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회장이 죽었다.
운이 따르는 자에게 천명(天命)이 있다.
애석하게도 사람은 태어나면서 운을 타고난다.
사주가 아니라 부모가 누구이냐에 따라서.
이 구조가 무척 불합리해 보이지만 천명을 타고난 그들이 구축한 세상을 뒤엎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신을 만들고 전생을 상상한 것이 사람이다.
그렇다 해도, 거지 도둑놈 사주이고 부모가 쌀을 훔쳐야 먹고살 수 있는 집에서 나라 훔친 도적놈이 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세상을 살면서 하는 선택에서 무조건 옳은 길로만 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이 연쇄로 누적되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게 내가 되어가고 있었다.
“……제가 뭐 관둘 테니까 더 줘! 이러면서 떼쓰는 게 아닌데요.”
“선생은 오늘 본인 목적에 경도되어 있어서 그런지, 오늘은 날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말을 하는군요.”
“아, 그건 그렇지요. 찍으면 안 놓으시는 분.”
“나는 내가 원하는 인재와 여자를 취하지 못한 적이 없어요. 노승환이가 늙었다며 입 꾹 닫고 10년간 농성한 게 그 마지막입니다. 그마저도 70살 넘은 그 친구를 다시 불러서 부려 먹는 게 보이지 않습니까.”
설양훈이 주먹을 꽉 쥔다.
헛웃음이 나온다.
하긴 그런 사람이었다.
친구운, 지지자운, 여자운, 주거운, 재물운, 명예운, 학위운 등등에서 저레벨이 하나도 없을 사람이다.
객관적으로 자식운은 딸리는 듯 보이지만 그것까지 갖췄으면 사기지.
“말씀드렸듯이 어르신을 모시는 것에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저보다 더 해박하시고 세상을 지배하는 돈과 땅에 대해서는 범접할 수조차 없거든요. 문제는 민혁입니다.”
“민혁이 놈을 떠맡기 싫다는 이야기로 들리는군요. 일견, 이해가 가는 말씀입니다.”
“그게 뭐 내뱉은 말 수습처럼 들리겠지만 설민혁이 솔직히 하는 짓은 재밌습니다. 단지.”
분노를 숨긴 찐따 포지션인 설민혁은 그 이중성을 파악하는 포지션에 서서 관측하면 재밌는 인생이다.
이걸 사람 만들어 보좌하고 병신 짓 하는 건 뜯어말리고, 못 결정하는 건 부추기고 하는 게 골치 아플 뿐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원톱에 대한 강한 욕망이 숨어 있다.
그게 충족되지 않았기에 대신 여자를 품에 깔아뭉개면서 해소하고 살던 것이다.
“음?”
“제 운기가 너무 좋고 그럴 대운의 시기까지 맞이해 버렸는데, 그 행운의 한계가 타고난 게 좋은 민혁이보다 낫습니다. 이러면 스카이피아라는 카누가 제가 잘나서 나가는 것처럼 비춰질 것입니다. 실제 민혁이가 더 잘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원톱 스트라이커가 되기 전까지는 패스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놈인데.
원톱이 되면 독단적으로 골 욕심을 오지게 부릴 것이다.
공 만지고 있으면 원톱에게 욕먹는 인생을 살아왔을 테니까.
문제는 2선으로 있어야 할 내가 원톱에게 갈 영광을 흡수하게 생긴 것에 있다.
“비싼 외제 차 뽑아 자랑하고 싶은데, 운전기사가 더 차량 오너 같다고 칭찬 받고 사람들이 착각하는 상황, 남자로서 자존감을 다 팔았고 운전과 차량에 아예 관심이 없지 않은 이상, 이걸 견딜까요?”
“그놈이 행실이 그 모양이라, 더 그렇겠지요.”
거기다 아버지까지 이렇게 못 믿어.
“저도 역술인이라서 행실을 부각 받을 신분은 아닌데,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책이 너무 잘 팔려요.”
“하하하하하.”
종교운 12레벨, ‘내 말씀이 성서가 됩니다.’는 말 그대로 내 글과 말이 책으로 성경에 준하게 팔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정확히는 내 도덕적인 면모나 행색을 직접 보지 않고 그저 말로만 전해 듣고, 글귀로만 날 경험해도.
그 종교적 권위를 인정하고 복종 및 동조하는 사람들을 늘리는 ‘감화.’를 확실하게 해 주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그 효과 덕인지.
아니면 선거판이 무슨 아싸리 역술인, 무속인 판이 돼서 그런지.
대선 후보들부터 세계와 우리나라 위인들을 내가 보는 ‘정치인의 5분류.’로 분석한 해석 풀이집이 잘 팔린다.
보통 이런 시국에는 대권 나온다는 정치인들이 쓴 자서전이 잘 팔리는데 그것들하고 나란히 하고 있더라고.
그러다 보니 일전에 냈던 사주교양서가 덩달아 잘 팔리고.
그 덕에 설양훈이 바라던 그대로 단순 역술인 캐릭터만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선생의 위상이 높아지는 건 나도 바라는 바였어요.”
“사실, 그런 위상이 높은 자가 옆에서 섬기는 것이 더욱 승계의 요인이 되기는 합니다만. 지금은 다른 대안이 없지 않습니까? 큰누이가 몰락한 이상 민혁이한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설재영을 묘지기로 처분하고 설양훈이 이리 누워 있는 이상.
스카이피아는 설민혁 말고 대안이 없었다.
회장이 젊을 적 사고 쳐 얻은 혼외 자식과 본처 자식들의 싸움이 종지부를 짓고 나자 후처 자식이 어부지리를 제대로 얻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설민혁이 회사 내에 자신 말고 대안이 없는 현실을 인식하는 순간, 본심을 드러낼 거라 기정사실로 믿었고.
이건 사주도 그렇고, 무엇보다…….
* * *
설재영 사죄 영상을 찍은 건 박제용이기도 했지만, 보여 줄 곳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설재영에게서 시작된 아동학대 피해자인 설민혁이다.
“캬! 와, 시바! 아, 이 시X년 쳐 우는 거 봐. 와, 아하하하! 이야. 야, 뒤통수 한 대 때리지 그랬냐.”
사이다패스 맛 처음 봤는지 통쾌해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설재영이 비는 장면을 계속 반복한다.
설재영의 비리나 약점을 잡는 데는 스카이피아의 자원이 꽤 소비됐다.
건축법이나 땅 관련해서 일해야 할 법무팀도 동원됐고.
설재영이 하는 일들이 하등의 쓸모없는 일들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회적 기업을 표방하는 일들인지라.
대체할 곳들을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이 일에 설민혁의 이름을 적극 팔았다.
“와! 와, 나도 데려가지 그랬냐. 이거 직접 봤으면 더 좋았을 거 같은데. 형 성묘도 가고.”
“너 형수 꼬실까 봐 안 그랬다.”
“형수님이 존나 미인이시긴……. 야, 그건 좀 아니지 않냐? 나 미친놈 그만할라고 하잖아?”
“조카들한테 번호 따려고 한 놈이 말이 많아.”
“……조카님들한테 전해라, 그래도 삼촌이 이번에 발 벗고 열심히 도왔다고.”
이름만 판 건 아니다.
사실 설민혁은 내 입장에선 직급이 낮아서 부하 직원 부리듯 해도 됐지만.
그 자체가 설 회장의 위상이 이어지는 차기 후계자라서.
설재영의 영향력 덕에 쉽게 팔거나 지원을 끊을 수 없는 회사 내 자산 처분, 지원 변경을 할 명분도 되었고.
본인도 설재영 단죄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신의 아동 학대 자료 등을 제공해 추가 공격도 가능하게끔 했다.
실제 이성민 사장을 분리시켜도 설재영이 굴복하지 않을 경우엔 설양훈이 진짜로 모아 뒀던 설민혁 학대 증거자료를 뿌릴 생각이었다.
즉 거의 내가 했지만 날로 먹지는 않은 것.
“그걸 왜 전해?”
“미움 안 받는 삼촌이고 싶어서.”
“어휴, 등신.”
비난을 했는데, 영상 또 돌려 보는데 정신 팔려서 관심도 없다.
그런 거 재밌지.
웹소설 입문시킬까.
“야, 근데.”
“응?”
“이 X, 작은형 놈처럼 못 만들까?”
“징역이 그 정도는 안 나올 거 같은데. 왜?”
“보내자. 할 수 있잖아.”
“왜? 보내 버리고 싶냐.”
“아, 당연하지.”
“복수의 끝을 보려고?”
“아니.”
그 대답 한마디에서 바로 알아챘다.
“오, 이제 병신처럼 안 살려고?”
“너는 바로 알아채서 재밌단 말야.”
“복수면 안 도와줄까 했는데, 그럼 도와야지.”
“네가 다 조져 놨지 않았냐? 마저 조지지 그래.”
“그건 내가 결정 이제 안 하지.”
“왜?”
“비리나 뇌물로 엮어야 더 죽일 수 있거든. 문제는 그러면 스카이피아에도 여파가 있어.”
설재영 죽이기를 여기서 멈추고 묘지기에 삼는 식으로 수습한 건.
설재영이 마음껏 범법을 저지를 수 있게끔 금전을 제공한 스카이피아에도 여파가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개인 사건을 토대로 엮어 넣는 게 가능해지니 차에 치이고도 쾌재를 불렀지.
“나한텐 없을 건데.”
“아, 너야 연관된 게 없겠지, 근데 물려받을 자산 가치나 기업이 휘청일 수도 있는 소재니까. 잘 생각해 봐. 그러고도 별문제 없다면 조져버리자.”
“근데 복수면 왜 안 도와주냐?”
복수에 동참 안 하는 게 서운했나?
설재영에게 원한이 있는 이들은 설정환 가문 식솔들, 설민혁, 나로 연합은 가능했으나.
복수의 목적이 각기 달랐다.
아버지의 원수, 어릴 적 학대에 대한 보복, 살해 시도에 대한 보복.
고로 복수의 강도에는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
“네가 설재영을 확실히 보내 버려서 네 힘을 과시하고 가문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가장임을 증명하는 거면 멋있지. 설재영 솔직히 돈 쓸 줄이나 알았지 직접 벌어 본 적 없는 사람이라 회사에 도움 안 된다. 그러니 경영에 영향력 못 끼치게 극단적으로 배제하는 게 좋다.”
“아, 그래?”
“물론 그냥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집어넣는 것도 멋있다. 수십 년간 학대당해 왔던 울분을 복수로써 완성하는 거 아니냐?”
“야, 둘 다 결론은 같은 거 아냐?”
개인적 복수나, 회사 차원의 격리나 사실 목적점은 같다.
설재영 감옥에서 오래오래 있게 하기.
“그치, 근데 안 그래도 큰아들도 일찍 죽고, 둘째도 그 모양이고, 셋째도 임종 직전 못 올 거 같은 곳에서 썩고 있으면 설 회장이 상심할 거다.”
“……아?”
“설 회장이 상심한 일을 위로하려면 막내아들이 냉철한 경영가가 되었다는 것만 한 게 없을 테니까. 복수 대신 무능력한 본처 소생 자식들이 다 해 먹는 가족 경영 타파로 방향을 잡으라는 거지.”
“야.”
“왜?”
“영감이 오래 살 거 같냐? 내가 오래 살 거 같냐? 무슨 그 송장 갖고 그러고 있어, 아직도.”
헛웃음이 나왔다.
이건 군에서는 흔히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장난일 것이다.
당장 권력이 센 말년 병장과 상병 분대장급이 후임에게 거는 장난.
그런데 지금은 누워서 깨어나지 못하는 늙은 회장과 후계자가 될 자식.
장난으로 여겨지지가 않는 발언이다.
“그 영감이 너 박대한 건 알겠다만 너는 그러지 마라.”
“왜 그러지 말아야 되냐?”
“부모고 연장자고 그 영감님이 돈 물려주는 갑이지. 그리고 그런 거 따지는 거 다 떠나서, 그게 멋있지 않냐?”
“그 돈 받으면 내가 갑이잖아?”
슬슬 쎄해서, 설민혁의 반응을 보기 좋은 나만의 수단을 썼다.
박대하던 내가 형, 형 하면서 윗사람 취급하면 대단히 텐션이 높아진다.
“야, 민혁이 형 멋있네, 그래서 갑 되면 하고 싶은 게 뭐였는데?”
“영감 묘에다가 일단 오줌부터 갈기고 시작하려고.”
여기선 좀 헷갈렸다.
이건 진지한 척을 해도 맨날 섞는 미친 소리니까.
“……또 병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진짠데.”
진짜다?
그때 스친 생각이 있다.
안 그래도 개판인 설양훈의 자식운은 어쩌면 이 개망나니를 통해 끝판을 보는 게 아닐까 하고.
그리고 때리며 학대한 건 누나들만이 아니다.
아동 학대엔 엄연히 방관, 방치, 폭언도 해당한다.
짐작해 오던 건데 이놈이 눈치를 보면서 두려워하면서도 분노를 터뜨리며 속내를 감출 존재는.
아버지밖에 없다.
이어 아버지가 죽는다면 아버지가 사랑했던 것들에게 분노와 영향이 끼칠 가능성이 분명 있었다.
그리고 나도 때렸지.
* * *
설양훈에게는 에둘러 말했다.
설재영이 그리되자마자, 감춰 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고.
딸도 갈라놨는데 막내아들도 갈라놓고 싶지는 않아 전달하는 말은 많이 순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선생이 관두겠다 한 겁니까?”
그리 말하면 겁쟁이 같아 보여서 단호히 고개 저었다.
“아니오. 말씀드렸듯이 제가 운이 따르고 있어 민혁이 발라 버리는 건 문제도 아닙니다.”
이건 진실이다.
설재영보다 몇 배는 쉽다. 약점이 하도 많아서.
지금 타이밍에는 더더욱.
오롯이 한 사람만이 지켜줄 수 있는데, 그 사람과 지금 의논하고 있다.
“허허허허. 그러면 그렇게 해 버리세요. 건방진 놈.”
“문제는 민혁이까지 그렇게 끝장이 나면 어르신의 가업을 누가 잇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설민혁을 치지 않고 물러날 생각이었습니다.”
“흐음, 윤영이 움직임이 어떻던가요?”
“따님들이 건설일에 혀를 내두르는 건 이미 아실 겁니다. 스카이피아를 필요로는 할 수도 있겠지만 민혁이를 밀어 지원을 받아 남편을 밀어내고 허은율 군을 조기에 남편 회사에 등장시키고 식품 회사 경영을 차지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녀석은……. 명민하지만 취향이 확고해서. 허, 혜영이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설양훈이 활동하면 아마 제일 먼저 해야 할 게, 위자료 수백억 털리게 생긴 막내딸 설혜영 구하기일 것이다.
“정환이 막내는 어찌 보시나요?”
“아이고, 걘 애죠. 애들한텐 사주 따위로 넌 이런 길을 가야 된다며 규정하는 것 자체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요? 그런 것 치고 사주를 맞춰서 낳으라고 한 녀석인데. 허, 민혁이 그놈을 어찌해야 하나.”
“답은 간단합니다.”
“어떤?”
“아버지가 오래 사셔서 신임해 맡기고 칭찬해 주는 겁니다. 저 한테 하시는 만큼 아껴 주면 별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나는, 그놈이 크게 일 벌리지 않고 믿을 만한 보좌에게 일을 맡기게끔 그 위상을 꺾어 놓을 예정입니다. 제환공의 관중이나, 촉 후주의 제갈무후처럼 말이지요.”
영감 이런 비유 되게 좋아한다니까.
알고 맞춰 줄 수 있는 게 다행이다.
“아니 그렇게 비유하면서 띄워 주시는 만큼 칭찬해 주시면 된다니까요. 딱 눈 감고.”
“이게 그래요. 나한테는 왜 이리 못난 점만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진심으로 그게 될지 모르겠어요. 꾸짖어서 기를 죽이고 내가 믿을 만한 수하가 그놈 옆에서 윽박지르고 올바로 가르쳐줬으면 해요.”
찍은 놈만 좋아하는 성향.
설정환에 대한 극적인 변화가 오히려 놀랍다.
이건 아마, 기존에 찍었던 설윤환이 너무 X새끼니까. 반전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알겠습니다. 평생 혼만 내던 못난 자식 아빠가 미안하다 하기 그런 게 있죠.”
노인네 고집 꺾기가 여간 힘든 일은 아니니 그냥 내가 내려놨다.
“선생, 그러면 선생이 정말 관두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요?”
“아, 이 건과 별개로 직위는 내려놓을 생각입니다.”
“안 됩니다. 내가 그동안 누워 있어 준 게 없어서 그런다고 생각하고 내가 병실을 나서면 그만한 답례를 할 테니 참아요.”
민혁이 놈 커버 치기도 귀찮고, 사실 그럭저럭 회사 몇 개월 지탱하고 꾸려 온 건 맞다만.
회사 돌아가게 유지한 것과 달리 크게 공 세운 건 설인훈 아들네 하청회사랑 설재영으로 새는 돈 아낀 거 외에 없다.
흑막과 비선으로 있을 때 역술인은 가치가 있기도 하고.
정확히는 설양훈한테 나도 켕기는 짓을 해서 눈에 안 띄는 쪽으로 빠지려고 한 건데.
설양훈의 극구 반대를 들으니 왠지 다른 방식으로 쓸 모략이 떠오른다.
“아니 저는 답례, 그 지금으로도 너무 충분한데요. 괜찮습니다.”
“다신 그런 소리 못하게 은혜를 끼쳐 놓으면 선생도 그런 소리 안 할 겁니다.”
이렇게 붙들면 관둔다는 쪽이 현명하게 낙향하기 위한 강짜를 부려도 될 명분이 쌓인다.
그 강짜 중에 태업은 선을 넘는 거고.
처신을 더럽히는 방법이 가장 이롭다.
대표적인 건 재물을 탐하는 행보로 패권에 관심이 없어 보이게 하는 부정축재와.
여자에 빠진 한심한 작자 모습을 연출하는 축첩만 한 것이 없는데.
이미 그런 작자라서, 진정성 있게 연출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건 설양훈만 지지만 얻으면 그게 정말 돼? 싶은 이들의 저항감을 낮출 것이다.
이 집 가족의 대표로서 사실 상의 보호자이자, 사회적 명망가이며 돈으로 새어나가는 소문을 적극 틀어막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 * *
<입춘이 위험합니다. 이날만 넘기면 설 회장님 깨어나실 겁니다.>
이 새로 쓴 부적이 무색하게 설 회장은 사주에서 새해가 시작되는 입춘에 작고했다.
정확히는 아직 숨은 호흡기로 쉬고 있지만 돌아가신 것과 다를 바 없는 뇌사 판정을 받았다.
주치의는 연명 치료를 중단할 것을 자손들에게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