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일기예보에서 장마라고 예보했듯이 며칠째 비가 내리고 있었다.
늦게 찾아온 장마는 짧은 기간에 많은 비를 쏟아 낼 거라고 했었다.
다연이 그동안 한국에서 편하게 가지고 다닌 차는 다연의 것도 아니었고, 자신이 구입한 차였더라도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은 운전대를 잡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목적지도 엄마의 봉안당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다연은 그사이 충전해둔 휴대폰을 들어 택시를 예약했다.
정확한 시간에 맞춰 나온 다연은 예약한 택시를 타고 서울 근교에 있는 추모 공원으로 향했다.
사고가 났던 곳과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이라 다연은 처음부터 그곳에 엄마의 유골함을 모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의 다연은 고작 16살이었고, 그 누구도 어린 다연의 의견 따위를 귀담아듣지도 묻지도 않았다.
“다 왔습니다. 천천히 오셔도 됩니다.”
도착한 장소가 어떤 곳인지 잘 아는 택시 기사는 다연에게 친절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너무도 오랜만에 온 곳이라 다연은 금방 오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자혁이 사준 우산을 펼치고 택시에서 내린 다연은 건물을 바라보곤 깊게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뗐다.
실내는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몇 년 만에 와 본 곳인데도 다연은 익숙하게 엄마의 유골함이 있는 곳으로 갔다.
예상은 했지만, 그 흔한 조화 하나 없이 엄마의 사진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것을 보자 왈칵 울음이 쏟아졌다.
“흑.”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가 고요한 실내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다연은 입술을 말아 물고선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목 뒤로 삼켰다.
“엄마…… 너무 오랜만에 와서…… 미안해.”
다연은 손을 들어 유리를 손으로 쓸어 보았다. 다연의 체온 때문에 손을 댄 유리에 뿌연 김이 서렸다.
다연은 손을 댄 채 한참을 서서 울었다.
“흑흑.”
사고 이후 다연은 불쑥불쑥 찾아오는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내가 그날 집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엄마랑 그 사람이 같이 있는 걸 보지 않았다면…… 아니, 그냥 콩클에서 본선까지만 올라갔어도…….”
다연의 말처럼 그랬다면 그녀의 모친은 그 빗속에 운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맑게 갠 다음 날 집으로 갔을 것이고 사고도 없었을 것이다.
거기까지 되돌릴 수 없고, 사고도 막을 수 없는 일이라면.
“엄마한테 아무 말도 하지 말걸……. 후회하고 또 후회돼.”
엄마의 사고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면 마음이라도 편하게 눈 감을 수 있도록 해줄걸.
다연은 했던 수많은 후회 중에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이었다.
엄마가 살아 있었다면 그녀의 부모는 계속해서 쇼윈도 부부로 살았을 것이다. 자혁과 자신이 진짜 부부인 척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그런 것쯤은 눈 감아 줄 수 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다연의 부모는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고, 다연을 낳을 것이었다.
그에 반해 다연과 자혁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남들을 속이기 위한 결혼이었다.
자혁과 진짜 부부인 척 연기를 해 보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 연극은 상대에게 애정이 없을수록 쉬웠다.
다연은 부모님의 쇼윈도 부부 사이가 유지되었던 이유를 이제는 알 것만 같았다. 서로에게 작은 애정조차 없었기에 가능했었다.
그 당시에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이제는 이해되었고, 다연은 모든 것이 후회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울 수 없었던 진짜 이유를 엄마에게 솔직히 고하고 싶었다.
“엄마한테 그런 거 후회했어. 죄책감도 느꼈는데…… 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엄마, 아빠가 이해되지 않았거든.”
다연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사는 게 엄마, 아빠 둘 다 편하지 않았을 텐데……. 나한테 미안해서 더 행복한 가정인 척했던 거였는데……. 나를 위해서 참았던 거였는데……. 내가 그걸 몰랐어.”
다연은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눈물을 쏟아냈다.
* * *
얼마나 울었을까.
울 만큼 울고 나서야 다연은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택시가 떠올랐다.
천천히 와도 된다고 했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이 미안했다.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손등으로 대충 닦아내고 다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또 올게.”
다연은 자신의 손자국이 남은 유리를 옷소매로 닦아내곤 천천히 몸을 돌렸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던 다연의 발 앞에 휠체어가 멈춰 섰다.
“다연 씨?”
발끝을 내려보던 다연이 시선을 조금 들었다. 뜻밖의 인물이 있었다.
“주미 씨……. 여긴…… 어쩐 일로.”
“그건 나도 물어보고 싶은 말인데요? 세상에 얼굴이 엉망이에요.”
다연은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다.
“주차장에 있는 택시 타고 온 거예요?”
“……네.”
주미도 누군가를 추모하기 위해 온 것인지 허벅지 위에 국화꽃이 놓여 있었다.
“금방 가야 하는 거 아니면 택시 먼저 보내고 나랑 이야기 좀 할래요?”
다연은 주미가 누군가를 기리는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해도 되는 이야기면…….”
“내 말대로 해요. 나 오래 안 걸려요. 그러니까. 택시 먼저 보내요.”
우연히 만난 사람치곤 주미는 간절해 보였다.
다연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럴게요.”
“고마워요. 나 금방 인사하고 올게요.”
“아니요…… 저 시간 많아요. 제가 다시 들어올 테니까 천천히 충분히 인사하세요.”
저 때문에 주미가 급하게 서두를 거 같아 다연은 우선 밖으로 나가 택시비를 두 배로 지불하고 먼저 보냈다.
다시 안으로 들어온 다연은 주미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주미는 엄마의 유골함이 있는 맞은편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주미가 가져온 국화꽃이 놓인 곳을 다연도 조용히 바라보았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다연의 모친과 돌아가신 날짜가 같았다.
“아저씨, 옆에 있는 이 예쁜 사람이 구자혁 아내예요. 안 믿기시죠?”
주미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세상에 구자혁이 결혼한 것도 다 보네요.”
다연은 다시 구자혁을 떠올렸다.
“아저씨가 보기에도 구자혁한테 분에 넘치는 사람 같죠?”
주미와는 성도 달랐고, 아저씨라고 부르는 걸 봐선 가족은 아닌 거 같았다.
이 유골함의 주인이 주미와 구자혁, 둘 다 아는 사람이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었다.
“저 잘 지내요. 내년에 또 올게요.”
주미는 미련 없이 휠체어를 돌렸다.
아쉬워 머뭇거리는 쪽은 유골함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다연이었다.
“벌써 가려고요?”
“자주 오는 곳이라 괜찮아요.”
몇 년 만에 엄마에게 와서 펑펑 울었던 다연과 대조적으로 주미는 생긋 웃고 있었다.
주미는 휠체어를 움직이기 전 반대편에 있는 유골함에 시선을 두었다.
“올해도 아무도 안 왔나 보네…….”
“네?”
“아, 아니에요. 가요. 근처에 괜찮은 카페가 있어요. 케이크가 썩 괜찮아요.”
“네.”
다연은 천천히 주미를 따라 걸었다.
다행스럽게도 비가 잠깐 그쳐서 주미는 비를 맞지 않고 차에 올랐다.
너무나도 능숙하게 척척 해내서 다연이 거들어 줄 일이 전혀 없었다.
두 사람은 강이 보이는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았다.
비가 와서 물살이 거세진 강을 보며 다연은 조금은 답답한 것이 사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경치를 즐기는 것도 5분이면 충분하다던 주미는 의외로 조용히 다연을 기다려주었다.
다연이 깊게 한 번 숨을 내쉬자 기다렸다는 듯이 주미가 아는 체를 했다.
“이제 좀 괜찮아요?”
“……아. 네.”
누가 봐도 엉엉 울었던 얼굴로 마주했던 터라 다연은 살며시 입술을 말아 물었다.
“거기 와서 나처럼 웃고 가기 힘든 곳이죠. 마음이 무겁지, 무거워. 뒤돌아설 때 발걸음도요.”
“엄마 만나러 왔어요.”
“울 만했네요.”
주미는 빨대로 휘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까 그분은…… 구자혁 씨도 아는 사이인가 봐요.”
“네.”
다연은 알지도 못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주미는 자혁의 이름을 어렵게 말하는 다연의 눈치를 살피며 설명을 덧붙였다.
“구자혁 운전기사였어요. 아까 그분이요.”
자혁의 운전기사인데, 그분의 기일을 주미가 챙긴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그 차를 타고 있었고요.”
“네?”
어디선가 들어 본 거 같은 기시감에 다연은 온몸에 미세하게 소름이 일었다.
“사고 날 때 내가 탄 차가 원래 구자혁 차였거든요.”
아, 생각났다.
지라시에서 읽어 본 이야기 중 하나였다.
[냉혈한 A 사장. 작은아버지와 끊임없이 경영권 다툼을 하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 작은아버지가 내연녀 사이에서 낳은 딸은 사고로 위장하여 죽이려는 끔찍한 일까지 벌였다. 죽이는 데 실패했지만, 평생 휠체어에 의지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작은아버지가 시작하는 사업을 교묘히 방해해 주주들의 눈 밖에 나도록 몰고 있다.]
그렇다면 주미가…….
“내 출생에 비밀 아닌 비밀이 좀 있거든요.”
“설마……. 구재식 부사장님이…….”
“맞아요. 구재식 부사장의 사생아가 나예요. 그 사람은 아직도 인정하진 않지만요.”
당사자인 주미보다 다연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지난번 지혜가 알려준 곳에 접속했을 때 너무나 자극적인 이야기라서 호기심에 읽은 것이었다.
한강 기업 이야기라는 확신도 없었고,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가 거짓인지 판단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작은아버지의 사생아인 주미가 하필 자혁의 차를 타고 사고가 났다는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그 소문에 거짓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몰랐어요?”
“……네.”
다연은 너무 놀라서 지금 제 얼굴이 얼마나 엉망일지는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 울어서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놀라서 입은 슬며시 벌어진 채 안색은 창백했다.
“정말 구자혁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나 보네…….”
주미는 고개를 살며시 내저으며 빨대를 입술 사이에 넣고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럼, 구자혁 씨랑…….”
“그 자식이랑 친하다는 것도 우습지 않아요? 그렇다고 우리가 친구 사이는 아니죠. 그 집안에서 절대로 나와 엄마를 인정하지 않으니 사촌지간은 더더욱 아니고요.”
어떤 한가지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사이가 맞았다. 굉장히 민감한 이야기를 주미는 마치 남 이야기하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사촌이라서 그런지 자혁과 주미는 묘하게 닮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