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다진을 보면서 손을 흔들던 준보와 경수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준보와 경수의 인사에 동네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까지 따라 허리를 굽혀 나에게 인사를 했다.
“오냐! 얘들아. 자자, 다들 일어나세요.”
준보와 경수는 터를 다져놓은 공간을 가리키며 내게 뭘 하는 거냐고 물었다.
“아, 그거? 나중에 보면 알아. 너희들도 좋아할걸. 아주 ‘따끈따끈’한 물건이지.”
“맞아. 교주님께서 만드실 이건 아주 ‘따끈따끈’할거야.”
“따끈따끈??? 대충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래도 교주님께서 이렇게 기운 차린 거 보니까 다행입니다. 준보도 교주님 걱정 많이 했습니다.”
“준보가? 오호”
“교주님께서 요즘 들어 많이 힘들어하셨잖습니까?. 그러다가 갑자기 쓰러지셨고. 사람들이 가지는 기대에 너무 힘들어 하지마십시오. 저희도 돕겠습니다.”
곰처럼 덩치 좋은 준보는 말이 많은 사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친구였다. 용운의 기억이 점차 동기화되어 가고 있는 나로선 그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고맙다. 준보.”
“저는요? 저는요? 저는 안 고마우십니까?”
묵직하고 남자다운 준보와 다르게 어릴적부터 까불거리던 경수가 자기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고개를 들이미는 탓에 대충 대답했다.
“너.도.정.말.고.마.워. 경.수.야.”
“희야, 아주 진심이 팍팍 느껴지는 감사인사네요? 이런 감사는 처음 받아봐요. 정말로. 아주 엎드려 절받기같습니다.”
계속 내버려두면 1절, 2절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뇌절까지 할 것 같아 잘라야 했다.
“근데 여긴 뭐하러들 왔어?”
“사람들이 여기 교.주.님께서 여기에 들어오지 말라고 줄을 쳐놨다길래 뭘 하시려나 싶어 궁금해서 잠깐 들렀습니다. 교주님 얼굴이 좋아진 걸 봤으니 뭐...된 것 같습니다.”
“슬슬 가자. 경수야. 교주님, 저희는 이만 훈련을 받으러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두 친구는 만날 때와 같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선 자리를 떠났다. 슬쩍 고개를 뒤돌렸다 다시 가는 친구들을 한참 지켜보고 있자니 다진이 입을 열었다.
“쟤들도 교주님이 걱정되었나 봐요. 교주님께서 쓰러지셨을 때 몇 번이나 찾아왔었거든요.”
“그래? 짜식들.”
부하이지만 어릴 적 함께 자란 친구들의 응원도 받았으니 하던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 언젠가 찜질방을 만든 뒤 찜질방에서 서로 수건으로 양머리를 하고서 찐계란을 먹을 날을 위해.
잡음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조용해줄 것을 말하고 화면에 잡히지 않는 지역까지 멀리 떨어뜨린 나는 태걸욱이 가르쳐 준 대로 진흙을 이용해 화덕을 만들고 열양장(熱陽掌)으로 화덕의 수분을 모두 걷어낸 뒤 내화벽돌을 한차례 구워내는 과정을 영상으로 담았다.
“교주님, 다음 건 점심 드시고 하는 건 어때요?”
“후우, 벌써 점심 먹을 땐가?”
한여사께서 챙겨주신 점심을 챙겨먹은 우리는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왔다. 내화벽돌이 완성되어 배달되어오기 전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시간동안 아무 것도 안하기보다는 다시 영살촬영을 재개하여 기둥으로 쓸 나무들을 재단하고 구들장으로 사용할 돌덩어리들을 판판하게 잘라냈다.
“하아압.”
현대였다면 물을 뿜어 잘라내는 워터젯이란 기계로 잘라냈겠지만 여기선 그런 일들은 무공으로 해결해야 했다.
검으로 한 장 한 장 김밥을 자르듯 일정한 사이즈로 잘라내기 위해서 검기를 피워올려 매끈한 판으로 일정하게 잘라내야 했다. 정교한 작업이라서인지 생각보다 많은 집중력이 필요했다.
‘후우...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너무 천천히 베어내면 내공소모가 커졌고 너무 빨리 베어내면 베어낸 면이 수평이 아니게 되었기에 적당한 속도로 균일하게 힘을 배분해야 했다. 처음에는 살짝 조절이 힘들었는데 이것도 반복해서 하니 조금씩 적응해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아랫목에 쓸 구들장은 윗목에 쓸 구들장보다 더 두껍게 잘라냈는데 이는 아궁이와 가까운 쪽은 불길이 강하기에 윗목과 똑같은 구들장을 쓸 경우 그 열기가 너무 강해 방바닥이 심하게 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불을 피우는 아궁이쪽의 구들장은 두껍다고 해도 아랫목의 자리에 그 열기가 계속되다보면 누룽지가 눋듯이 장판이 타곤 했다. 흔히 온돌이 깔린 시골집들의 아랫목들이 괜히 탄 자국이 생기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구들장을 만드는 영상까지 담은 우리는 그날 촬영을 거기서 마치고 내화벽돌 제작을 살펴보기위해 잠시 태걸욱을 찾아 언제까지 내화벽돌을 가져다 줄 것인지 확인했다. 그렇게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힘들다. 힘들어. 이거 완전 노가다가 따로 없네.”
노가다꾼이라고 쉽게 비하되거나 하지만 건설 노동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직접 해보니 깨닫게 된다. 건설노동자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절대 비하될만한 일이 아니었다.
집을 짓는 이들에게 필요한 기술은 미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한 섬세한 손기술, 각종 자재에 대한 정확한 이해 그리고 다양한 공구의 사용과 함께 육체적 노동력 등 사람들의 인식과 다르게 그야말로 복합적인 종합기술이었다.
절정고수라는 무공의 경지가 있긴 하지만 한번도 해보지 않을 일을 진행하다보니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심력소모가 컸다. 더구나 쉬지 않고 검기를 사용한 후폭풍인지 폐관수련을 한 것마냥 이상스레 피곤해져 잠이 쏟아졌다.
“어어어... 영상 편집도 해야 되는데. 엄청 졸리네. 잠깐만 눈 좀 붙일까?”
이윽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새벽이었다.
“어우씨?...잠깐만 눈 붙인다고 했는데 푹 자버렸네. 정신적 피로에 육체적 피로까지 겹치니 절정고수도 어쩔 수 없구나.”
열심히 무공수련을 하면서 단련된 육체덕분 아니면 숙면을 취해서인지 다행히 근육통이라든가 하는 피로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전날과 같이 배터리 충전까지 다하고 나서는 어제처럼 다진이 촬영을 도와줬다.
“자, 한번 또 시작해볼까. 준비됐어?”
“시작해도 좋아요.”
다진에게 오늘 영상을 어떻게 찍어줘야 하는지에 대해 구도라든가 각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준 뒤 감독이 큐사인을 보내는 것처럼 다진의 신호를 받은 나는 작업을 재개했다.
온돌의 핵심은 장작을 태워 발생시킨 열에너지를 한번에 배출하지 않고 최대한 오랫동안 구들 아래에서 돌아다니도록 하는 것인데 돌아다닐 길인 ‘고래’를 잘 만들어야 했다. 이 고래라는 것을 만드는 방식은 다양했다.
불길이 다니는 길을 미로처럼 만들되 한방향으로만 만들면 1로(路)식, 불길이 양쪽으로 나눠져서 미로를 따라 돌아다니다 굴뚝에서 합쳐지는 건 2로(路)식, 그냥 여기저기 장애물을 세우는 다주(多柱)식, 아궁이에서 굴뚝까지 가는 길을 여러개로 나눠놓은 다로(多路)식 등등이었는데 그 중 이번에 내가 만들고자 하는 방식은 너튜브에서 본대로 한길을 주욱 내부를 돌아다니게 만드는 1로식이었다.
어제 화덕을 만들고서 커트를 따기 위해 구워낸 내화벽돌을 가지고 우선 고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다진은 내 옆에서 고래를 어떻게 만드는지 촬영 전 가르쳐 준대로 그 과정을 상세히 담았다.
만들다보니 내화벽돌이 부족해질쯤 태걸욱이 사람들과 함께 내화벽돌을 잔뜩 짊어지고 왔다.
“다진아, 촬영 중지하고 그거 이리 내.”
“응? 왜요?”
“나중에 설명해줄테니까 빨리 줘.”
촬영을 잠시 멈추도록 하면서 다진에게서 스마트폰을 받아 숨긴 나는 따끈따끈한 내화벽돌을 쌓아줬으면 하는 자리를 적당히 정해줬다.
“허허, 정말 신기하군요. 이걸 교주님께서 혼자 다 생각하신 겁니까?”
“나 혼자 이걸 어찌 다 생각해냈겠소. 지금은 조선이라고 불리는 나라에 예전부터 내려져 오는 난방법(煖房法)입니다. 난 그저 책에서 봤던 대로 따라하는 것일 뿐이오”
다진에게 말했던 것처럼 온돌에 대해선 책에서 봤던 거라고 적당히 둘러댔는데 태걸욱은 다진처럼 근거가 되는 책의 존재 유무에 대해선 딱히 관심은 없어 보였다.
‘무슨 책이냐면서 자신도 책을 보고 싶다고 했으면 골치 아플 뻔했는데...’
“보아하니 저 사이로 만들어 놓은 공간이 불이 돌아다니는 길인가보군요. 벽돌을 쌓아서 불길을 만든다라...”
“‘고래’라고 하면 되오.”
“흐음, 저렇게 불길이 돌아다니는 공간 위에서 누워있을 수 있다면 아주 뜨끈뜨끈하겠습니다.”
가마를 사용해봤고 불을 잘 다뤄야만 하는 대장장이라서 그런지 태걸욱은 내가 쌓아놓은 고래를 보자 어떻게 할 것인지 대략적으로 파악을 했다.
한 차례 대화를 하고나서 다시 고래를 찬찬히 살펴보던 태걸욱은 뭔가를 알아차렸는지 손바닥을 마주쳤다.
"호오! 놀랍구나 놀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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