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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1화 (1/132)

1화

“힘들다...누가 나 좀 도와줬으면 좋겠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알고 있다. 인생 누구도 날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을. 야간 알바를 끝내고 원룸으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가라앉는 기분이다. 괜히 어른들이 2교대, 3교대처럼 야간에 하는 일은 하는게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를 나는 매일같이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내 몸 안에서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진다. 야간알바는 어쩌면 생명을 지불하고 돈을 얻는 극한의 연금술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도 매우 교환비가 나쁜.

“야! 늦었어. 뛰어!”

“벌써 이렇게 시간이 늦었다고?”

출근길에 나서는 어른들의 얼굴에 고됨이 느껴지는 것과는 다르게 등굣길에 나서는 학생들의 모습에선 생명력이 뿜뿜하고 뿜어져 나오는 게 보이는 것 같다.

“좋을 때다.”

부모님 지원을 받으며 학교만 다니는 때가 사실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편한 시기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대학교에 가서 부모님이 내주신 학비로 편하게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나는 후배들에게 “알바해서 번 돈으로 해외여행도 다니고 경험을 많이 쌓아야지.”라는 거만을 떨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이불을 세게 걷어차곤 한다.

“복에 겨워서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나불댄 대가를 이렇게 치르는 건가.”

평생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선배들처럼 적당히 때가 되면 취업 준비를 하고 이름 있는 기업에 취직해서 회사를 다니고 그러다 좋은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서 애를 낳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평범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갑작스러운 세계 경기의 침체의 여파로 원자재 값이 폭등하는 뉴스가 연일 쏟아져 나올 때 어리석고 멍청했던 나는 나랑 그게 큰 상관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에게도 그 여파가 불어닥쳤다. 아니, 국가의 비호를 받는 대기업도 아니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소기업도 아니었던 아버지의 회사는 방파제 없이 직격으로 이를 감당해야 했고 결국 이를 막기 위해 밤낮으로 애를 쓰시던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그리고 아버지를 간병하던 어머니도 따라서 쓰러지셨다.

부자가 망해도 3대가 간다는 말이 무색하게 아버지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신 기점으로 내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 순간까지는 채 3년도 걸리지 않았다.

정신이 없었다. 그동안 부모님께서 막아주시던 세상의 파도를 나 홀로 막아서기엔 나는 내가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작고 미약했다. 3학년에 복학해서 취업을 해야지 하고 막연한 계획을 했던 나는 그 시간 속에서 휙하니 녹아 없어지고 부모님의 장례를 마치고 났을 때 나는 망가진 성적표와 함께 취업전선에 내몰렸다.

아버지의 사업이 갑작스럽게 부도가 나고 파산이 되면서 부모님의 장례식까지 모두 마쳤을 땐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채무 없이 딱 1210만원이 남았다.

부모님의 유산을 보증금으로 지금의 원룸을 얻고 월세를 지불한 나는 그때부터 돈이 되는 알바라면 두탕이든 세탕이든 뛰어야 했다. 살아남아야 했다. 그런 가운데 취업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부모님의 병수발을 하면서 망가진 평점 3.5점도 안되는 점수로는 다른 스펙도 변변하지 않았던 경영학과 졸업생인 내가 취업이 될 리가 없었다. 나도 알았다.

상점의 창가에 비친 나는 30살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다크서클이 심하게 축 늘어진 좀비같았다. 내 옆을 뛰어가는 중고등학생들과 더욱 대비되어 더욱 내 우울함을 심화시켰다.

“하아...죽겠네. 진짜. 오늘따라 힘들다.”

때마침 보인 편의점에서 파는 로또 광고가 나에게 손짓을 하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일확천금의 기회가 있지 않겠냐고.

아무리 내가 멍청하기로 로또의 당첨 기댓값이 구매가격보다 낮다는 걸 알면서도 로또를 구매할 리가...있었다.

“로또를 사지 않는데 어떻게 당첨될 기회를 받겠어...뭐라도 해야지 얻는 거지. 꽝만 아니어라. 다행이야. 오늘이 PC방 월급받는 날이라. 이따가 자축하는 기념으로 햄버거나 쿠폰으로 사먹자.”

5천원어치 로또영수증을 주머니에 챙긴 나는 편의점에서 나와 원룸으로의 복귀를 서둘렀다. 더 이상 버틸 기운이 없었다. 어서 나의 조그마한 보금자리에 가서 씻고 몸을 뉘여야 오후 알바에 나갈 체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었다.

“어...어?”

거의 집에 다 왔을 때 스마트폰을 들여보다 고개를 들어올렸을 때 한 여학생이 지각했는지 정신없이 횡단보도를 뛰어오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마치 클리셰처럼 여학생을 향해 멈추지 않고 돌진하는 8톤 트럭도. 하필이면 그 순간 그 모습이 왜 내 눈에 들어왔을까.

뒤늦게 트럭 기사가 여학생을 보고 어설프게 브레이크를 밟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은 그렇게 쉽게 설 리가 없었다. 트럭의 브레이크 패드가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존재의의를 증명하듯 갈려 나가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고라니처럼 멍하니 서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트럭을 쳐다보는 여학생을 향해 나도 모르게 뛰어들었다.

“위험해!”

가까스로 운 좋게 그녀를 도로 밖으로 밀쳤지만 그게 끝이었다. 나는 여학생을 살릴 순 있었지만 나는 살리지 못했다. 트럭에 치였다 날아가는 찰나의 순간에 나는 두가지를 깨달았다. 오늘 저녁에 먹고 싶었던 햄버거는 앞으로 평생 못 먹을 거라는 것과 그리고 내 주머니에 든 로또용지의 이번주 당첨 여부도 알 수 없을 거라는 걸.

‘하...이럴 줄 알았으면 스마트폰 새로 개통하고 그렇게 아등바등 돈 아끼면서 햄버거도 못 사먹고 살지는 말걸...쯧.’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살리고 떠날 수 있어서. 의식을 잃는 사이 내 귓가로 두 사람의 음성이 얼핏 들려왔다.

【강림도령님, 얘 어떻게 합니까? 마이수(麻二壽)는 명부에 아직 올라올 때가 아닙니다.】

【하아...이제 나도 말년인데 뜬금없이 잔업하게 생겼네. 왜 지금 죽을 팔자도 아닌 놈이...갑자기 끼어들어 가지곤. 가만 있어봐. 환생부서 직통번호가 몇 번이었더라. 그래도 누구 살리겠다고 목숨 바친 놈인데 내가 사심(使心) 좀 써주마. 아이고! 최판관님! 잘 계셨수? 아니, 내가 다른 게 아니고...】

너무 거대한 통증은 인체가 감당할 수 없기에 뇌에서 나오는 아드레날린에 의해 제대로 느낄 수 없다고 했던가. 나는 신기하게도 지금 물건을 잔뜩 실은 8톤 트럭에 치인 것치고는 생각보다 별로 통증을 느껴지지 않았다. 하복부 쪽과 머리 뒷부분에서 은은하게 통증이 있긴 했지만 충분히 참을 만한 수준이었다.

‘흐음, 교통사고가 나서 온몸이 부서진 거나 다름 없으니 적어도 너무 아파서 몸부림칠 것 같았는데 현대의학이 이 정도로 발전했나? 하복부가 좀 당기는 것 빼면 괜찮은데?’

눈을 감고 손을 까딱거려 보는데 이상할 정도로 어렵지 않게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었다.

‘뭐지? 아니면 내가 의식을 잃고 있는 동안 꽤 치료가 진전된 건가? 근데 내가 살려준 애가 집이 좀 부자였나보다. 1인실이나 2인실로 잡아줬나? 6인실은 이렇게 조용할 수가 없는데. 그나저나 그때 마지막으로 들었던 목소리는 뭐였지? 꼭 저승사자들이나 할 법한 대화 같았는데...’

죽기 전 기이한 그 대화를 떠올리는데 밖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국어는 아닌 것 같은데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교주님, 기침하셨습니까? 한 여사입니다. 교주님?”

‘신기한 이름이네. 사람 이름이 교주야?’

그러나 밖에서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듯한 여성이 몇 번이고 부름에도 나랑 같은 방에 입원한 녀석은 무슨 일인지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 좀! 사람을 부르면 대답 좀 하시든가. 밖에서 부르잖아요? 응? 응??”

짜증이 나서 몸을 벌떡 일으켰을 때 내 눈에 보인 것은 익숙한 병원의 풍경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병실과는 거리가 먼 중국 영화에서나 봤던 소품들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특실을 이렇게 꾸미는 게 요즘 트렌...드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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