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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역술인이 되었다-207화 (207/211)
  • #207. 외전 3화 ― 경찰이 찾는 상병.

    태영은 군에서 천여 명의 남자 사주를 보며 느낀 점이 있었다.

    ‘말 안 듣지.’

    특히 여자 문제는 절대로 말을 안 듣는다.

    ‘나 같아도 안 듣긴 하겠다. 욕정이란 게 우습게 볼 게 아니지. 것도 군대라 더.’

    물론 태영은 이해한다.

    건규는 상근이라 좀 더 자유로운 편이었지만.

    군대를 넘어 성기발랄한 20대 초반 남자들 거의 전체가 그랬다.

    “그래서 누구랑 헤어집니까.”

    건규는 앵무새처럼 계속 물었다.

    “미친놈아 생일을 말했냐? 얼굴 사진에 고양이 수염이 없길 하냐. 둘 다 멀리하라고 몇 번을 말했냐?”

    “생일을 왜 말해야 합니까?”

    “사주 보는 데 필수니까 말하라고 하지. 너 아까 생일 말 했냐?”

    “아, 맞다.”

    “야, 넌 진짜 현역 후임이었으면 주먹 올라갔겠다.”

    “둘 다는 좀 그렇슴다. 어디 가서 이만한 여자들 만납니까.”

    “너 득남할 운이다.”

    “예?”

    “큰 행운이라는 게, 자식 얻을 운이야. 근데 감당이 안 돼.”

    “정말입니까?”

    “근데 자식운이라는 게 여자도 들어야, 임신을 하니까. 네 그 여친들 사주를 가져오란 얘기다. 근데 안 가져오니까. 그냥 둘 다 만나지 말라고 하는 거.”

    유건규는 득남할 운으로 가족이 느는 큰 경사가 있었다.

    명백한 좋은 운이다.

    그런데 사주가 아니라 그냥 인생만 봐도 지금 자식 얻어 좋을 일이란.

    하나도 없었다.

    “자식운이 누군가에겐 좋은 운이지만, 거지한텐 그렇지 않아. 너 뭐, 기껏해야 저녁 알바, 주말 알바고. 일병 월급 9~10만 원 받잖냐. 고로 정 만나야겠다면 피임이라도 똑바로 해라.”

    군인은 당시 월급이 한 달 십몇만 원 나오는 박봉이다.

    유건규의 사주를 보아하니 가정이 반듯하지 않았다.

    자식이 있다 한들 조부모가 책임져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거기에 여자가 둘이나 있는데 정리를 못 하는 우유부단함을 봤을 때.

    태영은 자식운이 오면 필히 이 친구가 대단히 불행할 것이라고 봤다.

    ‘특히 임부가 된 쪽을 억지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외려 다른 쪽에 마음이 갈 천하의 개쌍놈.’

    나이스 보트라고 알고 있나?

    물론 태영은 유건규가 그런 놈이므로 불행해지든 말든 상관없고.

    저출산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이 돼도 상관없었다만.

    그래도 편히 살길을 일러 주는 게 직업윤리(?)라고 각인되어 있었다.

    철없던 유건규는 그제야 현실 좀 와닿았는지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럼 여친들이 자식운이 없으면 괜찮지 말입니다?”

    “그냥 다산을 할 사주면 운이랑 관계없이 생기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콘돔 쓰면 되는 거지 말입니다.”

    “야, 내가 성교육까지 시켜 줘야 하냐? 안 배웠어? 대한민국 성교육 클라스 하고는.”

    “그게, 쓰는 걸 안 좋아합니다.”

    태영은 답이 없는 놈이라는 것을 느끼고 그냥 비꼬았다.

    “그럼 저출산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바람직한 국민이 되십시오. 유건규 씨.”

    “아니 그게, 걔네들이 안 좋아합니다.”

    “근데 네가 쓴다고 하면 헤어지겠다고 할 거 같냐? 안 쓰는 딴 놈 만난데?”

    “그건 아닐 거 같습니다.”

    “뒤진다. 진짜.”

    태영은 진짜 쥐어박기라도 하려다 말았다.

    그것도 어쨌든 구타로 걸고 넘어지면 곤란하니까.

    * * *

    태영은 유건규의 사주가 계속 찝찝했다.

    “크게 사고 칠 거 같은데……. 어디서 뭐 큰돈 벌 수 있다는 범죄에 가담한다거나. 여자 한쪽이 극단적 선택을 한다거나.”

    대대상근은 재수생이거나, 교대생, 저학력자가 많았다.

    저학력자 중에는 조폭 출신이거나.

    입대가 불가능하지는 않은 전과자들, 소년 범죄자들이 몇 있었다.

    실제로 태영의 복무 중에도 오토바이를 절도했다가 군인 신분이라 피해자가 봐준 사건이 있었다.

    태영은 간부들 운세로 봤을 때, 부대에 뭔가 일이 터질 것이라 여기고 있었으므로.

    상근예비역을 관리하는 본부중대장에게 건규에 대해 보고하러 갔다.

    ‘야, 금태영, 애들이 너한테 고민 많이 상담한다며.’

    ‘사주 보다 보니 그랬습니다.’

    ‘너 잘 맞히긴 하더라.’

    ‘감사합니다.’

    ‘진짜 해결 안 되는 심각한 고민 같은 거 있으면 나한테도 보고해라. 지휘관으로서 고충을 청취하고 관리해야 한다.’

    본부중대장은 태영이 병사들 사이에서 명망이 있고.

    온갖 고민을 다 알고 있는 것을 듣고는 저리 말한 적 있었다.

    “간부는 믿는 게 아니긴 한데, 그 양반 의욕은 있으니까.”

    본부중대장은 태영의 사주를 매우 재미있게 본 사람이었다.

    믿기도 잘 믿었고.

    그런데 오늘따라 표정이 썩어 있었다.

    상근인 유건규가 사주로 조짐이 안 좋다고 보고하니 더 썩었다.

    “금태영.”

    “상병 금태영.”

    “너, 너무 깝치는 거 같지 않냐?”

    “잘 못 들었습니다.”

    “네가 뭐 인사과장이냐?”

    “아닙니다.”

    “너 어디 작전과 세절기나 주임원사실에 있는 비문 보고 애들 맞추는 거지? 그치?”

    태영은 사주로 맞출 수 있는데 굳이 군에서 파악한 신상 명세로 사기 치고 싶지 않았다.

    “본 적 없습니다.”

    “너도 존나 A급 관심병사거든. 아냐?”

    “모릅니다.”

    “사주 재미로 보는 거지, 야. 무슨 사주로 사람이 다친다, 사고가 난다, 그런 말 하는 거냐? 건규 걔는 국방부에서 심층 면접이랑. 생기부 다 보고 건강한 자원으로 판별된 애거든? 오히려 네가 상병 전에는 사고 칠 가능성도 높고 업무 스트레스도 훨씬 높게 측정됐었어. 알고 있냐?”

    ‘그따위 징병검사에서 무슨…….’

    태영은 본부중대장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그럼 상근 현역이 바뀌어야지 말입니다.”

    “집에서 다녀도 이탈이 없을 거 같으니까. 집에 두는 거지. 너 괜히 예전에 군수지원관이 붙어서 케어했던 거 아니다. 이상하니까 그런 거야. 왜 자꾸 그런 이상한 짓 하는 거야?”

    거기다 원래대로라면 병사가 알아서는 안 되는 인사과 비문 내용까지 언급하고 있었다.

    태영은 그나마 젊은 초임 장교라 좀 의욕 있다고 봤던 본부중대장 평가를 수정했다.

    ‘다를 바 없는 간부 새끼였네.’

    “아무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애들한테 라면 뜯으면서 그놈의 사주 보지 마. 한 번만 더 사주 가지고 허튼소리 하면 가만 안 있는다.”

    본부중대장은 상근예비역을 관리할 입장에 있음에도 태영의 제언을 묵살했다.

    기분은 나빴지만 간부 X 같은 거 하루 이틀은 아니고, 그거 X 같다고 염병하면 본인만 손해였다.

    “거, 간부가 신경 안 쓰면 누가 신경이나 써 줄라나.”

    그래도 부대 내 병사인 유건규 걱정이 들었다.

    건규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머지 병사들이 연대책임으로 귀찮아질까 봐.

    태영은 그래도 혹시 몰라, 처부장인 작전과장한테도 말을 했다.

    “그거는 본부중대장한테 말해야 되는 거 아니냐?”

    “벌써 말하고 왔습니다. 그런 거 말하지 말랍니다. 사주가 무슨 근거가 되냐고.”

    “내가 본부중대장한테 그걸 말하면 짬질하는 거 같잖냐. 본부 좀 혼내는 거야 일도 아니다마는. 네가 그 말을 했으면 갸가 니를 못살게 굴지 않긋나.”

    “괜찮습니다.”

    “그러면 뭐, 인사과장하고 주임원사님한테 말해는 둘게.”

    작전과장은 그래도 태영의 제언을 듣기는 들었다.

    하지만 그다지 실효적인 조치가 내려지진 않았다.

    [충성 일병 유건규입니다. 집에 대기 중입니다.]

    “나야.”

    태영은 상황병 근무를 서면서 저녁 시간마다 상근들이 집에 있음을 회신해야 하는.

    소위 ‘사랑의 전화’ 시간만 오면 일단 유건규한테 전화 걸었다.

    [아, 또 금태영 상병님이십니까. 왜 저한테만 맨날 전화하십니까.]

    건규는 볼멘소리를 했다.

    다른 상황병들일 때는 전화 점호를 잘 안 받는다.

    건규는 여친 둘이 있는 것 말고는 관심받을 짓을 안 하기 때문이다.

    유독 금태영이 근무 설 때만 전화가 온다.

    “응, 관심병사라서, 별일 없지?”

    [근데 정말 전 여친 사주 들고 가도 됩니까?]

    “왜? 쫄리냐?”

    [안 그럽니다. 예쁜 여친도 있는데 왜 쫄립니까.]

    “암튼 한 명이라도 정리한 건 잘했다. 나머지도 그냥 잠깐 뭐 공부한다고 핑계라도 대고 내년까지만 참어. 군대 끝나면 그럭저럭 괜찮아.”

    건규는 태영이 갈구자 어찌 됐건 한 명은 정리한 듯했다.

    [아, 안 됩니다. 금태영 상병님은 사랑을 몰라서 하는 무심한 소립니다. 어떻게 그럼까.]

    “너 요새 자꾸 연애알못으로 날 몰아간다?”

    [에베베, 모르는 거 맞지 않습니까?]

    건규 놈은 기어오르는 게 자연스러웠다.

    아무래도 현역과 상근은 선후임 관계가 엄격하진 않았다.

    “그럼 전 여친 소개 좀?”

    [와, 금태영 상병님 글케 안 봤는데 실망입니다. 여자들 모솔 남자 최강 싫어합니다.]

    “그려 됐다. 쉬어라. 내일 보지 말자.”

    [졸라 맛있는 거 사 드릴라 그랬는데, 알겠슴다. 충성.]

    그나마 태영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케어가 이 정도였다.

    간부가 안 하는 걸 뭐라 할 도리도 없고.

    법적이자 공식적인 근거인 수양록, 생기부, 병역판정, 사랑이 필요한 용사 관리 등이 있는데.

    사주를 들먹이며 건규가 이상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건 내가 봐도 불합리하네. 사주가 안 맞아야 되는데.”

    태영은 사랑의 전화를 끊은 뒤 되뇌였다.

    * * *

    태영은 또 전화 점호 상대를 건규로 잡아 전화했다.

    “너 전화 한 번에 안 받는다. 부대 전화 생까냐.”

    [아, 금태영 상병님이십니까. 저 낼부터 일병 정기휴가에 포상 붙여서 15박 쉽니다.]

    “아, 그래서 전화하지 말라고?”

    본디 상근 병사는 휴가 때 더 전화해야 했다.

    [아닙니다. 근데 금태영 상병님 전화 왔으면 했습니다.]

    “왜?”

    매번 진절머리 내던 건규의 목소리나 태도가 좀 이상했다.

    [그 생활관 찾아갈 때마다 주무시거나 안 계셔서 차마 못 물어본 게 있어서 말입니다.]

    “요새 집중 정신교육 짜느라 야근 존나 하니까. 오늘도 야근이다. 뭐, 부대 전화니까. 길게는 말 못 하고.”

    [그렇슴까? 그 전 여친 사주 좀 여쭙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야, 네가 안 알려 줬잖아. 내가 꼬시면 안 된다고.”

    [그러게 진작 할 걸 말입니다.]

    “상황병, 전화 점호 하랬지. 누가 부대 전화로 상근이랑 노가리 까래, 집에 있는 거 확인됐으면 끊어. 긴급한 전화 걸려 오면 어쩌려고 그래?”

    태영은 건규의 목소리가 별로라 좀 더 물으려 했으나.

    당직사령의 제지로 전화를 계속할 수는 없었다.

    “아 죄송합니다. 야, 건규야.”

    [일병 유건규.]

    “잘 쉬고 와라. 그리고 야, 사주 그거 맞는 거 아니다. 뒈지지 마라. 뒈질 사주 아냐.”

    거짓말이었다. 자식운인 관운이 들어오면 사주의 ‘나’인 일간(日干), 자아운이 못 버티고 쓰러지는 사주였다.

    자아의 상실은 생체 활동을 크게 저해하는데, 이는 죽음을 암시한다.

    [감사함다.]

    태영은 목소리가 좀 걱정되긴 했으나.

    현역과 상근인 이상 뭘 직접적으로 케어하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현역 이병이 상태가 이상하면 태영이 졸졸 따라다니면서라도 막겠는데.

    보고한다고 먹힐 일도 아니고.

    뭘 직접 고충을 토로한 것도 아니었다.

    * * *

    “상준이 왜 아침부터 이병들 갈구냐.”

    “아, 또 우리 생활관 걸레들 다 없어지고, 쓰레빠도 몇 개 없어졌슴다.”

    태영은 작전과 야근하고 돌아와 오침을 허락받았는데.

    청소 직전 후임인 박상준 일병이 이병들을 갈구는 걸 보고 시끄러워 한마디 했다.

    “그거 뭐, 훔쳐 갔나 보네. 훔친 놈들이 잘못이지. 털린 애들이 잘못은 아니잖냐. 적당히 갈궈라.”

    “아, 저도 혼납니다.”

    “음, 그 옆 중대에 이형재인가 일병인데 상준이 너보다 후임일 거야. 걔 한 번 추궁해 봐.”

    “걥니까.”

    “어, 그냥 가서 물어봐. 좀 다그치면 술술 불 거야.”

    태영이 다 아는 듯이 말하자, 상준은 신기한 듯 말했다.

    “금태영 상병님, 설마 사주로 범인도 알아내십니까?”

    “도벽 같은 건 사주에 적혀 있어. 전역한 놈들 중에 그걸로 전출 온 놈 맞춘 적은 있다. 근데…….”

    “와, 어디까지 맞추는 겁니까. 알겠습니다. 물어보겠습니다. 뒤졌다.”

    상준은 이병들을 데리고 우르르 뛰쳐나갔다.

    “어…….”

    태영은 설명하려다 그만두었다.

    사주로 맞춘 게 아니라 그냥 야근 후 오침하다 걔가 수상한 짓을 하는 걸 봤다.

    그런데 캐릭터가 군대 점술병이다 보니 이런 걸로 오해를 산다.

    근무 취침하러 다시 누운 태영을 누군가가 깨웠다.

    작전과 후임이었다.

    잠자긴 영 틀린 모양이었다.

    “금태영 상병님, 작전과로 빨리 좀 오시랍니다.”

    “아……. 또 뭔데?”

    “아닙니다. 유건규 일병 있잖습니까. 그 대대상근.”

    태영은 그 이름을 듣자마자 철렁했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후임이 말하기도 전에 대답했다.

    “죽었지?”

    “아, 진짜 금태영 상병님, 넘 무섭습니다. 어떻게 압니까, 그런 걸.”

    아니길 바랐던 불길한 예언은 언제나 잘 들어맞았다.

    “부대 난리 나겠네. 알았어, 갈게.”

    “알겠습니다. 빨리 오십쇼. 작전과장님이 급히 찾으십니다.”

    태영은 전투복 챙겨 입고 처부로 갔다.

    “본부 니는 뭐 하는 새끼야! 상근이 죽어서 헌병대로 안 간게 다행인 거 같나? 제정신이가?”

    작전과 및 지휘통제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작전과장의 고성이 들렸다.

    지휘관인 본부중대장이 깨지는 소리였다.

    태영이 들어가자 작전과장이 소리쳤다.

    “작전과장님.”

    “금태영이, 니 지금 당장 출타서 작성하고 경찰서 가 봐라.”

    “제가 말입니까?”

    “건규 죽었단 이야기는 들었나. 니 알았다메.”

    “들었습니다.”

    “형사가 금태영 상병, 꼭 데리고 오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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