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꽃에 물을 줍니다(화훼)
여자운 11레벨 상당히 마음에 든다.
이 맛에 사주강화술 올리는 거 아니겠나.
같은 가문에서 후처, 처가에서 신분 상승 시켜 주기, 첩질이나 바람피우는 것을 처가나 부인이 막아 주는 데다.
종교운 시너지로 부인이 남편의 복음을 타인과 공감하고 싶어 하여 동성 지인을 끌어들이고 그들 또한 남편과 깊은 정(?)을 나누게 한다.
내 거 올린 뒤 소녀보살한테 물었다.
“넌 뭐 올리냐?”
정말 동정녀 임신이 가능한 자식운 만렙을 가려나?
“자아운이 레벨이 2인데, 이걸 찍을지 자식운 찍을지 고민 중이다.”
“야 그럼 높은 레벨에 있는 걸 찍어야지. 포인트가 다른데.”
사주강화술 공략을 갑갑하게 하길래 훈수를 좀 뒀다.
소녀보살 자식운은 한 10레벨급은 될 것이다.
그 정도면 포인트가 엄청나게 필요한데, 2레벨에서 3레벨 가는 건 상대적으로 그 포인트의 한 3분의 1 정도밖에 안 든다.
물론 자식운이 깃든 식상운을 올리는 게 자아운보다는 사주상 쉽겠다마는.
들일 노력 등을 따질 때 명백히 차이가 난다.
“뭐, 그렇기는 한데, 한번 볼래?”
소녀보살이 자기 스마트폰 강화술 모드를 켜서 보여 준다.
<자아운 LV2>
귀문관살 페널티 –2, 식상운 페널티 –2, 연도 강화 +1
당신은 어린아이급의 형성된 자아를 갖췄습니다.
당신은 하고 싶은 일과 이를 하고픈 의지를 자각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여전히 강력한 자아의 타인, 즉 부모 및 보육인과 혹은 운명이 시키는 일에서 헤어날 수 없습니다.
특) 당신은 귀문관살과 강력한 식상운으로 인하여 자아의 기운이 새어 나갑니다. 자아운을 올리는 데 다른 운세보다 두 배의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특) 당신은 자아, 비겁운 탭을 올릴수록 식상운 탭의 기운들에 보너스 추가 속도가 빨라 포인트 획득이 어렵습니다. 도식으로 식상운을 깎으십시오.
뭐야 이 거지 같은 사주강화술 설명은…….
내가 자아운 7레벨에서 8레벨 올릴 수 있는 강화술 포인트로 소녀보살은 2에서 3까지밖에 올릴 수 없다.
자아운 1레벨 설명은 그야말로 사주의 기초.
‘당신은 탯줄에 의존받지 않고 살아 숨 쉴 수 있고, 태어난 날짜를 기억합니다.’
이다.
자아운은 본디 3레벨까지는 그냥 큰다.
자아를 타고나지 않은 사람은 사람이 아니며, 이어 사람이 성장을 하면서 얻어 나가기 때문이다.
근데 마이너스 효과가…….
이 덕지덕지 붙은 페널티를 볼 때, 년도 강화 같은 게 없었다면 0레벨 이하 마이너스 레벨이었겠고 다른 자아가 덧씌워진 인생이었음을 뜻했다.
새삼 너무 불쌍하네. 진짜 인생이 참.
자아인 나무에 보탬이 될 물과 인성운도 미친 듯이 필요하겠다.
“그 올려라 그냥, 그게 낫겠다. 그리고 멱 감자. 종교운은 그래도 4레벨은 될 거 아니냐. 사주강화술 덕에.”
“그건 그렇다.”
“너 저기 어디냐, 로마랑 예루살렘, 이스탄불, 비텐베르크, 바라나시, 메카 이렇게 해외 좀 다녀오고. 그 책 다 읽었어? 사주와 정신의학 보고서.”
“그거 어렵더라. 읽기는 했는데 이해 못 했다고 안 올라.”
어렵기는 하지.
어거지로 학위를 따기는 했지만 기초 수학 능력을 애당초 함양 못 한 소녀보살이 이해하긴 힘들 것이다.
이형탁 교수한테 돈 대고 쉽게 써서 재판해 달라고 할까.
“여행은 꼭 가라, 저기서 세 군데 골라서.”
“나 영어 못한다.”
“한 1년 열심히 배우지 않았나……. 외국인 귀신 안 쓰이니?”
검정고시 치려고 열심히 했으니까…… 라고 하기엔 영어 회화는 다른 문제니까.
“야이, 퍼킹맨아! 아, 너무 흥분해서 영어가 나왔다.”
“이때다 하고 영어 욕하는 거지?”
“뭐, 네가 데리고 가면 가 주지.”
“그래 가자 가. 그리고 일단 멱 감으러 가자.”
내가 여자운 11레벨 얻어서 희희낙락할 때 얜 무슨 사주강화술로 생존을 고민하고 있었네.
알고는 있었는데 가슴 키우고 명랑하게 살길래, 잘 되겠거니 하고 잊고 있었다.
뭔 이 겨울에 멱을 감나 했는데 이걸 넘어 눈밭에 구르고 저 북극 스발바르쯤에다가 북극곰과 함께 살게 해야 그나마 낫겠다.
일단 멱 감는다기에 몸을 담을 만한 계곡으로 왔다.
졸졸 흐르는 작은 폭포도 하나 있는 장소로 산불감시원들만 더러운 등짐펌프 물 대신 물 마시러 오는 곳이다.
다만 입춘이 지났어도 여전히 추워서 물 흐르는 부분은 바위에 얼어 있고.
그 아래 고드름에 작은 계곡의 움푹한 부분에 물만 고여 있다.
한국의 겨울은 건조해서 수량이 적지만 반신욕은 가능할 거 같다.
고여도 물이 몹시 맑은데, 웅덩이 아래가 흙이 아니라 돌들이라 가능하다.
바위 위에 흐르는 물이 깨끗하다는 뜻의 사주 용어 ‘금백수청(金白水淸)’을 여기서 본다.
내 사주는 금백수청 격이라 이 형상과 닮아 있다.
배움이나 종교, 어머니의 가호를 내 자아를 충족하고 동지를 늘려 가는데 잘 써먹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천하게 말하자면 명분 있는 정욕이겠다.
“여기.”
“오, 누가 수행하고 갔을 거 같이 생겼네.”
“이 근처에 명승 선생님 움막 있었을걸.”
“아 진짜? 어딘데? 궁금하네.”
“멱 감고 있어라, 갔다 올 테니. 다 감으면 안내해 줄게.”
매너로 자리 피해 줬다.
들어가서 오줌싸지 않는 이상, 뭐 번갈아 담그면 되는 거 아닌가.
폭포 수행에 산중 냉수마찰이라니.
이거 내 소설인 역술인의 검에서 주인공이 수기의 무공을 단련한다고 하던 건데, 내가 하게 생겼네.
“같이 안 들어가?”
“뭐 속옷이라도 입고 있으면 들어가자.”
“안 입었다.”
“그럼 무척 보고 싶지만 괜찮습니다.”
“흐음.”
“왜.”
“자랑할 데가 영 없네. 애써 올린 보람이 없군.”
한숨 팍 쉬는 걸 보니 급 미안하다.
뭔가 화장 잔뜩 하고 왔는데 못 알아주는 느낌인가 보군.
그냥 ‘제발 보게 해 주세요. 만지게 해 주세요.’라고 하면서 띄워 줄 것을 그랬나.
원래 아주머니들 상대로 영업하다 보니 여성들 변화를 기똥차게 알아채고 칭찬하는 편인데.
소녀보살한텐 안 그랬네…….
사주강화술로 생존 투쟁하는 걸 보니, 갑자기 너무 가여워서 시무룩한 게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여자운도 11레벨이겠다.
“보자 그럼.”
“헤.”
토라지는 표정 하나 없이 소녀보살이 싱긋 웃으면서 지퍼 내린다.
아니, 왜 그런 걸 좋아하냐. 거참.
그 뭐 여자들이 내가 마법적인 효과로 거근이 된 걸 감탄해 주면 좋기야 할 테니.
핑크색 롱패딩에 짓눌렸던 몸의 살덩이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골이 깊다.
아니, 몇 레벨을 올린 거야. 저 체구에 있을 게 아닌데?
“어, 야 거기까지.”
“어차피 벗을 건데, 더 봐도 된다.”
“진짜 다 안 입고 오면 어떡해?”
“물에 들어갈 목적으로 왔는데, 굳이 젖게 그래야 하냐. 들어간 다음엔 입을 거다. 챙겨 왔어.”
마저 지퍼 다 내리길래 돌아섰다.
봐도 된다지만 일단 이게 예의다.
“갔다 온다.”
“철벽 치네. 그래라.”
“준비운동하고 들어가라. 진짜 차가울 거다.”
“내가 애냐.”
“자아운은 어린애 급이더만.”
저 정도 자아운인데 어른이면 보통 정신적 성장이 어린이에서 그친 경우가 많다.
지적 능력보다는 인간이 유치하고 애처럼 삐지는 등의 행동 패턴이 보인다.
쟤 헛짓거리나 어린이 만화 좋아하는 등의 행색이 왜 나왔는지 사주가 증명하는 것이다.
안 보일 법한 거리이지만 멀지 않은 명승 선생님 수행 장소를 찾아갔다.
운장산은 명승 선생님 만난 곳이라 명승 선생님이 있던 그 위치를 기억하고 있다.
한 번 뵙고, 그 뒤로 못 뵈어서 찾으러 다녔거든.
나름 추억의 장소다.
“관리인들이 안 치웠네, 진짜 선생님 사유지인가?”
명승 선생님이 있던 절벽 아래 처마처럼 트인 동굴과 움막 그리고 그 속 바위에는 분필 같은 것으로 긁은 명승 선생님의…….
강화 테크트리가 있다.
셔츠는 몇 강, 칼은 몇 강 등등. 그놈의 게임.
일전에도 봤지만 볼 때마다 황당한 그림이다.
“어?”
그런데, 명승 선생님이 있으셨던 자리에 봉투가 하나 있었다.
[저와는 책과 기술을 나눈 내 은인, 작가 선생에게 전합니다. 이곳에 왔다는 것은, 산을 순례하고 있을 것입니다.]
펼쳐보니 나한테 쓴 편지였다.
이 양반 판교에서 예까지는 언제 왔대.
트럭을 개조한 캠핑카를 갖고 계시기는 하니까, 어디든 못 오실 건 아니겠다만.
내가 올 줄 알고?
와, 이거 사주강화술에 뭘 찍어야 이런 예측력이 가능하냐? 귀문관살?
[선생은 여자운을 통해 여복을 극도로 강화했을 터입니다. 나도 젊을 적엔 몰두하던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아마 이루 말할 수 없는 짝을 만났겠지요. 딱 여자만 부족하던 인생이었을 터였던바 갈망해 왔을 것입니다.]
최우선으로 둘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랜덤박스가 연속으로 두 개 터지는 걸 어떡합니까.
터진 김에 올린 거다. 진짜로.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었을 터이니, 부탁을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선생도 짐작하시겠지만, 소녀보살 그 녀석 이야깁니다.]
[사주강화술을 얻었겠지만 당연히 신통치가 않겠지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남편도 없이 오롯이 자식운만 있는 명입니다. 레벨도 낮은데, 올리기도 어려운 것이지요.]
그 말씀대로였다.
저레벨로 시작하는 초반에 레벨이 팍팍 올라서 성장을 해야 흥미를 갖고 몰두할 것인데.
소녀보살은 저레벨부터 고레벨까지 올리기가 첩첩산중이다.
낮은 레벨부터 올리기 힘들어서 인생이 풀리는 거 같지 않으니, 강화술이란 좋은 무기가 있어도 무용할 수밖에.
그러면 신체 변화가 확실히 보이는 것에 몰두할 수밖에 없겠지.
……가슴이 아른거리긴 하네.
거, 도와줘야지 싶기도 하고 내가 또 도움이 될 사주이기도 하고.
[이런 운의 여인들의 운명은 나도, 작가 선생도, 그리고 소녀보살 그 녀석도 미루어 짐작하고 있을 겁니다.]
짐작하지.
사회가 혼란스러울 시기에는 그냥 부모와 친정도 없이 시집왔다가 자식은 낳았되, 남편이 죽거나 빠르게 집 나가.
‘부모 잡아먹은 년이 남편도 잡아먹었다!’ 하고 시댁의 가호에서도 쫓겨나.
홀로 품 받아 일하고, 애 젖 물리며 일하는 일복만 가득 타고나 뼈 빠지게 일하다.
자식 잘되는 거야 보지만 이미 늙고 병들어 그거 하나만 낙으로 보고 사는 할머니로 끝장이 나거나.
애초에 남편도 없고 신통한 능력은 있으니, 마을과 유리된 외곽에서 고양이나 키우고 살다.
마녀로 몰려 모은 재산을 노린 마을 사람들의 참소에 의해 불태워질 운명이었을 것이다.
이건 과거에는 그랬는데 그나마 문명과 사회가 발전해서 그렇게까진 안 되더라도.
[자식이 없는 경우, 오래 살지 못합니다. 인생의 목표를 망실했기 때문이지요. 부모가 있다면 노부모라도 봉양하겠지만 그러지 못합니다. 꿈을 가진다 해도 관운과 인성운이 모두 파손되어 있고 몰두할 곳을 동물로 삼으면 그 동물의 수명이 다할 때, 아마.]
꿈도 희망도 목표도 없는 인생이 남는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의 목표가 없으니 무언가 다른 목표를 가진 주변인을 잔소리하고 챙기는데.
부모만 있으면 부모가 모두 떠날 시점에 생이 마감되고.
반려동물만 있다면 동물이 죽을 때쯤 생의 의미를 잃는다.
그나마 자식이 있으면, 자식은 보통 부모보단 오래 살고 자식의 자식을 얻으므로 그만큼 살 수 있다.
[공부를 시키는 선택은 옳았으나, 그 녀석의 기질상 공부로서 더 많은 돈을 벌 수는 없을 것이고.]
무당으로 돈을 잘 벌기 때문에 사실 공부는 교양으로 시킨 것이지.
어떤 직업을 갖겠다는 목표로 삼기가 어렵다.
예약 복채 30만 원~100만 원에 예약 한 달씩 걸리는데 그 돈 포기하고 말단 사원 하라면 하겠나.
[사주강화술로 세상을 가족을 거머쥐게 하고 싶지만 그런 운명으로는 고작 지금도 갖고 있을 자산과 넓은 집이 고작이겠지요.]
[그럼에도 사내를 가리는 기질을 너무 제대로 타고났으니, 취향이 국한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 인생의 목표를 확고히 가진 배우자를 얻는 편이 좋은데.
어린이 같은 자아에 시각이 편협하여 찍은 놈 아니면 안 만난다.
그 찍은 놈이 보통은 여자운이 높은 인물이다.
남자는 남자운 낮은 여자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도화살 등을 타고나 외모만 괜찮다면 선호하지만.
여자는 여자운 높은 남자를 반드시 더 높이 평가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여자운 높은 남자는 인생의 목표도 희망도 없는 여성에게 잘 안착하지 않는다.
식상운은 여성에게 자식운으로 이 운이 큰 여성은 보통 좋은 어미가 되는 만큼 여성으로서 매력이 넘치지만.
그와 별개로 여성 모솔이나 결혼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이렇게 된다.
소녀보살도 똑같은 루트를 타고 있다.
[이런 서신을 남긴 의도를 선생은 아시겠지요.]
[특히, 안타깝게도 그 고양이와의 연도 깊지가 않습니다. 동물에도 사주가 없는 것은 아님에.]
명승 선생님은 영민이의 명을 길게 안 보는 모양이었다.
동물 사주야 어거지로 생년월일시 적어 두고 보면 못 보는 건 아니지마는.
봐서 뭐할까 싶다. 반려동물 팔자는 주인에 따르니까.
길게 본다 한들, 앞으로 10여 년 정도겠고 서신에 예언대로라면 그보다 짧겠지.
“…….”
[작가 선생이 금도를 알고 명분을 찾는 이임을 나는 선생의 소설에서도 익히 볼 수 있었습니다. 사주인이지만 세상의 보편성을 찾으려는 사람. 그리고 보편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더욱 사주강화술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사람.]
[그렇기에 무리한 부탁일 수 있으나, 강화술로 10레벨 이상의 여복을 성취했다면 소여에게도 관심을 주시길 바라는 바입니다.]
[물론 마땅히 내가 보상할 것입니다.]
적절하게 명분을 주시네.
11레벨 찍었으니 마음 놓고 여자를 만나자 이런 생각이 바로 들지는 않았지만.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 나 좋다고 티 내는 사람을 마냥 방치하고 모르쇠 할 생각도 없었다.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린 거다.
서신을 접어 넣고 소녀보살 멱 감는 못으로 되돌아갔다.
“끝났…….”
“야아!?”
소녀보살은 몸은 젖고 창백해져 있었는데 옷은 입었다. 들어갔다 나온 모양.
문제는 그 인근 멀지 않은 곳에서 쪼그려 앉아서 패딩 밑단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는 거다.
누가 봐도 오줌 누려는 자세라 고개 돌렸다.
“아, 미안.”
“죽을래?”
소녀보살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삿대질이었다.
근데 아까 다 까려고 안 했니?
그래도 몸을 보여 주는 것과 쉬를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은 그 뭔가 치욕의 정도가 다른 모양이니까. 사과했다.
“아 미안미안, 좀 더 주의했어야 했네.”
“흥, 너도 들어가라 물 차갑다. 나도 쉬야하고 올 테니까.”
“어, 그래야지.”
나도 수행 겸 담그긴 해야 해서 외투부터 벗어 놨다.
맨몸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겨울철에 산에서는 화장실이 없기는 없으니까, 노상에서 갈기다 바람이라도 불면 옷에 다 튀어 불쾌한 느낌이 난다.
고로 바지 여벌도 속옷도 챙겨 온바, 완전 알몸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웃통은 그래도 벗고 준비운동을 좀 했다. 얼음장은 얼음장일세.
“흐응.”
“왜?”
“넌 왜 다 안 벗냐.”
“다 벗어야 되냐?”
“그런 건 아닌데, 구경 좀 하려고 했더만.”
“무슨 할매처럼 말을 하냐. 춥기도 하고 바지도 있으니 그냥 들어갈란다. 군대서도 다 벗겨서 넣진 않아.”
“너.”
“왜?”
“가슴 만질래?”
이건 무슨 맥락이지.
다 벗으면 만지게 해 준다 그건가?
“엥? 갑자기 뭔 소리냐.”
“아까 죽을래라고 해서, 미안하군. 이 말 하면 남자들 화 풀린다고 들었다.”
“…….”
이건 요즘 내가 오히려 잘못한 거 아닌가 싶을 지경이네.
특수협박은 내가 받았는데.
별 걸로 다 소심하게 저런다 싶어서 걍 넘어가려다.
죽자만 나와도 입단속 하던 녀석스럽지가 않아서, 설계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그냥 진행하기로 했다.
“그래, 만질래.”
“그래라.”
거부하지 않고 앞섬을 연 소녀보살의 흉부에 손을 댔다.
손아귀가 그대로 녹아들었다.
중지와 약지에 뭔가가 걸렸다.
“차갑다. 좀 더 대고 있어야겠네.”
“…….”
소녀보살이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시선을 내 손으로 한 번, 얼굴로 한 번 둔다.
뻔뻔하게 물었다.
“왜 할 말 있으면 해?”
“……진짜로 하냐?”
“하라고 안 했냐?”
“못 할 줄 알고 놀리려고 한 건데.”
“난 하라면 한다고 쭉 경고했다?”
그리고 그냥 쭉 쥐고 있었다. 뭐 더 말할 게 무언가?
내 손은 뜨겁고 소녀보살 가슴은 물에 한 번 들어갔다 와서인지 차가워서 체온을 나누는 차원으로도 기분이 좋다.
그러면서 손등은 옷깃에 가려져서 또 포근하고.
소녀보살은 당황해하지만 그래도 뿌리치진 않는다.
“물 안 들어갈 거냐?”
“아, 남자운 갚아야지, 오를걸? 봐봐.”
소녀보살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사주강화술 메시지 와 있다.
<스킨십>
당신은 이성과 육체적 교류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 교류를 나눔에는 분을 기준으로 0.05포인트의 남자운이 상승합니다.
“봐. 더 있어야 되잖아.”
“……차라리 더한 걸 해라. 이것만 하니 이상하잖냐.”
“응.”
“응?”
벼랑 끝 전술을 쓰네.
그거 내가 좀 잘 알고 있다. 잘 쓰는 놈들 연구를 좀 해서.
“그리 합시다.”
“……이게 미쳤나. 왜 이래, 갑자기?”
약지와 중지에 잠깐 걸리고 그래도 나도 의도적으로 피했던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계속 닿고 눌리지도 않는다.
“너도 내 사주 알지 않냐?”
“아, 알지.”
“가만 놔둘 거 같았어?”
“너, 생각도 겁도 많아 보수적이며 의심이 많아 쉽게 안 움직이잖아.”
파악 잘했네.
“지속적으로 어필해 오면 그것이 진심이라 믿을 수밖에 없으니 의심도 풀어지지, 네가 계속 그런 말 하니까 진심이라 여겼는데. 아니냐? 아니면 그만하고.”
“……그래.”
“어, 알았다.”
“떼라고 안 했는데.”
“그래, 라며?”
“운 잘 오르니까, 손도 따스해서 좋구먼.”
“예, 예, 저도 좋네요.”
“남자운 올리려고 이러는 거다. 오해하지 마라.”
이 녀석도 명분이 필요한 모양이다.
나도 명승 선생님 부탁을 받았다는 말은 할 뻔했지만 삼켰다.
지금은 그냥 순수하게 욕망 느꼈다고 하는 게 예의고, 그게 또 진실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