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 외전 5화 – 몸으로 배우는 병장.
태영은 임현석 헤드락 한번 걸어야겠다 싶었지만.
사실 마주할 일 없는 사람이라 여겼기에 사주 감평이 어떻게 알려지나 신경쓰지 않았다.
이리 마주할 줄이야 알았나.
“저 맞습니다.”
“아하, 왜요?”
태영은 자살 고위험군이 된 임현석에게 ‘그 여자 잘못이지,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하려고 송세련의 사주를 대단히 적나라하게 보고 트집을 잡았다.
태영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지만 그래도 대화 소재가 사주인 바 침착하게 대화를 끌어나갔다.
간만에 갈굼 먹는 느낌이 나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느낌에 익숙했다.
“저는 병사들이 여자 친구 아닌, 여자분들 사주 가져오면 거의 무조건 야할걸? 이렇게 말합니다.”
“왜요?”
“그게 이놈들이 휴가 나가서 연락해서 같이 술이라도 마셔 줄 여자 지인들에게 바라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점잖은 놈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태영은 군인들이 휴가 나가서 만나는 지인 여성이 ‘야한 사주.’라고 하면 대단히 좋아하는 경우를 훨씬 많이 봤다.
그래서 태영은 희망을 파는 느낌으로 약간 비틀어 여성 사주를 보고 ‘도화살이 있습니다.’라고 보고하고.
‘도화살이 무엇이냐.’ 질문을 유도.
‘아, 도화살은 이성을 유혹도 잘하고, 유혹도 잘 받으며 욕망에 진솔합니다.’ 이렇게 돌려서 말한다.
이어 기이하게도 이놈의 군인들이 가져오는 여자 사주에는 도화살이 있는 경우가 많다.
군인들과 대화를 군 인권 상담관만큼이나 많이 나눠 본 태영의 입장에서 보면 연인들을 기다리게 하는 게 미안하다는 감정들이 있어.
빌드업으로 연애를 쌓아 가기보다는 인스턴트한 잠깐의 만남들을 원하는 거 아닌가 한다.
“그런 거예요?”
“이어 헤어진 여자 친구들에게도 거의 대부분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세요? 왜?”
“마음이 닿지 않아서 헤어졌다기보다는 몸이 멀어져서 헤어졌다고 해야 자책을 덜합니다.”
“아, 그렇구나.”
태영은 입이 풀렸다.
이성과 대화를 좀 이끌어 나가는 능력이 없는 편이었지만.
소재가 사주면 말할 수 있었다.
태영은 이병일 때 선임들을 ‘자길 욕하고, 줘팰 수도 있는 존재’로 두려워하던 존재로 인식했던 옛일을 떠올렸다.
맞은 적은 없지만 욕과 갈굼, 분위기 조성으로 겁주던 무서운 사람들이었으나.
그 무서운 사람들도 사람이긴 했구나, 싶던 기술이 있었으니 여자라고 다를 게 있겠나 싶다.
최소한 욕하고 줘패지는 않을 거 아닌가.
“그리고, 새 여자 친구랑 궁합이 더 좋다고 만나라고 한 거 접니다.”
“어…….”
태영은 사주 볼 때 도발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본업에 보탬이 되려고 배우려던 것이라, 초반에 어그로를 끄는 것을 연구한 편이다.
문화 관련 사업은 어그로꾼의 기질이 있어야 좋았다.
“왜 그렇게 말하셨어요? 왜?”
“아마 성함이 송세련 씨, 맞으실 겁니다. 송세련 씨는 주변 동성에게 남자를 빼앗기는 사주이기 때문입니다.”
“어, 제, 제가요?”
“이게 송세련 님 사주입니다.”
태영은 사주를 풀어 쓰는 연습장을 들고 다닌다.
면회자를 응대할 때도 적어 가면서 설명하는 게 편했으므로 연습장과 볼펜을 건빵 주머니에 구겨서 넣어왔다.
태영의 사주 연습장에는 송세련의 사주도 적혀 있다.
“불, 나, 친구, 형제.”
“물에 남자라고 적혀 있죠?”
“예, 그렇네요. 그러면?”
그녀의 사주라고 적어 놓은 생년월일시에 ‘정’이라는 한글 글자에 괄호로 (불)이렇게 적혀 있었으며.
이 불 주변에 물이 하나 있었으나, 같은 불이 많았다.
총 여덟 개 글자에 불, 나무, 물, 쇠가 있었는데 글자 ‘불’들이 ‘물’ 근처에 모여 있는 형국이다.
“이 사주 그대로 말씀드리지요. 물 하나를 두고 불들이 다가온 겁니다. 마치 옹달샘 하나를 두고 다툼하는 갈증 난 담비들 같습니다.”
“어떤 뜻이죠?”
“나만 가질 수 없는 남자 하나를 자기 고집대로 좋아하다가 다른 여자들에게 빼앗기는 것을 보는 팔자인 걸 암시합니다.”
태영은 임현석의 군대 내 연애 사업을 보고 빗대어 말하는 것인데, 송세련은 놀란 듯한 표정이다.
뺐긴 뭘 뺐나, 본인이 방출을 해 놓고 아쉬워서 이러는 것이지.
“기본적으로 굉장히 아리따운 명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리따운 건가요?”
“확신 안 하시죠?”
“네.”
“불로 태어난 혹은 사주에 불이 많은 명은 그 뭐라고 해야 하나, 시야적 감각에 트인 사람이 많습니다.”
“시야적 감각이오?”
“즉 보는 것, 드러나는 것 영롱한 것에 대한 감각적인 사람입니다. 이는 불이라는 것이 빛과 광선을 자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보이는 것 비추는 것, 드러내는 것에 적성이 맞기 때문입니다.”
“무슨 적성일까요.”
“미술, 디자인, 뷰티 화장 관련 업종에 꿈을 가지셨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런 연습장에 그림깨나 그려 보신 학창 시절을 보내셨을 것입니다.”
“어, 우와.”
여성 손님을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마는 힘을 준 화장에서 태영은 어느 정도 감이 왔다.
“미적 기준치가 높은 겁니다.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이죠. 제가 보기엔 충분히 아리따우십니다.”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그, 화장 안 한 맨얼굴인 자신과 길거리에 화장한 다른 여성들을 비교하시는 우를 범하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건 아마 자신의 모습이 성에 덜 차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도 저는 미인 사주라고 쓰여 있으므로 미인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안 만나 줄까요?”
지가 먼저 찼으니까.
태영은 이 여자의 사연은 그다지 안타깝지 않았다.
후임 같으면 일갈을 했을 건데, 태영은 최대한 돌려 말했다.
향후 최소 2시간은 이빨을 털어야 하는 임무를 맡았으므로 분위기가 너무 싸해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솔직해서 그렇습니다.”
“제가 솔직한 건가요?”
“그렇습니다. 마음이 그대로 행동으로 드러나시는 사주입니다.”
“좀 그런 거 같아요.”
“음란하다 이야기를 제가 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그러셨어요?”
“비단 성적 억압이 강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상은 욕망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사람을 음란하다, 변태라고 합니다.”
“어…… 그런 것도 같고.”
“그런데 사람으로 나서 안 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건 인간의 기초 욕구입니다.”
태영은 사실 군인들 사주 보면서 그렇게 표현하는 사람은 예의와 점잖음으로 커버가 안 될 정도로 욕망이 과해서 그렇다고 본다.
“와, 여자분한테 욕구래, 원래 말을 저렇게 하시는구나.”
PX병과 병사들이 몰려왔다. 중식이 끝난 모양이다.
확실히 사주로 이빨을 털면 시간이 빨리 흐른다.
부사수 박상준 상병과, 전무후무한 CCTV 앞 애무 사건을 일으킨 변태 중의 변태 남성근 일병이었다.
“어, 금태영 상병님, 여자 친구 있으셨습니까?”
“어, 아니, 현석이 전 여자 친구분. 그 전화 가끔 오던.”
“근데 왜, 금태영 상병님이 여기 계십니까?”
“현석이 종교행사 가서 없는데 오셔 가지고 기다리고 계신다고 인사과장님이 보냈다.”
“아, 또 사주 봐 줍니까.”
PX에는 저 둘과 PX병이 전부였다.
짬이라는 게 짬이고 종교 행사 받아 주는 교회 밥이 맛이나 메뉴가 우월한 편이며 대대장이 독실한 교인으로 종교 행사에서 포상을 뿌리기도 하므로.
부대엔 종교 행사 참여도가 높은 편이다.
관전하는 이들이 생겼지만 태영은 아랑곳 않고 사주를 풀었다.
“도화살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네, 들어 봤어요. 그 남자들한테 인기 있고.”
“도화살을 구성하는 기운은 말입니다.”
태영은 갑자기 일어서서 도수체조하듯이 손을 맨 위로 뻗었다가 좌로 뻗었다가 아래로 뻗었다가, 우로 뻗었다.
시계의 12, 3, 6, 9시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송세련은 그 모습을 보고는 빵 터졌다.
“풉, 푸하하하 왜 그러세요?”
“이게 정북방, 정남방, 정동방, 정서방. 아주 반듯한 시계 방향을 말합니다. 한치도 어긋나지 않는 반듯한 북쪽의 기운, 반듯한 남쪽이 기운, 반듯한 동쪽의 기운, 반듯한 서쪽의 기운을 말입니다.”
“그거 각인 거죠?”
“사주는 태어난 시일로 보는 것이고 그 시기의 12시간의 방향이 포함되는데, 이렇게 숙달된 조교의 시범에서 보시듯이, 12시, 3시, 6시, 9시의 기운을 포함하신 분은 반듯하고 진솔하다고 봅니다. 어설프게 남동, 남남서 이런 방향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옆에서 볶음 짬뽕 후루룩대던 박상준이 한마디 한다.
“와, 필살기 쓰셨다. 저거.”
병사들에게도 도화살 설명할 때 쓰던 방식이다.
“이런 기운을 가진 사람은 사람이 순수합니다. 내 욕망과 내가 하고픈 것을 드러내는 데 거침이 없습니다. 정방향의 동서남북으로 가는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속내를 감추는 게 없으니 사람들이 경계하지 않고 다가옵니다. 그래서 인기가 많습니다.”
“우와, 그렇구나.”
“몸이 시키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이니까. 그러니 현석이 차 버리신 겁니다.”
“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도 전해 들었습니다. 아주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송세련 씨는 거기서 잠깐 거짓말로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잠깐이라도 양다리를 걸쳤었다면, 지금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임현석과 송세련 연애담을 알고 있는 태영은 송세련이 무리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냥 임현석이 일병 때 나갔던 포상 휴가에서 그냥 바쁘다고 하면서 회피하고 연락만 조금 받아 줬으면.
지금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걸 대놓고 부모님도 제치고 달려간 임현석의 앞에서 끝내자고 단칼에 쳐 내고 새 남친 자랑한 게 문제였다.
오히려 깔끔하고 미련 없게 끊은 것이 좋다고 인식하는 이들이 많고 태영도 그리 생각하지만.
세련의 입장에서만 치면 실수였다.
그 새 남친이 면제라고 뻥 치고 만난 지 40일 만에 ‘나 입대해’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알고 계시는구나……. 그러면, 그 금태영 상병님도 제가 잘못했다고 보시는 거죠?”
‘그냥 뭐 고무신 기간이 리필된 거 말곤.’
태영은 멍청했다고는 봐도 잘못했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임현석이 그냥 매력이 넘쳤고, 송세련도 군대 갈 놈이 거짓말하고 빼앗아 만나야 할 정도로 매력이 넘쳤던 모양이다.
그런 선남선녀를 갈라놓은 사회의 체계가 문제고, 개인의 문제와 잘못은 임현석이가 따질 일이다.
그리고 어쨌건 9개월여 남은 남자 친구 다시 붙잡아 보겠다고 꼭두새벽부터 버스 타고 산 넘고 물 건너왔다.
태영은 그 각오와 노력과 후회의 감정을 굳이 조롱하고 싶지 않아, 그냥 좋은 말을 했다.
두어 시간 더 입 털어야 하기도 하고.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을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 좋다고 하는 것에 문제 될 게 있겠습니까?”
송세련은 눈물이 핑 고였다.
본인도 알고 있었다. 어떤 신세인지.
전화도 피하고 만남도 피하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를 턱이 있겠는가.
“아마 만나시면 가혹하게 차일 거라 생각합니다. 현석이와 새 여친분 궁합이 좋습니다.”
태영은 이어 저 둘 사주를 풀어 줄 각을 잡았다.
저걸로 한 시간에서 두 시간 더 입 털면, 종교 행사자 복귀한다.
“그래 보이시죠? 금태영 상병님이 봐도……? 제가 너무, 멍청하고 나쁜 년이죠? 제가 올 자격이 없는 건데. 이러면 안 되는 건데.”
태영이 냉엄하게 현실을 말해 주자, 고인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목소리는 떨리며 흐느끼기 시작한다.
“아닙니다. 잘 오셨습니다.”
“왜…… 요?”
“그렇게 한 번 송세련 님도 그 마음을 좌절당해 봐야 더 떳떳하게 그 친구 마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
송세련은 오열을 시작했고, 태영은 어색해했지만 안겨 오는 것을 피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종교 행사가 끝나도 임현석은 오지 않았다.
종교 행사엔 예배와 점심만 먹고 돌아오는 2시 복귀자와 독실한 장병들과 마을 처녀들의 교류를 이어 주는 청년부 예배에 참여하는 5시 복귀자가 있는데.
임현석은 군 생활 내 한 번도 청년 부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오늘 참여했다.
사실상 면회 거부였다.
그리고 태영은 면회 마감 시간 4시까지 세련 앞에서 사주 차력쇼를 감행했다.
* * *
“금태영 병장님, 면회 왔답니다. 빨리 환복하고 나오시랍니다.”
“엥, 뭐여, 나 면회 올 사람 없는데?”
부모님 딱 한 번, 사귀잔 말 못 하고 입대하며 끝낸 썸녀가 딱 한 번 이병 때 온 이후 태영은 누가 면회 온 적이 없었다.
전역 장병 세 명이 찾아와서 사주 봐 줬던 태영에게 사식 전달을 하기는 했으나 전역 장병들은 굳이 태영만 보러 온 것은 아니다.
“여자던데 말입니다.”
“여자?”
태영은 아는 여자들이 별로 없었다.
스스로 말하던 욕망이 과해 여자를 여자로 보는 인간상으로 여성을 대하는 게 어색한 편이었다.
그 어눌함이 가족이나 아주머니들 혹은 남의 여자 친구나 사주를 봐 줘야 하는 사람에게는 없는 걸 보면 확실했다.
썸녀도 게임에서 남자인 줄 알고 대했다가 친해진 케이스였다.
태영은 짐작 가는 사람도 없어서 후임 놈 장난이겠거니 생각하고 나갔다.
친구들이 몇몇은 전역해서 그놈들이 왔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아니었다.
송세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 아? 현석이 다시 보러 오셨습니까? 포기하신 줄 알았습니다?”
“아니오, 금 상병, 아, 병장이세요? 이제? 금 병장님 보러 왔어요.”
송세련은 한 달도 안 되어 다시 부대를 찾아왔는데 그사이 태영은 진급했다.
“예, 저를 말입니까?”
“복채 드려야죠. 사주를 열 분이나 봐 주셨는데요. 그 같이 나가는 거 어떻게 해요? 영내 면회 말고.”
“예에? 나, 나갑니까? 왜 나갑니까?”
“짬밥 맛없다고 하셨잖아요. 밥 같이 먹어요.”
세련이 편지로 예고를 하기는 했었다.
편지나 하는 행동에서 눈치를 좀 채서 태영은 더는 어색해하지 않고 송세련과 면회 외출을 나왔다.
복채로 영화 보여 주고 밥 사 준다니까.
어찌 됐건 부대에 있는 것보단 낫기도 했고.
4시간 사주로 썰 푼 건 여간 노동이 아니었다. 받을 만한 가치다.
“뭐 개봉했는지 잘 모릅니다.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몇 개 보긴 봤습니다만.”
“관심 없으신가 봐. 이거 어때요?”
송세련은 관객석이 채워졌다는 표시인 X표가 거의 없는 좌석 많은 영화를 가리켰다.
태영은 재미없다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공짜 영화니까 별말 안 하고 따라갔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관객이 듬성듬성 있었고, 자리는 스크린을 앞에 둔 기준으로 우측 맨 윗자리로 뒤에 사람이 없었고 입출구도 아니었다.
어색하게 앉아서 영화 감상에 들어갔는데 팔걸이에 올린 팔 위의 손등을 뭔가가 감싼다.
태영은 눈치가 아예 꽝인 건 아니어서 그냥 내버려 두고 있었다.
별거 아닌 척 반응하자 그 손이 슬쩍 치워진다.
태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손등에 땀이 나고 있었다. 긴장해서.
그런데…….
아니, 허벅지에 왜 손이 올라옵니까.
잘못 건드린 거 아닌가 싶어 쳐다봤는데 세련은 이미 영화는 안 보고 태영 쪽을 보고 있었다.
입김이 볼에 자꾸 닿아서 쳐다보니 이미 몸은 가득 기울인 채였다.
놀라서 그냥 스크린을 바라보는데, 허벅다리에 두던 세련의 손이 거기에만 있지 않았다.
이어 세련이 허벅다리를 간지럽히던 손가락은 그곳에만 있지 않고 고간의 단추를 파고들어 오고 있었다.
‘아, 이게 그, 욕정에 솔직한 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