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다연은 자혁의 뺨을 감쌌던 손을 풀어 그의 목에 감았다. 그리고 살며시 당겼다.
희미하게 웃는 자혁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느릿한 움직임도 아닌데 그의 움직임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몸의 감각이 둔해졌다.
단 하나. 구자혁에 대한 감각만이 과도하게 예민해졌다.
그의 눈빛과 손길 하나하나 세세하게 느꼈다.
자혁의 모습으로만 시선에 가득 차는 순간 다연은 눈을 스르르 감았다.
따듯한 입술이 닿았고 벌어진 틈 사이로 서로의 숨결이 오갔다. 숨이 차올랐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자혁을 안은 팔에 힘을 주어 안았다. 그것이 신호탄이 된 거처럼 키스의 농도가 짙어지고 그의 손길이 옷 사이로 들어와 살결을 어루만졌다.
뜨거운 손길이 농밀해질수록 다연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
“하아.”
그의 입술이 떨어지는 순간 다연은 참았던 숨이 탄성과 섞여 터져 나왔다.
뜨거운 입술이 목선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다연은 가슴이 크게 들썩였다.
다연의 점이 있는 곳에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자혁이 입술을 살며시 떼고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난 이 점이 마음에 들어.”
“하아. 나에게 콤플렉스예요.”
그가 다시 다연의 점에 입술을 묻었다.
다연이 몸이 다시 크게 들썩였다.
“타투 같아. 사람을 홀려.”
그의 말에 다연이 자잘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언제부터 자신의 점을 의식하게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다연에겐 오랜 콤플렉스였다.
모양도 색도 특이한 점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어릴 때 짓궂은 아이들에겐 놀림감이었고, 불길하다고 피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과 친밀한 터치를 할 수 없는 불치병과 더불어 다연을 한없이 움츠러들게 했던 점이었다.
그 점이 사람을 홀리게 한다고 입술을 묻고 있는 자혁 때문에 다연은 몸이 점점 뜨거워졌다.
몸을 이리저리 틀어도 아랫배에 자글자글한 열이 끓었다. 발이 곱아 들고 숨이 제멋대로였다.
순간, 두려움이 올라왔다.
“하아, 그만요.”
다연은 그의 머리를 손으로 감싸며 애원했다.
자혁이 미간을 찡그린 채 고개를 들었다.
다연의 표정 하나하나 전부 뜯어볼 듯한 집요한 시선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는가 보다.
너무나도 빤히 바라보는 그의 눈빛 하나에도 다연은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이상해?”
몸을 어쩌지 못할 정도의 이상한 감각이 흐른 것은 맞지만, 자혁은 물어보는 의미는 다른 것이었다.
자혁은 발진이 올라와 다연이 그만이라고 외친 것으로 생각하는 거 같았다.
“괜찮은데…….”
“그런데?”
당신이.
“너무 뜨거워서요.”
당신의 뜨거움이 전염되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솔직하게 말할 수 없어 다연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얼굴 보여줘.”
다연은 격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표정이 안 보여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의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다연은 살며시 고개를 들어 자혁을 올려다보았다.
목소리와 달리 그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겁먹은 얼굴이네.”
다연은 자혁의 가슴에 다시 얼굴을 묻었다.
그는 몸을 기울여 옆으로 누운 채 다연을 끌어당겨 안았다. 그를 안아주고 싶다고 먼저 시작해놓고 다연은 이번에도 도망쳤다.
밉지도 않은지 그는 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당신이 멈추라면 나는 멈춰야 해.”
그는 직접적으로 다연의 병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아.”
억눌린 한숨이 새어 나왔다.
“손만 잡고 잘 거야……그 전에 테스트 한 군데 더.”
그는 다연을 안고 몸을 돌려 조금 전처럼 다연과 몸을 포개어 누웠다. 그리고 다연의 티셔츠를 벗겨 냈다.
그의 입술이 목선 아래 움푹 파인 곳에 닿았다. 테스트라고 하기에는 짙은 애무 같아 다연은 순간 숨을 참았다.
뜨거운 숨결이 오랫동안 느껴졌다.
잠시 뒤 입술을 뗀 자혁이 다연과 눈을 맞추었다.
“지난번에도 내가 오늘처럼 했던 거 기억나?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다연이 입술을 말아물었다.
그가 기억나냐고 물어본 것은 비 오는 날 다연을 찾으러 왔던 날이었다.
리조트에서 짙은 키스를 하고 그의 입술이 꼭 지금처럼 다연의 몸을 훑었다.
직원 때문에 멈추었지만, 그날 발진이 올라온 곳이 있었다.
지금 자혁이 입을 맞춘 지점이었다.
“그날…… 봤어요?”
“벌어진 가운 사이로 봤었어.”
아.
그가 빤히 보고 있었던 이유를 다연은 멋대로 오해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시선에는 짙은 욕망을 담겨 있었다.
마주 보는 것만으로 저릿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그만…… 봐요.”
희미하게 웃는 자혁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다연은 스르르 눈을 감았다.
조금 서늘한 감촉의 입술이 이마에 닿았다 떨어졌다.
잠시 뒤 입술에 뜨거운 것이 닿았다.
살며시 벌어진 입술 사이로 들숨과 날숨이 뒤엉켰다. 입술이 뭉개질 정도로 자혁은 거칠게 몰아붙였다.
* * *
다음날, 자혁은 바쁘게 일정을 소화했다.
다연이 혼자 종일 리조트 안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 오늘은 일찍 마치고 그녀와 함께 나가고 싶었다.
아트센터와 연계한 문화 프로그램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 마지막 일정이었다.
“이걸로 끝인가?”
“네, 사장님.”
“리조트로 가지.”
자혁이 중앙홀을 지나 나가려 할 때 아는 얼굴이 휠체어를 굴리며 다가왔다.
“뭐야? 네가 여기 왜 있어?”
“내가 물어보고 싶은 말인데?”
주미는 자혁을 보자마자 가시를 세웠고 자혁도 마찬가지였다.
“아트센터는 내 홈그라운드라고 볼 수 있는 곳이고, 구자혁 네가 여기 있는 게 이상한 거야.”
그러니 거제도까지 온 이유를 먼저 밝히라는 말이었다.
“출장.”
“난 저거.”
주미는 턱으로 한쪽에 걸린 현수막을 가리켰다.
[전국 무용 예능 실기 대회]
들어올 때 보긴 했어도 자혁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심사위원.”
“그런 거 안 했잖아.”
“우리 모친이 러시아 출장 중이라.”
예상치 못한 만남에 자혁은 낮게 숨을 내쉬었다.
“리조트 좋더라.”
“가 봤어?”
“숙소 거기야.”
자혁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계단 없이 설계하는 거 힘들었을 텐데 훌륭했어.”
“네 도움이 컸지.”
“당연하지.”
적당히 친밀하면서도 서로 경계했다.
“너 재미있는 소문 들리더라.”
보나 마나 지라시로 돌고 있는 것을 주미도 들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네 와이프 말이야…… .”
“관심 갖지 마.”
다연의 말에 자혁의 신경이 곤두섰다.
“네 병은 다 나은 거니?”
“그것도 마찬가지야. 네가 관심 가질 일 아니야.”
주미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너한테 이용당한 게 있는데…… 이 정도 관심은 가질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었다고 몇 번을 말해.”
조금씩 감정이 격해지고 있었다.
“나같은 희생양은 앞으로 더 없길 바란다. 제정신한테도 전해주고.”
주미는 휠체어를 밀며 자혁의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 * *
갑작스럽게 일정이 변경되었다.
이 실장과 김 대리만 두고 자혁은 서울로 가야 했다.
다연은 하루 더 있다가 이 실장과 함께 가겠다고 했지만, 자혁은 단칼에 거절했다.
몇 번의 입씨름 끝에 다연은 결국 자혁의 차에 타야 했다.
늦은 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다연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서울로 가는 도중 자혁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 채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
다연과 했던 약속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어겼다고 따질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늦은 밤 집에 도착한 뒤 다연은 2층으로 올라가려는 자혁의 손을 잡았다.
그가 바쁜 것은 알고 있지만, 다연은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일해야 해요?”
“이 실장이 보낸 메일 확인해야 해.”
“늦게 끝나요?”
자혁이 옅게 웃으며 다연의 머리를 흩트려 놓았다.
“노트북 가지고 내려올게.”
같이 있고 싶어 자신도 모르게 매달린 거 같았지만, 그의 말에 다연은 속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다연의 미소는 그가 2층 계단을 중간쯤 올라갈 무렵 싸늘하게 사라졌다.
“미미야, 나왔어.”
집으로 오는 내내 그의 귀에 꽂혀있던 블루투스 이어폰에 대고 하는 말을 다연은 똑똑히 들었다.
집에 온 것을 보고하듯 미미에게 전화하는 그의 모습에 다연은 심장이 서걱거렸다.
다연은 자혁이 노트북을 챙겨 내려 올 동안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었다.
“들어가자.”
자혁이 다연의 손을 잡고 방으로 이끌었다.
자혁이 이끄는 대로 걷던 다연은 손에서 이상 증세를 느꼈다.
“잠깐만요.”
자혁이 다연을 돌아보았다.
“손 좀 놔줘요.”
자혁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자신의 손이 닿은 곳마다 발진이 올라온 다연의 손이 보였다. 자혁은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왜…… 갑자기 이러는 거야? 원래 이래?”
그가 봤을 때는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피부 테스트를 하고 짙은 키스를 해도 괜찮았었는데 갑자기 발진이 올라왔으니 말이다.
다연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피곤해서 그런가 봐요.”
다연은 가방에서 약통을 꺼내고 물을 가지러 주방으로 갔다.
이어서 따라 들어온 자혁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좋았다.
그를 미미와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 점점 버거웠다.
다연은 물과 함께 약을 삼켰다.
* * *
거제도 출장을 다녀온 뒤로 다연의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정신과 마주한 다연은 최대한 표정을 숨겼다.
특유의 편안한 표정이 사라진 정신의 앞에 앉아 다연은 밖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산책하면서 상담하면 안 되나요?”
날씨가 좋았다. 다연은 밖에 나가 산책을 하며 상담하는 쪽이 더 편안했다.
말하기 어려울 때 시선 처리가 편했으니까.
하늘색이 예쁘다 혹은 꽃이 제법 많이 피웠네요. 라고 말을 돌릴 수도 있었다.
상담실 안에서는 질문을 피해 가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정신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물어본 것이었는데 평소와 달리 그가 움직이지 않았다.
“오늘은 제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야외보다는 상담실 안에서 진행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미안하다고 하면서 정신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아니에요. 많이 안 좋으세요?”
“상담 진행하겠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미묘하게 달라진 정신의 태도에 다연은 두리번거리며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남편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피해서 가고 싶은 것만 골라서 은근히 몰아가는 사람은 정신이었고, 다연은 일부러 자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