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외전 2화 ― 간부를 보내버리는 일병.
전출이란 말을 듣고 군수지원관은 짜장면을 후루룩 넘긴 뒤 답했다.
“전출을 가라고? 야, 아직 1년 남았다.”
“신청이라도 하셔서 나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래? 근데 왜? 환경 바뀌면 장기 붙냐?”
“환경이라기보다는 연대 주임원사 따님 만나보는 게 더 잘 될 거 같습니다만.”
“내가 정말 공부는 안 되는 빡대갈이냐. 자꾸 그러니까 하고 싶네.”
“예부터 유력가의 사위가 되는 건 입신양명의 지름길이었습니다.”
“주임원사가 유력가야?”
“힘은 써 주실 수 있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전전여친이면 익숙하잖습니까?”
군수지원관의 전전여친은 자그마치 연대 주임원사 딸이었다.
태영이 직장에서 연 닿아서 만난 여자랑 잘 된다고 결혼운을 봐 줬드니.
군수지원관이 술술 불어서 태영이 반 약점으로 잡았다.
지금도 태영이 생각도 없는 군수지원관에게 다시 만나라고 종용하는 중이다.
태영은 고작 일병이 간부를 놀려도 될 정도로 쥔 정보가 많았다.
“군수지원관님, 그러면 뭐 하나 더 여쭙겠습니다.”
“뭔데? 다른 사람 사주?”
“우리 대대는 그 뭐라고 하나. 이게 되게 실례되는 질문 같은데.”
“말해 봐.”
“그 한직이라고 하나, 진급하고 좀 먼 분들이 자주 옵니까?”
“어? 음. 그건 왜 묻는 거냐?”
“제가 간부분들 사주를 여러분 봤는데. 우리 부대 간부분들이 그렇게 역량이 딸린다거나 학교가 별로가 아니십니다.”
“육사도 있지, 그런데?”
“근데 진급 관련한 운들이 죄다 올해 내년 안 좋습니다.”
“음, 일단 대대장님 진포 중이긴 한데, 작전과장 올해 소령 진 달았잖냐.”
“딱 작전과장님만 운이 괜찮으십니다.”
“그래서 작전과에서도 너 데려간다 그런 거냐? 작전과장 그 양반이 너 되게 좋아하더라.”
태영은 어찌 됐건 계급상 윗사람들의 사주를 보면서 스킬이 늘었다.
심기 안 상하게 사주 보는 법.
그런데 유독 운이 좋은 사람이 있었으니 작전과장이었다.
운이 좋으니까, 좋다고 그냥 심기 상할 필요 없이 좋게만 말했더니.
작전과장은 대단히 좋아하고 심지어 그 예언대로 소령이 되었다.
그 덕에 작전과에서도 데려가려 나름 침 발라 놓은 상태였다.
“그 나랏밥 오래 먹을 운세인데 급이 높진 않은바, 예비군 중대장은 되신다고 한 게 그렇게 좋았던 겁니까. 좋은 말은 아닌데.”
“그 양반 학사잖냐. 학사로 예비군 중대장이 어디냐. 중령도 생각 못 하고 있었을걸. 중령 정년이 53세니까.”
“60 몇 세까지 운은 있는데 별 달 운세는 아니었슴다.”
“그래서 뭐? 왜 가라는 건데.”
“작전과장님 뺀 나머지 간부분들 사주 보고 생각해 본 건데, 운이, 것도 진급 승진 운이 이렇게 한 번에 같은 시기에 안 좋은 사람들만 모일 수가 있나. 싶었습니다.”
“다들 운이 안 좋다?”
“그렇슴다. 딱 이 시기에 안 좋은 사람들만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고로 아마 우리 부대에 우환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환?”
“간부분들에게 영향을 끼칠 사고가 터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고로 저 같은 병사들은 상관없는데. 장기 원하시는 지원관님은 전출을 미리 신청하시는 게 좋지 않나 싶습니다. 사고 크게 나면 진급들이 힘들어진다 들었슴다.”
군수지원관은 단무지 씹던 입놀림마저 그쳤다.
“정말이냐? 충원이는 네 말 듣고 카페 한다더라.”
“아, 이충원 병장은 원래도 그거 할 생각이었슴다. 그냥 그거 해서 나쁘진 않겠다고 했을 뿐입니다.”
“그으래? 흠. 어차피 근데 나 공부하던가, 원사나 준위 딸이랑 결혼해야 한다면서.”
“그래도 사고부대 관리 책임이 꼬리표마냥 붙어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금태영이.”
“일병 금태영.”
“요리시켜라.”
“잘 못 들었습니다?”
“여기 고추잡채 하나. 깐풍기 하나.”
“갑자기 왜 그러심까. 중사 월급에.”
“네 말 한번 들어 봐야겠다.”
“진짜로 전출 가시려고 말입니까?”
태영은 말은 꺼냈지만 놀랐다.
병사들은 몰라도 간부들은 태영의 말을 재밌게 여기거나 신뢰하긴 하지만.
조언을 잘 따르진 않았다.
태영도 사실 자기 조언에 확신을 할 수 없었으므로 그것이 듣는 이들에게 전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 안 그래도 연대 교육관하고 작전지원관이 의병제대 한다고 자리 난다더라.”
“교육이랑 작전이면 둘 다 작전과 아닙니까. 어쩌다가 부사관 두 분이 같이.”
“무릎이 하필 둘 다 십자인대가 나갔다드라. 뭐, 들다가 찍혔다던데.”
“무슨 사주길래 그럽니까. 신기하네.”
한날한시에 십자인대가 같이 나간 사주는 범상치가 않았다.
“우리 대대 좋은데, 아쉽구먼. 그래도 라면값은 갚았다.”
“배부른데 말입니다.”
“못 먹냐?”
“아닙니다! 다 먹을 수 있습니다.”
정말 철도 씹어먹을 나이였다.
* * *
“금태영 상병님?”
여름날 점심 식사 후 오침 시간.
생활관에 디비 누워 있던 태영에게 병사 하나가 찾아왔다.
“어, 너 상근이지? 왜? 뭔 일 있냐?”
“그 금태영 상병님, 점 되게 잘 보신다고 들었는데 뭣 좀 여쭤봐도 되겠슴까.”
이제는 부대에 출퇴근하는 상근 예비역들까지 태영을 찾아온다.
“돈 받는다…….”
태영은 짬 좀 먹고는 질려서 거절 멘트를 했다.
태영은 일이등병 시절만 해도 무려 1,000명의 사주를 수집했다.
간부들이나 선임들 사주는 볼 사람은 다 봤다.
이제 어쩌다 한두 번 휴가 나가서 여자 만나고 오거나.
부모님 사주 봐 달라고 어쩌다 한 번씩 묻지.
위병조장이 위병소 안에서 부사수인 태영을 사주 풀이시키고 자기가 대신 수하 하면서까지 사주를 묻지는 않았다.
태영이 상병이 되자, 이제는 신병이나 일 이병들이 소문 듣고 눈치 보면서 쭈뼛대고 사주 봐달라고 하므로 태영이 귀찮을 때는 거부권이 있었다.
“드림다.”
“콜.”
물론 현금 준다면 굳이 노는데 말리진 않았다.
“얼마나 드림까.”
“뭐, 담뱃값 정도…….”
그렇다고 너무 많은 돈을 달라고 하기엔 후임들이라.
오히려 요구하기가 뭐했다.
돈, 라면 등을 재화를 받는 후임은 군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라 상관없었지만.
돈 뜯는 선임은 말만 들으면 문제가 있는 선임이다.
태영은 대충 담뱃값 정도 되는 취식물을 받을 생각이었다.
진짜 현금 받으면 정 없어 보인다.
“담배로 드림 안 됩니까.”
“안 피워 인마. 이따 라보떼나 하나 사와.”
“헤헤, 알겠슴다.”
“아, 아니다, 너 상근이니까. 내일 싸제로 빵 같은 거 좀 사 가지고 와. 도넛이나 고로케 같은 거. 되냐?”
“계란, 당면 꽉 찬 걸로 사다 드림다. 동네에 전문점 있습니다.”
군대는 치킨이나 피자 같은 건 그래도 간혹 먹는데 빵 같은 걸 먹기가 의외로 힘들었다.
“그래 생년월일시 말해봐.”
유건규란 이름의 상근예비역 일병은 자신의 생년월일시를 말했다.
태영은 대뜸 욕을 했다.
“……이거 미친 새끼네.”
“왜 그러심까.”
“너 여자 둘 만나지?”
“헉. 어, 어케 아셨슴까?”
솔직히 이건 상근 중에 그렇게 만나는 미친놈 있다는 소문 들었다.
그런데 사주도 양옆으로 여자를 뜻하는 재운이 기둥을 세우고 있었다.
여자 둘이 가두는 형상, 혹은 재물에 목이 졸리는 형상.
태영은 그놈이 이놈이구나 싶어, 이때다 하고 갈궜다.
“야……. 너 좆된다. 빨리 정리해라. 진심이다. 너 뭐 사주보니까. 잘사는 집도 아니구먼.”
“맞슴다. 근데 누구 정리해야 됩니까?”
“누구는 염병. 사진이라도 갖고 오고 말해. 근데……. 둘 다 정리하는 게 낫다.”
“어, 왜 그럼까?”
“둘을 건사할 경제적 능력이 없어 넌. 개념도 존나 없고. 책임감도 없어. 사주가 그냥 얼굴에 비해 여자 후리는 기술만 있어. 어디 뭐, 썸녀는 더 있을 거 아니냐.”
“와, 진짜 용하심다. 보셨슴까.”
태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뭘 봐 인마. 너는 근데 여자를 조심해야 돼. 그 뭐라 하냐. 어, 한마디로 저질러 놓고 감당을 못한다. 근본이 없어서.”
“저도 그 한 명은 정리하려고 그럽니다. 근데 누굴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슴다.”
태영은 상근 일병, 유건규가 너무 한심해 욕하고 싶었다.
“본인 마음도 모르고 그걸 왜 사주에다 물어보냐. 그걸 선택도 못 해?”
“진짜 어렵슴다.”
태영은 아예 사주에 선택을 위임하는 태도를 몹시 좋지 않게 보았다.
물론 그렇게 해야 돈도 많이 받고 사람도 조종할 수 있어 좋다고는 하는데.
군대가 돈 받을 환경은 아니다.
“그럼 그냥 더 예쁜 애 만나면 되는 거 아니냐?”
“둘 다 예쁩니다.”
그 말에 생활관에서 쉬던 다른 현역 병사들의 한숨이 이어졌다.
말년 하나가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로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태영아, 그 새끼 죽여라.”
모태솔로 아니면 죄다 헤어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집에서 출퇴근하는 상근이 저딴 소리를 하고 있으니.
열불이 날 수밖에.
“상근인데 터치해도 됩니까?”
“상근 분대장 성민이 형인데 그 형은 진짜 팰걸? 상근은 때린대. 성민이 형한테 가서 말해. 존나 개념 없다고.”
“와, 상근이 때립니까? 첨 알았네.”
부대 현역병들에게는 갈굼은 있어도 구타는 없었다.
태영도 손찌검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태영은 악마인 군수지원관을 세 치 혀로 연대로 보내 버린 공로가 커서 사주 처음 볼 때 말곤 갈굼도 별로 당한 적 없었다.
군수지원관 잘되라고 한 일인데 병사들은 왠지 그리 알고 있었다.
맞은 적 없었던 태영은 상근예비역에 부조리가 있단 말에 놀랐다.
“야, 진짜냐?”
아무래도 현역에 비해 출퇴근이라 은폐가 어렵지 않나?
뉴스 간혹 나오는 직장 갑질 보면 그런 것도 아닌 거 같긴 하지만.
“죄송함다.”
“음, 윤성민 상병이면 그럴 수도.”
태영은 몇 달 선임인 상근 분대장 윤성민의 사주도 본 적 있었다.
육사 출신의 그는 퇴교 후, 일반병으로 늦은 나이에 입대.
대위들이 동기였다.
스펙이나 나이나 위상도 높고 군 생활도 잘했다.
태영은 그의 사주를 한 번 보고 원인을 미루어 짐작해 윤성민에게도 놀랍다는 평을 들었다.
‘퇴교는 자진 퇴교는 아닐 것 같습니다. 사고인데, 그 군 생활하는 동기들에게 욕은 안 먹을 사고. 뭐, 2학년 때 1학년을 때리셨다거나 하는 게 들통난 거 아닙니까?’
태영이 이리 말하자 윤성민은 자신의 퇴교 사유를 밝혔다.
고문관인 동기를 구타했다고 한다.
윤성민은 전체주의적 사고관을 가진 사람이라.
모나면 가만두지 않았다.
태영은 그런 윤성민의 사주가 떠올라.
건규가 진짜 맞을까 봐 그러진 않기로 했다.
유건규를 생활관에서 데리고 나왔다.
“금태영 저거 이젠 상근한테도 사기친다.”
“응, 닥쳐, 유부녀 킬러.”
생활관을 나오자 족구장 옆 벤치에서 족구 중인 전투 중대 동기와 후임들이 태영을 보고 환호해 줬다.
모르는 이가 없는 병사라서 인기가 있다.
태영은 사기꾼이라 놀리는 동기에게 역공해 줬다.
“김민세 상병 왜 유부녀 킬럽니까.”
“어, 입대 전 유부녀 만났거든. 지금도 만나고.”
“와, 완전 쓰레깁니다.”
“네가 할 소리냐?”
“전 임자 있는 여자는 안 만납니다.”
“눈치나 좀 챙겨라. 다 애인이고 뭐고 없든가 고무신 거꾸로 신든가 했는데, 넌 뭐 여자 친구가 둘이 있는데 둘 다 예쁘다고 하면 욕 안 처먹겠냐.”
“죄송함다.”
“내가 볼 땐 너랑 만나는 여자애들 외모는 몰라도 정신 건강이 그리 건강하진 않을 것 같은데 걔네 사주를 줘 보든가. 사주 모르면 관상이라도 대충 볼 테니 사진을 보여 주든가.”
“아, 한 명 포기하면 소개해 달라고 하실까 봐.”
‘이거 진짜 제정신이 아닌 놈이네.’
태영은 진짜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내무 부조리라 참았다.
맞은 적도 없는데 때리는 건 의롭지 않았다.
“그런 놈들이 꽤 있었나 보다?”
“존나 예쁩니다, 진짜.”
“사진 인마.”
“아 좀 더 조용한 곳으로 가면 안 되겠슴까?”
태영은 눈치껏 이유를 짐작했다.
“상근은 그냥도 휴대폰 쓸 수 있지 않냐.”
“아, 그래도 부대에선 못 씁니다. 중대장실에 냅니다.”
“너, 갖고 있구먼?”
“오늘 깜빡 잊고 안 갖고 왔다고 했슴다.”
“팔자 좋다.”
얼마 전 현역은 병장들이 휴대폰 몰래 감추고 쓰다 만창들을 갔다 왔다.
“얘가 고등학교 때부터 만난 애고, 얘는 새로 만난 앱니다.”
유건규는 스마트폰에 담긴 여자 친구들 사진을 공개했다.
뭔가 칠하고 보정이 많아 관상을 보긴 어려웠으나.
미인들임에는 틀림없었다.
“예쁘지 않습니까?”
“이 친구들 생일은 아냐?”
“생일은 아는데 좀 그렇슴다.”
“왜?”
“생일이 둘 다 번호 뒷자리임다. 그걸로 연락처 알아내심 안 됩니다.”
“야, 꺼져. 개념 진짜 밥 말아 처먹었네. 상근은 선후임 없냐? 현역 이병이 상근 일병보다 먹은 짬밥이 더 많아도 선임 대접하는구먼. 뭐 하는 거냐? 예의란 게 없네. 이건 성민이 형한테 말할란다.”
출퇴근 병사는 중식만 짬 먹지만 현역병은 조식, 석식 다 먹으므로 짬이 더 많다는 건 틀린 말은 아니다.
“아, 죄송함다, 죄송함다. 그런 말 안 하겠슴다.”
유건규는 싹싹 빌었다.
태영이 무서운 것보다 아마 상근 분대장 윤성민이 두려운 모양이다.
그래도 싹싹 빌자 태영은 누그러뜨렸다.
“아무래도 둘 다 정리하는 게 낫겠는데.”
“아, 왜 자꾸 그러심까.”
“들어 봐, 넌 연애는 잘하나 여자를 책임질 수 있는 사주가 아니야. 한 명도 버겁다. 근데 여자가 둘이나 들어왔어. 이건 굉장히 큰 행운이지.”
태영은 흥부가 마누라가 둘인 격이라 말하려다 말았다.
고전에 빗대어도 뭔 소린지 이해할 지적 능력이 없는 놈이었다.
“뭐, 만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거울 좀 보고 오지?”
“농담임다. 저도 둘이 저 좋다고 할 줄은 진짜 몰랐슴다.”
“근데 넌 사주가 운을 감당할 수가 없어. 그릇이 작거든. 그러다 보니 큰 행운이 불행으로 닥쳐. 올해 특히 큰 행운이 굉장히 위험하다.”
“어, 그렇슴까……?”
“그러니 여자 좀 잠깐이라도 멀리해라, 진짜 인연이면 얘네들이 내년에도 다시 붙어서 귀찮게 굴 거야.”
태영은 유건규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럼에도 태영은 건규가 말을 듣지 않을 것임은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