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하아...뭘 검색하지? 으으으으”
내가 왜 이러고 있냐면 검색을 할 수는 있는데 그냥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뭘 주려면 좀 편하게 주든가 왜 꼭 브레이크가 걸리는 거야.”
만년설이 쌓인 산정(山頂)에서 흘러 내리는 거대한 강을 앞에 두고 스마트폰 액정을 몇 번이나 눌러봤지만 어김없이 팝업창이 떠올랐다. 나는 팝업창을 보며 다시금 심마(心魔)가 무엇인지 강렬하게 느끼고 있는 기분이었다.
<<첫 검색 특전은 무료 검색 1회입니다. 다음 검색부터는 포인트를 지불하셔야 합니다. 검색을 진행합니까? YES / NO 현재 포인트 잔액:0 >>
평소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던 때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YES 버튼을 연타하려다가 가까스로 멈춘 나의 손가락 컨트롤에 감사함을 느꼈다. 하마터면 소중한 특전을 아무 생각 없이 넣은 키워드 ‘환생’을 검색하는데 사용할 뻔했다.
“안되지. 어차피 벌어진 일이고 환생에 대해 검색해본들 뭐 대단한 정보가 나오겠어? 흐음, 뭘 검색해야 지금 내게 도움이 될까?”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고민에 빠져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기에 품에 스마트폰을 슬며시 집어넣은 뒤 고개를 돌아봤다.
“왔냐?”
“칫, 이럴 땐 그냥 모른 척 속아주는 겁니다.”
“니가 오는 걸 내가 알고 있으리라는 걸 너도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는데 굳이?”
“네네, 우리 교주님은 한번을 쉽게 안 져주는 분이시죠.”
마음 한구석에서 동갑내기 소꿉친구임과 동시에 30살의 아저씨가 존재하는 나로썬 묘하게 썸타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다진의 말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주기도 애매했다.
“그럼 모른 척 해줄테니까 처음부터 다시 할래?”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은 다진은 산정호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뭔 고민을 그렇게 하고 있으신가요?”
스마트폰이 뭔지도 모를 다진에게 뭘 검색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기 뭐한 나는 말을 돌려야 했다.
“신교를 어떻게 하면 성장시킬까 하는 그런 교주로서의 고민.”
“아...그거요?”
가볍게 분위기를 돌릴 겸 질문을 했는데 너무 무거운 고민이 툭 튀어나오자 다진은 속으로 욕을 했다.
마을 아주머니들에게 들은 바로는 남자애들은 슬쩍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홀딱 넘어온다고 그랬는데 아주머니들에게 들은 수법으로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용운은 어릴 때부터 듣고 보고 자란 게 있는지 동네의 아이들과는 다른 귀공자의 느낌을 풍기며 항상 무뚝뚝하고 무공수련에 열심인 그런 남자였다.
‘그래서 반하긴 했는데...이게 맞나 싶네.’
얼마 전 쓰러졌을 때 자신이 얼마나 걱정했던가.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이던 용운이 점차 기진맥진해서 당장 죽을 것만 같은 모습을 보였을 때 이대로 용운이 세상을 떠나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했지만 천지신명이 도왔는지, 아니면 자신의 밤낮 가리지 않는 간호가 통한 것인지 용운은 별거 아니라는 것처럼 자리를 털고 다시 일어났다.
‘살짝 이상해지긴 했지만...’
다시 깨어난 용운은 이전처럼 열심히 무공수련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신교의 부흥이니 하는 어른들의 말도 안되는 기대를 버려버리고 그냥 평화롭기만한 이 산맥에서 양과 야크를 치며 사는 삶을 살기로 한 건가 싶었다.
“교주님.”
“응?”
“그거 안하면 안돼요?”
용운은 갑자기 ‘그거’라는 말을 꺼내며 하지 말라는 다진의 말에 혹시라도 자신이 뭘 검색할지 본 건가 싶어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그랬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거? 니가 말하는 그게 뭔데?”
“중원에 나아가 중원인들에게 복수를 하는 그런 삶이요. 그러지 말고 그냥 여기서 행복하게 사는 삶을 사는 건 어때요?”
‘어우, 씹.’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지만 다진의 다 포기하고 산에서 살자는 말에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나도 초절정고수 부하들이랑 절정 고수 부하들 넘치고 밥 때마다 산해진미가 튀어나오고 미녀들이 주변에 가득한 그런 무릉도원(武陵桃源)같은 마교면 여기서 안주하고 살고 싶었다.
‘아, 근데 무릉도원이랑 마교는 좀 안 어울리나?’
밤에도 낮에도 아름다운 스위스같은 풍경은 너무나 좋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관광으로 며칠 온 거면 모를까 해가 지고 나면 잠들고 해 뜨기 전에 일어나는 산촌(山村)의 촌민(村民)으로 사는 삶을 살기에는 나는 도시생활에 절어있는 사람이었다.
“그럴 순 없어.”
용운의 단정적인 말에 다진의 기대감도 산산이 부서졌다.
‘역시...안되는구나.’
‘아니, 여기에 넷플렉스가 되긴 하냐, 게임이 되길 하냐. 뭐가 있냐. 뭘 하더라도 큰 도회지로 나가든가 여기를 도회지로 만들든가 해야지. 지루해서 이렇게 평생은 못 산다.’
무엇보다도 당장 이 스마트폰을 어떻게 써먹어야 가장 좋을지가 자신에게 있어 가장 큰 고민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다진아, 너를 위해서 그리고 나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살 순 없어.”
“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진의 마음이 들썩였다.
“신교의 부흥을 꿈꾸고 있는 우리 신교의 모든 교도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화려한 도시의 남자였던 날 위해서도. 크흠’
“아...”
용운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다진의 눈에 저 멀리 사람들이 길을 따라 줄줄이 오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다! 아버지!~”
“응?”
다진의 외침에 고개를 인터넷으로만 봤던 중국의 기인들 짤에서 봤던 것처럼 등에 한가득 짐을 지고 오는 남자들이 보였다.
‘1톤 카고도 아니고 무슨 짐을...산더미처럼 짊어지고 다니냐.’
멀리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커다란 짐을 싣은 사람들이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는 모습은 용운의 기억 속에 있는 것이었지만 무척 신기한 장면이었다.
“마니야! 우리 딸~ 이 아비가 올줄 알고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구나! 역시 우리 딸”
“아...그건 아닌...아버지~오셨어요.”
마교의 호위대를 이끄는 장군이라면 자고로 턱수염이 잔뜩 나 있고 장비처럼 험상궂고 어깨 스타일의 남자일 것만 같았지만 다진의 아버지인 수 위장군은 피부는 살짝 타있는 편이었지만 체구는 잔근육이 옷 위로도 느껴질 정도이고 키나 외모가 연예인 ‘쥴리엔공’ 느낌이 나는 잘생긴 남자였다.
“아, 교주님도 옆에 계셨군요. 신교의 호위대, 방금 도착했습니다.”
커다란 등짐을 내려놓은 그가 서슴없이 길바닥에서 아저씨가 무릎을 꿇자 뒤에 있는 인원들도 일제히 짐을 내려놓고선 무릎을 꿇으며 교주에 대한 예의를 표했다. 그 장관에 잠깐 정신이 팔렸던 나는 서둘러 아저씨를 일으켜 세웠다.
“아저씨, 이러지 마세요.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힘드셨을텐데 채취해온 암염은 창고에 빨리 넣어두고 편히 쉬세요.”
호위대를 이끄는 위대장으로서 수호진은 교주의 걱정 어린 표현에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교주로서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말투에 조심해줄 것을 요구하려 했으나 막판에 교주를 향해 인사드리러 가자면서 속도를 올려서인지 뒤에서 살짝 가쁘게 들리는 호위대 막내들의 숨소리가 귀에 거슬려 나중에 이야기할 것을 기약하고 대답을 했다.
‘이 녀석들 훈련을 좀 더 가열차게 할 필요가 있겠군.’
“감사합니다. 교주님. 다들 들었지? 가져온 짐부터 창고에 넣으면 이번 임무는 이걸로 끝이다. 창고로 이동!”
“이동!”
남자들의 힘찬 함성이 들리고 행군의 막바지에 다다른 장병들이 스퍼트를 올리듯 사람들의 발걸음이 힘차게 바뀌었다.
“어, 목경수(木警守)랑 토준보(土遵保)다!”
행렬의 끝에서 헐떡이며 쫓아가는 청년들은 어린 시절 함께 이곳에서 자란 소꿉친구들이었다. 둘은 스쳐 지나가며 나와 다진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왔다.
“교주님, 얼굴 좋아 보이니 다행입니다. 다진이도 잘 있었지?”
“다진아, 니 목소리 저 끝에서도 들리더라. 어우 귀 아파.”
“경수야, 뒤진다.”
“그러게...조금만 더 하면 뒤질 것 같긴 해.”
잠깐 대화를 나누는데 저 앞에서 수호진 뒤에 있던 부대장의 큰소리가 들려왔다.
“막내들, 뭐하고 있냐! 뒤처지지 말고 빨리 빨리 따라와라!”
“넵!”
“갑니다!”
“저희는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준보야, 조심히 빨리 가.”
“다진아, 조심히 어떻게 빨리 가냐. 말이 되는 소리 좀.”
“아니다. 넌 그냥 가다가 넘어져도 괜찮을 듯.”
경수가 다진을 향해 주먹을 흔들며 나중에 보자는 악당같은 대사를 남기고선 헐레벌떡 준보의 뒤를 따라갔다.
“첫 채취라 힘들었을텐데 내 친구들 장하네요.”
“그러게. 어린 나이인데 대단하네”
한국에서였다면 학교에 다니며 학원을 간다거나 PC방을 다녔을 나이인데 벌써부터 큰 짐을 등에 메고 제3세계의 아이들처럼 노새마냥 짐을 나르고 있어야 한다니 두 녀석이 안쓰러웠다.
“교주님도 어린 나이거든요? 동갑내기면서...”
“난 다르지.”
“아, 전 바빠서 이만.”
동네에 남자들이 돌아오고 각자 일하러 갔던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 마을 여기저기가 시끌벅적해졌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서로 치고박고 싸우고 누가 더 강한지를 따지는 강자존(强者尊)을 숭상하는 마교의 모습과 너무 달라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여기가 진짜 마교가 맞나 싶네.”
산촌의 이런 평범한 사람들을 데리고 칼부림을 부리고 중원의 문파들과 싸워 사람들을 죽고 죽이는 세상으로 이끄는 것이 과연 옳은지 깊은 회의감도 들었다. 많은 고민을 하다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낮동안 충전해놓은 덕분인지 배터리는 쌩쌩했다.
“일단은 아무래도 역시 그것부터 검색하는 것이 합리적이겠지.”
하루 종일 고민한 끝에 나는 지금 내 상황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검색창에 넣고 YES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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