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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11화 (11/132)

11화

내 설명을 들은 다진은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러니까 추르피네요?”

“아니...그게...음...그렇지. 너한테는 추르피긴 한데...”

뭔가 억울했다. 추르피도 치즈의 일종이긴 했지만 그냥 먹으면 너무 딱딱해서 이빨도 부러질 것 같은 추르피 따위가 피자나 핫도그라든가 라면에 넣어먹는 체다치즈, 모짜렐라 치즈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헤에, 저쪽 서역에선 추르피를 치즈라고 부른다구요? 거기도 우리처럼 맛없는 걸 먹는구나. 신기하다. 그나저나 교주님은 이런 것도 알고 엄청 똑똑하시네요? 처음 알았어요. 교주님이 이런 것도 아시는지.”

“그...그게 아니ㄹ...아니다.”

다진은 자신의 한수가 먹혀 다행이라고 생각해서 용운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자신의 방으로 움직이기 위해 일어났다.

“교주님, 교주님은 하실 게 있지요?”

“으..응”

“그럼 저도 이만 제 방으로 가볼게요. 내일 봬요.”

“그래.”

기필코 나중에 피자와 핫도그를 만들어서 다진에게 맛있는 치즈를 먹여 추르피와 치즈가 다르다는 말을 듣고 말겠다는 용운과 아까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얼굴이 화끈거려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는 두 사람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의 밤이었다.

다음날도 지루한 노동은 계속되었다.

‘빨리 해치우고 끝내야지.’

내화벽돌이 모두 온 마당에 이제는 거칠 것이 없었다. 고래를 모두 만들고 그 위에 잘라둔 구들장을 얹고 화덕을 만들면서 구해놓은 황토를 이용해 흔들리거나 틈이 있지 않게 모두 메웠다. 열양장을 이용해 화기로 한번 습기를 날린 용운은 아궁이 쪽으로 가 장작불을 떼고 지켜봤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다진은 굳이 모두 짓고 나서 불을 피우지 않고 왜 지금 불을 피우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용운이 촬영 중에는 되도록 다른 소음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용히 해야 한다는 신신당부(申申當付)를 해놔서 질문은 나중으로 미뤘다.

“다행이다. 확실히 연기는 안 새네.”

용운은 밀폐가 잘 된 바닥을 보고 미리 세워뒀던 기둥에 맞춰 내화벽돌과 황토를 이용해 벽을 쌓아 올렸다.

일반적인 건설현장이었다면 며칠은 더 걸릴 일이었지만 혼자서 여러 사람의 역할을 혼자 다 할 수 있는 용운의 힘과 몸놀림 덕분에 저녁무렵이 되자 지붕까지 모두 올릴 수 있었다.

“휴우, 다됐네.”

다진에게 이제 그만 촬영해도 된다고 사인을 주며 등을 돌리자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모여 있었다.

“언제 이렇게...”

“사람들이 우리 교주님께서 몸소 나서서 만드는 게 뭔지 궁금했나봐요.”

“하긴, 아무것도 설명해주진 않았으니까.”

“바로 교인들에게 보여줄건가요?”

용운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안돼, 한번 시험적으로 가동해보고 부족한 것은 없는지 모두 확인하고 나서 보여줄거야.”

“사람들에겐 제가 그렇게 말해둘게요.”

일을 전부 마치고 퇴근하는 노동자의 심정으로 씻고 침상에 누운 오늘 찍은 촬영 분량을 모두 확인해봤다.

“내가 만드는 거지만 진짜 대단하네.”

영상 속에선 잔상을 남기며 이리저리 스피드스터처럼 왔다 갔다 움직이자 조금씩 건물이 올라가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이걸 전부 하루 만에 찍은지 모르겠지? 하아, 졸립네. 후딱 올리고 자자.”

대충 편집을 마친 용운은 처음에는 정기적으로 영상을 올려야 한다는 어느 너튜버의 충고를 따라 오늘의 영상분을 업로드가 되도록 걸어 놓고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충전이 될 수 있게 스마트폰을 갖다 놓던 용운은 너튜브 알림 옆에 99+라고 적힌 숫자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와...이건 또 왜...왜 이렇게 많지.”

-홀리몰리! 지금 내가 영상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 하루만에 저렇게 건물을 지어 올린다고?

-OMG, 안돼! 이젠 더 뭘 만드는 영상을 못 보는 건가? 뭔가를 조용히 만들기만 하는 영상을 보면서 힐링하는 기분이었는데.

-왓더...? 요즘은 히어로들이 많이 먹고 살기 어려운건가. 저쪽 거미인간이 피자 배달하느라 힘들어하긴 했는데.

-녹색거인이 속도까지 빠르면 저런 게 가능해지는가보군.

-국뽕 채널이라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한국을 탈출한 능력자가 또 허락도 받지 않고 영상을 올렸군요. 이거 이거 협회 친구들은 뭘 하고 있는 거지? 빨리 처리하라고 해야겠어.

-이 친구, 심지어 온돌 만드는 법을 너무 자세히 올렸군. 이건 국가기밀인데.

-재밌는 드립이군.

-마벨! 새로운 영화라면 빨리 저 친구 이름이 뭔지 알려줘! 코믹스에서도 이런 타입은 나온 적이 없었잖아.

여러 나라의 구독자들이 자기들만의 언어로 떠든 것을 밑의 번역 버튼을 눌러 하나하나 읽던 나는 웃음이 피식 나왔다. 그러다 어느새 도착했는지 들리는 다진의 노크 소리에 스마트폰을 충전상태로 돌려놓고 아침을 먹으러 움직였다.

“이건 왜 가져가요? 오늘 온돌 시범 운용해본다면서요.”

“그러니까 가져가야지.”

“???”

용운은 한 여사님께 부탁해 나중에 필요할 것 같아 땀을 닦을 옷감과 함께 삶은 계란과 고구마 그리고 우유를 담은 도기까지 챙겼다.

“이게 필요해요? 혹시 제사같은 거 지내려구요? 제사하려면 이런 걸 가져가는게 아니라 ...”

“그건 아니야. 이따 보면 알아.”

“제사 지내는게 아닌데 먹을 건 왜....?”

어제 만든 온돌방에 도착한 용운은 장작불을 피우고 어느 정도 방이 달궈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진과 함께 들어갔다.

“와아, 따뜻해요.”

“좋지?”

통상적으로 의자에 앉거나 침상을 사용하는 등의 입식생활을 하는 이곳의 문화와 다르게 방바닥에 앉으라고 하자 다진은 의아함을 보였다.

“앉으라구요? 이 바닥에?”

“어.”

“놀리는 거 아니죠?”

“아니야.”

‘원래의 나는 도대체 얼마나 장난을 쳐댔길래 얘한테 신뢰를 잃은 거야.’

방바닥에 앉아 있던 나는 자연스럽게 온기를 느끼고자 발라당 누워버렸다.

“아, 좋다!”

“왜 누우시는 거죠?”

“너도 누워봐. 엄청 편하고 좋아. 등도 뜨끈뜨끈하니 좋다니까.”

용운이 가져온 천을 가지고 누울 수 있게 베개처럼 만들더니 와불처럼 옆으로 누워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뭐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교주님이 미쳤나봐. 해도 아직 안 떨어졌는데.’

다진은 아무리 자신과 용운이 친해도 그렇지 벌써 이래도 되나 싶었다. 동시에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옆에 누우라고 말하는 용운의 과감함에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어머니, 소녀는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날까지 버티질 못할 것 같사옵니다.’

다진은 새색시마냥 천천히 등을 지고 용운의 옆자리에 누웠다.

‘뭐야, 얘 왜 이래.’

용운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에게 갑자기 등을 돌리고 눕는 다진의 어깨를 잡아 편하게 누울 수 있도록 해주려고 했다.

‘교주님, 좀 천천히 너무 빨...’

“야, 왜 등 돌리고 눕냐.”

“어? 어? 그거야...”

자신을 쳐다보며 똑바로 누우라는 용운의 눈빛은 자신과 다르게 달아오른 것 같지 않았다.

‘뭐지?’

“편하게 누워. 편하게. 뜨끈뜨끈하니 좋지?”

“네...”

“시원~허다.”

용운은 다진을 편하게 눕게 하고 자신도 따라 누웠다. 그러자 자신도 모르게 목욕탕에 들어간 어르신들마냥 시원하다 소리가 흘러나왔다.

“시원해요? 이게?  따뜻하다 못해 뜨끈한데요?”

자신도 어릴 적에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갔을 때 아버지께서 뜨거운 온탕에 들어가 시원하다고 하는 소리를 이해 못하던 때가 있었는데 다진이 똑같은 반응을 보이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직 모를 때지, 우리 다진이는. 크큭”

“저도 알 거 다 알거든요?”

방금 전까지 분위기가 좋았는데 자신을 마치 어린애 취급하는 용운에게 이상스레 불뚝거렸다.

“아니거든. 우리 다진이는 모르는 게 많거든.”

“어머니께서 그러셨어요. 남자애들이 여자애들보다 정신적으로 성장이 3년은 늦다고. (그러니 제가 교주님보다 정신적으론 3년 더 성숙한 거지요).”

‘다진아, 이 몸은 전생에 30살까지 살았던 기억을 가진 몸이란다. 니 나이에 3살을 얹어도 21살밖에 안돼요. 우쭈주’

“그래, 누나라고 해드릴까?”

“아니...그건 아니구요.”

알콩달콩 떠드는 사이 달아오른 방 때문인지 서로의 몸이 따끈따끈하다 못해 다진이의 얼굴에선 땀이 나기 시작했다. 발그레해진 다진의 볼을 본 용운은 이만하면 계란과 우유를 먹어도 좋겠다 싶어 차갑게 해두기 위해 방 앞에 놓아둔 우유병을 가지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왜 벌써 일어나요?”

“벌써? 아직 더 누워있고 싶구나? 이게 온돌의 마력이지.”

다진이 자신도 모르게 용운의 옷자락을 잡았다.

“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요.”

“기다려봐. 준비해둔 다음 과정이 있다고.”

“다음 과.정?”

다진은 자신도 모르게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다음 과정이 뭘까. 주변 아주머니들이랑 빨랫터에서 듣긴 했는데 남자랑 여자가 누우면 다 끝나는 거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일어선 용운이 갑자기 문을 벌컥 열기에 다진은 화들짝 놀랐다.

‘교주님이 미쳤나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왜 문을 열고.’

“바,방문은 왜 열어요, 교주님?”

“응?”

아무 생각 없이 밖에 놔둔 우유병을 챙긴 용운은 아랫목 위에 챙겨뒀던 계란과 고구마가 들어있는 바구니를 가지고 와서 다진의 앞에 앉았다.

“이거 먹어야지.”

“이걸 먹어요?”

‘하아, 뭐지. 이건 생각 못해본 그림인데. 너무 많이 먹으면 배가 나와보이겠지? 조금만 먹어야겠다’

다진의 착각이 계속되는지 모른 용운의 머릿속에는 온통 먹을 생각뿐이었다. 자고로 찜질방의 생명이라 함은 삶은 계란과 시원한 식혜지 않는가. 그러나 당장 식혜를 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계란과 함께 찐고구마를 우유와 함께 먹는 것으로 대체했다.

“어디 보자.”

“딱!”

“교주님!”

기껏 분위기를 잡더니 왜 자신의 머리에 삶은 계란을 후려치는 것인지 다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하는 짓이죠!”

“너 먹으라고 까줄라고 그러지.”

“응?”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은 용운이 천천히 삶은 계란의 껍질을 가더니 자신의 입 앞에 가져왔다.

“이걸 지금 먹으라구요? 갑자기?”

“그래.”

한차례 뜨거운 공간에서 벌어질 일(?)에 대해 엄청난 기대를 품었던 다진은 용운이 주는 삶은 계란을 입으로 가져가 오물오물 씹었다.

“맛있지?”

“네.”

“목 막히니까 이것도 같이 먹어.”

용운은 다진에게 시원하게 해둔 우유를 물잔에 담아 다진에게 가져다 주었다.

‘왜 이렇게 다정하지?’

“삶은 계란이랑 우유랑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혼자 살게 되고 자취요리를 해먹기 위해 종종 보던 요리연구가님의 영상을 보며 따라 했던 습관이 자기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큽. 교주님, 그게 뭐예요~.크크큭.”

“뭐긴...”

‘아차.’

한차례 웃고 떠들면서 다진과 같이 이쁜 아이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찜질방에서 삶은 계란을 까먹고 있자니 마치 현대의 찜질방에 어딘가에 온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좋네. 진작 이러고 살았어야 했는데...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렇게 아등바등 산 건지...어차피 그렇게 어이없이 죽을 거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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