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으으으, 차가워. 빨리 초절정경지로 올라가든가 해야지. 침상 밖으로 나가기가 싫어. 이불 밖은 위험해!~”
산골마을의 아침은 일찍 시작되는 것도 싫었지만 그것보다 더 싫은 것은 아침의 이 차디찬 공기였다.
물론 절정고수라는 경지가 한서불침(寒暑不侵)까지 이루게 해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더위와 추위에 어느 정도 내성을 갖게 해주는 것은 맞다. 그러나 내성이 생겨난다고 해서 아무 것도 못 느낀다는 것은 아니었다. 추위도 더위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불침이 아니라 불감(不感)이었을 것이다.
신교의 사람들은 이런 추위조차 어릴 때부터 강해지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겨 참아 넘기는 모양이었지만 보일러가 데워주는 뜨끈한 방바닥이라든가 침대 위의 온수 매트, 전기 장판을 통해 등허리가 따끈따끈한 걸 좋아하는 한국인의 DNA가 영혼레벨까지 각인되어 있는 나로선 참을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는 벌써 씻으라고 물을 갖다 주셨네.”
아직 진짜 겨울은 오지 않았건만 산간지방인 이 동네에서 가을같은 계절은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알바비처럼 아주 짧게 지나가니 가을이라고 계절을 나눠서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차디찬 물에 세수를 마치고 추운 찬 공기 때문에 얼굴에 아직 남아 있는 수분이 살얼음이 되어 끼는 것만 같은 느낌을 느끼며 식당으로 이동했다. 식당에 있던 한여사께서는 아직 내가 오는 것을 모르시는 것 같았다.
“아이고, 무릎이야. 이제 나도 나이를 먹어가나? 날이 추워지니 관절 관절이 쑤시고 아프네.”
아주머니의 혼잣말을 들으니 마이수일 적 엄마가 가끔 허리를 두드리거나 무릎을 두드리면서 아파하던 때가 떠올랐다.
“엄마가 무릎이나 허리가 아프시면 내가 젖은 수건을 전자렌지에 돌려 온찜질을 해드리거나 찜찔방에 가서 같이 등을 지지곤 했는데...”
아침부터 이래 저래 ‘방한’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나는 식사시간에 여사님께 질문을 드렸다.
“여사님, 앞으로 날이 더 추워질텐데 신교의 사람들이 겨울을 나는데 큰 문제가 없을까요?”
“흐음.”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한 여사님은 신교의 사람들은 모두 ‘불’의 무공을 익히고 있어 어느 정도 추위를 버틸 힘이 있긴 하지만 매년 겨울이 되면 다들 혹독한 추위를 힘들어하고 있다고 했다.
‘맞아, 용운의 기억에도 신교 사람들이 겨울에 따뜻하게 지내는 걸 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
가까운 곳에 자연 온천이라도 있으면 좀 덜하련만 근처에 그런 것이 있다는 기억은 없었다.
“혹시 교인들이 걱정되셔서 그러나요?”
“조금요.”
“교주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교의 사람들은 이번 겨울도 여느 때처럼 충분히 이겨내고 살아남을 것입니다.”
추위를 버텨서 사람들이 알아서 이겨낸다는 것이 디폴트라는 수 장군의 말은 위정자로선 신경쓸 부분이 적어진다는 점에선 참으로 편한 말이지만 매년 버티지 못하고 겨울에 동사(凍死)하거나 추위로 인해 동상이 생겨 피해를 입는 이들이 몇씩 나오는 걸 떠올려 보면 그리 좋은 해법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식사를 마친 뒤 나는 나무들이 자라 있는 숲에 와 있었다.
“그래, 이게 맞아.”
너튜브 역시 영상을 검색해서 보는 것은 포인트를 필요로 했지만 무슨 매커니즘인지 너튜브 채널을 만들고 영상을 올리는 것에는 특별히 포인트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해서 너튜버가 되어보기로 한 나는 채널 컨셉은 시간여행자 컨셉에 원시부터 시작하는 오지인 컨셉을 섞고 거기에 국뽕 컨셉을 가미하기로 정리를 했다.
“어차피 지금 난 영상을 편집할 컴퓨터는 없으니까 아주 간단한 영상 편집 이외엔 너튜브 앱을 이용해서 영상을 그대로 올리는 쪽으로 가야 하잖아.”
시청자들은 어차피 내가 거의 생으로 올리는 영상을 알아서 명나라 시대로 타임워프한 컨셉으로 받아들일 것이었다. 너튜브 채널 중에 오지 밀림같은 곳에서 땅바닥을 파고 들어가 물을 깃고 수영장을 만든다거나 아니면 도끼 한자루만 가지고 숲으로 들어가 통나무 집을 짓고 거기서 생활하는 부쉬크래프트라고 하는 자연인 컨셉의 영상들을 올리는 채널들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다지 편집이 가해지지 않아도 생각보다 보는 이들이 많았다.
“채널명은 [천마 TV]로 하자.”
숲까지 온 이유는 여기서 나무를 베서 옮기고 신교의 마을에 ‘온돌’이 깔린 찜질방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전생에선 돈이 많지 않았던 나는 오프라인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일을 마치고 나면 온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너튜브 영상들을 보면서 휴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중에는 기초부터 차근차근 온돌방을 만드는 과정을 올린 영상을 봤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들과 다르게 시멘트도 없고, 각종 공구들도 없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던가. 대신 나에겐 그 사람들에겐 없는 ‘무공’이 있었다. 이것이 그들과 나의 컨텐츠를 차별화하는 장점이 되지 않을까.
적당히 나무 작대기를 잘라 준비해온 끈을 이용해 작대기에 고정시켜 스마트폰을 촬영모드로 해놓고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들고 온 도끼에 검기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부기(斧氣)’를 보이지 않게 도끼에 채워 넣은 후 나무를 팼다. 그러자 생목인 나무임에도 절정고수의 육체와 내공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어지간한 스트롱맨도 불가능할 정도의 신기처럼 나무가 아니라 무슨 수수깡마냥 어지간한 성인 남성 허리보다 더 굵은 나무들이 도끼질 두어번에 휙휙 쓰러져갔다.
베어낸 나무 몇그루들을 통째로 끈으로 묶은 나는 자동차를 이끄는 차력사처럼 어깨에 메고 끌었다.
한참을 걸어 스마트폰에 보이지도 않았을 거리까지 이동하고선 경공을 이용해 날아와 촬영중지 버튼을 누르고 다시 이동하기를 수차례.
“이것도 은근히 운동되네. 아쉽다 아쉬워.”
도끼질을 하고 나무를 끌다가 멈춰서 뛰는 과정이 마치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번갈아가며 하는 크로스핏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쉬운 것은 촬영하는 카메라가 여러개였으면 굳이 이렇게 왔다갔다하면서 찍을 필요가 없이 한번에 찍을 수 있어 편하련만 내가 찍을 수 있는 장비라곤 당장 이 스마트폰 하나뿐이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찜질방을 지을만한 터에 나무를 가지고 와서 한동안 마를 수 있게 처리를 한 나는 수련용 철검을 들어 집터를 고르기로 마음먹었다.
“하압.”
절정고수임에도 해본 적 없는 일을 하자니 이래저래 적지 않은 수고와 심력(心力)이 소모되었다. 한동안 검기를 날려 땅을 파내서 옆으로 날려 보내고 베어온 나무를 기둥으로 삼아 박아놓고 온돌을 깔기 위해 땅을 고르게 폈다.
“야야, 교주 형이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몰라. 저번에 승질 내다가 살짝 미쳤다던데...그리고 교주 형이 아니라 교주님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어른들 말 못 들었어?”
“아, 난 그게 잘 안돼. 교주님. 교주님.”
“쉿쉿.”
이곳에서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으니 어느새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내가 하는 일을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
“히이익. 들켰다.”
“도망쳐.”
아이들은 갑작스런 내 인사에 놀랐는지 후다닥 튀어갔다.
“내가 너무 무섭게 말을 걸었나?”
“그게 아니라 지금 교주님 모습이 무서워서 그럴걸요.”
“내 모습이 뭐가?”
다진이 주먹만한 동경(銅鏡)을 들어 내게 비쳐 보이자 거기엔 머리에 흙이 잔뜩 내려앉고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산발한 괴인이 있었다.
“이게 나?”
“네.”
“흠, 이거 다시 찍어야 되나...”
날 것의 느낌을 주고는 싶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땀이 날 정도로 땅을 파내고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을 응용해 체중을 실어 모두 다져 집터를 다진 상황에서 다시 이 땅을 덮거나 다른 땅을 찾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생각을 하자니 아직 영상도 올리기 전부터 살짝 그만둘까 싶은 생각이 피어오를 정도였다.
‘괜히 첫 컨텐츠를 이걸로 잡았나?’
“아니야,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봐야지.”
“교주님 근데 뭐하려고 그러시는 거죠? 집 지으시려구요?”
다진은 수련은 안하고 엄한 짓만 하면서 거지꼴을 하고 있는 용운이 살짝 걱정되어 물었다.
“찜질방.”
“그게 뭔데요?”
“나중에 보면 알아. 그것보다 이 주변에 돌덩어리들 구할 만한 곳 없을까?”
온돌과 구들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데 구들(온돌)은 고래를 설치하여 화기가 고래 위에 덮여 있는 구들장을 뜨겁게 덥혀 방바닥 전체를 난방하는 구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불길을 만들기 위해서 벽을 세울 때 필요한 구조물은 벽돌을 구워서 만들 수도 있지만 고래를 덮는 구들장만큼은 오랜 시간 불을 지펴도 깨지지 않고 버틸만한 적당한 두께의 넓은 돌들이 필요했다.
“저기요.”
“저기?”
다진이 인도해준 곳에 있는 돌은 다행히도 화강암이 아니라 백운모였다. 화강암은 불에 오래 닿으면 쪼개지기 때문에 구들장으로 쓰기 좋은 돌이 아니었다.
“좋았어. 다진아.”
“그런가요?”
“응, 내가 구하던 돌이 이거야.”
다진은 고작 돌 찾는 걸 도와줬는데 용운이 이렇게 웃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어릴 적에 같이 뛰어놀 적에나 보던 미소였다.
“그냥 아무 돌이나 쓰면 안되는 거군요.”
“응, 위에 얹을 돌이 불에 닿아서 깨져버리면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이내 진지해진 표정을 한 용운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다진에게 저번에 얼핏 봤던 자그마한 사각의 물건을 자신에게 주며 이걸 가슴께에 들고 아무 말 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뒤를 따라오면 된다고 했다.
“이걸 들고 따라오라구요?”
용운이 준 물건을 말하다가 살짝 들어올렸더니 용운이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이 들고 있던 물건을 점혈하듯이 손가락으로 두들기더니 다시 단단히 잘 들고 따라오라고 했다.
“음...알겠어요.”
허리춤에 있는 검을 빼든 용운의 모습은 다진의 눈에 참 멋있어 보였다. 그 검을 빼들고 돌덩어리를 휙휙 육면체로 잘라내더니 다시 허리춤에 집어넣고 어깨에 짊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교주님이 진짜 미친 건 아니겠지?"
"(다 들리거든. 조용히 마을까지 따라와.)"
용운은 이상하게 전음으로 다진의 귀에 속삭이듯 말을 한뒤 경공을 이용해 마을로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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