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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19/76)

19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강한 충동이 일었다.

두 시간이 넘도록 슬라임을 조몰락거린 것은 소용없었다.

들불처럼 일어난 욕망은 가라앉지 않고 자혁의 심장을 지배했다.

중력처럼 자혁은 다연에게 다가갔다.

다연의 시선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자혁이 보였다.

다연은 멈추었다. 그에게 보여 준 적 없던 모습이라 민망해서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언제 왔어요?”

“방금.”

춤을 추던 중이었던 터라 다연의 호흡이 거칠었다.

자연스러운 충동. 자혁에게 한다연은 미치도록 예뻐 보였다.

만지고 싶고 안고 싶었다.

“한다연.”

“네?”

무언가 화가 난듯하면서도 진지한 눈빛에 압도되어 다연은 피할 수 없었다.

“내가 지금 자연스럽고 강한 충동을 느끼는데…… 해도 되겠어?”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상한 믿음이 있었다.

그가 무슨 짓을 하든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는 안전한 사람이니까.

“네.”

자혁의 얼굴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면서도 다연은 피하지 못했다.

커다란 손이 머리카락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심장이 무섭도록 쿵쾅거렸다.

다연이 눈이 떨리듯 감기는 순간 뜨거운 입술이 부드럽게 닿았다. 그대로 먹을 것만 같던 거대한 남자는 조심스러웠다

그의 입술은 이마에 닿을 때처럼 시원하지 않았다. 온몸을 녹일 만큼 뜨거웠다.

키 차이 때문에 휘청이는 다연의 허리를 그가 단단하게 감싸 안았다. 안도감이 들었다. 다연이 넘어지도록 두지 않을 거라는, 그의 단단한 몸에 기대어도 될 거라는. 이 순간에조차 다연을 다치지 않게 할 거라는 믿음이 컸다.

몸이 밀착되면서 다연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적게 벌어진 틈은 그를 향한 믿음으로 조금 더 열렸을 뿐인데 뜨거운 것이 훅 하고 밀고 들어왔다.

그가 뿜어내는 온도는 뜨거운데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어르고 달래듯 신중하면서 뜨거웠다. 그녀가 적응하도록 조금씩 깊숙이 침범해왔다.

입맞춤이 진해지고 있었다.

끈적하고 농밀한, 점점 숨이 차오르며 다연의 온도마저 뜨거워졌다.

호소력 짙은 가수의 노래가 다시 반복되었다.

Bésame, bésame mucho,

Como si fuera esta noche

La última vez.

나에게 키스해주세요. 나에게 키스를 많이 해줘요.

오늘 밤이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요.

숨이 찬 다연이 그의 가슴을 두어 번 두드리고서야 입술이 떨어졌다. 가쁜 숨을 내쉬느라 다연의 가슴이 들썩였다.

“괜찮아?”

다연은 붉어진 입술을 살짝 말아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그의 손이 닿은 곳에 발진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것뿐일까. 살갗이 얇아 예민한 입술이 닿았는데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의 입술이 닿아서 간질간질 한 것이지 발진과는 달랐다.

주변이 점차 어두워지고 있었고, 저녁도 먹여야 하는데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자혁은 다시 그녀의 아랫입술을 삼켰다. 점점 더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자혁에게 매달린 채 그의 호흡을 따라가는 것도 다연은 벅찼다.

점점 더 거칠어지는 자혁의 행동에 방황하던 다연의 손이 자혁의 재킷 귀퉁이를 잡았다.

재킷과 함께 작은 물건이 다연의 손에 잡혔다. 그가 아침저녁으로 귀에 꽂고 있는 블루투스 이어폰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들불처럼 일던 마음이 순식간에 식었다.

자연스럽게 미미가 떠올랐다.

‘미미야, 나 왔어.’

다정하게 통화하던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자신의 팔 안에서 자잘하게 떨던 여자의 몸이 굳었다.

자혁은 입술을 떼고 다연과 시선을 맞추었다.

“괜찮아?”

“네.”

아니, 대답과 달리 그녀는 괜찮지 않았다.

“잠깐만요.”

자신의 품에서 스르륵 빠져나가는 다연을 잡을 수 없었다.

다연이 왜 울 거 같은 표정인지 자혁은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자신이 너무 성급했던 것일까?

슬라임을 더 가지고 놀 걸 그랬나.

자혁은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흩트려 놓았다.

습관처럼 자혁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내서 귀에 꽂았다.

“미미야, 나 왔어.”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

“나 궁금한 게 있어.”

[네, 말씀하세요.]

자혁은 뭐라 말을 하려다 다연이 들어간 방문을 바라보았다.

“아니다.”

자혁은 이어폰을 빼서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재킷이 좀 구겨진 거 같았는데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내일 다시 입을 옷도 아니니까.

작게 물소리가 들리는 걸 봐선 다연이 씻는 중인 거 같아 자혁도 2층으로 올라가 샤워를 했다.

* * *

다연은 찬물을 틀었다. 그러면 정신이 차릴 수 있을까 싶어서였는데 큰 효과는 없는 거 같았다.

아직도 자혁의 입술이 닿아 있는 것만 같아 다연은 손을 들어 제 입술을 조심스럽게 쓸어 보았다.

“나쁜 놈. 키스도 잘해.”

다연은 작게 중얼거렸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주방에 나와보니 식탁 위에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점 로고가 그려진 쇼핑백이 있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마음에 드네, 구자혁. 아니 구자혁 씨 회사 직원이.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내려오니 다연이 포장 음식을 꺼내며 해맑게 웃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거처럼 구는 다연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거 누구 아이디어에요?”

“그건 왜?”

“센스쟁이라고 칭찬해 주려고요.”

자혁이 한쪽 눈썹을 올렸다. 고작 이거 하나에 칭찬한다고.

“어떻게 칭찬해 줄 건가?”

나한테 해봐.

기다리고 있는 자혁을 스쳐 지나간 다연이 맥주 캔 두 개를 꺼내곤 양손에 들어 보였다.

“떡볶이에는 맥주죠.”

지금 술이 넘어가냐. 그리고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지?

자혁은 자신의 입술을 한 번 쓱 문질러 보았다. 부드럽지나 말던가.

“칭찬은?”

“구자혁 씨가 월급 많이 줄 거잖아요.”

그녀는 직원이 고른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거 같았다.

자혁은 이상한 오기가 생겼다.

“내가 골랐어.”

“…….”

“칭찬해줘.”

점점 거리를 좁혀 오는 자혁과 시선을 마주칠 수 없어 다연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참 잘했어요. 칭찬해 줬으니까 됐죠?”

“어린아이 취급하지 말라더니. 나는 왜 아이 취급이지?”

그가 다연의 볼을 감싸 쥐었다.

“어른은 칭찬을 이렇게 해.”

그가 고개를 비스듬히 숙이며 다가왔다. 희미하게 웃는 그의 입술 보며 다연은 눈을 감았다.

마당에서 했던 입맞춤과는 시작점부터 달랐다.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던 것과 달리 그는 저돌적으로 밀어붙였고 다연은 피하지 않았다.

입술을 가르고 들어 온 혀가 치열을 핥으며 입 안을 휘저었다.

타액과 숨이 섞였다. 방황하는 그녀의 팔을 자신의 목에 감았다.

한 팔 안에 들어오는 가는 허리를 당겨 안았다. 품에 안은 그녀의 몸이 보드라워 구석구석 만지고 싶고 맛보고 싶었다.

다연에게서 나는 달큰한 향에 취하기라도 한 거처럼 그는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녀의 입에서 뜨거운 숨과 함께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이상했다. 그걸 다 삼켰는데도 갈증이 일었다.

더, 더를 원했다.

다연의 몸에 힘이 풀리며 키 차이기 때문에 입술이 조금씩 멀어졌다.

자혁이 입술을 떼고 거친 숨을 내쉬며 다연을 안아 들었다.

바 테이블 위에 그녀를 올려놓고 다시 입술을 머금으려 할 때였다.

-꼬르륵.

다연의 배에서 원초적인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얼어붙은 듯 다연과 자혁의 행동이 멈추었다.

잠시 뒤, 그의 웃음소리가 작게 들렸다. 안 그래도 민망해서 죽겠는데 그의 웃음소리에 다연은 머리를 숙였다.

앞에 서 있던 그의 가슴에 이마가 닿자 웃으며 내는 몸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안 그래도 민망한 사람을 두고 이렇게 웃다니 그가 얄미웠다.

다연이 작은 손을 말아쥐고 그의 가슴을 한번 콩 때렸다.

“그만 웃죠.”

자혁이 그녀를 안아 테이블 아래로 내려놓았다. 그리곤 그녀의 머리를 흩트려 놓으며 말했다.

“배고프다. 떡볶이 먹자.”

그는 온도 차 때문에 캔 표면에 물이 흥건해진 캔맥주를 냉장고에 있던 것과 바꿔서 가져왔다.

“앉아. 계속 얼굴 빨개서 그렇게 서 있으면 다른 게 고픈 거 같잖아.”

“머, 먹어요.”

다연이 고개를 숙인 채 늘 앉던 자리에 앉았다. 바 테이블이라 매번 의자 하나를 가운데 두고 나란히 앉았었다.

“내가 가? 아니면 당신이 올래?”

이런 화법 싫다니까.

“떨어져서 먹는 게 더 불편하지 않겠어?”

그가 가운데 놓인 음식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연이 고민하는 틈에 그는 가운에 비어 있던 의자를 긴 팔로 뒤쪽으로 밀어버렸다. 그리고 다연이 앉은 의자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꺅!”

힘의 반동으로 그녀의 몸이 반대쪽으로 기울자 자혁이 손을 뻗어 어깨를 감싸 안았다.

키스 한 번에 스킨십에 이렇게나 자연스러울 수 있는 사람이었던가 싶었다.

자신을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고 하기에 그는 친절히도 해도 되냐고 물어봤었다. 키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다연의 생각이 복잡해졌다.

“먹어봐. 맛집이래.”

자혁은 젓가락을 챙겨주더니 맥주도 손수 따서 건네주었다. 떡볶이 냄새가 공복인 그녀의 위장을 자극했다.

‘먹자, 떡볶이를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다연은 젓가락을 들었다.

식어 있었지만 떡볶이는 맛있었다. 세 번째 캔맥주를 딴 다연은 눈에 띄게 웃음이 많아졌다.

오른팔로 턱을 괴고선 왼편에 앉은 자혁을 비스듬히 바라보았다.

“이런 거 안 먹고 살 줄 알았어요.”

“나 말하는 건가?”

다연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취한 거 같았다.

“이걸 사 올 줄은 몰랐거든요.”

“비서실 직원들이 야근하면 여기서 시켜 먹는 걸 봤어.”

“아, 같이 먹진 않았구나.”

“사장이 같이 먹으면 직원들이 편히 먹겠어?”

다연의 고개가 이번에도 위아래로 크게 흔들렸다. 그녀의 눈빛이 나른하게 반쯤 감겨 있었다.

“하긴, 그 인상으로 떡볶이와 순대를 먹는 사장이라니. 으으, 나 같아도 안 넘어갈 거 같아요.”

그래서 같이 안 먹었다고.

한편으로 다연이 자신의 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취중 진담이라고 지금 물어보면 그녀가 솔직하게 이야기해 줄 것만 같아 자혁은 무심하게 물었다.

“내 인상이 어떤데?”

그의 말을 듣자마자 그녀가 인상을 구기며 눈을 크게 떴다.

“세상에. 그걸 이제껏 몰랐어요?”

이 여자 보게.

이쁘다 이쁘다 하니 아주 사람을 잡아먹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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