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인간 상성.
제일 다급할 설민혁에게는 바로 제안이 왔다.
내가 낸 과제 난이도와 관계없이 회사 지가 다 먹겠거니 하면서 꿈에 부풀어 있던 설민혁에게 어찌됐건 시험이 주어진다는 것이 청천벽력일 것이다.
[야, 술 한잔 먹자. 좀.]
[그냥 스카이피아 호텔 바에서 먹는 거면 내가 마신다니까. 드럽게 말 안 들어요.]
술 먹자는 제안이었는데, 접대를 암시하고 있어서 깠다.
설 회장 자손들의 로비가 이렇듯 이어지고 있었는데.
로비 관련해서는 생각이 좀 많았다.
로비를 받는 게 더 자손들을 규합시키려나?
불공정한 역술인이 되면 나에 대한 반감이 더 치솟지 않을까? 하고.
그런 면에서 일단 어떻게 하나 들어 볼 셈으로 설민혁이도 불러봤다.
“너 어디까지 알고 있냐?”
오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이거였다.
“모를 건 또 뭐야, 사주가 그렇게 생겨 먹었는데.”
“…….”
언제나 대는 사주 핑계를 대며 어디서 캐냈는지는 말 안 했다.
화류계 업종 관련 여성들이 사주를 많이 보러 오니까.
거창하게 말하자면 그쪽 휴민트가 있다.
요즈음 적대하던 설재영 쪽은 유흥가에선 하은재단 운영 부장 말고는 발견이 안 되니까, 제대로는 못 써먹었는데.
설민혁은 아예 그냥 휴민트가 있건 없건 소문 싹 돌더라.
2~30살씩 많은 스카이피아 임원진은 물론이거니와 현장이나 시공 파견직들을 그야말로 눈에 걸리면 싹 데리고 가서 친분 다지더만.
설양훈 쓰러진 이후 주류 회사 인수전 때 이후 끊었던 유흥업소 출입을 다시 시작했고.
그 명분으로 회사 사람들과 친목 도모를 하더라.
“야, 다시 해 볼 테니까, 눈 감아 줘라.”
“내가 눈 감는 게 문제가 아니다만, 김병용 엿 먹이고 네가 살아남겠냐. 그리고 너 어머니도 걱정하잖아.”
김아미와 문제가 있다.
문제가 없는 게 이상하지.
문제가 있을 거라고 나 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김아미 쪽이 스트레스나 외부 압력을 버티는 힘이 좋아서 견디겠거니 했을 뿐이지.
“아니면 네가 설득해 주면 안 되겠냐?”
“내가 왜? 김병용 씨 큰 딸 정경부인의 격이라서 너 아니어도 누구 하나 제대로 먹고살 남자 찾아서 맺어줄 자신 있다. 중매쟁이가 한 번 망쳤으니 만회해야지.”
“내가 너한테 뭘 주면 되겠냐?”
“지금 이 부탁을 너한테만 듣는다고 생각하냐? 너는 너희 누나들만큼 당장 뭘 줄 수 있는 체계가 잡혀 있질 않아.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지금 당장 뭘 내놔 봐. 뭐까지 주나 보자.”
설재영 말곤 그 집 누나들은 돈이 있어서 돈 준다고 하면 된다.
근데 설민혁은 ‘내가 받을 돈 중 뭐 가질래?’ 이런 식이라 의미가 없다.
“스카이피아 유성 호텔?”
조금 솔깃했다. 좋더라고.
“제법 크네? 근데 네가 그냥 그 집하고 혼인 신고서 받아 오지 못하면 어차피 내가 알아서 결정할 자산인데?”
설민혁은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엄지손가락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리고 한마디를 꺼냈다.
중요한 기밀 이야기인 양.
“너 우리 조카 둘 다 만나지 않냐?”
“음?”
“그 은겸이 말고 유겸이 걔랑도 같이 방 쓰고 그런다는 이야길 들은 거 같은데.”
경계하고 있었구만 이놈도 내 약점 잡을 생각도 다 하고.
가소로운데 기특하네?
주도면밀하게 만나긴 했지만 유겸이 보고 ‘데리고 살아야겠다.’ 싶었던 시점에서 행동에 거리낌 없이 다녔다.
오히려 유겸이가 숨기려고 목도리로 얼굴 가리라고 신신당부하고 안달을 냈는데.
그게 더 귀여워서 그냥 무시했다.
말만 그렇지 정말 시킨 대로 변장해서 들이닥치면 좋아하지 않았다.
“둘 다 날 좋다고 그러지.”
“……어?”
“아, 그리고 둘 다 내 여자로 만들 셈이고.”
너무 당당했는지 설민혁 벙 찐 표정 보기 좋다.
사주강화술 여자운 만렙 가면 1만 궁녀 사마염급도 되는데 뭐가 문제?
13레벨만 되어도 제후의 예에 맞춰 삼처사첩이 가능하건만.
“야, 그게 가능하다고 지금 씨부리냐? 아니, 그럼 나도 둘 다.”
“나는 되고, 너는 안 된다.”
“뭐? 야, 난 왜 안 되냐?”
“그게 됐으면, 너는 이미 후계자였고 내가 이 그룹 후계자 결정할 위치까지 안 올라왔겠지?”
“야 또 아가리 터네, 너 걔네들 둘을 만나는 시점에서 너도 X나 개망나니 아니냐?”
양가의 규수, 돈과 관련 없는 만남 등 반박할 거리 넘치지만.
그 둘을 그런 식으로 국한시켜 표현하고 싶지 않다.
그냥 물타기도 못 하게 박살내야지.
설민혁은 주워들은 풍문인 것 같지만, 나는 보내 버릴 수 있다.
4P드립이 누가 시초인데 단순 비교가 되는 것도 웃기지.
“한 가지 더 말해 줄게, 그 도깨비 신부 아가씨한테 이 인근 교회나 이런 곳에 베이비 박스라고 아기가 안전하게 하루 이상 버티고 종교 시설에 입적되게 하는 시스템이 있다.”
“……!”
“네가 아주 막 나가는 인간은 아니야. 그리고 궁합이 그쪽보다 김아미 쪽이 더 잘 맞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전직 여고생 아가씨와는 청산했지만 너는 그럼에도 그 충동은 잘 못 참아 사고를 쳤을 가능성이 높다.”
“……너, 너 진짜 사람 붙이냐?”
“김아미 쪽도 궁합은 끈덕져서 포기는 안 됐겠지만, 유흥을 가거나 그 여자앨 만나는 문제로 크게 쌈박질도 했을 테고 너네 아버지 그렇게 된 이후에 회사가 손아귀에 다 들어오겠구나 싶어 에이, 그깟 년 하며 방치하다가 이 난리가 났을 건데.”
“……허”
“전직 여고생 아가씨랑 결혼할 각은 절대 안 나오고, 돌아가고 싶은 심리가 있다. 거기다 너네 엄마가 보는 눈이 의외로 정확하거든. 그러니 권한 거다. 할 말 있냐?”
나는 정보도 얻지만 정보와 사주를 토대로 소설을 쓰고 연상하는 것에도 조예가 있다.
사주와 정보가 소재가 되고, 그 소재에 보편성을 더해 전개하되 설민혁 같은 매운맛 막장 캐릭터라 자극적인 걸 섞으면 지금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야, 그럼 둘 만나는 방법은 있냐? 넌 존나 당당하네? 나만 이런 고민해? 영감탱이는 몇 명을 만나는데 나는.”
“그걸 묻는 시점에서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
“너는 한다며?”
“너는 하면 안 된다가 인생에 새겨진 놈이고, 나는 그래도 된다고 허용된 인생이다.”
“존나 불공평한 인생이네, 말이 되냐?”
“말이 되지, 사주가 다르거든. 즉 그릇이 다르다는 거다.”
“이런 X발 그놈의 사주.”
네 입을 봉인하는 데는 최적의 명분이지 않냐?
안타깝겠지만 그놈의 사주가 사람의 그릇을 더 나아가 계급을 가른다.
아니, 정확히는 그 그릇을 사람들에게 납득하게 만든다.
이건 절묘하게 짜여진 신분사회 정당화의 이데올로기였고.
현대사회엔 사람은 평등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이들의 기대에 무자비한 팩트 폭격을 담고 있다.
근데 이놈은 아니지, 나보다 더 잘 타고 태어났다. 그건 확실하다.
단지……. 내가 더 운명의 최선의 길이 어딘지 알고 골라 걸어, 역전했을 뿐이지.
“네 아버지가 너랑 나를 대하는 것만 봐도 차이가 날 거 같지 않냐?”
“그래, 대체 너는 왜 그 영감이 그렇게 해 주는 거냐?”
“한마디만 하자.”
“무슨 말.”
“네가 그 영감 아들이 아니었다면 지금만큼이라도 관심을 받았을 거 같냐?”
“…….”
설민혁은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거기다 대고 더 퍼부었다.
“그걸 따내서 서민 자식 주제에 이 시대에 손녀들과 결혼하네 마네 하는 새끼하고 그걸 타고났으면서도 퉤 하고 뱉은 새끼하고 같아 보이진 않을 거야. 눈깔이 아무리 삐었어도.”
심지어 눈시울까지 붉어진다.
물론 민혁이 놈이 가여운 건 안다.
오히려 나 같은 아무 관계없던 서민 자식이 나았을 수도 있다.
첩의 자식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 취급으로 자랐을 테니.
그치만 그게 절대선이고 옹호 받아야 할 무조건 적인 사연은 아니다.
물타기를 넘어 발라 버릴 수 있는 내용으로 날 공격하길래 마땅히 발라 줬는데 심각해졌네.
좀 달래야겠군.
“그거 아냐?”
“어, 뭐?”
“유독 내가 줘 패면 아무 말도 못 하고 맞고 있지 않냐?”
“내가 맞아 준 거…… 라고 생각 안 하냐?”
목소리가 떨리는데 끝까지 체면은 차리려 드네.
내가 사주나 사주강화술을 토대로 타인의 우위에 서고 그들을 통제할 권력을 부릴 생각이 없진 않다.
하지만 강화술을 쓰지 않아도 근원적으로 그게 되는 고양이와 쥐 같은 궁합이 존재한다.
이건 그냥 타고난 것을 활용하는 것이다.
“아니, 그냥 선천적으로 형이 나한테 발리는 인생으로 태어난 거야. 형이 딴 사람은 이길 수도 있어. 근데, 나는 못 이겨.”
그래도 동요하는 거 같아서 수습할 겸 존칭 썼다.
“왜 그런 거냐? 시발, 그러게. 야, 아버지 따였다는 말 들으니 맞네. 네 말대로.”
이 물건은 표현이 참.
“사주부터 강한 거지, 그러니까 덤비지 말고 그냥 도와 달라 그래.”
“어?”
“못 이길 존재가 있다는 걸 우선 인정해, 형네 아빠 같은 사람 혹은 나 같은 그냥 사주 상성 상 앞서는 놈한테 내가 밀린다는 걸 말야. 그리고 그 사람한테 인정을 받아.”
“…….”
“우월한 존재의 인정을 받게끔 행동하면 그들이 편이 되어 줄 거고 그렇게 편이 된 사람들이 네 행동에 그래 괜찮다. 그래 잘했다. 칭찬을 해 줄 거다.”
설민혁의 울분의 근원은 자기보다 우월한 자의 인정이 없었던 것이다.
그 인정을 오롯이 아랫사람과 못한 사람들, 그리고 배 아래 깔려 신음하는 여자들에게 베풀어 얻어와 풀리지가 않았고.
그러므로 ‘해도 되나?’ 싶은 것의 기준이 없었다.
이걸 자기가 우월한 자가 되어 풀려고 꿈은 품었지만 그 목적과 수단이 잘못되었다.
베풀어 봤자 채워지지가 않고 평생을 공허할 것이고.
그에 따라 지금처럼 애정 관련 문제를 계속해서 일으키겠지.
“그러면, 아, 이건 하면 안 되지. 이건 그러면 안 되는 거지. 내가 이러고는 있지만 이건 잘못이지. 아, 난 그들을 실망시킬 잘못을 범했어, 나보다 고강한 존재가 인정해 주지 않을 행동을 해 버렸어.”
“…….”
“이런 본인 마음속 부정의 소리가 수그러든다. 그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짓, 하면 미움 살 거 같은 짓이라 하면 안 될 거 같은 일 등에 대한 고민이 기준을 정해 주는 사람으로 인해 없어져.”
“그러냐?”
“그러니까, 실망하지 말고 내 얘길 듣고 따라. 법을 어기지 않는 한 꾸짖지 않을 테니.”
때리기야 하겠지만.
김병용이 나름 그런 우월한 이로서 포지션이 있었지만.
그 양반은 타인을 편하게 대하는 친화력 때문에 의외로 아주 쓴소리 못 하고.
딸내미 빼앗긴 이후부턴 그냥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렸다.
“하……. 이 어린놈의 새끼한테 이런 소리나 듣고 나도 시X 막장이다, 그치?”
“그럼 그 옳은 소리 하는 어린놈의 새끼한테 기면 된다.”
길 수밖에 없던 상성의 인간이 날 깎아내려서 같은 선상에 두고자 하니까.
힘이고 뭐고 뛰어넘은 명분의 차이, 인생과 운명의 차이를 보여준 것뿐이다.
“무섭긴 하네. X같은 놈. 너 왜 반박이 안 되냐. 사주 배운 거 말고 뭐 있냐 너?”
이놈은 발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욕을 하네.
“다른 건 몰라도, 여자 둘 갖겠다는 근거 없는 패기 하나는 귀감 갈 걸?”
“너 처음에 나 4P한 거 이야기 듣고 개 부러워하지 않았냐?”
“그걸 1년 만에 노력해서 따라잡고 자신감 있게 시행할 능력이면 두렵지 않냐? 네가 나였으면 설양훈이 손녀들 만나 보라고 할까?”
“……그러네.”
역시 약점은 아버지였구만, 짐작은 했는데.
속내를 꽁꽁 감추고 파고들만 하면 개소리로 끊고 해서 여기까지 발라내지 못했다.
“인정받지 못하는 인생이면 더 굽혀라. 울 때 울고, 무릎 꿇을 때 꿇고 때리면 맞고 그렇게 괴롭히던 누나들한테도 동등한 형제로 인정받았잖냐.”
“비참한데.”
“네 아버지한테도 미안하다고, 그리고 네 짝이 될 애한테도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널 낮춰. 그러면서 그들이 너한테 원하는 기준을 세워 주고. 그걸 맞춰 주어 그들이 누그러지는 걸 봐라. 그러면 분명 나아진다.”
우월한 자의 인정이 없다면 타인을 우월하게 만들면 된다.
“그렇게 안 되면?”
“안 될 리가 있냐? 그거 겸손이라고 하는 거다.”
한마디로 정리해 줬다.
서사를 풀고, 좋아 보이는 단어 하나로 정리해서 임팩트를 준다.
“나 겁나 스스로 낮추지 않았냐? 잡소리해서 혼나고.”
“회장님 아들이 하는 망나니 짓에 우스꽝스런 연출을 겸손이라고 하지는 않는다만? 주책이지.”
“……그러냐. 뭐, 어떻게 하는데 그놈의 거.”
“모르겠으면 내가 세워 줄 기준에 다시 수긍하고 따르면 된다, 네가 생각할 필요 없이 말야.”
“나는 생각하지 말라? 그거면 된다고? 네 기준은 다 옳아?”
“너보단 잘 맞지, 넌 네 생각대로 잘 된 적 있냐?”
그 증명은 이미 다 했다.
“하하하, 아하하하, 하아.”
설민혁은 힘이 빠진 채 너털웃음을 지었다.
왕 회장 아들로 누군가 제대로 섬겨 본 적 없는 놈한테 못 가지고 동경하는 것을 주입했다.
되는 놈을, 이기지 못할 놈을 따르는 것도 때로는 인생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내가 그 이기지 못할 놈이었으며, 될 놈도 되었으니 제압 못 할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