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다진의 기대(?)와는 다르게 계속 뜨거운 공간에서 땀만 빼던 용운과 다진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용운이 이끄는 대로 찜질방 밖으로 이동했다.
‘뭐지...왜 나가지. 할 일(?) 아직 안했는데...’
밖으로 나와 찬공기를 마주하자 한차례 땀을 빼고 나서인지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완전 시원해! 와아아~!”
“그치? 이 맛에 찜질방 가는 거지. 한번 더 들어가서 찜질할래? 아니면 이대로 집에 가서 씻을까?”
“응?”
이제서야 용운이 자신의 기대(?)와 다르게 아무런 의도가 없었음을 안 다진은 용운에게 입을 삐죽였다.
감정이 상한 다진은 ‘나 집에 갈래...’를 시전했고 용운은 여태껏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어디로 가고 갑자기 삐진 것 같은 다진의 반응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뭐야, 왜 삐졌어.’
“다진아? 다진아. 왜 그래?”
다진은 집에 들어와 옷 안에 난 땀을 씻으러 가던 중 어머니와 마주쳤다.
“응? 우리 마니, 오늘은 일찍 들어오네. 교주님도 일찍 오셨니, 마니야?”
“몰라, 그 바보 멍충이. 들어오든가 말든가.”
“교주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지, 우리 딸?”
한차례 훈계를 할까 했던 한여사는 다진의 뿔퉁한 표정을 보고 다진이 지금 단단히 삐진 것 같아 말을 돌렸다.
:으흠, 왜 우리 딸이 이렇게 심통이 났을까? 교주님이랑 무슨 일 있었니?”
“무슨 일? 아무 것도 안했어.”
“근데?”
“그러니까! 아무 것도 안하니까...그렇지! 에이,몰라!”
다진의 말을 들어봐도 도무지 뭐 때문에 삐진 것인지 한여사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진이 씻기 위해 들어가고 뒤이어 용운이 나타났다.
“쟤가 왜 저러지, 아! 교주님.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다진이 어딨어요?”
“교주님이 아무 것도 안했다고 뭐라고 하더니 삐져선 쿵쿵거리며 지 방으로 들어갔어요.”
“네?”
용운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계란, 고구마 껍질 까서 우유랑 먹는 것 까지 이만하면 찜질방 풀코스라고 하기엔 모자라도 거의 해줄 거 다 해줬구만! 사이다나 식혜가 없다보니 우유로 대체했는데 그게 평소 아침 식사랑 다를 게 없어서 좀 별로였나?’
용운이 한참을 생각해봐도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둘의 어정쩡해진 분위기와는 별개로 마을 사람들은 출입금지라는 팻말 대신에 새로이 등장한 팻말을 보고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니까 이게 우리 교주님께서 신도들을 위해서 친히 지어주신 거라 이 말인가?”
“그렇다고 하는구만. 대신 사용 순서를 차례를 지켜 쓸 것이며 사용 후에는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이 장소를 사용하는 원칙이라고 적혀 있네.”
“허어, 교주님이 몸소 나서 만드신 것을 아무나 다 사용하게 해도 된단 말인가?”
“교주님의 뜻이라면 따라야지. 근데 어떻게 쓰는 거지? 그냥 들어가면 되는 건가.”
“나는 교주님이 만드신 건데 우리들이 함부로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네.”
“흐음, 진짜 그런가.”
마을 사람들이 찜질방 사용방법이라고 적힌 팻말을 보면서 사용 여부에 대해 시끄러운 것을 보고 있던 경수와 준보는 서로를 마주 보더니 용운을 찾아가 확인해보기로 했다.
“어, 둘이 무슨 일로 왔냐?”
“무슨 일은 무슨 일입니까. 교주님이 저기 지어놓은 찜질방이라는 거. 진짜 아무나 다 사용해도 되는 건가요?”
“당연하지. 그러라고 만들어 놓은 건데. 주의사항도 적어놨잖아. 깨끗이 돌아가면서 사용하라고. 그건 왜 물어봐?”
“사람들이 진짜 써도 되는 건지, 어떻게 써야 하는 건지 같은 걸로 시끄럽더라구요.”
“그래?”
둘의 말을 들은 용운은 성공적인 건지 실패인 건지 구분이 안 가는 시범운용을 했지만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용할지를 한번 직접 보여주기로 했다.
“자, 여기 보세요! 사람들.”
““““네, 교주님!””””
순식간에 시장바닥같던 찜질방 주변이 그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바람부는 소리와 저 멀리서 양떼와 아크떼가 우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사람들 말 엄청 잘 듣네...’
“여기 있는 이건 찜질방이라는 겁니다. 이걸 왜 만들었냐면!...”
용운이 찜질방을 만들게 된 이유와 사용방법을 전부 들은 신교의 사람들 머리 위로 물음표가서 느낌표로 바뀌는 것 같은 깨우침의 시간이 지나가고 사람들 사이로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그렇게 깊은 뜻이!”
“역시 예언한 대로 이번 교주님은 신교를 다시 부흥시킬 인재임이 틀림없어!”
“내가 말했잖어! 신녀님 예언이 틀림없을 거라고.”
“니가? 넌 신녀(神女)님이 말년에 노망난거 아니ㄴ...읍읍읍.”
“아니, 이 사람이 술 처먹고 취해서 정신 없이 한 소리를 사람도 많은 데서...미쳤어!”
약간의 해프닝이 지나가고 어떤 순서로 들어가면 좋을지 묻는 사람들에게 노약자(老弱者)부터 들어가고 이어 건강한 사람이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산모라든가 관절이 안 좋은 분들한테 특히 좋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때마침 앞에 나이 들어 보이는 노모를 모시고 나온 고부(姑夫)가 있어 함께 나온 아이들과 함께 사용해보길 권했다.
“먼저 들어가 보세요.”
“지들이요? 아니, 교주님이 계신데 감히 어떻게...그보다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교주님.”
“크흠...”
어릴 적부터 장유유서(長幼有序)에 대해 배우며 어른에겐 예를 다하라고 배운 한국인의 자아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교주로서의 권위를 지켜야 한다는 용운으로서의 기억도 있어 어색하지만 이번 기회로 외부의 사람들이 있을 때 존대를 안하기로 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시게.”
“알겠사옵니다.”
일가(一家)가 찜질방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 나는 열양장을 이용하여 불을 키우고 구들장을 뜨끈뜨끈 데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멀뚱멀뚱 들어가 있던 사람들은 점차 온도가 올라가자 그 뜨끈한 매력에 푸욱 빠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 진짜 좋네요. 관절 마디마디에 열기가 스미는데 이상하게 시원해지는 것 같아요.”
“참말로 좋다. 엉덩이가 따끈따끈한 게 저번에 넘어져서 시리던 엉덩이가 확 풀어지는 것 같구나.”
“그쵸?”
“엄마, 따끈따끈하니까 나 졸려. 나 누워도 돼?”
“안돼! 교주님이 만들어 주신 곳인데 예의를 지켜야지. 예쁘게 앉아 있어!”
“히잉. 눕고 싶은데...”
아이를 다그치는 아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 살짝 미안했지만 문을 벌컥 열었다.
“여기는 그렇게 예를 지키라고 만든 곳 아니니까 눕고 싶으면 누워도 되네. 다만 저기 아랫목은 아이들한텐 너무 뜨거울 수 있으니까 방문이 있는 쪽으로 있게 하도록 하시게.”
“히익, 알겠습니다. 교주님.”
“진짜 누워도 돼요?”
“그럼~ 얼마든지.”
“와!! 엄마 나 눕는다?”
“으응....교주님 명이니까 편한 대로 해.”
일부러 사람들이 모두 지켜보는 공간에서 들리게 말한 나는 뒤를 돌아보며 적정한 사용시간도 이야기해줬다.
“대충 한식경(食頃) 이내에 나오도록 하십시오. 너무 오래 있으면 뜨거운 열기에 오히려 몸이 상할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아, 사람들끼리 순서를 확실히 하려면 번호표도 있어야겠구나.”
남은 돌을 가지고 적당히 100개 정도로 나눈 뒤 검으로 1번부터 100번까지 적어 순서를 지켜 사용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 서로 번호표를 가져가느라 떠들썩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시계가 없는 곳에서 시간을 잴만한 기구가 없는 것 같아 나중에 스마트폰 시계를 이용해서 20분짜리 모래시계를 만들어 가져다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래시계까지 갖다 놓으면 어지간해선 서로 자기들만 사용하겠다 싸우진 않겠지. 너무 오래 있다가 쓰러지는 일도 없을 거고.’
대략적인 사용법과 주의사항까지 알려준 나는 사람들이 편하게 찜질방을 사용하도록 하고 자리를 비켜줬다.
“이야, 교주님, 다시 봤습니다. 어떻게 이런 걸 만드실 생각을 했는지. 교주님께 그런 손재주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다 해.”
“푸웁, 교주님이요?”
“어허, 어디 하늘같은 교주님께 함부로 말하는 것이냐!”
괜히 근엄한 척 해봤지만 경수 놈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쇤네가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이럴 줄 알았습니까! 크크큭”
내 어깨를 툭치면서 장난을 치면서도 주변을 살피는 경수의 모습에 살짝 웃음이 나왔다.
“교주님, 저희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관절이 안 좋으신 것 같다고 했는데...정말 고마습니다.”
“우리끼리 뭐 그런 걸 가지고.”
“뭐야, 왜 나만 빼고 그런 분위기에요?”
“경수야, 난 먼저 집에 간다. 너도 빨리 집에 가서 어머니한테 말씀드려.”
“왜?”
“왜긴. 3번 번호표는 내가 갖고 있으니까. 우리 부모님 빨리 모셔와야지.”
“너 언제? 번호표를 챙긴 거냐. ”
“경수야, 손은 눈보다 빠른 법이야. 빨리 챙겨야지. 이런 건.”
준보의 새로운 면모를 보는 순간이었다. 경수가 벙쩌있는 동안 두툼한 체구의 준보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로 순식간에 자기 집으로 뛰어갔다.
“저 자식 저거! 안되겠다. 나도 빨리 어머니한테 가서 말씀드려야지.”
이에 질세라 경수도 자기 집으로 부랴부랴 뛰어갔는데 난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경수야...너도 집부터 갈 게 아니라...번호표부터 챙겼어야지...”
###후일담###
급한 성격의 경수가 집에 가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서둘러 찜질방에 빨리 가서 줄서야 된다고 닦달하는 바람에 저녁밥을 하다 말고 뛰어온 경수의 어머니는 경수의 등짝을 칠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온 바람에 집어갈 번호표는 다 집어갔고 90번 번호표만이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모를 바구니에 덩그라니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아, 준보처럼 번호표부터 챙겼어야지. 저녁밥 준비도 다 안했는데 이 어미를 끌고 와? 90번이면 한참 남았잖아.”
“아니...그게 아니라...”
경수가 혼나는데 간단하게 먹을 주전부리와 땀을 닦을 수건까지 챙긴 준보네 할머니와 준보 어머니 그리고 준보 아버지가 때마침 도착했다.
“아이고, 경수 어머니도 벌써 와 계셨네. 들으셨죠? 교주님 덕분에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여기 들어갔다 나오면 아주 몸이 개운해지는 게 그렇게 좋다네요.”
“네에...그래요?”
“나 먼저 들어간다. 경수야. 먼저 들어갈게요. 경수 어머니. 그럼.”
경수 어머니는 준보가 챙겨왔다면서 3번 번호표를 보여주며 이제 자기들이 들어갈 차례가 되었다고 들어가는 준보네를 경수와 같이 웃는 얼굴로 배웅해주다가 준보네가 모두 들어가자마자 한차례 경수의 엉덩이를 들고 있던 밥주걱으로 소리가 나게 후려쳤다.
“아! 아파. 엄마.”
“으이그, 평소엔 세상 똑똑한 척 말은 청산유수(靑山流水)처럼 하는 놈이 지 아비 닮아서 실속이 없어. 실속이! 준보 엄마는 얼마나 좋을까. 아들내미가 묵직하니 무게감도 있고 남자애같지 않게 지 부모도 잘 챙기니...”
“엄마...그게 아니라...”
경수의 엄마가 휙 등을 돌려 다시 집으로 향하자 경수는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자기 엄마를 따라가다 한 대 더 맞았다.
“아니, 왜 또 때려! 미안하다니까. 아까 때린 데를 또 때려.”
“오늘 너랑 니 아버지 준다고 일부러 양고기 잔뜩 넣고 찜해놨는데 너 때문에 뛰어 오느라 제대로 못 챙겼잖니! 다 탔으면 어쩔거야. 이 녀석아!”
“아...”
경수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양고기 찜이라는 소식에 얼굴이 환해졌다. 다 탔을지 모른다는 엄마의 말에 엄마를 내버려두고 자기가 먼저 가서 장작 빼놓겠다며 뛰어갔다.
“경수야!”
“엄마, 내가 먼저 가서 다 처리해놓을게. 나만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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