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아침부터 울려대는 스마트폰 알림 소리에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잠이 깨버렸다.
“뭐야, 전화도 안되고 문자랑 코톡도 안되는데 뭔 알람이 이리 울려.”
스마트폰에 뜬 알림은 다른 게 아니라 너튜브의 댓글이 달리면서 올라온 알림이었다.
“응? 영상 어제 올렸는데 뭐가 이리 많이...”
조회수가 무려 10만회는 넘는데다 댓글도 수백개는 달린 것 같았다. 지금 확인하는 중에도 댓글 수와 구독자 수가 새로고침할 때마다 계속 증가하는 중이었다.
-WTF, 이거 마벨에서 새로 만든 시리즈야? 저 남자는 무슨 캐릭터야? 아시안 녹색거인? 누구 이 영상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 있으면 알려줘.
-이봐, 친구. 제목에 VLOG라고 써 있잖아. 딱히 무슨 영화 광고영상은 아닌 것 같아. 그 앞에 있는 글자들은 뭐라고 쓰여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알아. 저건 한글이라는 거야. K-pop을 좋아하는 내 말을 믿어!
-「한국의 온돌을 중세 중국으로 시간여행해서 지어 보았다. VLOG –1편」 이라고 적혀 있군.
-컨셉 참 독특하군. 중국의 과거로 가서 한국의 온돌을 까는 히어로라니.
-이 무슨 혼종이란 말인가!
-온돌? 평창 올림픽 때 선수들이 뜨끈뜨끈한 바닥이 좋았다며 올렸다는 그거 맞지?
-정확히는 그건 온돌의 원리를 활용한 보일러고 저 남자가 만들려는 건 한국에 내려져 오는 전통방식의 온돌같지만 우리들에겐 대충 비슷한 거지.
-이 영상은 알고리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미친. 이게 무슨 VLOG야. 칼로 검기같은 걸 날려서 땅을 파고, 칼로 나무를 베다니. 히어로 VLOG라고 해야 되나? 정말 독특한 컨셉이야.
-한국인들은 미쳤군. 이젠 너튜버들도 CG로 이런 고퀄리티 영상을 만드는 세상인거야? 이봐, 한국인! 아직 우리는 2021년이라구. 천천히 가란 말이야, 우리 동네는 아직 배달음식앱 되는 가게도 많지 않다고.
-OMG. 친구들.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이 영상을 뭘 위한 거야? 헤이 주인장. 뭐라고 말 좀 해봐. 다음엔 손으로 불이라도 만들어 날려댈 셈인가?
-천마 TV. 구독했어. 난 아시안 히어로가 앞으로 뭘 할지 기대되는군.
-난 그가 조용히 아무런 말도 없이 ASMR처럼 뭔가를 만들고 있는 게 좋군. 요즘 너튜버들은 영상에서 주저리 주저리 너무 말이 많단 말이지. 이게 내가 기대했던 남자의 영상이야. 혼자 야생에서 조용히 무언가를 만드는 것.
-2편도 있으니까 다들 따라와! 난 먼저 가 있겠어.
-2편 보고 온 사람이다. 저 남자 칼로 거대한 바위를 잘라내더니 등에 짊어지고 뛰어가더라. 미쳤어! 미쳤다고!
-바로 영상 보러 감.
그 밑으로도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댓글러부터 시작해서 별의별 댓글들이 한가득이었지만 한가지는 확실했다. 이 영상이 어찌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알고리즘에 선택을 받아 많은 이들에게 노출되었고 앞으로 영상들을 꾸준히 올리면 구독자들 수가 늘어날 거라는 것.
“다 좋은데...알림창은 꺼둬야겠다. 배터리 아껴야지.”
분명 자기 전에 40%까지 떨어져서 후다닥 절전 모드로 바꾸었음에도 스마트폰 배터리는 수없이 올라온 알림창으로 인해 28%까지 떨어져 있었다.
언젠가 반응이 올거라곤 생각했지만 이토록 반응이 빠를 거라곤 생각 못했다. 그러나 영상을 찍고 편집까지 해야되는 상황에서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서라도 구독자들과 댓글로 소통하는 일은 지금 당장 할 수 없었다.
“댓글 안 달아주는 걸 컨셉으로 하자. 댓글창은...열어 주고. 어찌되었든 사람들 사이에서 논란이 커질수록 조회수는 오를테니까 나한테는 이득이겠지.”
너튜버 중에선 영상이 2개밖에 없지만 영상 하나 하나 조회수가 천만, 2천만이 넘는 take L이라는 너튜버도 있었다. 그 너튜버의 댓글에는 온갖 뇌절과 함께 영상주인의 답글을 기대한 다는 댓글들이 가득 했는데 채널 주인이 영상 설명에 자꾸 귀찮게 하면 영상을 내리겠다는 글을 달았고 구독자들을 비롯해 영상을 보는 이들은 그의 컨셉을 존중해줬다.
“훌륭한 전례가 있으니 사람들이 알아서 이해하겠지.”
당장 할 일이 많았다. 분명 예전에 봤던 기억에 따르면 온돌에서 불길이 지나다니는 통로는 내화벽돌로 만들어줘야 했는데 지금 여기선 내가 봤던 영상들처럼 내화벽돌을 집 앞까지 배달해서 사용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흐음, 아무렇게나 벽돌을 만들어서 쓰면 안에서 열기를 못 버티고 쓰러지거나 해서 쉬이 망가져 버릴텐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걸까 아니면 내가 한 행동이 스노우볼을 굴린 걸까 잘 모르게겠지만 때마침 스마트폰에 새로운 문자가 왔다.
〖신박한 컨셉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3 Points를 부여합니다.〗
“분명 스마트폰으로 어떻게 잘 살아보려고 한 건데 어렵게 번 포인트를 찜질방 짓느라 쓰게 되네...달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 하는 상황이 되는 것 같은데 이게 맞나 모르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벌인 일은 마무리를 지어야 뭔가 다음으로 가는 길이 열릴 것 같았다.
새롭게 얻은 포인트로 내화벽돌 만드는 법을 검색한 나는 이윽고 내가 사용할 수 있을 법한 방식을 찾아냈다. 마음 같아선 편하게 제작법을 프린터기로 뽑아놓고 편하게 보고 싶었지만 여기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으니 아침부터 먹을 갈아 붓으로 옮겨 적어야 했다.
“뭐든지 핸드 메이드네. 이것도 일이다 일. 언제쯤이면 연필이나 볼펜을 만들어서 노트에 적을 수 있을까. 타자기로 타이핑 치는 것까지는 지금으로선 바라지도 않고 간편하게 쓸 필기구라도 빨리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필요한 내용을 옮겨 적은 나는 받아 적느라 그새 더 떨어진 배터리 용량을 조금이라도 빨리 충전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꾼 뒤 햇볕이 잘 들만한 위치에 가져다 놓았다.
아침을 챙겨 먹고 확인하러 가자 배터리가 완충되어 있었다. 그 전부터 옆에서 산책가고 싶은 강아지마냥 안달복달하던 다진은 드디어 다시 ‘촬영(撮影)’하러 가는 거냐며 이상스레 들떠 보였다.
“이제 가나요?”
“어.”
“오늘은 뭐 찍으면 되는 거죠? 제가 찍게 해줄거죠?”
“오늘도 니가 찍어준다고? 너 바쁘지 않아? 할 거 많다고 했던 것 같은데.”
“바쁜데 교주님 혼자 하긴 힘들어 보이니까 도와주려는 거죠.”
“별로 안 도와줘도 되는데. 작대기에 꽂아놓고 고정하고 찍으면 되는 거라.”
“교!주!님! 제.가.꼭.도.와.드.리.고.싶.습.니.다”
장난기가 동해 약을 올렸더니 다진이 바짝바짝 약이 올라버렸다.
“그래도 사람이 직접 찍어주는 것만 못하니까 한번 다진이한테 ‘부탁’ 좀 해볼까?”
“그래요, 제가 해줄게요.”
“그래 그래. 니 마음대로 해라.”
어제 말해주지 못했던 몇가지 주의사항을 전해준 뒤에 어떻게 촬영을 하는지 알려주려고 하자 언제 봤는지 이미 촬영방법에 대해 알고 있었다.
“저도 알거든요. 어제 봤어요. 여기 빨간 원을 누르면 되는 거죠?”
“오오. 빨리 익히네.”
“훗.”
전체적으로 나 혼자 만드는 것을 찍어야 한다고 촬영 컨셉을 설명해주자 다진이 자연스럽게 어제 다져놓은 터로 이동하려 했지만 오늘 갈 곳은 그곳이 아니었다. 내화벽돌을 만드는 과정에선 화덕이 필요했기에 우선 화덕이 있을 대장간부터 가야 했다.
대장간에 내가 도착하자 대장장이로 일하고 있던 남자들이 나를 알아보고선 우르르 몰려나와 나에게 인사를 했다.
“교주님, 어인 일로 이 누추한 곳에 행차하셨습니까?”
대장장이들의 우두머리인 남자의 질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은 자리로 가서 하던 일을 하라 하고 우두머리만 남으라고 했다.
“태걸욱(太傑煜), 내가 자네에게 부탁할 것이 있네.”
“얼마든지 말씀해주십시오. 이 태걸욱, 신교의 부흥을 위해서라면 부서져라 일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한치의 의심없이 충직하면서도 은연중에 신교의 부흥을 해줄거란 기대가 섞인 그의 발언에 약간 씁쓸한 미소를 지은 용운은 자신이 만들 내화벽돌이 어떤 물건인지를 설명하며 최대한 많이 만들어 달라고 했다.
태걸욱은 다행히도 내가 만들고자 하는 내화벽돌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빠르게 이해했다.
“다행히 요즘은 사람들이 수리해달라고 한 물건들뿐이라 여유가 좀 있습니다. 지금부터 바로 사람들을 모아 교주님의 명을 이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겠네.”
“별말씀을. 부탁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교주님의 지시라면 얼마든지 따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봐! 다들 모여봐!”
태걸욱이 대장장이들을 모아 작업을 진행하려고 하자 나는 자리를 비켜줬다.
“교주님, 저 아저씨들이 그 내화벽돌이라는 걸 만드는 건 안 찍어도 되나요?”
“음...”
생각해보니 중간에 넣을 영상으로 한 커트 따놓을 필요는 있어 보였다. 내 채널의 정체성은 한 남자가 온돌방을 만드는 과정을 전부 보여주는 것이었으니까.
“내화벽돌 만드는 전반적인 과정을 꼭 나 혼자 만드는 것처럼 한번 찍어보자.”
“교주님 혼자 만드는 거 아니잖아요?”
“사람들은 보이는 대로 믿거든.”
“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마교도’와는 다르게 그 무슨 정직하지 못한 짓거리냐는 눈빛으로 보는 다진의 의문섞인 눈빛에 웃음이 절로 났다.
‘마교도가 너무 순진한 거 아니냐. 정파에선 무슨 인육을 뜯어먹고 사는 악의 화신들인 것처럼 매도하더만.’
사실 정파의 여론 조작 작업과는 다르게 내가 보고 알게 된 신교의 사람들은 중원의 사람들과 똑같았다. 아니, 오히려 산에만 박혀 사는 사람들인만큼 도시에 거주하는 이들에 비해 훨씬 때가 덜 탄 느낌이 강했다. 어찌되었건 사람 사는 세상인데 정파인이나 마교인이나 크게 다를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정파에서 만든 가짜뉴스처럼 마교가 서로 그렇게 죽이고 죽이는 살육을 하는 집단이나 조직이었다면 지금에 이르도록 긴 시간에 걸쳐 유지할 수도 없었다.
중원에 신교의 영역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교(魔敎)라는 멸칭(蔑稱)까지 얻고 말았지만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다를 뿐 신교의 사람들은 그런 사이코패스 악마들만 모인 집단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살 터전을 중원에 얻고 자신이 믿는 신을 믿으며 평화롭게 살고 싶은 이들이었다.
아무튼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건 말건 처음부터 내화벽돌을 만드는 영상을 과정 하나하나 찍은 나와 다진에겐 한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아, 이거 화덕 만드는 장면도 넣어야 된다.”
“헤엥. 화덕도 만들어야 한다구요?”
“화덕에 넣고 구워서 내화벽돌을 만드는 장면까지 따야 하니까. 일일이 다른 벽돌들까지 모두 만드는 장면들을 모두 찍을 필요는 없지만. 아무튼 적당한 사이즈로 화덕 하나 만들어야겠네.”
화덕을 만들 장소를 생각해보다 이왕이면 찜질방을 만들 곳 근처가 텅 비어 있으니 그곳에 만들기로 하고 어제 땅을 파놓고 다른 자재들을 준비해둔 터로 이동했다.
어찌된 일인지 그곳엔 동네 아이들 그리고 몇몇의 마을 사람들과 함께 토준보랑 목경수까지 나와 있었다.
“뭐야,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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