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 주인공 사주(완결)
거처를 설양훈이 줬던 서울의 오래된 동네로 옮겼다.
원래 촌놈은 서울로 상경해 자리 잡으면 성공했다는 인식이 있는데.
사주강화술 주거운 LV10을 달성하면 얻는 업적.
‘수도성읍 내부 핵심지에 거주합니다. 부르주아지입니다.’가 된 것이라 틀린 말도 아니다.
지금 사는 이곳은 방들이 많고 내채, 사랑채가 있어 마당으로 분리가 되어 있다.
여기엔 이상한 그림 그리는 화백 한 분이 있다.
원래 한옥 겸 소규모 박물관 미술관 혹은 한옥 스테이 등으로 쓰려는 건물이라서.
주거지만 상업적 부동산의 성격을 띠고 있어 분리가 잘 되어 있다.
화가 한 분이랑, 그 모델을 종종 맡아 주고 사주도 배우며.
밤에 하는 신부 수업을 나한테 받고 계신 분이 있다.
정확히는 둘 다 받고 있다.
내가 쓰는 외부 사랑채와 박물관 용으로 개조된 건물은 명승철학관 3호점으로 쓰이고 있다.
직접 운영하고 있지만 프랜차이즈 같기도 하다.
“무속인이시네요. 역술인이시거나.”
이번에 들어 온 손님은 나랑 나이 차이가 별반 나 보이지 않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쯤의 여성 손님이었는데.
인사를 ‘안녕하십니까.’라고 하길래 의심했고 인테리어 이야기를 잠깐 하다 말했다.
동요가 있다.
“알아보십니까? 혹시.”
역술인과 무당은 사주가 아니라.
말투와 쓰는 단어에서 티가 난다.
“아뇨, 뒤에 그런 거 안 보여요.”
“그러면 어떻게?”
“말투가 단정으로 끝납니다. 이건 전문적으로 배워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오는 말씨이기도 하고. 나는 알고 있거든? 이런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타인을 위압하는 말씨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예의의 가면을 쓰고 있다.
아무리 성질이 더러워도, 심지어 진상 손님이어도 그렇다.
그래서 타인을 상대로 그렇다, 그럴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로 인해 ‘까’ 체를 잘 안 쓴다.
군인들과 사극 말고 ‘까~’ 쓰는 사람 보기 드물다. 다 ‘요’ 체 쓴다.
말투는 재밌고 나름 존중하는 거 같지만 딱딱하거든.
“내가 단정으로 말한다고?”
여긴 아예 반말이 섞여 있고.
세상의 서비스직 중 손님한테 반말, 위협을 해도 장사가 잘되는 곳은 점집 말고 어디가 또 있을까?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
“그리고 자신을 지칭하는 주어를 붙이는 것에서 주어를 많이 혼동 및 변경하는 듯한 말씨가 보입니다. 동자신 등이 쓰였고 별칭은 애기 보살 정도 되었겠네요.”
“……허어.”
“무속인이 역술인 영역에 굳이 범접하는 이유는 반경이 겹치거나, 아니면 무속신앙이 아닌 주역의 힘을 빌려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겠지요. 신기를 잃었거나 역술인인데 다른 사람들 믿게 하기 위한 캐릭터를 구축하다 그리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게 직접 할 때는 나도 그랬고 잘 못 느끼는 모양인데 언변에서 고리타분한 향이 난다.
그것도 젊은이인데 쓰는 단어가 기괴하고.
중2병도 아닌데, 대화의 어미가 단정적인 경우가 나온다.
“허명은 아니군요.”
“허명이면 소문이 안 납니다. 저한테 사주 보셨던 분들 비하하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을 비하하고 싶습니다만.”
무당 사주인 녀석과 체액을 나눌 정도로 긴요해서 아는데.
무당은 사주를 떼어 놔도 기본적으로 호전적인 사람이 많다.
차분차분하고 손님을 손님처럼 대하는 자신을 서비스직으로 인식하는 무속인도 분명 있지만.
기본적으로 세상 모두가 요물이다 말하는 천한 신분이라, 그런 사람에게까지 의존하러 오는 사람들을 위압하는 말하기에 특화되어 있다.
무속인을 찾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앞길을 못 가린다고 보니까.
좀 거친 리더십을 선호하기도 하고.
“그래서 얻는 이득이 뭡니까?”
“미꾸라지 한 마리가 분탕질을 치고 있는데 이를 두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게 엉터리로 사주 봐도 되는 겁니까.”
도장깨기였구만.
하기야 도장 깨기 말고 역술인이나 무속인이 제 앞길 모른다고 다른 점쟁이한테 묻지는 않는다.
그거 자기가 사짜라는 인증이지 않은가.
서울이 목이 괜찮고 소문이 나면 발품 팔기가 편해서 그런지 도장 깨기가 확실히 많다.
대전에선 유흥, 상업, 번화가 지구에 있어서 이런 경우 없었다. 손님도 잘 없었고.
전주에서는 일대를 평정한 소녀보살이 도전해 오긴 했는데 사주로 붙진 않았다.
문하가 같았으니까.
아무튼 엉터리라는 비난에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돈을 안 받으니까 상관없는데요.”
“하아?”
나는 돈이 목적이 아니게 됐다. 사주 수집이 목적이지.
요즘 성공한 야구나 축구선수 연봉처럼 돈이 쌓인다.
그리고 대신 살림해 주고 있는 화백과 신부 수업하는 아가씨들도 그 정도로 수익을 얻고 있어서 일을 안 해도 상관없다.
근데 일 안 하면 ‘생체 미싱으로 살겠다.’ 선언이나 다름이 없어서.
“아, 뭐 그것 때문에 장사가 안 되나요? 하루 몇 팀만 예약으로 받는 거라서 그렇게 수요 침해를 하진 않는데 상도의 어겼으면 미안합니다. 그쪽도 예약하고 오셨잖아요?”
“왜 돈을 안 받습니까?”
“저는 사주나 미래를 팔지 않거든요. 그냥 롤모델을 줄 뿐이지.”
“롤모델?”
“제 사주 한 번 봐 주시겠습니까?”
“내가 봐야 합니까?”
“손님은 실력에 자신이 있으나, 실력을 검증받지 못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래 보입니까?”
“무속인 팔자는 본디 고독한데 보편적으로 고독을 채우기 위한 소비 행위가 수반됩니다. 그런데 알뜰하시네요.”
얘기를 좋게 했지만, 한마디로 정리하겠다.
‘야이, 그지야.’
돈 있는 사람들이랑 같이 살다 보니 느꼈다.
이들은 겉으론 세상 겸손하지만, 몸에 걸친 것들에서 금수저를 타고 난 몸뚱어리임을 개성 넘치게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벗기는 걸 좋아한다.
“아닙니다만.”
“그럼 과하게 음탕합니다.”
“……이 사람이.”
쳐들어와서 내 권위를 깎고 망신을 주려 했으니 그거보다 더한 모욕을 줘도 상관은 없겠지만.
쌍욕하면서 싸울 필요 있나.
너무 가소로운 것을.
“거지 할래요? 음란 마귀 할래요?”
“둘 다 싫습니다만.”
“둘 다 아니면 사기꾼입니다.”
“왜 그런.”
“점쟁이가 가치를 평가받는 역사는 세상에 없습니다. 그 점쟁이가 남긴 예언이 다시 발굴될 뿐이지요. 아니면, 다른 분야에서 성공했지만 점도 잘 봤다. 라는 경우 말고는요.”
사실 개인 성취나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직종이다.
고로 그에 대한 충족감은 결국 그 사람의 가치를 상징해 주는 돈이나 이성이 될 수밖에 없다.
“…….”
“그럼에도 싸움을 걸러 온 걸 보면, 자신의 배움이나 신념에는 확신이 있으니 그저 장사를 못할 뿐이겠지요.”
“그래요?”
“그러니 실력 한 번 봅시다. 제 사주를 풀어내는 것을 보고 판단해 드리죠. 왜 장사를 못 하나.”
“그걸 왜 당신이.”
“뭐, 제 이력을 알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전 전주에서 시작했고 대전 사업소가 있고, 여기 얼마 전에 샀네요. 2년 만에.”
“…….”
“소문대로 사주를 봐 준다면서 사주는 안 봐 주고 딴소리하는 거 같겠지만, 장사는 잘하는 거 같지 않습니까?”
이 분기탱천한 무당이 왜 찾아왔는지 안다.
나는 몰랐지만 업계에서 유명해져 있었다.
일단 종교/철학에서 사주교양서 및 역사 인물들을 5가지 유형으로 나눈 책이 상위권에서 놀고 있었다.
종교/철학 쪽이 경쟁자가 예수님(엮은이―사도 바울)이거나, 종교운 12~13레벨쯤 되시는 종교사업자 양반들이 신도들 필수적으로 사게 하는 책이라서.
스테디가 많지만 그만큼 고인물 리그였는데 그 고인물 리그에서 치고 올라온 보기 드문 서적인 모양.
종교운 12레벨 찍었으니까, 이런 대우가 적당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유튜브 강의, 사주 인강하시는 양반들이 두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모양인데.
올려서 언급해 줄 때마다 판매량 늘어서 오히려 고맙다.
“그래요?”
“어떤 사주인지 궁금하죠?”
날 시험하러 온 사람을 시험 보는 입장으로 만들었다.
재밌구먼.
사람 다루는 게 가뜩이나 어렵지도 않았는데, 친구운과 지지자운 등이 올라 적이 잘 생기질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따지고 드는 사람들이 재미있다.
이 무속인 양반한테 사주를 내밀었다.
“맞는 사줍니까?”
“역시 신기 다 나갔죠? 그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신기 나간 무당들이 꼭 나중에 사주 배워서 행세한다니까.”
“나 사주는 좀 봅니다.”
자신 있는 모양이네?
“여기 민증.”
뒷자리를 가리고 민증 앞자리를 인증해 주었다.
시간을 속일 수야 있지만 속여서 무엇하겠나.
젊은 역술인들도 흔히 쓰는 만세력 앱을 통해 내 사주를 뽑는다.
“흐으으으음.”
“어때 보입니까?”
“뭐가 궁금합니까?”
“당신 맞추는 게 궁금합니다만.”
“신월의 임일생이니 바다를 만난 격이고 명은 불을 만나야 아름다워질 것인데, 이를 잡아먹으려 들 것이니.”
해석은 8월의 바다로 태어났으므로 날이 뜨거워야 좋다는 뜻이겠다.
사주를 시작하자마자 말투가 반말로 바뀌었다.
“예, 그래서?”
“생긴 것과는 달리 계집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너 치마만 두르면 다 좋아하지?”
“크.”
“흠?”
“치마 안에 그게 안 달려야 좋아하죠. 예, 계속해 보십시오.”
“말하는 본새를 봐라, 도화격이 있어 여자들이 처음엔 호감을 갖지만, 그 모든 계집에게 호감을 드러낼 거다. 조금만 잘해 줘도 몇 배의 꿈을 꾸고 여인에게 돌려주니 여자들이 듣기에 부담이라 튕겨져 나간다. 끼는 있으나, 욕망이 그르쳐.”
오, 내 음탕한 언변을 꼬집어서 사주풀이에 활용도 하네.
“그러면, 재물도 모자라야 하지 않을까요? 여자가 안 들어오는데.”
“이거 집이고 시계고 다 허세구나. 빌린 집이겠고, 넌 약간의 이득만 보여도 다 먹어 보겠다고 판돈을 다 거는 미련함이 있어, 그러면 돈 잘은 못 벌지. 약간의 호감에 자식 얻을 생각으로 투자하는 게 네 엽색과 똑같다.”
해석하자면 돈이나 여자에 환장했기 때문에 약간의 이득만 보여도 닥치고 달려들려 한다는 걸 꼬집는 것이겠다.
꽤 보편적인 인간상이다.
평소엔 진득하게 기다리는 맛도, 멀리 보는 시야도 있는 사람인데.
돈과 여자에 대해선 당장 보이는 판돈에 돌아버려서 쓸데없이 올인을 때리는 사람.
사실 돈도 이성교제는 타이밍이라 그거 잘하는 놈이 쟁취하는 편이라 사주로 규정하는 건 좋지 않다고 보는데.
“돈은 아닙니다. 유혹을 실패하는 건 그저 심력을 소모하고 술이 달래 주는 거라 그럴 수 있지만 돈을 실패하면 막대한 노동으로 내 생을 소모해서 채워야 하는 거니까. 신중한데, 그런 건 못 짚네요.”
“그건 네놈이 도화격이라 그런 거야. 맑아 보이는 바다니 어쩌겠니, 겉 본새는 반지르르하니, 여자애도 반반한 애들이 들어오겠지. 그런데 네가 오롯이 그저 그런 것에만 관심이 있으니, 질려 나가는 거야. 아주 사랑하지만 네 여자가 없다.”
크으.
다른 건 모르겠고 내 사주의 약점인 여자운 하나 파고들어 와서 꾸짖는 이 악문 인파이팅이 된다.
여기서 와, 신기하다 하면서 넘어가면 잡아먹히는 것이다.
다만 여자운은 재물운과 사주강화술로는 따로 칠 수 있어도 사주로는 따로 칠 수 없다.
당연히 재물운과 연동이 되는 건데, 재물운 질문은 잘 감춘다.
“평생 없습니까? 그런 해석이라고요?”
살살 믿는 척하며 낚아 봤다. 겁 좀 먹은 듯.
“평생 없다. 너 올해부터 대운 좀 받아서 애인은 있겠는데, 그 대운엔 오히려 여자들이 여럿 들어와서 너한테 오래 붙어살려는 여자를 내쫓겠다.”
여자운으로 파고들어 주는 게 좋다.
나머지 운들은 기본적으로 있었고 발전 가능성도 충분했던 운들이다.
이러면 저쪽도 아마 내 사주를 보고 ‘그 운은 좋다.’ 칭찬할 수밖에 없고.
그 운들이 좋아 생긴 효과가 내 주변에 가득하므로 이 간판 파괴범의 논리를 더해 줄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사주를 볼 때, 단점을 먼저 파고들어 가는 것도 방법도 괜찮다.
콤플렉스로 품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집중력이 높아진다.
“저 돈 좀 벌었는데 그래도 안 될까요?”
내가 볼 때 ‘아, 이놈이 믿고 따르기 시작했구나’ 싶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근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니 대뜸 넘어왔다 싶었는지.
“예끼 놈아, 돈으로 오는 여편네들은 돈이 마르면 새어 나가는 법이여, 그건 네가 가치 있는 상품이 되는 것이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가치가 보이니까 사 볼까 하며 다가온 거겠지만 더 오르지 않거나 떨어지면 뱉는 것, 그것이 네 부인복이 가진 한계다.”
반말과 명언으로 제압을 들어온다.
그래도 돈은 좀 벌었나 싶은 모양이지?
미리 손목 살짝 걷어 뒀는데 천몇만 원대 고오급 시계다.
내가 산 건 아니고 어머님, 아니, 장모님이 선물로 주셨다.
브랜드도 잘 몰랐었고 솔직히 시계 왜 필요하지? 생각하며 살았는데.
예쁘기도 하고 길 걷다가 휴대폰 꺼낼 일 없어 좋았으며.
뭔가 상징처럼 써먹을 수 있었다. 부유해진 티.
“큭, 크흐흐흐, 하하하. 주식으로 날렸구먼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내가 지금 믿어서 이러는 거 같습니까?”
“넌 이 사주를 갖고도 희망을 품나?”
“아니, 사주를 배우는 사람이 왜 사주란 틀에 자기 인생을 가둬 놓고 그렇게 계산해야 합니까?”
“넌 그랬을 것이다.”
사주강화술이며, 아들에 대해선 통달한 모친이 보는 시선.
그리고 나조차도 공감한 게 있다.
대운이 오는 30대 이후에 외국인 신부 데려와서 살림 차리는데, 그나마 도화살과 언변 능력, 성적 능력은 괜찮아 한창 세대 차이 날 어린 신부 데려와도 부인이 어디 겉돌지는 않을 운.
원래 가진 여자운 2레벨에 특) 여러 개 붙여 도출되던 결과다.
“시원한 거 마시고 하세요. 오늘 언성들이 높으시다.”
부를까 했는데, 자아운이 높아 내가 원하던 상황은 쉽게 형성된다.
은겸이가 얼음까지 탄 커피 두 개를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
나도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이 눈앞의 사주 배운 무속인은 카랑카랑하다.
“은겸이 뭐 하는 사람?”
“선생님 여보요. 아, 아하하. 가, 갑자기 왜 물어요. 손님 있는데.”
“이분이 나 부인 있다는 거 안 믿네.”
이 무당 아줌마 표정이 싹 변한다.
내가 괜히 여자운으로 실컷 재잘대게 놔준 거 같은가.
내 사주에 쓰인 내 약점, 여자운 2레벨급 여복으로 단정하게끔 몰아가서 카운터 치려고 했지.
돈, 주거, 명예 이런 건 내가 직접 증언해야 하는 거라 자랑에 불과한데.
은겸이, 유겸이는 직접적인 증인이 되니까.
“오래 못 간다. 부인이 없는 팔…….”
“어, 제가 죽지 않는 이상은 안 그럴 거예요. 그리고 그래도 내 동생도 좋아하거든요. 동생이 나 대신 여보야 해 줄 거고요.”
“허어?”
도장파괴범 드디어 은겸이 얼굴에서 뭔가를 느낀 모양이다.
참고로 은겸이가 신부 수업만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스카이피아 아파트 광고를 찍었다가, 유명세를 탔다.
나는 불합리해 보이는 결혼 계약으로 이 집 아가씨들을 붙들고 있어서.
숨어 살 생각을 했는데.
그깟 거, 세상을 납득시킬 힘도 손아귀에 있었다.
최대 9개까지, 그리고 주변인들은 따라 죽거나 포교하러 고행을 마다할 정도로 믿게 되는, 이어 그들의 믿음에 시사점을 받은 같은 문화와 언어인들이 따르고 순응하게 되는 힘이.
“들어가 있어요.”
“이 손님 이상하면 또 불러요?”
설은겸을 보고 놀란 도장파괴범에게 한마디 더했다.
“어때요. 이런 사주임에도 부인이 있다는 게.”
“이상하네.”
“뭣이 이상합니까. 이 아가씨 만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요.”
전주 명승철학관 에어컨, 지금 와서 말하자면 그냥 더위 버티면 불에 깃든 여자운 오르니까. 미룬 것도 없잖아 있다.
“그게 노력한다고 되는 겁니…… 까.”
“아니죠. 근데, 그럴 목표를 갖게끔 손님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부추길 수 있습니다. 네가 노력하겠니, 하는 냉소적인 행동 말고요. 그 냉소를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진심으로 역술인이, 무당이 내가 하면 된다는 걸 확신하는구나. 그것에서 확신을 가집니다.”
“…….”
도장파괴범이 기가 죽은 게 읽힌다.
공격 소재가 은겸이 등장으로 완벽히 봉쇄됐다.
신나서 공격했을 텐데 멈추질 못했으니 별수 없겠다.
그래도 부인 아닌 거 아니냐면서 인지부조화 온 듯한 짓은 안 해서 다행이다.
“그리고 그걸 진심으로 하려면 몰입을 해 봤어야 합니다. 지금 저처럼요. 연애운 잘 본다고 소문났죠? 그게 저희 맛집 명승철학관 비법입니다.”
서울권에 오니 아줌마들이었던 여성 인플루언서가 아가씨들 미시들로 내려가서 전파력이 더 세졌다.
지금 온 양반도 그런 쪽으로 접한 거 같고.
“비법이라.”
“사주는 이야깁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힘을 얻으려면 기교가 필요하죠. 몰입시키는 방법이라거나. 도입부라거나 등등이 필요하죠.”
글을 써 오던 경험에 빗대어 말했다.
“하지만 이야기의 근본은 진정성입니다.”
“…….”
“공부한 역술인은, 공부에 고민하는 학생과 취업준비생들에게 와닿는 말을 할 수 있고, 돈을 많이 벌어 봤던 역술인은 돈을 벌 다양한 방법을 설계해 줄 수 있죠.”
“다 해 보셨단 말입니까?”
그냥 고개 끄덕여 주며 내 할 말만 했다.
반박 허용하면 낚여서 파닥댄 ‘사주는 잘 보지만 장사할 줄도 모르는 영업 초보’ 주제에 기어오를 것이다.
“역술인이 가진 이야기가 흡사할 때, 사주를 보러 온 손님은 자기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게 쉬워집니다. 같은 시대와 사건을 공유하는 사람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털어놓는 이야기엔 그 사람의 인생의 힌트가 있습니다.”
“말씀 주시는 분들이 있기는 하지요.”
“사주와 그 힌트로 그 손님만이 가진 인생의 이야기를 조금 뻔할지라도 써 내려가면, 당신이 설사 미래를 맞추지 못했다고 해도 당신이 같이 설계해 줄 미래를 믿고자 할 것이니.”
“아…….”
“그들을 곁에 두어 그 사람이 써가는 인생 이야기를 들어 주고 이를 편들어 주십시오.”
“그러자면 공부도 하고 돈도 벌라 이 말씀입니까?”
“그럼 좋죠. 하지만 안 그래도 됩니다.”
“……?”
어리둥절해 하는데 말에 모순이 있다, 이거겠지?
“그저 손님들이 주는 인생 이야기를 당신도 내 것처럼 받아들이고 몰입하면 공부한 역술인, 돈 번 역술인이 되지 않아도 공부한 손님, 돈 번 손님이 당신에게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줄 거고, 공부하고 싶어 하는 돈 벌고 싶어 하는 다른 이들에게 시사점과 목표를 줄 겁니다.”
각기 살아온, 또는 살아갈 이야기들이 만나게 하는 것이다.
나도 그냥 저 도장 깨기 아줌마한테 아무런 좋은 말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 말 같지만 왠지 아귀가 맞는다.
계명에도 하나 올릴까 싶다.
역술인들은 어떤 운명을 살아 본 자들과 살아갈 자들을 잇는 직종이 되라고.
* * *
새 무협을 적었다.
도입부는 소림 대학살부터 시작한다.
제목은 부처를 벤다. 정도가 좋으려나.
역술인이 성공해서 타인에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진정성 있게 설파할 수 있게 해 준 그에게 보내는 내 선물이었다.
끝.
후기.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됩니다.
내일부터는 외전이 몇 편 올라올 예정인데 5편가량은 이미 적어뒀지만 이걸로 다 할 수 없을 거 같아 1~2편 정도 어떤 후일담을 적어야 재밌을지 고민 중입니다.
대댓글은 잘 달지 않지만 그래도 확인은 하고 있사오니 의견 주시면 반영해 보겠습니다.
일단 외전 마지막 편은 오래 기억에 남게끔 자극 위주로 적어볼까 싶은데 될지 모르겠네요.
트라이는 해 볼게요.
이어 본 작의 소재가 사주이다 보니 사주와 관련해서 말씀드리자면 저렇게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저자인 저는 사주를 좀 배워서 써먹는 편인데 놀랍게 맞는 경우도 시사받을 느낀 점도 분명 있지만 뻔한 말이나, 시대에 안 맞는 인간상, 사주 따위 필요 없이도 사는 사람이 있어.
반신반의하는 태도로 사주를 관측하고 때로는 맞기를, 때로는 틀리기를 고대하며 스스로를 운에 시험대에 올려 보는 편입니다.
제가 내년에 잘 풀린다 하니, 2022년을 노리고 출시될 제 차기작의 성적으로 아마 미루어 짐작하실 수 있으실 거라 사료됩니다.
행여 본 작 덕에 호기심이 생겨 사주하시는 분들을 찾는다면 드리고픈 말씀이 있습니다.
해답은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스스로 돌아볼 수 없을 뿐입니다.
타인이 관측해줘야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지, 당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가족이거나 친구이거나 하여 관측으로 알고 있기는 하나 당신에게 동조하고 있으며 처한 상황이 대개 흡사해 나을 바가 없기 때문에 유효한 돌파방법을 갖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주변인은 지적은 할 수 있으나, 대안을 제시하기 어렵고 대안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가까운 이는 스스로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는 동조하지는 않는 다소 낯선 사람, 내가 속한 집단과 괴리된 사람들을 만나보시고 그래도 위와 같은 이유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예를 갖출 수밖에 없는 돈으로 부리는 제3자이며, 사람들 사는 이야기에는 도가 튼 상담자가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개중 발전할 점을 찾아 주려는 이와 발전해야 할 점을 단점으로 잡아 겁을 주는 이들을 발견하실 것인데.
세상은 본디 성공사례보다 망한 사례가 더욱 많고 그 사례가 자극적이며, 사람은 보통 칭찬보다 공포로 인한 패닉에 지갑을 열더군요.
이것만 유념하시면 때로는 ‘내 인생’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토론을 나눌 영업인을 만나 보시는 것도 생의 활력을 줄지도 모릅니다.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외전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