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205화 (외전) (205/211)
  • #205. 외전 1화 ― 라면 쌓아두는 이병.

    “오늘은 당직사령이 직접 관물대 검사 실시한다.”

    군대 점호시간, 당직사령의 불시 관물대 검사가 있었다.

    “요새는 스마트폰이라 사진도 찍히고 그래서 더 보안이 심각하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휴대폰 가져오는 것들은 뭐야. 나라의 명령이, 군대의 보안이 우습게 보여? 통신 보안이란 말이 괜히 있어?”

    당직 사령의 이번 불시 관물대 검사는 병사들이 암암리에 쓰는 휴대폰 때문이다.

    그런데, 웬 이병의 관물대가…….

    당직사령이 열자마자 펑! 하고 봉지라면, 컵라면, 초코 과자 등이 쏟아져 내렸다.

    당직사령 군수지원관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과자와 라면이 많아도 너무 많다.

    “너는 생활관에서 PX를 여나?”

    “아닙니다!”

    “상병장들 일어서.”

    쿠당탕.

    “왜 이병 관물대를 라면 창고로 쓰나. 이병은 쓰는 물건이 없어?”

    당직사령 군수지원관은 이게 이병의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결식하는 상병장도 아니고 아무리 군대가 좋아졌기로 서니.

    이병이 라면 수십 봉을 관물대에 쌓아 두는 게 말이 되는가.

    “관물대 검사 누가 말했어? 당직 부사관 당장 튀어오라 그래.”

    군수지원관은 불시 관물대 검사 정보가 샜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는 내무 부조리로 이 사태를 파악했다.

    책임이 상대적으로 덜할 이병에게 생활관에 두면 안 될 물건을 대신 보관하게 한 것 아닌가.

    그러자 분대장인 상병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 지원관님.”

    “뭐.”

    “저희가 줬습니다.”

    “너희들이 언제부터 이등병한테 그리 잘해 줬나?”

    “그게……. 저거 다 복챕니다.”

    “보옥채에?”

    처음에 태영은 딱히 대가를 받을 생각이 없었는데…….

    “야 신병 종교행사 가서 초코파이 하나 먹고 올 시간은 주던가, 초코파이라도 하나 주면서 시켜라.”

    군대의 주말에 태영의 생활관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상병장들은 종교행사 참여까지 막아 가며 태영을 찾았다.

    그렇게 막노동에 이용당하는 걸 보다 못한 말년 병장 한 명이 그리 말하자.

    선임들이 앞다투어 먹을 것을 사 주기 시작했다.

    “태영이 뭐 먹고 싶냐. 말만 해라.”

    “그……. 라면 먹고 싶습니다.”

    상병장들이 취식 때 먹던 컵라면 냄새에 못 이긴 이병 금태영은 그 애절한 한마디를 남겼고.

    이는 곡절되어 ‘라면 한 개 주면 사주 봐 주는 병사가 있다.’는 소문으로 퍼져.

    결국 이런 사태를 낳게 된 것이다.

    그래도 암암리에 병사들끼리만 아는 일이었으나.

    이젠 간부에게도 이 사실이 알려졌다.

    취침 직전.

    명상의 시간 낭독이 끝나자마자 방송이 나왔다.

    [후, 후. 이병 금태영, 지통실로.]

    당직사령 군수지원관이 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른 생활관 상병장들이 이면지 들고 모여들어.

    차례를 기다리다 탄식하고 돌아갔다.

    태영이 지휘통제실에 가니, 작전지도 앞에 발을 올리고 앉은 군수지원관이 한참 휴대폰을 매만지고 있었다.

    “충성! 이병 금태영 지통실에 볼일 있어 왔습니다.”

    옆 작전과 책상을 보니 태영이 빼앗긴 라면이 무수히 쌓여 있다.

    봉지라면 30봉지에, 컵라면은 10컵이 넘는다.

    “어, 금태영이.”

    “이병 금, 태, 영!”

    “라면은 다 압수다. 과자는 지금 먹고, 초코파이 몇 개만 가져가.”

    라면만 있지 않았다. 온갖 과자도 같이 쌓여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태영은 그다지 먹고 싶지 않았으나, 그래도 몇 개 깠다.

    상병장들에게 과분한 PX 만찬을 제공받고 있어 배가 부르다.

    냉동이나 과자는 아쉽지 않고 외려 라면이 아깝다.

    라면은 뜨거운 물을 받는 게 상병장들 눈치 보여 먹기가 힘들다.

    정수기 온수 기능에 문제가 있어, 일병 이하는 뜨거운 물을 취사장 가서 받아야 했으니까.

    이병이 막사 밖 취사장까지 혼자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군수지원관은 태영에게 압수한 과자를 집어 먹었다.

    “너 사주 본다며?”

    “그렇습니다.”

    “내 사주.”

    “예?”

    “내 사주 보라고.”

    태영은 군수지원관의 호출이 그런 목적임은 미루어 짐작했다.

    “그 태어난 생년월일시를 알아야 합니다.”

    “아 그래? 가만있어 봐. 어 엄마. 웬일로 전화했냐고? 내 태어난 시간 몇 시라고 그랬지? 어 고마워. 묘시랜다.”

    “감사합니다. 한 몇 분만 감평할 시간 주십시오.”

    “과자 먹으면서 천천히 해, 이등병 연등 못하지? 충원아, TV 틀어라. 태영이 보고 싶다는 거 틀어 줘.”

    “알겠습니다.”

    “얘가 그렇게 용하다며.”

    “잘 봅니다.”

    당직 부사관 이충원 병장은 부대 왕고였다.

    부대가 시행하는 ‘목표지향적 자기 계발’ 시간에.

    사주책 보는 이병이 있다는 이야기에 가장 먼저 달려왔다.

    그런 뒤 취사장에 꿍쳐 둔 군납 맥주에 오징어까지 먹이면서 태영에게 최대의 보상을 했다.

    복채 제도를 도입시킨 것도 그였다.

    “내가 연대에 있을 때 귀신 본다는 애는 구라만 치드만.”

    “저도 들었는데 걘 그냥 말만 귀신 보는 척하는 거 아닙니까? 태영이 저 연상 만나는 거랑 카페 하려는 거 맞췄습니다. 개놀랐슴다.”

    “그래? 금태영.”

    “이병 금태영?”

    “인사과 동기 있는 거 아니냐?”

    “아닙니다.”

    군대의 인사 자료가 워낙 관리가 개판이다 보니 태영은 이런 의심을 사곤 했다.

    태영은 군수지원관의 생년월일시를 받고 책을 펼쳤다.

    책을 일독하긴 했는데 완전히 이해가 된 건 아니어서 아직은 몇몇 사례는 책을 보며 찾아 맞춰야 했다.

    오픈북 시험과도 같지만, 이제 막 배웠다고 하니 다들 그 정도는 이해하는 투였다.

    군수지원관의 사주는 쉬웠다.

    “그, 군인이 되길 참 잘하신 사주입니다.”

    “오, 그래? 왜?”

    “어, 솔직히 말씀드려도 됩니까?”

    “진솔하게 그 뭐 있는 그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말해 봐라.”

    상병장들 상대로 사주 노동 중이던 태영은 직설화법을 썼다.

    그래야 옆에서 듣던 다른 병사들이 재미있어한다.

    “군인이 되지 않으면 강도나 도적, 조폭, 산적이 됐을 겁니다.”

    “산저억?”

    “산적, 푸흐흐흡.”

    군수지원관은 시커먼 얼굴에 살벌한 눈길이 공개 수배 전단에 있을 것처럼 생겼다.

    실제 병사들 사이에서 별명도 비슷했다.

    “너 지금 내 얼굴 보고 그러는 거 아니냐?”

    “아닙니다. 원래 피부 검고 덩치 있고 눈 작고 머리 짧으면 여간한 동안 관상 아니면 죄다 그래 보입니다.”

    “심하시지 않냐?”

    옆에서 듣고 있던 당직부사관 이충원이 자꾸 끼어들었다.

    태영은 그 질문에는 눈치껏 대답하지 않았다.

    “사주가 나무 장대로 태어나서 칼날이 가득 있습니다. 마치 장창이 가득 있는 무기고를 보는 것 같습니다. 사주에 땅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농기구 창고로도 볼 수 있지만 땅이 없으니. 무기고이고 무기고를 관리하는 군인이 됩니다.”

    “어렸을 땐 농사지었지.”

    태영은 눈치를 보다 말을 이었다.

    군수지원관이란 직책에 빗대어 사주를 조합한 수준인데 생각보다 잘 수긍했다.

    “농사 좋아할 젊은이는 없지만, 진절머리 내셨을 겁니다. 아버지는 농사 여전히 지으실 것이고, 권하셨겠습니다.”

    “어……. 그래, 그랬지. 근데 그 힘들고 본인도 싫어하고 못 살겠다고 시위나 나가던 그놈의 농사를 왜 권하셨을까? 동생한텐 안 그러셨는데.”

    사주로는 모르겠다. 아직 잘 보지는 못한다.

    그러나 군수지원관의 말에 힌트가 있었다.

    “그건……. 공부를 안 해서입니다.”

    “풉.”

    “이충원 엎드려.”

    “엎드렸슴다.”

    이충원은 지휘 보고 하는 지도 앞 단상에 엎드렸다. 말았다.

    군수지원관도 굳이 터치하진 않았다.

    “새끼 말년이라고 말 존나게 안 들어요.”

    “잘 보지 않습니까?”

    “닥치고 취사장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이나 받아 와라.”

    “알겠슴다.”

    “금태영이.”

    “이병 금태영.”

    “너 저 라면 중 최고 먹고 싶은 거 뭐냐?”

    “그…… 공화춘 좋아합니다.”

    “얜 공화춘으로. 내건 저 간짬뽕으로 만들어 와라. 네 건 빼고.”

    “에이, 뭐 이등병 걸 뺏어 먹습니까.”

    “나한테 걸리니 다행인 줄 알아, 본부중대장이나 군수과장님한테 걸렸으면 이딴 걸로도 만창이야. 금태영이, 이건 뭐 공적으로 어쩔 수 없는 거야. 취식물이 적당해야 넘어가지.”

    “괜찮습니다.”

    태영은 어차피 못 먹습니다. 라고 말할 뻔했다가 간신히 참았다.

    그리 말했다간 못 먹게 눈치 준 놈들 튀어 오라고 할 게 뻔했다.

    “그래, 뭐 내 인생은 됐다. 대충 사이즈 나올 테니까. 집에서 거름 똥내 나는 거 싫어서 스쿠터 타는 형들 좀 따라다니다 그리될 뻔하긴 했다. 그래서 나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잘하셨습니다.”

    “됐고 내가 궁금한 건 두 가지다. 하나, 나 장기할 수 있냐. 둘, 장가 언제 가겠냐. 어떤 여자 만나야 하냐.”

    “그 부사관도 공부해야 진급합니까?”

    “왜? 나 공부해야 진급하냐?”

    그건 동서고금 당연하지 않을까.

    뻔한 말이지만, 태영은 조금 더 강하게 표현했다.

    “진짜 어거지로라도 해야 되는데.”

    “안 하냐?”

    “예, 안 합니다.”

    “맞으면 할까?”

    “누가 때리겠습니까.”

    “그렇지.”

    “고로, 다른 방법을 찾으시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군이 아니면 음……. 뭐, 방법이 있긴 한데.”

    “뭐, 어떻게 장기하냐.”

    “그 장기복무 하는 데 도움 줄 급 높은 부사관의 사위가 되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장가갈 운이 당분간 없습니다.”

    “장가도 안 되냐?”

    “예, 장가는 작년에 운이 컸는데, 작년에 못 했으면 2년간은 어렵습니다.”

    “작년에?”

    “예, 작년에.”

    “헤어졌다.”

    사주 봐서 재밌어라 하던 군수지원관은 표정이 몹시 착잡해졌다.

    “아…….”

    태영은 병사들 사주 보면서 그 거꾸로 된 고무신들 사연을 꽤 청취했다.

    주로 상병장들이다 보니 군대로 강제 솔로 된 이들이 많았다.

    다들 이해는 하지만 분노가 나름 있었고.

    태영은 그 회한에 담긴 추억을 들으며.

    그들의 분노가 왜곡되지 않게 말해 왔다.

    상처를 후벼 파는 게 기분이 좋지 않았으니까.

    “왜 그런 거냐? 혹시 알겠냐?”

    “그건 여자분 사주를 봐야…… 알겠습니다만. 음. 지원관님 잘못은 아닙니다.”

    “뭐, 왜?”

    “그 공부 안 하시는 거나, 농사 안 물려받는 건 본인 잘못인데. 군인이라, 안정성 없는 군인이라 싫다는 건 도리가 없습니다.”

    “그건…….”

    군수지원관은 눈썹 위를 몇 차례 만진 뒤 말했다.

    “어떻게 알았냐?”

    “사주 상. 의리가 있는 인물입니다. 애정이 없다 한들, 여자가 저버릴지언정 여자를 먼저 저버리진 않습니다. 그렇다면 버려진 것이고, 장기에 집착하시는 건. 아마도.”

    “하하, 새끼…….”

    군수지원관은 뭔가 회한을 말하고 싶은 듯했지만.

    새파란 이병인 금태영의 앞에서 소위 ‘가오’가 안 살아 고민했다.

    태영은 그런 심리가 있는 것도 느꼈다.

    상병장들 중에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병사들이 딱 그랬다.

    한참 후임인 신병 앞에서 짜질 못하겠던 것이다.

    마침 이충원이 라면 물 받아왔다.

    “물 받아 왔슴다.”

    “라면이나 먹자. 수고 많았다.”

    군수지원관은 쿨한 척 라면을 빼앗아 먹었지만.

    먹는데 집중을 안 했는지 라면으로 인해 사레가 여러 번 들려.

    계속 콜록거렸다.

    “고생했다. 금태영이 쉬어라. 아, 라면 진짜 먹고 싶은 거 몇 개는 그냥 가져가.”

    “아, 괜찮습니다.”

    “버리긴 아깝잖나. 가져가. 회수해 가는 라면만큼은 내가 아이스크림이든 뭐든 간간이 사 줄 테니, 너무 아까워하지 말고.”

    “그럼 몇 개 가져가겠습니다.”

    태영은 라면을 받아 가며 씨익 웃었다.

    자기보다 높은 사람의 약한 면을 캐내는 기술은.

    생각보다 군생활에 도움이 되고 있었으니까.

    * * *

    군수지원관 사주를 본 이후로 부대 내에서 간부들도 찾아와 물었다.

    “나 진급은 어떻게 되냐? 어디까지 가겠어?”

    아주 당연하게도 간부들의 주된 질문은 진급이었다.

    상사, 원사만 자식 질문이지.

    위관급과 중사 들은 죄다 묻는 게 진급되냐? 장기 될까?

    말뚝 박아야 되냐? 전역해야 되냐? 의 고민이 많았다.

    20대 중후반, 30대 초중반 남자들의 굉장히 현실적인 궁금증이었다.

    그런데 태영은 자대의 간부 사주 10명을 입수한 뒤.

    굉장히 공교로운 우연을 발견했다.

    * * *

    “중대장님, 사단 갑니다. 그 일이병 한 명만 지원해 주십쇼.”

    “군수과 계원들 데려가시지.”

    “오늘 본부중대 훈련 나가서 애들 없습니다. 태영이 보내 주십쇼.”

    “태영이 인기가 많네요?”

    “밥 한 끼 사 먹여야 합니다.”

    “사주 보셨구나.”

    “그 새끼 존나 신기하지 않습니까?”

    교장 보수공사 중이던 금태영은 군수지원관 덕분에 열외 탔다.

    태영은 사주를 통해 간부 커버 전문 병사로 거듭났다.

    장교들은 어쩌다 한두 번 당직사령일 때나 심심해서 사주 보는데.

    행보관이나 주임원사는 심심하면 업무시간에도 불러다.

    ‘이거 누구누구 사준데 봐 보라고.’ 시켰다.

    태영은 간부 빨로 열외타도 병사들 사이에서 눈치받지 않았다.

    특히 군수지원관은 한 번 지랄 할 때는 악마가 따로 없었는데.

    유독 금태영에게는 잘해 줘서 오히려 응원받았다.

    “너 간짜장? 탕수육? 뭐 먹을래. 탕수육 이상은 안 된다.”

    “고추 잡채밥 안 됩니까?”

    “얼만데?”

    “7500 원임다. 2천 원 드립니까?”

    “그래, 고추 잡채밥.”

    라면 조공 및 사주 감평으로 인해 태영은 간부들한테 밥깨나 얻어먹었다.

    특히 군수지원관은 라면을 30개가량 압수해간 뒤로.

    빚 갚듯이 종종 뭘 사 줘서 태영은 굶주리진 않는 군 생활 중이었다.

    ‘식복이 늘더라니…….’

    태영은 간부 라인을 잘 타 중대도 본부로 옮길 예정이었다.

    특히 군수지원관이 군수과로 데려오려고 침 발라 놨다.

    사주 좀 봐 준 걸로 몇 배로 돌아오니까.

    태영도 군수지원관한테는 고마웠다.

    그런데 그래서 해야 할 말이 있었다.

    “군수지원관님 그런데 말입니다.”

    “뭐?”

    “주제넘은 말이라 생각 마시고 진지하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굉장히 잘해 주셔서 저도 좀 이런 말 드리기가 좀.”

    “뭐냐, 말해 봐라.”

    “그 지원관님, 다른 부대 가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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