더 굵어.”
주변으로 양털이 북슬북슬 비어져 나온 양털실은 다진의 눈에도 굵어 보였다.
“베틀 만드는 건 또 어디서 배웠어요?”
“책에서 봤어.”
양심에 털이 난 사람처럼 이젠 눈도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지만 저번에 해놓은 거짓말이 있어서인지 다진은 그러려니 했다.
“그럼 또 나무하는 걸로 시작하는 건가요?”
“그렇지.”
이러다 칼로 나무하는 게 천마 TV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게 생겼다.
다음날, 용운은 평소처럼 다진과 나와 나무를 하는 장면부터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젠 꽤나 능숙해졌는지 다진의 카메라워크에서 숙련자의 느낌이 나는 것 같았다. 나무를 잘라낸 용운은 커다란 나무를 들고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나무로 뭔가를 만들 때 꼭 해야 하는 작업은 반드시 수분을 날리는 건조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원래대로면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을 말리면서 건조시켜 추후에 목재로 뭔가를 만들었을 때 뒤틀리거나 얼룩이지지 않도록 작업을 해야 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천마장법(天魔掌法)이 있었다.
용운이 내공으로 열양장을 통해 나무에 스며들어 있는 습기를 건조시키는 과정은 다진의 눈에 꽤 멋있게 보였다. 나무에서 건조되며 나무에서 피어오르는 습기가 용운을 감싸면 그 모습이 마치 이 세상의 사람같지 않고 마치 신선님들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멋있어.’
이런 다진의 감성은 다진의 홈마 재능과 만나 그대로 영상에 투영되었다.
나무를 건조시키고 나서 용운은 검을 들어 적당한 사이즈로 잘라냈다. 그 모습이 다진에겐 어찌나 멋있는지 몰랐다. 검기를 통해 사포질을 한 것처럼 반들반들하게 나무를 잘나낸 용운은 미리 준비해둔 도면을 보며 혼자서 조립하기 시작했다.
‘저 큰 걸 혼자서 잘도 조립한단 말이야. 근데 저거 좀 크지 않나?’
어째선지 용운은 실내에서 조립을 하지 않고 물이 거센 지역 근처까지 와서 조립했는데 다 만들자 평소에 자신이 보던 것과 비슷한 크기의 베틀은 아니었다. 그런데 용운이 베틀을 다 조립을 했는데도 이상하게 평소의 용운이었다면 남길리 없는 자재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나무가 많이 남았네. 것보다 저 베틀 좀 잘못 만든 것 같은데?’
영상을 찍으면서 가까이 가서 용운에게 옆으로 삐져 나온 기둥을 잘라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려고 하는데 용운이 남은 나무들을 어떻게 했는지 구부려서 동그랗게 말기도 하고 판판이 잘라내었다.
‘다 끝난 게 아니었나? 저건 물레방아같은데? 물레방아는 갑자기 왜 만들지?’
그런 다진의 의문을 해결해주려고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용운은 남은 나무조각들로 만든 물레방아를 베틀과 연결하더니 물이 세차게 흐르는 곳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선 뭔가를 조작하자 준비해둔 양털실이 자연스럽게 풀리면서 자동(自動)으로 천을 짜기 시작했다.
‘저게 뭐야! 귀신이 들린 건가?’
그 모습을 보던 용운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잠시 지켜보더니 이내 표정을 풀고 환하게 미소지었다.
‘처음부터 만들려고 하는 게 저거였어? 자동으로 베를 짠다!’
영상 촬영을 마치는 사인을 받은 다진은 쪼르르 뛰어와 용운이 만든 특이한 베틀을 함께 보며 질문을 터뜨렸다.
“이젠 옷감 만드느라 고생 안해도 되는 건가요? 그냥 알아서 만들어주네요.”
“이게 바로 용운식 자동(自動) 베틀이라는 거지. 하하하하.”
잘난 척하는 용운의 모습이 살짝 거슬렸지만 다진에게 있어 이 정도는 충분히 감수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
“대단해요, 교주님! 정말로!”
이젠 작업으로부터 해방이었다. 평생 옷감을 짤 생각을 하면 한숨이 푹푹 나오던 다진이었지만 용운이 만든 베틀은 알아서 척척 실을 직조(織造)해내고 있었다.
“엄마, 엄마. 있잖아. 교주님 오늘 뭘 만들었는지 알아?”
“뭘 만들었는데 그래. 엄마 밥하잖아 지금.”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엄마의 옆에 온 다진은 용운이 만든 자동베틀이라는 물건에 대해 소상하게 미주알고주알 털어놨다.
“말이 되니? 아무리 우리 교주님이라지만...어떻게 베틀이 혼자 알아서 움직여. 귀신이 들린 것도 아니고.”
“된다니까! 엄마도 보면 알아! 막 저절로 실을 감아가지고 옷감이 척하고 나온다니까?”
“됐고. 알았으니까 시끄럽게 하지 말고 저리 가. 기지배야. 이러다 음식 다 타겠다. 니가 교주님 요즘 고생하는 것 같으니 제대로 된 요리 해달라며.”
“그...그랬지.”
“그럼 말도 안되는 헛소리 하면서 자꾸 방해하지 말고 저리 가.”
“엄마, 나도 도울게. 근데 내가 말한 건 전부 진짜라니까.”
평소 같았으면 자신의 말대로 냉큼 밖으로 나갔을 다진이 자신을 돕겠다는 말을 꺼내자 한여사는 귀신이 봉창 두들기는 소리를 들은 것마냥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다음날 용운이 자동베틀 위에 덧씌울 작업장을 만들기 위한 나무를 하러 간동안 다진은 자신의 엄마를 끌고 물레방아와 연결된 베틀을 어제 용운이 했던 것처럼 작동시켰다.
“어마야? 세상에! 저게 뭐야!”
“놀랐지? 엄마. 우리 교주님이 만든 거야. 이제 우리 마을 여자들은 고생 끝이야!”
용운이 만든 물건은 삽시간에 마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리저리 퍼졌고 그 사이 비나 눈을 맞지 않도록 만든 지붕까지 만든 작업장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들었는가? 우리 교주님이 귀신을 부려서 베틀이 알아서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거.”
“이잉? 아닌데. 내가 듣기론 상제(上帝)의 힘을 불어 넣어서 알아서 베틀이 움직인다고 들었어. 근데 아무리 우리 교주님이어도 그건...좀”
“뭔 소리래~ 내가 듣기론 교주님이 우리 마을 여자들 고생 덜하라고 만드신 거라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하는 건가?”
“그으래?”
작업장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은 용운은 실내 작업을 마무리한 뒤 작업장 밖으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왜 이리들 모여 계세요.”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게...교주님이 뭔가 대단한 걸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크크크, 궁금하세요?”
“당연히 궁금하죠! 안 그래요, 사람들?”
“교주님 저희도 보고 싶습니다.”
“동이 사람들이 쓴다는 그 온돌방은 참말로 잘 쓰고 있어요!”
기대에 찬 목소리들과 감사의 인사를 들은 용운과 다진은 눈빛을 교환한 뒤 각자 한쪽 문을 잡고선 양쪽 문을 펼쳤다.
“대충 소문들은 들으신 것 같으니 바로 소개합니다. 제가 만든 수력(水力)을 이용한 자동베틀입니다.”
용운이 전생에 봤던 영화 '스틸 맨1'의 주인공이 무기시연을 했던 장면처럼 손을 까딱이며 양 팔을 펼치자 이에 맞춰 다진이 잠금장치를 해제시켰고 물레방아의 힘을 전달받은 베틀이 자동으로 움직이며 실을 천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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