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186화 (186/211)
  • #186. 아버지가 되었다.

    설양훈은 모략은 잘 짜는데 디테일이나 발상이 기발하진 않았다.

    “아니……. 이게 그 죄송한데, 회초리를 여러 개 한 번에 분질러 보아라 전래 동화랑 뭐가 다르죠?”

    “아무래도 그렇지요? 내 그래서 선생한테 자문을 구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설 회장님 순수하시네.

    라고 말하긴 좀 그래서 더는 언급을 피했다.

    이상은 그럴 수 있다. 현실이 시궁창일 뿐이지.

    “거…… 음.”

    아버지가 죽었을 때 자식들에게 교훈을 주면서도 화목하게 만들 방법이라.

    ……그런 게 있냐?

    원래 부모 죽으면 자식들은 더 불화한다.

    형제운은 사주강화술에도 이르기를 라이벌이다.

    돈 뺏고, 부모 뺏고, 같이 살 집에 공간 뺏고,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사주가 이르기로는 부인, 남편도 뺏는다.

    형제는 ‘겁재’라고 해서 재, 재물을 겁탈한다.

    외동에 비해 형제가 있으면 자기가 부모한테 받을 재물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산을 쥐고 있을 때도 부모 죽을 때를 가정해서 죽어라 싸울 건데.

    하물며 부모가 없으면 유산 등으로 중재가 불가능하니, 더 불화한다.

    안 보고 사는 경우가 왜 흔하겠어.

    윗 형제가 부모의 역할이나 구심점의 역할을 대신 수행해 주는 경우에만 좀 불화의 씨앗이 없는데, 설양훈 자식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냥 안 하시는 게 어떨까요. 공모자도 너무 많아서 새어 나갈 가능성도 높고.”

    “선생만 알아채지 않았어도 이러진 않았을 거예요.”

    “그냥 연기가 완벽하지 않으신 건데요. 매수를 몇 명을 해야 합니까? 의사 양반들이 특히 도와줘야 되는데.”

    눈썰미가 좋았던 덕에 설양훈의 모략에 동참해야 했다.

    설양훈은 원래 그럴 생각으로 나도 속이려고 소한에 깨어났어도 아픈 척을 쭉 해 왔던 것인데.

    내가 그걸 바로 맞춰서 별수 없이 생각을 바꿨다.

    그러니까, 눈 떠 날짜랑 시간 보자마자 죽은 척을 하면서 자기 애들이랑 나까지 한 번씩 간을 볼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근데 눈썰미가 나빴어도 아마 설양훈이 방문했을 때 나 툭툭 치면서 ‘깨어났어요. 선생.’ 하면서 물어봤을 거 같다.

    왜냐?

    이상론에 휘말려 모략이 구리다.

    ‘형제끼리 힘을 모으면 여러 회초리를 구부러뜨릴 수 있다’ 전래동화 교훈대로 자기 자식들에게 시사점을 남기고픈 모양인데.

    본인도 좀 아닌 거 같은지 나한테 좋은 방법 없냐고 재촉이다.

    모략이 구린 것도 그렇거니와.

    모략을 꾸린 지 오래되어서 이미 아는 사람이 많다.

    노승환 알지, 나 알지, 요양 보호사 한 분 알지, 의료진은 셋이나 알고 있다.

    원래 비밀리에 진행되어야 하는 일은 아는 사람이 많으면 잘 망한다.

    “억대 주면 됩니다. 이미 확약받았어요.”

    “와, 이 연극에 억대를 태워요?”

    “나 죽으면 이 돈 어디다 쓰겠어요.”

    할 말 없네.

    돈으로 나 못 붙든다고 선언해 둔 찰나라 그럴 거면 나 주쇼. 하기도 그렇고.

    주치의, 그리고 VIP 병실들 회진 돌던 의사 양반, 이 병동 책임 의사분까지 알고 있는데.

    동참해 주기로는 의견은 맞춘 모양이다.

    진짜 죽었다고 하면 장례를 치러야 되는데 살아 있는 양반으로 그럴 수도, 장례를 몰래 치를 수도 없으니까.

    뇌사 판정으로 하고, 상속 정리 목적 연명 치료를 지속하는 쪽으로 시나리오를 짰다.

    의사들이야 상관없을 거 같다.

    뭐, ‘아, 오진이었네요. 죄송.’ 이걸로 끝내면 되니까.

    진짜 오진도 아니고, 호흡기 떼도 멀쩡히 숨줄이 붙어 있는 데다.

    죽을 사람 멀쩡할 거라 한 오진보다, 죽었을 사람 살아나십니다! 하는 게 의사들 입장에서도 부담이 덜하겠지.

    “근데 부모가 죽는다고 자식들이 화합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구심점을 잃은 자식들이 파편화되지요.”

    “파편화라도 됐으면 싶군요. 붙어 있으면 그 난리 구석으로 싸울 테니.”

    “그리고 사실 어차피 나 살았다, 이놈들아 하면서 나타날 거 아닙니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냥 싸움 유도밖에 안 됩니다.”

    “민혁이 놈 때문에 선생이 간다고 하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관심을 그냥 민혁이한테 보여 주시면 된다고요. 아이고, 참말로.”

    아, 영감 맘은 약해졌는데 고집은 더 세졌어.

    그리고 원래도 하려던 거 같은데.

    내가 관두겠다는 걸 명분 삼아서 압박까지 한다.

    설양훈이 진짜 경각에 달해 곧 죽겠다고 하면 모르겠는데 사주로 볼 때는 최소 8년은 더 멀쩡할 거 같다.

    그 이후로는 거동은 불편해지지만 살아는 있을 거 같고.

    “선생 말씀대로 내가 죽었다고 하면 뭔 짓을 벌일지 나는 그게 눈에 선합니다. 그 화합을 말하는 놈을 밀어줄 생각이니까 그렇지요.”

    그 생각이 괜찮은 것 같다만.

    영감이 뜬금없이 철없는 이상론을 밀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절대 그럴 수가 없다.

    “민혁이 주십시오. 어차피 주시고 한 몇 년 지켜보실 수 있으니까. 지금 결정하실 일도 아닙니다. 자식들한테는 하하, 아빠의 몰래카메라다! 이걸로 수습하시게요?”

    “안 어울리지요?”

    “예, 오글거립니다.”

    “내가 몇 년을 지켜본다는 보장이 있으면 그놈을 왜 밀겠습니까?”

    “저는 그 외에 적임자 없다고 봅니다. 스카이피아 생각보다 더 마초적이더라고요. 딸들 주면 무조건 전문 경영인 내세워서 대리 경영하고 돈 퍼다 다른 사업할 겁니다. 이건 확신합니다.”

    이 집 딸들 많이 봐서 안다.

    설재영이 특히 최악이다. 돈 어디 쓰는지도 모를 종교 후원, 중동에 교회 짓기 등등으로 말아먹을 사람이다.

    모스크를 지어 줘도 모자랄 판국에 교회 짓기는 대체 뭔지.

    “그래요?”

    “아니면 뭐, 설윤환 씨 불러서 쓰시게요? 제가 보기엔 출소할 때까진 사십니다. 안 그래도 쓰러지셨을 때…….”

    민혁이 놈을 내가 까긴 했지만 대안이 없는 게 문제다.

    요즘 보면 오히려 감옥 보낸 설윤환이 출소할 때까지 살아서 기적적인 부자 화해를 이루고, 물려주려나 싶은 생각도 든다.

    설양훈 쓰러진 이후 설인훈과 정기상, 설재영이 속한 충청권 유력인사 모임인 충청 포럼에서 대권의제 및 충청의 현안 정치 과제로.

    ‘설윤환 전 본부장.’ 사면을 정치권에 요구한 적도 있었고.

    “충청 포럼 것들이 헛짓거리를 하고 있군요. 그러면 설인훈이는 부르지 마세요. 괘씸한 놈.”

    물론 설양훈은 대단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최악으로 싫어하는 사람 같다.

    뭐, 자기 감옥 넣으려는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혈육이라 하더라도.

    “수도권 집중투자로 따내고 회사를 이전하자는 사람의 정견이 충청인들의 염원을 담아낸 정견도 아닐 텐데요. 일부 엘리트층들이 호도하네요.”

    “자식들에 이리 인물이 없으니.”

    “손자 손녀들에게 기대를 거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 그치만…….”

    설양훈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선생은 어떻습니까?”

    “캬, 재벌을 훔친 역술인 멋있네요? 안 합니다.”

    솔깃한 척하면서 들을 가치도 없다는 양 배제했다.

    ‘자식들이 능력이 없으니 네가 취해라.’이건 그만큼 믿는다지, 진짜로 가져가라 그건 아니다.

    옙, 감사, 하면서 받으면 X 될 것이다.

    “단호하네요. 농담 같이 들립니까?”

    “핏줄을 속이면서까지 타인의 신뢰와 자산을 받으려면 그 사람에 대한 완벽한 지배와 세뇌가 되어야 하는데, 어르신이오?”

    “선생은……. 사주 그 이상의 뭔가가 있어요. 주사위의 6만 나오지 않는다는 게 허튼소리가 아닌 듯합니다.”

    “그러십니까?”

    “나도, 이런 내가 안 믿깁니다. 주문을 외우면 몸이 회복되는 느낌에, 나도 애들도 감추던 정환이 비밀도 알아내고, 아예 그 범인까지 잡아낼 정도에, 그 재영이 녀석이 미워하던 사람에게 빌게 만들었다는 게 그래요. 너무 신기해서 보니. 그 말이 다 맞는 것 같더군요.”

    이 영감까지 왜 이래.

    원래 그러긴 했는데, 뭔가 더 의존하고 매달리는 느낌이다.

    한 번 크게 다쳐서 레벨이 확 떨어졌나? 수명운과 활동력이 줄어들기는 한 모양인데.

    “그런 말씀은 마시고, 그럼 이런 방법은 어떻겠습니까?”

    지금은 뭔 말을 해도 받아들여 줄 거 같아서, 전략을 꺼냈다.

    이미 의사들이나 요양보호사 등에게 돈 지급으로 사고는 쳤으니, 최대한 설 회장 의도대로 성공하게끔 꾀를 내는 게 내가 할 일이다.

    * * *

    어찌 됐건 설양훈의 뜻대로 거짓 정보를 퍼뜨려 설양훈 자식들을 소집했다.

    병원 내에 호텔마냥 의학 세미나 등을 목적으로 조성된 대관 가능한 시설이 있었고.

    설 회장이 뇌사 판정을 받아 연명 치료 중단 및 후계 정리와 관련해 가족들이 모여 의논을 해야겠다는 연락을 모두 취했다.

    죽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의료진에서 가족들에게 전달한 상태였고.

    나는 모이기로 한 병원 세미나실에서 미리 자리 잡아 기다렸다. 자식들이 속속들이 왔다.

    “오셨습니까.”

    “와야지요.”

    설윤영이 가장 먼저 도착했다.

    표정이 무섭고 덤덤해서 안부 한 마디를 건넸다.

    “율환이는 뭐, 잘하나요?”

    “여행은 희한하게 가고 싶다고 해서.”

    “아, 진짜 보내셨어요? 잘하셨네.”

    어, 설재영도 왔네.

    현재는 불구속 수사받고 있다.

    법원이 변호인 재선임 및 이혼소송 관련해서도 방어권을 보장하고 기다려 주는 사회명망가니까.

    별수 없지.

    그리고 와야지.

    “오셨습니까.”

    “그렇게 됐네요.”

    “공손하게 말씀하세요. 경건한 자립니다.”

    “예…….”

    저 아줌마 골려 먹는 재미가 있다.

    무릎 꿇린 거 알진 못하는 설윤영이 뭐 잘못 본 표정이다.

    설재영 뒤로는 거의 같이 도착했지만 일부러 텀을 두고 들어온 듯한 설정환 가솔들.

    구예련과 설은겸이 같이 왔다.

    세미나실에서 주차장이 보이는데, 은겸이 차와 설재영 차가 같이 들어오더라고.

    “아.”

    “어.”

    맏며느리 구예련과 장손녀인 설은겸이 날 보면서 지나친다.

    나 보면서 어머니는 슬쩍 웃지만, 은겸이는 또 눈물 흐른 자국 있다.

    화장 안 해도 예뻐서 망정이지.

    “데려와도 되지?”

    “안녕……. 하십니까.”

    “예, 어머님.”

    그다음으로는 설민혁이 석영인과 함께 왔다.

    아들놈은 당당한데, 민혁이 어머니는 설재영, 설윤영을 인지하자마자 눈 내리깔았다.

    이어서는 못 보던 여성이 한 명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이랑은 들어봤는데, 김나경이라고 설 회장 둘째 며느리다.

    설윤환 부인.

    설윤환과의 슬하에는 2녀가 있다.

    설윤환은 재혼이라 그 슬하 아이들은 나이가 어린 편이다.

    설윤환은 올 수가 없고, 그래도 가족들이 모여 회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봐서.

    어차피 쇼를 할 것 불렀다.

    민혁이 엄마를 보는 시선 그 이상으로 싸늘하다. 공공의 적인 가족인 모양.

    마지막으로는 설혜영이 왔다.

    확실히 수영 선수 출신이라 등빨이 좋고 40대 초반으로 세대가 차이난다.

    사위들은 모두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돈 욕심들 없을 사람들은 아니라 오고는 싶었을지 모르지만, 사이가 안 좋고 이혼소송도 걸어왔으니 부인들이 막았겠다.

    친정 돈을 나누는 자리일 건데, 사이 안 좋은 남편들에게 알리고 싶지도 않을 테고.

    그 덕에 자리의 모두가 딸 아니면 며느리, 그것도 아니면 손녀나 후처로.

    설민혁이만 청일점이다.

    “다 오신 것 같네요.”

    “예에.”

    장녀가 진행해야 할 건데, 입 꾹 닫고 있어 둘째 설윤영이 대답한다.

    “예,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 아마 여러분의 아버님이자 할아버지셨을 설양훈 회장님을 이제는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눈물들은 있었다. 내 울보가 울고 그 울보가 우니까 그 집 엄마도 훌쩍이고.

    의외로 설재영, 설혜영 등에게서 터졌는데.

    저 둘이 처한 상황이 여간 상황은 아닌지라.

    그래도 장례식장 분위기는 아니다.

    다들 짐작을 했던지, 아니면 분배받을 기대감이 더 큰 지는 모를 일이겠다.

    “여기 모이신 분들은 설양훈 회장님의 직계 후손들이십니다. 회장님은 본디 10여 년 전에 이미 은퇴를 하시고 장남이신 고 설정환 회장님에게 승계를 마무리 지으려 하셨지만, 우리 설정환 회장께서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이후엔 고심해 오셨습니다.”

    은겸이 입술 잘근 하는 거 보이네.

    평생의 한이겠지.

    여러 사람을 두고 말하는 거라 시선을 여럿을 보긴 봐야 하는데.

    좀 보기 싫은 사람은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 보고 싶은 건 당연해서 좀 자주 보게 된다.

    “전문 경영인 등에게 맡겨 놓는 것도 방법이기는 하겠습니다만 설양훈 회장님은 생전에 가족에게, 더 나아가 자신의 핏줄들이 오래 생전에 구축하신 땅과 건물들을 마치 물려준 성과 영지처럼 수성하길 바라셨고.”

    다들 숨죽인다.

    안타깝지만 자식 농사 잘못 지은 설양훈의 자식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슬퍼함보다 승계를 말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

    사실 딸들도 여전히 욕심들은 있다.

    회사야 본인들 뜻대로 움직이되 전문 경영인을 세워 조종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여길 사람들이 분명 있다.

    “현대에 공정한 상속이 이뤄지는 것이 공평하겠습니다만, 법적으로 돌아가신 것이 아직 아니며 상속이란 돌아가신 분의 가업을 제대로 이어 그 이름과 명성을 오래 존속시켜 그분이 오랫동안 회자되게끔 만들 자손을 선정하는 것에 있다 스스로도 생각하셨고 그에 고심이 많으셨습니다.”

    이게 회장이 그냥 죽어버리면 유산분할 관련 소송으로 형제들이 나란히 물려받을 수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유산 다툼을 벌이고 후계자를 확정하려면 지금만 한 기회가 없었다.

    사전 상속으로 유산분할 소송에서 안전해지는 승계 자금이 마련될 마지막 타이밍인 연명 치료 구간이다.

    “그리고 회장님은 자식들을 너무 너나 할 것 없이 아끼신 마음에 이를 끝까지 결정하시지 못하셨습니다.”

    여기선 가족들이 웅성거린다.

    맨 뒷자리에 앉아서 팔짱 끼고 듣던 설민혁 표정이 ‘뭐야, X발.’이다.

    지 대관식 하러 온 줄 알았나 보다.

    “하지만 본인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실 경우를 상정하여 지침과 유서를 남기셨고. 사실 여러분들 모르셨겠지만 회장님께서 작년 가을에 잠시 의식을 찾으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남기신 영상입니다.”

    대기업 자본을 한껏 투자할 수 있는 것 치고는 그냥 개인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설양훈이 삽관을 한 채로 힘겹게 직접 육성으로 말하는 영상이다.

    본인이 하도 유서 조작을 많이 했고 나도 그 거짓 유서로 자식들 농락한 적이 있어 끗발이 안 먹힐 듯하여 부득불 영상으로 촬영했다.

    힌트일 수도 있는데 알아보려나?

    이 영상은 내가 찍었다.

    의사 양반들 말고는 이 공모자는 설양훈과 나, 노승환인데.

    다들 노인 양반들이라 영상 찍는 임무가 나한테 짬처리됐다.

    젊으니까 해야지 뭐.

    그 영상 날짜 조작 정도도 못하더라고.

    세미나실 빔 프로젝트 및 연결은 미리 해 놨다.

    수업해 본 적이 있어서 다루는 게 어렵지 않다.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그리고 며늘아기들아.]

    로 시작된 설양훈의 인사 및 개요가 있었다.

    [길게 말하지 않으마, 내가 이번에 학질에 걸려 이 모양이 된 것을 선생이 들어맞혔다. 이 아비가 평소에 이런 점괘를 믿고 행세한 것을 너희도 잘 알고는 있을 것이다.]

    [마땅히 내 나이가 늙었으니 미리 정해둬야 했지만 너희들을 모두 아껴서 차마 고를 수가 없었단다.]

    저 대사 시키느라 고생했다.

    한국형 신파가 필요하다고 설양훈 닦달깨나 했지.

    [그래서, 너희들에게 사전 상속으로 남길 내 지분과 본사, 이어 무스카트 신항만 대금은 뭐, 그래 가능하면 내가 쾌차해서 깨어나면 정리해 줄 것이지만 정말 행여나 그렇지 못한다면. 이를 물려받을 내 후계자를 선정하는 건 명관 선생에게 일임했으면 한다.]

    “……!”

    “어어?”

    저 말에 설정환 자식들에게 동요가 있었다.

    [괜히 이분을 내가 인사 총괄로 모신 게 아니다. 어리고 만만해 보인다 한들 너희들이 함부로 해서도 안 되고, 함부로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영상 내용은 초반 인사 말고 설양훈이 나를 자랑하고 띄워 주는 것에 중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니까, 제일 오글거리는 사람은 나라는 거.

    아후, 찍을 때도 쪽팔렸는데 지금은 더 하네.

    [이분을 나 대하듯, 아버지처럼 모실 것을 다짐해 줬으면 하는구나. 그리고 선생, 비록 선생이 나이가 어리나 배움이 깊고 그 배움은 옛 선현의 말씀이니 충분히 내 못난 아이들을 아버지처럼 가르치고, 아끼고, 엄하게 꾸짖어 주실 수 있을 겁니다. 반항하는 녀석은 선생이 벌을 주시고. 선생의 뜻에 맞는 녀석을 찍어 내 다음 으로 삼아 주십시오.]

    민망할 수밖에 없는 영상의 결론을 요약하자면 ‘자기는 그 역술인 전적으로 믿는다, 그 역술인이 택한 자식이 상속받을 것’ 으로.

    나한테 잘하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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