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76)
  • 3화

    그의 시선에 묶인 듯 다연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목에 붉은색 점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 거로 생각하지? 그것도 나비 모양으로.”

    목에 있는 점은 다연에겐 콤플렉스였다. 모양도 색도 특이해서 한 번 본 사람은 모두 다연을 그 점을 가진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래서 다연은 항상 옷이나 스카프로 목을 가리고 다녔었다.

    춤을 출 때만은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목에 두른 스카프를 풀었을 뿐인데. 제 생각이 짧았다.

    “스페인 외곽 마을에 동양인 여자가 얼마나 많을 거로 생각하지?”

    “…….”

    일부러 숨으려고 고른 곳인데 동양인인 다연은 오히려 그곳에서 튀었다. 차라리 관광객이 많은 도시에 있는 것이 나았다.

    머물렀던 장소, 그녀가 했던 행동. 모든 것이 판단 미스였다는 걸 지적하고 있었다. 구자혁, 서류상 남편이라는 사람이.

    한국에 머무는 집에 관한 판단도 다연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은근히 압박하고 있었다.

    “다행히 집에는 빈방이 제법 많아, 게다가 2층이고. 이제 선택해, 호텔 아니면 집.”

    처음부터 다연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아니 자혁은 둘 사이에 계약에서 주도권을 다연에게 넘겨줄 사람이 아니었다.

    다연은 입 안 속살을 지그시 깨물었다.

    * * *

    한강 병원 정신과 전문의 제정신이라는 이름이 적힌 가운을 입은 남자가 기록지를 꺼내 들었다.

    자혁은 안락의자에 편안하게 기대어 앉아서 오른팔을 들어 가로로 눈 위에 올려 두었다.

    정신은 자혁의 반응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실제로 만나보니 어땠어? 영상으로 봤을 때처럼 표정을 읽을 수 있었어?”

    “……어.”

    지난 몇 년간 자혁을 상담하면서 처음 있는 변화였다.

    정신은 예약된 날짜 외엔 절대로 자신을 찾지 않던 자혁이 스스로 진료실 문을 열고 왔던 날을 떠올렸다.

    태블릿을 자신의 앞에 내밀던 그의 얼굴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많이 당황하기도 한 거 같고 놀란 거 같은.

    “표정이 다 보여.”

    “뭐?”

    “지금 형 표정은 여전히, 전혀 모르겠어. 목소리 톤으로 조금 놀랐는가보다라고만 유추할 수 있는 거지. 그런데 이 여자는 다 보여.”

    자혁이 보여 준 태블릿에는 한 여자가 가면을 쓰고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었다. 얼굴이 정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춤 선이 굉장히 우아했다.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하얀 피부도 인상적이었다.

    혹시 그가 이런 타입의 여자에게 끌리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며 정신은 영상을 계속 보았다.

    어떤 음악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뮤지컬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사랑과 배신, 이별 같은 스토리 같았다.

    음악의 템포가 빨라지며 춤추는 사람의 흥이 올라가며 동작이 빨라졌다.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에 여자가 쓰고 있던 가면이 사라졌다.

    매혹적인 모습에 정신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지를 뻔했다.

    배역에 맞게 짙은 화장을 했지만, 춤을 추고 있는 여자는 광장에 있는 수많은 사람 중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기뻐하는 얼굴이야. 그다음은 화가 나고 슬퍼.”

    이 정도는 음악으로 유추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동안 자혁은 말투와 주변 상황으로 상대방의 기분이 어떨지 추측하는 연습을 해왔다.

    한강 기업의 유일한 후계자로 그는 사업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자혁은 그렇게 피나는 노력을 해서 자신의 약점을 감추며 지금까지 버텼다.

    정신은 음소거를 하고 자혁에게 물었다.

    “여기, 이 부분.”

    자혁은 영상 속 여자를 보았다.

    “단순히 기쁨을 넘어서 환희라고 해야 하나?”

    놀라웠다.

    “이 여자 표정만 보여.”

    정신은 자혁이 멈춘 영상을 다시 재생시켰다. 자혁은 태블릿 속 여자를 노려보다시피 쳐다보고 있었다.

    배경을 보니 한국은 아니었다. 연주하고 악기와 음악 모두 외국에서 즉흥적으로 연주되던 그런 종류였다.

    정신은 자혁이 이 영상을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어 사는 사람이 이런 동영상을 챙겨 볼 리 없었다. 재무제표라면 모를까.

    “이 영상 어디서 난 거야?”

    “기자가 보냈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기자가 너한테 이런 영상을 왜 보내?”

    자혁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갔다.

    “아내야.”

    자혁의 아내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의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자혁이 대인기피증이 심해질 무렵 그의 비밀을 덮고자 결혼을 이용했었다. 계약서와 돈이 오가는 말 그대로 계약일 뿐이었다.

    결혼식을 앞두고 증상이 심해진 자혁이 비밀리 입원 치료를 하는 동안 정밀하게 합성된 결혼사진을 언론에 돌렸다. 신혼여행 중이라며 모두의 눈을 속였었다.

    계약의 대가로 다른 신분으로 유학을 간 사람. 자혁의 서류상 아내의 영상을 찍어 자혁에게 보낸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협박.

    “이 여자 표정이 분명하게 보여.”

    정신은 조금 혼란스럽지만, 무엇보다 지혁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한국으로 오게 해. 그리고 새로운 트레이닝 파트너로 써보자.”

    “트레이닝 파트너?”

    “저들은 너의 약점을 계속 의심할 거야. 언제까지 말투와 대화 흐름 같은 걸로 분위기를 유추하는 데 한계가 있을 거야.”

    며칠 전에도 임원 회의에서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있어서 자혁이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힘들었었다.

    새로운 광고를 보여 주곤 모델의 표정이 어떠냐는 부사장의 말에 지혁은 고민 끝에 논할 가치도 없을 정도로 엉망이라고 말했었다.

    두 달 동안 야근에 야근한 홍보팀 직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것 또한 자혁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질문은 여기저기서 수없이 날아들었고, 이 실장이 슬쩍 사인을 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작정하고 함정을 파면 걸려들 수 있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오게 했다. 자혁의 아내를.

    자혁은 눈을 가렸던 팔을 내리고선 오늘 만난 아내를 떠올려 보았다. 정신에게 보여 주었던 영상과 달리 아내는 화장기라곤 전혀 없었다.

    누군가를 유혹하는 매혹적인 미소를 날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청초한 미인이었다.

    같은 사람이라고 전혀 연상되지 않을 만큼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자혁은 자신의 오른손을 펴서 바라보았다.

    손목이 잡히던 순간 움찔하던 것은 자혁의 손이 아닌 눈으로 먼저 보았다. 다연은…… 떨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한 것이 있었다.

    “내 앞에 있는 사람들 표정이 원래 다 그래?”

    “어때 보였는데?”

    “나에게 화가 난 거 같았어.”

    한국으로 불러들인 것이 화가 났겠지.

    자혁 앞에선 사람 대부분은 그 반대였다. 어려워하거나 두려워하는 쪽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그냥 그렇게 보였어.”

    자혁이 아내의 감정을 제대로 읽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유를 이야기했다면 대화로 유추한 것이니까. 정신은 꼼꼼하게 기록을 했다.

    “그리고 떨고 있었어.”

    자혁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만난 다연을 떠올리는지 느릿하게 말했다.

    “남편이지만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지.”

    정신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난 친절하게 웃어줬어.”

    장담하건대 자혁이 웃으면 웃을수록 상대방은 점점 더 겁을 먹으면 먹었지, 같이 편하게 웃지는 못했을 것이다.

    “설마 연습한 대로 웃었다는 거야?”

    자혁은 다연을 대면했을 때처럼 정신을 바라보았다.

    “맙소사.”

    정신은 본분을 잊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잘 관찰해보라고 했더니 아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면 어쩌자는 거야.”

    정신은 잘 알지도 못하는 자혁의 아내에게 동정심이 일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깊은 눈매에 한쪽 입꼬리만 올린 저 표정에 누가 떨지 않을 수 있을지.

    오랜 세월 봐온 정신도 한 번씩 서늘하게 하는 저 미소를 그의 아내가 보았다면 당연히 무서워서 떨었겠지.

    “내가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맹수 앞에 있는 토끼처럼 떨고 있었어.”

    진짜 물어 버리고 싶게.

    * * *

    이 실장이 데려다준 곳은 자혁이 무심하게 말한 그저 그런 이층집이 아니었다. 고급 빌라 단지 안에서도 가장 전망이 좋은 프리미엄이 붙은 곳이었다.

    넓은 마당은 외부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구조였다. 보안은 물론 사생활까지 철저히 보호되는 남편의 집은 입구에서부터 보안용 CCTV가 곳곳에 달려 있었다.

    조금 전 마주한 구자혁의 잡아먹을 듯한 눈빛이 이 집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이 집에서 편히 잠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모든 것이 다연에게 위압적이었다.

    이 실장은 이번에도 대문을 열고 다연이 들어가길 기다렸다. 다연은 자신을 삼킬 것 같은 집으로 들어갔다.

    낮에만 와서 집안일을 하고 간다는 가사도우미가 다연을 친절히 맞아주었다. 다연을 1층에 있는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식사는 어떻게 할까요?”

    “보통 몇 시에 퇴근하시나요?”

    다연은 대답 대신 질문을 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10시 출근해서 3시쯤 퇴근합니다.”

    도우미는 오늘이 금요일이라 내일은 출근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친절하게 말하고 있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퇴근하세요.”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도우미는 인사를 하고 집 안에서 사라졌다.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

    다연은 크게 몇 번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며칠째 잠을 못 잔 것과 긴 비행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다연은 그대로 침대로 쓰러졌다.

    낯선 집에서 잠은 잘 수 있겠느냐고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다연은 뒤척임 한 번 없이 잠에 빠졌다.

    집은 그대로였다. 딱 하나, 아내가 있다는 것만 빼면.

    자신 앞에서 떨던 작은 여자가 집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현관문 손잡이를 잡는데 자혁은 아주 잠깐 망설여졌다.

    집 안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고요했다. 분명 집에 자신 외에 사람이 한 명 더 있는데도 말이다.

    거실을 지나 2층 계단을 올라가기 전 자혁은 잠깐 멈추고 꼭 닫힌 방문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내저으며 자혁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다 꽂았다.

    “미미야, 퇴근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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