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일러 준 사주대로 사는 이.
설 전에 약속이 하나 있었다.
군에서부터 대전살이까지 인연이 이어져 온 군 후임 출신 동생인데.
유학 갔다가 올 초에 귀국했다.
술이나 하면서 볼까 했는데, 기어이 명승철학관 구경해 보고 싶다고 하니 불렀다.
“와, 이런 번화가에서 사주 봅니까? 커피 냄새 좋네요.”
“이태리로 커피 배우러 가신 분의 커피만 하겠습니까. 마셔 보고 평가나 해 봐.”
“이거, 제가 알바하던 한인 민박에 장기로 묵던 커피 사장님이 합성해서 먹던 거 같던데. 그 양반 기술 좋더라고요.”
응?
그거 왠지 이 커피 머신 전 주인장 같은데.
“아, 혹시 전주에서 커피숍 안 하셨다니?”
“어, 맞아요. 그 좀 뭐 머리 헝클어서 김태원 닮은.”
참 별일이 다 있어.
사람들이 이어진다니까.
커피 스승님 이야기는 더 하지 않았다. 뭐, 딱 그렇게 살 거 같더라.
그렇게 보헤미안처럼 여행 다니면서 이국의 호텔에서 소설을 쓰는 것도 대단히 동경하던 삶이다.
“뭐, 그래서 크리스티나 같은 여자 친구 만났냐.”
“흐, 그랬을 리가 있습니까. 이제야 운 트인다고 해서 들어온 건데 형은요?”
누워서 셋이 찍은 셀카 있었다. 보여 줬다.
이거 찍으려고 옷 입었다.
“이야, 어느 쪽이 여자 친구죠? 자매들 같은데.”
“둘 다라고 하면 믿겠냐.”
“아, 형이면 믿죠. 가능하시지.”
남성근, 일명 송진맨.
이놈이 전번초 근무만 서면 수풀에 굳은 뭔가가 발견되는데, 그게 송진이라고 변명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이병 때 군부대 CCTV 앞에서 면회 온 여자 친구와 서로 바지에 손 넣는 광경이 포착된…….
* * *
“걔가 돌아오겠습니까.”
“안 돌아와.”
“그럼 저 여자 친구 사귈 수 있습니까.”
CCTV 감시하는 상황 근무 중에 CCTV 화면에 최고로 몰입하게 만들어 준 후임 남성근은.
그리 뜨거웠던 열애의 종말을 맞고, 냉동과 해동을 반복한 갈치마냥 눈깔이 퀭해.
내가 사주 먼저 봐 주고 있었다.
자살한 상근병을 사주로 미리 알고 케어하려 애썼다는 명성이 있어 무슨 군종병도 분대장도 아닌데 간부들이 상담역으로 쓴다.
“성근아.”
“일병 남성근.”
“포기하면 편해.”
“금 병장님도 여복이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여복 없는데, 여자한테 집착당하는 걸 말하는 것이겠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 양반은 좀 그렇다. 군부대 드라마가 별 막장이 많다지만 치정극은 좀.”
나도 없는 건 아니었다만 당시 레벨이 부족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우연찮게 입대 전 만나는 분이 있었지만 입대 전이다 보니까.
쌍방이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여복이 없었다.
평생에 없던 여자 친구 후보가 입대 전에 생기니까.
뭐, 내 탓 아니고 나라 탓이지만.
부대에 입대 전 D―14일 전에 사귀어서 훈련소에서 귀가 조치 받고 불태우다 입대해 후임이 된 놈도 있었는데.
그 덕에 악마 같은 맞선임에 시달려 후회하더라.
“그리고 넌 여복이 없는 게 아닌데 왜 모솔 앞에서 지랄이니?”
“그런데 왜 새 여친이 안 생깁니까?”
“군댄데요, 병신아.”
“아니, 그 지상훈 상병은 교회 아가씨랑 청년부 할 때 몰래 사라진단 말입니다.”
아, 그런 아웃라이어 있긴 있지.
지상훈은 남자들에게 잘생겼다 평을 받지는 않는다.
그런데 주워들은 관상으로 본 눈 밑 점과 보랏빛 입술이 예사롭지 않고.
사주조차 예사롭지 않았다.
물, 나무, 불로만 구성된 사주로서 내가 표현하기로 마구 분출하고픈 물을 타고 나서 이를 나무처럼 위로 꼿꼿이 세워가며 뜨거움을 분출하는 사주라고 했는데.
내 명성에 크게 일조했다.
색기가 미쳤는지, 종교 행사 받아 주는 인근 시골 교회 아가씨와 열애 중이다.
단순 열애도 아니고 그 아가씨 혼전 순결 서약을 파괴한 깊은 사이로 유명하다.
“걘 되지, 넌 안 되고.”
“왜, 왜 그렇습니까? 사주는 변할 수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저 때는 ‘없는 운은 사주강화술로도 강화할 수 없다.’는 팩트 폭격 안 맞았고.
사주 나쁜 놈들한테 희망을 주던 시기라서 희망을 주는 식으로 말했었다.
그래도 타고난 게 바뀌지는 않으니까.
“사주는 같은 거고, 그냥 운이 바뀌는 거지. 맨몸으로 태어났어도 도로가 일직선으로 잘 구비되어 있으면 오래는 걸려도 목표에 도착할 수 있는 거고, 벤츠를 타고 태어났어도 도로에 차단선 작전 때 쓰는 저런 가시 바리케이드 있고 낙석이 자꾸 떨어지면 걸려 차량 펑크 나고 위험해서 못 가는 것이지. 그 차이다.”
마침 위병소에 깔아 놓은 차량 펑크내는 용도의 가시 바리케이드가 보여서 가리키며 한마디 했다.
“저는 운이 안 바뀝니까?”
“너는 도전하는 성격이다. 여자에 대해서, 특히 나랑 비슷해서 설명을 잘해 줬던 거 같은데.”
“아, 그렇습니다.”
이런 질문은 흔하다.
군에는 소수의 연애를 이어가는 장병들과 진짜 기만자들이 존재하지만.
반수의 솔로와, 그만큼의 나라가 솔로로 만들어 버린 남자들이 존재한다.
그렇게 혼자인 혹은 혼자가 된 한창 젊은 남자들의 고민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다 보니 젊은 남성의 연애운에 관련해서는 카운슬링을 정말 무수히 받았고.
도가 통했다.
“대저 남자는 성욕이 많으면 여자를 여자로 대하고, 성욕이 덜하면 여자를 남자와 다를 바 없이 대한다.”
“아, 그런 거 같습니다.”
“여자를 여자로 대하는 이들의 특징은 여자에게 대우가 각별하지만 어색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네가 그랬을 것이다.”
“오오오오, 맞습니다. 그랬습니다.”
“문제는 이런 남자들이 만날 수 있는 여성의 풀이 넓지 않아.”
“왜 그렇습니까?”
“여자를 남자와 다를 바 없이 대한다고 한다면, 좋게 표현하면 여자를 그냥 사람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말씀 진짜 잘하십니다.”
저게 듣기엔 좋은 말처럼 보이는데, 그렇진 않다.
좋은 말로 포장한 것이지.
“우리 나이대에 만나기 쉬운 연애 대상이 누구겠냐? 사람은 연령이 흡사해야 공감대가 생기기 때문에 친해지기 쉽다.”
“20대 초반 아닙니까?”
“그렇지, 그리고 그녀들은 20대 초반의 남성들만 원하지 않지. 어쩌면 전 연령의 남성들이 선호할 거다.”
“아, 그렇습니다.”
“여기서 20대 초반이 중요하다. 왜 그 나이이겠냐? 거기엔 필수적으로 욕망이 소재로 개입한 거다. 골반의 성장이 마쳤고, 모체가 가장 젊은 시기.”
“와, 말투에서 그냥 야함이.”
이게 야해?
이건 그리 듣는 놈이 더 문젠데.
“이어 남자는 어찌 됐건 욕정이 다른 놈들보다는 강해야 여성에게 들이댄다. 욕정이 강하면 남들보다 더 강하게 원하게 되니까. 이어 들이댄다는 건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여성에게서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본인은 먼저 드러내야 한다는 거다. 마음을 벌거벗은 것과 같다.”
말하다 보니 그런 것도 같네.
“와.”
“마음을 벌거벗은 것이지만 너는 벌거벗고 다니는 남자한테 접근하고 싶겠냐? 여자 입장으로 생각해서라도.”
“벌거벗은 여자면…….”
“물론 그거 보는 거야 신기하긴 하겠지만 그러고 다니는 여자한테 접근하긴 어렵지 않겠냐?”
좀 타박했다.
벌거벗은 남자도 그렇겠지만 솔직히 길거리에서 벌거벗은 여자가 돌아다닌다고 해도 접근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즉 쓸데없는 개 잡소리라 눈치를 준 것이다.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됐다. 뭐, 쟤 군 생활은 당분간 안 끝나니까.
“고로 20대 여자는 마음을 벌거벗은 수많은 남자들의 애정 공세를 받고 있다고 해도 무관하다. 그녀들도 이를 느끼게 되어있다. 그런데 넌 마음을 너무 벌거벗어 여성을 만나는데 일을 그르친다.”
“아, 어…….”
“각별하게 대하는 것에 여자들이 흥미는 느낄 거다. 뭐, 면상 개연성이 있는 건 아닌데 너 정도면 하자는 없어. 그런데 여자를 여자로 인식하고 성애의 존재로 보고 있다는 게 드러나니까. 그녀들은 부담을 느낄 것이다. 이 마음을 벌거벗은 새끼야.”
“그러면 잘 만나는 놈들은 안 그럽니까? 막 몇 명을 먹었다 그러고 다니는데 말입니다.”
군에서 하는 소리니까, 어느 정도 허세가 있다고는 본다만.
그런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그래서 잘 사귀는 놈들은 특히 뭐, 군대에서조차 여자 친구를 바꿔 만나는 놈을 보면, 두 가지더라. 하는 놈이 더하는 경우다.”
“몇 분 본 거 같습니다. 금 병장님도.”
“형 누구 사귄 적 없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 여자 친구 있었던 네가 신세가 나아, 임마.”
“아니, 그……. 부대에서.”
“닥치고, 아 놔 내가 너무 편하게 대하나. 일병 나부랭이 새끼가.”
“죄, 죄송합니다.”
솔직히 이건 할 말 궁색해서 짬으로 찍어 눌렀다.
짬밥 낮아서 선임들 성심성의껏 사주 봐 줄 때와는 다르게 내가 투고인데 불만 있나?
갈굼으로 배우는 사주로 체득도 했지만 갈굼 사주에도 통달한 것이다.
갈궜지만 그냥 날 공격하는 소재 차단이라 더 혼내진 않았고 말을 이었다.
“이들은 욕정의 해소가 되는 파트너가 있을 확률이 높고 쉽게 구할 수 있으므로 욕망이 있음에도 여자들에게 나 하고 싶어서 환장했어요, 기질이 드러나질 않는다. 거기다 파트너를 구할 수 있는 개연성을 타고났지, 사주든 면상이든.”
“여자를 사람으로 대한다가 그겁니까?”
“사람처럼 대한다가 좋게 들렸냐?”
“되게 좋은 말 같았습니다.”
“그거 좋은 말 아냐. 그중 대다수는 그냥 여자를 같잖게 본다는 이야기다. 엄마의 권위가 강하지 않거나 혹은 너무 강하거나 이어 그들 또래 집단에 성매매에 트인 놈들이 있다. 그 모집단에서 놀다 보면 여성이 쉽다.”
“어, 그렇슴까?”
군에서 좀 방탕해 보이는 놈들에게서 흔히 드러나는 사주 패턴이었다.
어머니 운이 깨져 있는 남자들이 결핍을 느껴 그리 되는 경우가 잦다.
“그런 양아치들 말고 선천적으로 되는 놈들 주로 누나 여동생이 많은 가정환경, 낮은 성욕 등이 작용한다. 이들은 젊은 여성들이 예선에서는 좋아하지만 그걸 통과시켜 만난 이후부터 불만을 품는다.”
“전 여친이 전에 만난 남자가 그랬다고 들었습니다.”
“사귀기 전엔 각별하게 대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만 연애하면 각별하게 대해 주길 바라는 심리다. 그런데 이들은 연애를 해도 그다지 여자에게 각별하지가 않지.”
“아, 맞습니다. 그 게임하느라 연락 안 된다. 뭐 그런.”
“고로 마음은 벌거벗었으나, 착한 사람 눈에 보이는 옷을 입고 벌거벗음을 감추는 자가 일류다. 성욕을 끝까지 위장할 수 있는 놈.”
남정네들을 봐 온 결과가 그랬다.
여자를 티내게 여자로 보는 놈, 여자를 티 안 내게 여자로 보는 놈.
여자를 같잖게 보는 성욕 해소 방법이 많은 놈, 성욕이 없어 여자가 대신 환장해야 되는 놈.
20대 초 여성은 여자를 여자로 보는 놈들과는 잘 매칭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패턴이었건 간에 군에서는 여자를 티내게 여자로 보는 놈들이 되기 마련이다.
이어 이게 나중에 유겸이 친구한테 말하는 남성 성욕론의 근간이 됐다.
“저는 그러면 그렇게 될 놈입니까?”
“아니. 넌 성욕이 과해서 그게 안 감춰져. 심지어 그걸 위해 노력까지 할 거다. 너 요새 헬스장도 나오고 그러더라. 운동 안 한 몸인데.”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가치를 알아주는 건 여자가 젊을 때가 아니다. 오롯이 초년부터 각별하게 아껴 줄 사람만을 원하는 애정 결핍 여성, 성욕이 과해 남자의 욕망이 드러나는 걸 환영하는 경우에서만 이성 교제가 가능할 거다. 헤어진 전 여친은 그 결핍이 있는데 네가 군대 갔으니 별수가 없는 거지.”
그 위병소 근무자들이 전방을 주시하고 있어 망정이지.
CCTV뿐 아니라 위병소 근무자들도 볼 수 있는 위치에서 그 지랄들을 하는 걸로 미루어 보아.
이놈 여친은 마찬가지로 욕망을 못 견디는 사람이었음을 볼 수 있다.
“아.”
“이런 여성들이면 이미 반대로 남자들을 원하는 티를 내므로 연애를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타이밍을 못 잡으면 만나기 어려워.”
여성이 솔직한 타입은 말 그대로 운이 좋아야 한다.
“고로 넌 성욕이 꺾이기 시작하는 30대에나 발복할 것이다. 욕망을 타고나서 여자에 대한 노력은 하는데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아 좌절이 많을 거여. 사랑은 많이 하는데 돌아오는 게 없으면 무력하지.”
“그 욕망이 많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그 이상도 힘들겠다 싶다. 그리고 그 힘이 떨어지고 외모가 쇠퇴하기 시작하면 그게 무슨 의미냐. 한창일 때 열심히 해야지.”
“크흑.”
침울해 하길래, 위로도 할 겸 한마디 더했다.
“그래도 욕정이 덜해서 지가 찍은 여자들 아니면 안 만난다고 선 긋는 놈들보단 나을 것이니 힘내라.”
“그렇습니까.”
“욕정이 덜한 편인 남자는 취향에 집착하는데, 아리따운 미모는 남자의……. 아니, 인류 모두의 취향이다.”
“캬, 진짜 말씀 잘하십니다. 이거 배우고 싶다.”
아부하는 거 보면, 영업도 좀 되는 놈이구먼.
“여자를 경험할 수 없으니까. 여자의 다른 취향을 캐낼 수 없다. 그래서 그저 경쟁률 수 천대 1일 겉으로 미모 좋은 여성만 노리다가 그냥 지레 포기해 버린다.”
“그런 놈들보단 나은 겁니까.”
“그렇지, 넌 도전은 하는 놈이니까 그러진 않을 거다. 고로 여자를 남자인 친구들을 다름없이 대하는 법을 배워 일단.”
“그 방법은 사주 아닙니까? 가르쳐 주시면 안 됩니까?”
“……그 현석이 전 여친 분이 나 쫓아다닌다고 그리 말하는 거 같은데.”
“진짜, 겁나 말씀 잘하셨습니다.”
부대에 희한한 사례가 있었다.
여자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 흔한 사례다.
그런데 남자 놈이 워낙에 인기가 많아, 고무신을 거꾸로 신자마자 다른 여자애가 치고 들어와 남은 약 10여 개월 기다리겠다며.
남자 놈 연애 경력을 이어 줬다.
그걸 본 고무신 갈아 신은 여자가, 새로 만난 놈한테 몇 개월 만에 크게 데이고.
부대에 전화하면서 용서를 빌었지만. 그걸 받아 줄 리가 있나.
그러니 여자가 불시에 부대에 면회로 들이닥쳤는데.
그런 사연을 부대 당직사령은 모르고 덜컥 불시면회 허용했으나.
그 사연의 주인공 임현석은 일요일 종교행사로 만남을 회피했다.
군인을 바람맞히는 경우는 흔해도 군인이 바람맞히는 별 희한한 사례가 나온 것이다.
결국 바람맞은 그 여자애 혼자 면회장으로 쓰는 PX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만 있으니.
당직사령이 사주를 통해 대화의 소구력이 있다며 날 파병했다.
“그래, 그 아가씨 그 이후로 나한테 편지도 보내드라.”
그리고 온갖 사주 다 풀어 주면서 이빨을 한 3시간 털어 케어했는데 그 광경을 PX에 드나들던 병사들이 다 봤다. 이놈도 봤었다.
그 아가씨는 이후로도 사주 물어보겠다며 자꾸 부대 전화로 연락했고 얼마 전엔 나한테 편지도 썼다.
휴가 때 만나서 사주 한 번 더 봐 달라는 투의 편지로 누가 봐도 들이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후임의 전 여친을 꼬신 놈이란 희한한 타이틀이 붙었다.
사정 아는 사람들이면 안 이상한데, 타이틀만 보면 아무리 봐도 개새끼고.
그렇게 호도해서 놀리는 게 또 재밌잖은가.
“오오오오, 군대에서도 여자 꼬시시는……. 근데 말씀대로라면 그게 거의 최상급 아닙니까? 여복을 각성하신 거 같습니다. 나머지 사귀시는 분들은 원래 좀 여자 만나는 법을 아시던 분들 같은데.”
“그렇다고 치자.”
집에 갈 때가 되어서 그런가, 진짜 일병 따위가 기어올라.
“사주로 그러시는 거 같은데, 저도 사주 배우고 싶습니다.”
저 사례 덕인지 사주 어떻게 배우냐 묻는 놈들은 꽤 있었다만.
가르쳐주진 않았다.
여자 만날 기술로 알려달라는 건데, 여자 만날 소양이 없는 놈들이라 배워도 무용해 보였거든.
성근이 이놈은 그나마 소양이 있어 보여 이런 대담도 하는 것이다.
“것도 좋다만. 취미를 맞춰가거나, 직업적인 입장으로 너 자신에게 다른 캐릭터를 씌워. 남녀가 아니라 영업하는 입장의 사람으로서 욕정을 최대한 감춰라. 의무가 씌워지면 그럴 수 있다.”
“아, 그러니까 사주를 통해서 벌거숭이인 욕망을 감추시는 겁니까? 사주인 척으로?”
이 시점에서는 여전히 여자경험이 일천해서 그리 말할 수는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리되었다.
“나는 그게 사주인 거고, 너는 말은 잘할 거고 네 사주는 소질이나 적성이 먹는 쪽에 통할 텐데 그게 괜찮지. 뭐, 공통의 공감대를 살 수 있는 건 어느 때나 먹는 거라.”
“부대 진중문고에 식객 봤습니다. 카사노바는 항상 호화로운 만찬을 대동해서 여성을 유혹했다고.”
“어, 그것도 그렇고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주학에 이르길 욕망이 커. 몸의 신진대사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뜻이거든.”
“어째, 하시는 말씀이 신진대사도 야합니까?”
신진대사에서 야함을 포착해내는 정신 상태라니, 괜히 송진맨이 아니다.
“다만 먹을 것에 집중하면 살이 찌니까, 마시는 것에 집중해 봐라.”
“카페나 디저트 같은 거 하면 잘 될 거 같습니까?
“어, 사주로는 운때가 맞는 거 같다. 여자도 만날 수 있을 거 같고.”
공식 모솔이, 여자 친구 있었던 놈한테 훈수 뒀던 사례다.
생활 반경이 같기도 하고 저 대담이 꽤 감명이 깊었던지.
전역 이후로 연락하고 커피와 제빵을 열심히 배우더라.
제빵을 배우는 곳이 내가 학교 다니는 대전의 명소 SSD라서 간혹 봤었다.
그리고 내가 전주 내려갈 즈음하여 이태리로 커피 배우러 가더니 이제야 보는 것이다.
이놈이 배운 거 자랑하듯이 선물로 커피 원두 내밀었는데 그걸로 자기가 갈아서 한 잔 타 준다.
카페나 술집에서 만나긴 그럴 이유가 있었구먼, 이거 자랑하려고.
근데 자랑할 만하다.
“야 씨, 맛있다. 배합 잘하네.”
“그쵸?”
“나도 여행 한번 가서 먹었는데, 괜찮네. 알려 주고 가라. 잘 배웠네. 유학 갈 만하다, 야.”
나도 카페 하던 스승님 덕에 커피 꽤 배우고 체득한 편인데.
전공으로 배우고 와서 그런지 제법이었다.
“형님 덕이죠. 마실 거나 배워라. 네 음란한 끼는 여자가 있어야 잠재워질 건데 여자 만날 때 성애에 집중을 해서 인기가 없으니까 위장할 걸 익혀라. 그거 진짜 금과옥조처럼 지키고 살아왔습니다?”
군 시절 이놈은 그냥 단순무식한 음란 마귀였는데, 지금은 나름 제빵 기능사에 바리스타였다.
여복은 여전히 안 트인 거 같기는 하지만 사람에게서 여유가 읽힌다.
뭔가 살라고 했던 그대로 살아 괜찮게 나가는 거 같아서 이놈은 종종 만나 인생 보고를 듣는다.
“하이고야, 문자도 쓰네.”
“저 사주도 배웠습니다?”
“그걸 기어이 배웠냐?”
“알려 줬잖아요, 형이.”
이놈이 사주를 대단히 동경하더라.
정확히는 ‘군인인데 사주로 면회 온 다른 병사 전 여친을 유혹한.’ 기술을 동경하는 것이지만.
진로는 제빵이나 물장사 쪽으로 잡아주긴 했는데, 영업할 놈이다 싶어 사주도 좀 가르쳐 주기는 했었다.
“그거 뭐 그냥 사주 봐 주면서 사람은 이렇고 어쩌고 그런 소리 한 거지 제대로 알려 준 게 아닌디. 주역도 가능하면 읽는 게 좋고.”
“아, 그건 이상한 도사님 만났는데 그 양반이 알려 줬어요.”
“어떤 도사?”
이상한 도사는 하도 많아서 별로 특이할 일도 아니다.
세간에서 보기에 이상한 학문과 귀신을 부린다고 보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임을 드러내는 복장과 행색이 필요하다.
그래야 사람들이 믿으니까.
내가 사주나 관찰만으로 그냥 버티고 있는 특이 케이스지.
거의 대부분이 최소 개량 한복은 입고 다니지만.
그래서는 튀질 않으니까. 수염도 기르고, 수염에 염색도 하고.
“이상한 무술을 하는 양반인데 자기가 600년 넘게 살았다고 그럽디다. 뭐 이상한 검붉은 칼 들고 있고.”
그럼에도 컨셉 되게 심하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