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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24/76)

24화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예쁜 사람이구나 싶었고, 웃을 때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예뻤어.”

“저기…… 구자혁 씨.”

“이게 잘못된 건가?”

다연에게 좋아하는 감정이 생겼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육체적인 욕구만 앞서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의 눈빛이 너무나도 진실하여 다연은 오히려 솔직할 수 없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에게 끌리면서도 부인하고 그의 마음을 제멋대로 왜곡해버린 것이 얼마나 오만한 일이었는지.

“우리 둘 다 흘러가는 대로 두면 안 되는 건가?”

“미안해요.”

‘미미는 어쩌고요’라고 되묻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다연은 사과하는 것을 택했다.

그의 미간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지만, 다연은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이 결혼이 잘 마무리될 때까지 최선을 다할 거예요.”

“그 이상은 바라지 말라는 건가?”

다연의 입술이 일자로 굳게 닫혔다. 그가 대답을 채근해도 다연은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지금은 그저 그가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도록.

“지금 당신 표정이 어떤 줄 알아?”

“…….”

그가 다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연은 그의 눈에 일렁이는 욕망을 보았다. 다연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잡아.”

그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다연이 느릿하게 일어나 그의 손을 잡았다.

강한 힘으로 다연을 끌어당겼다. 단단한 허벅지 위에 앉은 채 그의 가슴에 기대었다. 일정한 속도로 뛰는 심장 소리가 안정적으로 들렸다.

다연은 그의 허리를 꼭 안고 그의 품 안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모르겠으면 굳이 답을 찾으려 하지 마. 그럴 때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런다고 세상 안 무너지더라.”

그의 말대로 답을 찾는 것도, 답을 정해놓는 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다연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녀의 머리를 감싼 자혁의 손이 따듯했다.

다연이 눈을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희미하게 웃고 있던 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다연의 눈이 다시 스르르 감겼다.

이마에 차가운 입술이 닿았다. 이내 뜨거운 입술이 다연의 입술과 맞닿았다.

다정한 입맞춤이었다.

천천히 그녀의 입술을 가르고 들어와 어르고 달래듯 잇새를 훑어내렸다.

입술이 짓이겨지고 서로의 숨결이 뒤엉켰다. 몸 안 어딘가가 낯선 감각에 다연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

다연의 허리를 감싼 팔에 힘을 주어 당겨 안았다. 서로의 몸이 비벼지고 열기가 끓어올랐다.

“하아.”

잠시 입술을 떼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더 하고 싶어.”

다연의 가슴이 크게 들썩이는 순간 그의 입술이 거칠게 밀려들어 들어왔다. 입술이 물리고 모든 것이 그에게 빨려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다연은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아랫배에 뜨거운 열기가 모여들어 다연의 발가락이 곱아졌다.

머릿속이 텅 비워진 것만 같았다.

꽁꽁 동여맸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손길에 샤워 가운이 쉽게 벌어졌다. 하얗게 드러난 가녀린 목에 뜨거운 입술을 내려왔다.

전신을 압도하는 열기에 다연은 연신 몸을 떨었다.

가슴에 축축하고 뜨거운 것이 닿는 순간 찌르르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하아, 이상해요.”

그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다연이 흐느끼듯 말했다.

제 체온보다 더 뜨거운 숨결이 몸 여기저기서 느껴질 때마다 다연은 몸을 들썩였다.

불안정하게 뛰어대는 심장만큼이나 머릿속도 뒤죽박죽이었다.

그의 뜨거운 손이 부드럽게 다연을 다독여주었다.

낯선 손길에 놀란 것도 잠시 다연은 점점 녹아들었다.

-쾅쾅쾅.

찬물을 끼얹은 듯 두 사람의 행동이 멈추었다.

[사장님, 옷 가져왔습니다.]

문밖에서 해맑은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잘라버릴까?”

“쿡.”

다연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사장님!]

해맑은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렸다.

“잠시만 기다려요.”

자혁이 열기를 식히며 대답했다.

“옷 입고.”

“꼭 입어야 하나?”

다연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의 가슴을 한번 툭 쳤다.

계속 직원을 밖에 기다리게 둘 수 없어 다연이 그의 품에서 떨어졌다.

“집에 가요.”

“꼭 가야 하나?”

“네. 가야죠. 우리 집이잖아요.”

자혁이 흐트러진 샤워 가운을 다시 정리하며 말했다.

“그래, 옷 입고. 밥 먹고. 가자, 우리 집.”

* * *

직원 가져온 것에는 옷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상하지 못한 음식 냄새에 다연은 인식하지 못한 허기가 일었다.

다연은 옷이 든 쇼핑백보다 먹을 것이 든 쇼핑백을 먼저 열어보았다.

“한다연.”

그의 목소리에 짙은 한숨 소리가 섞여 있었다.

“네?”

다연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다연의 몸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니 샤워 가운이 다시 벌어져 있었다.

다연이 다급하게 샤워 가운을 잡고 팔을 교차했다.

“옷부터 입고 나올게요.”

옷이 든 쇼핑백을 들고 다연은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갔다.

자혁은 벌어진 샤워 가운 사이를 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손과 입술이 스친 그녀의 목 주변에 발진이 올라온 것이 보였다.

자신의 손이 닿을 때는 괜찮은 것이 아니었던가?

그녀의 컨디션에 따라 자신과의 터치에도 발진이 올라 올 수 있다면, 지금처럼 마음대로 그녀를 만지고 안으면 안 된다.

직원이 가져다준 옷을 입으며 자혁은 생각이 복잡해졌다.

* * *

주변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일기예보에도 없던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와 나란히 우산을 쓰고 집으로 들어온 다연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다.

비에 젖은 스케치북을 한 장씩 뜯어 탁자 위에 말려두었다.

다행히 카메라에 찍어둔 사진이 그대로여서 나중에 다시 그리기로 했다.

“똑똑.”

자혁이 문 앞에 기대어 서서 입으로 노크 소리를 냈다.

“휴대폰은 수리센터 보냈어.”

“고마워요.”

“새 걸로 사준다니까.”

자혁이 방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그거 하나 새로 사줄 능력 안 될까 봐.”

“휴대폰 새로 살 돈은 저도 있어요.”

그녀의 야무진 대답에 자혁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휘었다.

“거기에 추억이 많이 담겨 있어서요.”

“클라우드 써.”

그걸 누가 모르냐고요.

휴대폰이 전자기기일 뿐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있었다. 그게 소중한 건데 그걸 왜 몰라주는지 다연이 입술을 비죽였다.

“여긴 왜 왔어요?”

“할 말 있으니까.”

그가 의자를 빼서 앉았다. 자연스럽게 다연이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다연이 손으로 그림을 가렸다. 그래 봤자 작은 손이라 다 가려지지도 않는데.

“일은 계속할 거예요.”

“하지 말라고 한 적 없어.”

민망해서인지 다연이 입술을 말아 물었다. 볼에 옅은 보조개가 패었다.

자혁은 문득 식탁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정을 읽지 못하는 자혁에게는 누군가를 마주 보는 것보다 나란히 앉는 것이 편했다.

“할 말 있다면서요.”

그가 말없이 빤히 바라보는 것이 점점 어색해서 다연은 눈을 내리떴다.

“있어.”

“무슨 말인데 구자혁 씨답지 않게 뜸을 들이는 거예요?”

뜸을 들이긴 했지만, 그의 표정과 목소리는 여전히 오만함 그 자체였다.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 해서 본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난, 당신 부탁 들어줬어.”

어떤 부탁이었는지 다연은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자혁이 자신의 귀를 검지로 가리켰다.

“아…….”

다연은 그게 블루투스 이어폰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당신은 뭘 해줄 건가?”

누가 사업가 아니랄까 봐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하려는 속셈이 빤히 보였다.

“내가 원하는 거 말하면 되는 건가?”

그가 무엇을 말할지 모르는데 덥석 해주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일단, 들어 보고요.”

자혁의 입술이 보기 좋게 휘었다.

“여기서 같이 자고 싶어.”

“…!!”

“가능하면 매일.”

“저기요! 구자혁 씨!”

그와의 짙은 스킨십을 기억하는 다연의 몸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직원이 오지 않았더라면 그가 가슴을 탐하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토록 뻔뻔하게 동침을 요구라는 자혁이 심히 당황스러웠다.

“안 돼?”

“네!”

“왜지?”

“그걸 몰라서 물어요?”

“같이 자는 게 왜?”

그가 정말 몰라서 묻는 건지 다연은 궁금했다.

“우리…….”

“섹스하자고 하자는 걸로 들렸나?”

“…!!”

다연이 손부채질 했다.

사람이 너무 기가 막히면 정말 말문이 막힌다는 걸 다연은 몸소 체험 중이었다.

“오늘 비 오는 날이야.”

같이 자고 싶다는 말에서 왜 갑자기 날씨 이야기로 건너뛰었는지 이 대화의 흐름을 다연은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당신이 악몽 꾸는 날.”

“…!!”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말문이 막혔다.

비가 오면 힘들다고 했던 그녀의 말을 그는 잊지 않고 있었다. 자신을 찾으러 와준 이유도 비가 와서 일 것이다.

지난번 악몽을 꾼 날 두 사람이 나눴던 말을 그는 세심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신은 불면증으로 잠들기 힘든 날이고요.”

“맞아.”

“그렇다고 같이 자고 싶다는 건…….”

“말 그대로 잠만 자자고.”

담백하게 말하는 그와 달리 다연은 자신 혼자 야한 생각을 한 것만 같아 민망하기도 했다.

“당신이 부탁한 거 나에게 중요한 일과 중 하나야.”

중요한 일과를 자신 앞에서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그는 기꺼이 들어주었다.

기뻐해야 하는데 그녀의 심장이 서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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