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교주님, 절정고수에 오른 이후부터 어째 수련을 제대로 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대련을 하는 중에 갑자기 던져진 수 장군의 질문에 나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왜 대답이 없으십니까? 제가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을 드렸나요?”
그깟 무력 수련 좀 더 해서 경지를 올린다고 한들 압도적인 중원의 물량 앞에 신교가 버티기 지난(至難)할 것이 뻔한데 고작해야 이런 식으로 훈련해서 쌓은 소수의 무력으로 중원을 이겨 먹으려고 하는 게 과연 가능한 꿈인가 싶어 마이수는 용운이 주화입마 이전에 했던 생각에 적극 동의하는 편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흐읍”
“얼마든지요.”
허리를 치는 척 유인을 해놓고 머리를 향해 돌려치는 용운의 수를 가볍게 막은 수 장군은 이어 역으로 관자놀이를 향해 검을 찌르고 들어갔다.
용운은 쉽지 않은 질문에 답변을 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대련까지 하려니 배는 힘든 가운데 자신의 관자놀이를 향해 들어오는 찌르기를 보법을 통해 피하며 공격하기 좋은 자리를 위치를 옮기며 입을 열었다.
“신교가 중원을 지배하려고 한 이후로 우리들의 시도는 그동안 매번 실패했습니다. 선조 중에 어떤 강대한 천마가 나왔다고 한들 그 결과는 항상 같은 결말을 마주했습니다. 하압”
상단에서 하단으로 검을 내리 베면서 용운은 이 수만큼은 피하기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수 장군은 검을 비스듬히 들어 간단히 검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수로 대응했다.
“계속 하시지요.”
“네...한때 중원을 압도할 정도로 크게 융성했던 신교는 100년 전 크게 패하면서 지금 우리가 있는 천산산맥으로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생존한 신도들을 모두 수습하지 못한 채로 말이죠. 그 결과 중원에 남겨진 신도들은 잔혹한 피의 복수를 감당해야 했고 그들의 희생을 방패 삼아 일부만이 천산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살아남은 신교의 교도들이 모여 겨우 세를 가다듬으려고 해봤지만 가지고 온 것이 적었던 신교의 선조들은 춥디 추운 천산의 겨울을 버텨낸 끝에 겨우 자리를 잡고 그 후예에게 신교의 원한을 물려주며 권토중래(捲土重來)할 것을 비원(悲願)으로 남겼지요. 후읍”
‘아니 말 좀 하자.’
말을 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칼을 주고받느라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신교의 비원은 이루어져야 합니다.”
허리를 향해 가로로 내질러오는 베기를 막기 위해 뒤로 피하거나 옆으로 피하는 수법은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허리를 뒤로 젖히는 철판교(鐵板橋)를 시전하며 역으로 카운터를 넣으려고 했지만 수장군은 다리를 걸어서 균형을 무너뜨리는 수법으로 맞서왔다.
이에 나는 아예 몸을 반전(反轉)시켜 등을 지고 수장군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잔발로 빠르게 빠져나왔다.
“후우 후우...”
잘 빠져 나왔다고 생각해 다시 뒤를 돌아봤을 때 수장군은 아무런 말도 없이 다가와 검을 내 목에 겨누고 있었다.
“졌군요.”
내가 패배자의 예를 보이자 수장군과 나는 납검(納劍)한 뒤 서로를 향해 포권을 나눴다. 그리고 나서 평소처럼 씻기 위해 움직이려 하자 수장군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직 왜 수련을 더 이상 열심히 하지 않는지에 대해선 답을 전부 듣지 못했습니다.”
“흐음...”
잠시 입을 다물자 수장군은 수려하고 남자다운 외모에 어울리는 차분하면서도 강한 눈빛으로 대답을 듣길 원한다는 압박을 전해왔다.
“과연 몇 번이나 실패한 방법으로 중원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결론은 무력만으론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주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계셨군요.”
분명 “응, 이래 가지곤 택도 없어. 포기 포기.” 라는 답변을 들으면 위장군이 엄하게 꾸짖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예상과 다르게 수장군은 부드러운 눈빛을 보일 뿐이었다.
“혹시 제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으십니까?”
“제가 무어라고 설득을 한다고 한들 교주님이 설득당하실 것 같진 않군요. 그렇게 쉽게 설득당할 생각은 아닐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무장을 나와 나란히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말없이 걷고 있다가 각자 헤어지기 전 수장군은 한마디를 남겼다.
“교주님은 분명 신교의 비원을 해결할 답을 얻으실 겁니다.”
‘뭘 보고 날 그렇게 믿어주는 건데...’
“제가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의아함을 보였지만 수장군은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고개를 숙이고선 자리를 떠났다.
“아...차라리 그냥 혼을 내는 게 속이 편하지 싶은데.”
“교주님과의 대련은 잘 마치셨나요?”
대련 후 난 땀과 대련과정 중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고자 씻는 걸 도와주는 부인의 손길은 차갑디 차가운 천산의 물과 다르게 따스했다.
“부인, 교주님이 큰 벽을 만난 것 같아요.”
“그래 보이시더군요.”
“하지만 쉽게 포기하거나 도망칠 분도 아닙니다.”
“알지요. 알지요. 마지막 신녀(神女)님께서 남기신 예언에 따르면 천산으로 가고 태양(日)과 달(月)이 마주한 날에 태어난 천마가 다시 신교를 중원으로 이끌어 모든 중원을 신교의 발 아래에 둘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용운이는 딱 그날에 태어났구요.”
“부인.”
“알아요, 교주라고 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지금의 교주님은 아니 용운이는 제 젖을 먹여 키운 아이기도 합니다. 유모(乳母)로서의 정까지 끊어내라고 하진 말아주세요.”
물을 모두 끼얹고 난 뒤 등을 닦아주던 한부인의 손을 수장군이 꼬옥 붙잡으며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한부인은 수장군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수장군의 몸을 향해 시선을 내리 깔았다.
이윽고 들리는 피부와 피부가 마주하는 소리가 욕실을 순간 가득 채웠다.
“짝.”
“부...부인?”
“쓸데없는 분위기 잡지 말고 앞이나 닦아요. 물기가 흐르잖습니까? 바지 한번 빨지도 않는 분이 빨랫감 만드는 걸 너무 쉽게 생각하신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난 그저 부인을 아직도 뜨겁게 사랑해서...”
“절 사랑하면 제발 집안일 좀 그만 만들어주세요. 그게 절 사랑해주는 겁니다.”
수건을 수장군의 손에 쥐어주며 한부인이 등을 휙 돌려선 마당을 빠져나왔다.
“주책이야. 정말. 대낮부터.”
혹시라도 주변에 본 사람이 있을까 싶어 화끈거리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한부인은 빠르게 부엌으로 이동하던 중 그 모습을 누군가에 의해 들켜버렸다.
“엄마, 왜 이렇게 얼굴이 빨개? 혹시 감기 걸리셨나?”
“내가? 절대 안 빨간대?”
“아니야, 진짜 빨간대. 여기 봐. 얼굴도 뜨겁잖아.”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게 아니긴. 감기 오는 것 같은데. 조심해야지.”
“스읍. 아니라고 했지. 이 기지배. 엄마 말을 안 들어. 그러고 보니 너, 옷감은 다 짰어? 다음에 상행갈 때까지 엄마가 준비해야 한다고 했잖아.”
“어? 아. 하고 있지.”
“용운이 아프단 핑계로 제대로 준비 안하고 있는 거 엄마가 모를 줄 알았니?”
“용운이? 언제는 교주님이라고 부르라며.”
“그...그거야. 그건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 기지배가 엄마 말꼬리를 잡아?”
본인이 잘못한 게 맞았지만 요새 들어 따박따박 말대꾸가 심한 딸내미가 살짝 미운 느낌이 들어 머리를 콩 쥐어박은 한여사는 고3을 둔 학부모마냥 잔소리를 쏟아내며 자연스럽게 다진이 자리를 피하게 만들었다.
“히잉, 나는 그냥 엄마 걱정돼서 그런 건데.”
“왜 그러고 있냐?”
“다 교주님때문입니다. 며칠 뒤에 상행 가야 되는데 교주님 병수발 든다고 아직 옷감 다 못 짰단 말이에요.”
“아니...그게 나때문이라고?”
“모르면 됐어요!”
빼액하고 소리를 지르고 고개를 휙 돌려 다진은 서둘러 옷감을 짜기 위해 움직였다.
뜬금없이 다진의 짜증을 받아야 했던 용운은 영혼만은 30살인 아저씨로서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에 한없이 흔들리는 호르몬의 노예인 다진과 똑같이 굴지 않아야 한다며 스스로를 다독이려고 했다. 하지만 육체만은 2차 성징기라는 점에서 크게 다진과 다를 바 없었기에 이내 참지 못하고 다진이 들지 못할 때쯤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 했다고!”
씩씩거리며 자신의 침실로 돌아온 용운은 방을 왔다갔다 하다가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전날 첫 검색 특전을 이용한 검색어로 자신은 ‘포인트 버는 방법’이라고 쳤고 스마트폰은 해당 방법에 대해 간단하게 대답했다.
“하아, 포인트를 벌려면 업적을 달성하거나 성장을 해야 한다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차라리 삼류무사 수준밖에 안되면 어떻게 성장을 해서라도 포인트 벌이라도 해보겠건만 절정고수라는 수준은 하루 아침에 발전을 할 수 있을만큼 낮은 수준이 아니었다.
“뭐라도 해야 된다는 건데...도대체 뭘 해서 업적을 띄우지.”
주변에 있는 것이라곤 산과 양떼 그리고 야크 떼밖에 없는 곳에서 기후라도 온화하면 농사라도 지어보겠건만 고랭지 농업도 가능할지 의문스러운 높이에 위치한 신교의 땅에서 뭘 해야 업적을 띄울 수 있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내가 뭐 오지 탐험 너튜버라도 해서 실버버튼이라도 받아야 업적으로 쳐주려나? 너튜브? 이거 되려나?”
생각해보니 검색사이트인 바나듐만 생각했지 너튜브를 까먹고 있었다. 용운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충전하느라 창가에 뒤집어 올려둔 스마트폰으로 향했고 너튜브 앱으로 손가락이 움직였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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