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184화 (184/211)

#184. 적도 아군도 집착한다.

연락이 끊긴 상대의 연락은 썩 달갑지가 않다.

그게 그 전에 얼마나 친했건, 무슨 사유건.

보통은 경조사이거나 좋지 않은 용건인 경우가 많다.

오히려 연말마다 사주를 묻는 안부는 반가울 지경.

내가 그 사람들에게 필요했다는 증거이고, 내 사주 감평이 잘 맞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찾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경조사 이야기는 안 하니까 나와 봤다.

“왔냐.”

“그래…….”

대학 동기 안민기다.

연락 끊긴 사이인데 회생으로 종교운 14레벨 기적을 찍은 직후 연락이 왔다.

종교는 학위, 주거, 어머니 등과 함께 사주의 주인공인 ‘나’와 ‘나에 동조하는 동료’ 들을 보태주는 역할을 하므로 친구운에도 영향을 미치는 모양.

나는 2년여 전까지는 몇 차례 잘 사냐 등등 연락을 취했는데 답이 없어서 이놈이 절교하고 싶은가보다 하며 방치했다.

사주 배운 이후로 가능하면 적을 안 만드는 처신을 한다.

상대에게 좋은 말만 하기.

이어 사주로 고백받은 상대의 약점을 감춰 주는 듯한 행동하기 등등을 하면 사람이 적이 되지는 않기에.

적극 활용해 왔다.

단지 친분이 있는 친구들 사이나 가족들에게는 격의 없이 대하는데 여기서는 트러블이 약간씩 있다.

사람들의 보편적인 반응일 것이다.

적당히 친한 사람에겐 예의 갖추고 독설을 하지 않지만, 가까운 사람에겐 막말을 하거나 맘에 없는 말까지 해 대며 과시하는 거.

사실 그렇게 가까운 사이에까지 예의를 차리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비출 곳은 거울밖에 없어서.

남들도 잘은 타박하지 않는다.

“등신.”

“나오자마자 욕이냐?”

물론 이놈한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막말은 서로 했거든.

격의를 차리던 사이가 아니어서 한심하긴 한데, 반가운 감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무슨 일이냐? 연락 존나 씹더만. 재입대했었냐.”

“왜 불렀겠냐? 맞춰 봐라.”

꼭 오랜만에 본 사람들은 내가 사주 본다고 현생을 맞혀 보라는 퀴즈를 낸단 말이지.

사주는 둘째치고 행색이나 정황만 봐도 알겠다.

“네 사주는 돈이나 여자가 부실해지면 친구를 찾기 때문에 돈이 부실해졌던가 여자가 부실해졌겠지. 부실 연애 여미새 새끼야.”

“존나 잘 아네…….”

“돈은 밥 못 먹고 월세 낼 돈 없어 달라고 하면 그냥 주겠는데, 변호사비 그런 건 안 준다.”

솔직히 말하면 한심한 놈이지만 옛정을 생각해서 돈 없어서 빌려 달라고 하면 몇 푼 주기는 하겠다.

사주강화술에 이르자면 자선……은 종교운 올리지 참.

그건 안 할란다.

“돈 아냐. 인마…….”

역시 여자였군.

이놈하고 연락이 끊길 때쯤인 2년 전에 궁합을 한 번 봐준 적이 있었다.

역술인의 말을 넘어 남의 말은 한참 뒤에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거 이렇게 맞아서 으스대는 거 별론데, 넌 들어맞고 지랄이냐.”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사주를 그냥 봐주곤 한다.

개중에 민기 놈이 내 사주를 잘 듣고 따르던 놈들 중 하나였다.

그러다 사주상, 그리고 관찰상 객관적으로 이상한 여자 친구 만나길래.

사실대로 궁합 안 좋다고 했다.

문제는 그 말을 안민기한테 전해 들은 그 여자 친구가 날 미워하기 시작했고.

거기서 민기 놈이 점차 나 있는 자리를 피하더니 아예 연락 끊었다.

‘여자 친구가 미워하니, 친구를 끊는다.’

이 사고가 좀 이해가 안 되어서 원인을 몰랐었다.

나중에 철형이 놈 건너 듣기로.

‘여자 친구가 너 밉다고 만나지 말랬다는데?’

그 말을 전해 듣고 확신했다.

확실히 정상은 아니구먼.

남자 친구의 여사친이나 여자 지인을 미워하는 강라은 같은 경우는 흔한데.

남자 친구의 동성 친구를 미워하는 경우는 뭐야.

뭐, 싫은 소리 한 사람 미워할 수야 있다.

특히 한 사람 건너서 들으면 더 그렇다.

둘이 직접 와서 궁합을 봐줬으면 ‘안 좋다’라는 말을 빙 돌려서.

‘둘이 이런 것만 조심하면, 궁합이 괜찮겠다.’ 이렇게 말했을 거거든.

그 ‘이런 것’이 아마 절대 극복 못 할 사안일 뿐이지.

“네 사주대로드라…….”

“그거 사주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냐. 누가 봐도 사주가 아니라 행실이 그랬다.”

친한 놈들이면 죄다 2~30대 남자 놈들인데.

사주 안 믿으니까, 행실을 가져다가 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사람을 판단하는데 사주가 근거가 되지 않고 행실이 근거가 되면 그건 뒷담화가 된다.

콩깍지 끼면 자기 욕은 참아도 연인 욕은 못 참잖은가.

그 덕에 나는 남의 여자 친구에게 악담한 건 아닌가, 미안하기도 하고.

거기서는 나도 신중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놈도 별 대단찮은 놈은 아니었겠거니 하면서.

그냥 방치했다.

그저 ‘여자에 미친 새끼.’ 하면서 한심스럽게만 여겼을 뿐.

그런데 이놈이 뜬금없이 불러내더니 머리 긁으면서 한마디 한다.

“그, 미안하게 됐다.”

상당히 의외의 행동이었다.

격의 없는 친구들끼리 사과를 주고받은 적이 딱히 없다.

먼저 진지 빨며 사과를 요구하거나 먼저 하는 놈이 지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런다.

“됐다, 븅신아. 여자 없이 못 살 새끼인 거 이미 알았다. 뭐 죄졌냐? 개웃기네.”

“모르겠다. 그냥 존나 미안하더라고.”

그래도 그런 사이끼리의 사과하는 말이 쉬이 나오는 것은 아니고.

뭐 피해 준 거 없으니까, 납득하기로 했다.

“연말에만 연락 오는 사람 널렸다. 한 소리 하지, 복채는 커피 이모티콘이나 보내 줘도 되지만 나 결혼하면 축의금 두둑이 들고 얼굴도장 찍으러 와라. 넌 뭐 연말 한 번 까먹은 셈 치면 되는데 뭐 이리 진지하게 똥폼을 잡냐. 오글거려 뒤지겠네.”

“그러냐.”

“그래서 걔가 사주 한 번 또 보고 싶다냐?”

“아?”

“하는 짓이 딱 부탁할 거 있는 꼬라지고, 너 주변에 톡만 하는 여자애들도 생일 파내서 나한테 사주 물어봤잖아. 새로 물어볼 여자가 있던가, 그 사귀던 여자가 사주가 궁금해졌던가 둘 중 하나다.”

“어, 어 그치. 맞어. 와 너 볼 때마다 맞추냐.”

“사람 손절해 가면서 만나고 친구보다 여자가 더 중요한 새끼에 나쁜 궁합 말했다고 날 탄압할 정도의 여자 친구면 개판은 쳐도 오래 만날 테니까.”

“맞아, 사주 궁합 좀 다시 한번 봐 달라고 그러더라. 걔도 미안하대.”

그런데 이놈 대사가 좀 이상하다.

여자가 부실해졌다는 내 말에 수긍했는데, 그 여자를 여전히 알고 만나고 있다?

“근데 처음에 부실하다는 말에 수긍한 거 보면 헤어지거나, 한 번 헤어져서 애매한 상태에 놓여 있는 거 같은데?”

“와, 씨 너……, 내 얘기 들어?”

연애 지지고 볶고 하면서 헤어졌다 다시 만나고 그럴 사람들은 사주에 빤히 보인다.

거기에 안민기는 내가 알던 놈이라 인생 패턴이 뻔하지.

“그냥 여자에 미친 놈들이 까이고도 매달리는 경우 있거든. 그리고 미친 만큼 해 주긴 잘해 줬을 것이고 그 여자애는 본디 남자를 잔소리로 다스리는 기질이 있어, 새로 만나는 상대한테도 트러블이 가득할 것이라. 만나긴 거기 만나면서 너한테 살랑거리나 보네.”

“아, 아 와. 너 가게 차렸다더니.”

“그래도 걔도 너랑 끝난 거 때문에 내가 봐준 궁합이 궁금하긴 했는갑다.”

“그 오빠 말 맞았네, 그러더라고.”

병신이, 전 여친이 된 여자가 살랑살랑대니까. 혹해서 이러고 있나 보네.

한심하지만 뭐, 납득 못할 패턴은 아니다.

재물과 옆에 있는 이성은 그 사람에 대한 가치평가 그 자체다.

능력과 유전자.

그게 세상의 평가와 평점인데 그걸 무시하겠나.

거기서 높은 평점과 점수를 못 얻으면 그 다음으로 집착하는 것이 동성 동료들의 머릿수다.

고득점 과목에서 점수가 안 나오니까, 선택과목 만점을 노리는 것이지.

“욕 오지게 했다더만 이젠 믿나 보네. 한심.”

“그러게.”

세상에 많은 적을 두고 산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미워 죽겠는 사람은 아마 설재영 아니면 이 안민기 여자 친구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가 뜬금없이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었다.

* * *

설양훈에게 보고하러 왔다.

요즘 설양훈은 자기가 죽은 뒤의 시뮬레이션 중이고.

이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어서 병문안이 딱히 필요 없었다.

몰래 문구용 어린이 장기판 정도는 숨겨서 들어오긴 하는데.

“자백하더군요.”

“……그랬습니까?”

“아니길 바라셨을 텐데 유감입니다.”

“허허……. 아닙니다. 은겸이 녀석이 제 아비 죽고 애가 심각해졌는데, 선생을 만난 이후부터는 많이 좋아졌어요. 아무리 봐도 선생이 귀인이었나 봅니다.”

“그건 사주로도 나오는 말이지 않던가요?”

“계룡 선사도 그리 말했지요. 그런데 그 친구 안 보인다던데.”

계룡 선사 그 양반, 소녀보살한테 지독한 퀘스트를 받아서 지리산에서 이 겨울에 수행 중이라고 들었다.

내가 소녀보살에게 줬었던 친구 셋, 대학 진학, 금연을 넘은 퀘스트라는데 그 나이에 그 양반 뭔 욕심이 그리 많아서 쯧.

“울면서 사죄하게 만들었고, 설정환 전 회장의 묘역 관리인으로 임용하기로 했습니다. 5년 계약으로 매일 출근입니다.”

“기발하군요.”

설양훈은 설재영을 설정환의 능참봉으로 만들었다는 말에 헛웃음을 짓는다.

“생전 인터뷰 등 조합해서 좀 더 영상 자료 등을 보충하고 제 선에서 위인전도 한 번 써 볼까 합니다. 추모관을 잘해 놨더군요. 그 덕에 처분이 쉬웠습니다.”

“허허허.”

“왜 웃으시는지?”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흔치 않았어요. 너무 쓰잘데없는 곳에 돈을 쓰는 것 아닌가. 하면서 말이에요.”

“회사는 경제의 주축이니까, 회사를 지탱하는 경제 동물들은 대부의 뜻을 헤아리기 어렵죠.”

장례 비용에 추모관 추모 공원 조성에 수십억 쓰는 행위라.

원래 이윤과 재화가 먼저 보이는 경제 동물들에겐 이런 일련의 투자도 낭비 그 이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을 것이고.

다만 나는 설정환 핏줄들에 의해 그에게 강하게 동조하고 있고.

설양훈이 하는 짓에 명분을 만들어 줘야 하는 입장의 직원이니.

“대부라, 사대부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는 인간의 생은 어느 정도 길을 타고 태어난다는 숙명론을 전공하니까. 그에 맞게 비위를 맞춰 드리는 겁니다.”

“약았어요.”

비위 나만 맞췄겠나.

그 경제 동물들이 싫은 티를 내면서 반대를 안 하니까.

영감이 찝찝해하면서 진행한 일일 것인데 나는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이라 비위 맞춘다고 선언했다.

기업에 목숨줄이 달린 사람들이 회장 심기 거스르겠는가.

이런 포지션에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말도 있는 것이다.

“솔직히 어르신께 배려받고 아리따운 그 집 따님들 없었으면 저도 죽창가를 불렀겠지요.”

“그래도 알아주니 기쁩니다.”

“가 보니 이해가 되기도 했고요. 원래 역사적 사적 같은 것에서 위업만 듣고 보고 한다면 자기도 모르게 동화되기 마련입니다. 괜히 권력자와 지도자들이 거대 건축물을 지은 게 아니지요.”

“독일에 있을 적에 본 대성당들을 볼 때마다 그렇긴 했어요.”

“원래 건설은 실용보다는 권력자의 치적을 위해서 사용되던 권력 행사의 방식이니, 경제 동물이어도 정치적 고려를 함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잘 조성하셨습니다. 저도 덕분에 꾀를 낼 수단이 생겼고요.”

“고맙습니다.”

“아무튼 여전히 내심 오빠라 여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돈을 더 벌게 해 준 사람임에는 틀림없음을 5년 정도 무지성으로 받아들인다면 학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길군요.”

“그때까지 사셔야죠.”

“그래요. 어떻던가요. 재영이 그 녀석은.”

영상을 복사하진 않았고, 묘사해서 보고했다.

설양훈한테 딸내미 무릎 꿇리고 갈구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나?

그렇게 하라고 했어도 그리하면 기분 나쁜 게 아버지다.

“그랬군요, 선생. 절대 탄원해 주지는 마세요.”

그리고 의외로 그 문제에선 대단히 단호한 게 설양훈이었다.

“아, 예, 어차피 은겸이가 그다지 그럴 생각이 없어 그냥 법무팀이나 파견해 주는 걸로 그칠 셈입니다.”

뒤통수 같지만 구치소 맛은 좀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재영이한테 남길 돈은 줄이고, 정환이 아이들한테 나눠 줘야겠군요.”

“할아버지가 되갚……. 아, 예.”

말을 그쳤다.

설양훈도 솔직히 맏아들을 길손이마냥 대한 것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한다.

“선생도 내가 죽으면 재영이가 맡기로 했던……. 그래 하은 재단을 가져 보는 게 어떨까요.”

“예?”

“적임자라고 보는데요.”

적임자이긴 할 것이다.

종교/신념/사상/도덕운 13레벨이 교황급 종교인이라 세계 각지에 교회 자산을 통제하게 되거나.

대 교육 재단의 이사장으로 곳곳에 이름을 딴 학교 시설이 있어 학교 자산을 통제하게 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신심으로 신도들이 모아 준 수도원 영지를 대대로 이어 자식에게 상속이 가능할 정도로 마음껏 영리활동을 할 수 있는 운이 열린다.

나는 14레벨이고.

“아닙니다. 이미 세간에는 독실한 스카이피아의 장녀와 야심 찬 젊은 역술인의 그룹을 두고 벌이는 십자군 전쟁이 되었습니다.”

“신문으로 본 것 같군요.”

“그런 상황에서 설……. 아 큰 따님의 자산을 직접적으로 가로챈다면 저는 불초한 집안의 망나니 여식을 가르친 게 아니라, 노년의 아버지를 꾀어내어 자식이 받아야 할 마땅한 몫을 강탈한 사이비에 그칠 것입니다.”

“선생은 스스로를 너무 저평가하는 게 있어요. 그러면 내가 사이비를 믿는 사람이란 말입니까?”

틀린 말도 아니지.

“무엇보다 말입니다.”

“음?”

설양훈이 깨어나면 해야지 하던 말이 있었다.

요 근래 내가 행동하지 않아도 갈등이 알아서 혹은 자연스럽게 봉합되는 일들이 있어, 이를 예사롭지 않게 여기다 결정한 일이다.

“……제가 이제 보좌로 남을 수가 없습니다. 어, 회장님까지는 괜찮은데 민혁이부터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민혁이가 많이 모자랍니까?”

“아닙니다. 꽁꽁 감춘 비열한 마음과 배움이 없는 것이 문제일 뿐, 충분한 자질이 되는 놈입니다.”

“그 이야길 예전부터 하셨던 것 같은데.”

광오하지만 이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문제는, 제가 탄 운명의 물살이 워낙 강해 주변 사람을 왕으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무슨?”

“그간 저는 명승 선생님이라는 스승을 만나서 사주뿐 아니라 제 운명을 직시하고 마치 운명의 앞길에 옳은 길만 뭐랄까. 주사위가 6만 나오는 길을 찾아 걸어왔습니다.”

“그래요?”

“저 1년 반만 해도 그냥 자영업자였습니다. 하루 매출 10~20만 원 버는 영세 자영업자요. 그런데 어느새 제가 이런 위치가 되었습니다.”

“잘해서 그런 게 아닙니까?”

“운명의 주사위를 6만 나오게 길을 걷다 보니, 그 숫자들이 공굴리기를 하고 저를 저절로 이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6만 나온 길이라.”

“이제 제가 하지 않은 일도 저의 공이 되며, 내가 저지른 과오는 사람들이 애써 모른 체하게 되는 데다 이젠 적당한 분수를 찾으려 해도 알아서 비범해지고 있습니다.”

즉, 운이 따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운을 강화한 것이지만.

운이 따르는 자는 사람이 따르고 사람이 따르는 자는 누군가의 밑에 있지 않으며 밑에 있기를 자처한다 해도 따르는 사람들이 위로 올려 버려.

반드시 누군가의 위에 설 사람들과 충돌한다.

이렇게 운이 따르는, 혹은 따르는 듯 보이는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토사구팽 됐다.

“선생은 원래 비범했어요.”

“심지어, 저를 죽이려 했던 어르신 큰 따님마저 저한테 순종하고 얼굴을 보려 하지 않던 절교한 친구가 내 말대로 따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자아운이 10레벨이 되면서부터 나는 뭔가 세상이 구상하던 대로 풀린다.

설재영의 극단 행동도 내가 죽지만 않으면 카운터가 가능하니까 어디 시도해 봐라 하던 거였는데 진짜 그리되었고.

내가 내 인생에 날 미워할 자들 중에 설재영과 안민기 여자 친구를 빼도.

김병용과 경선에서 붙어 낙선한 김정석 당협위원장의 연락도 얼마 전 왔었다. 도와주겠냐고.

“이러면 저는 민혁이 정도는 반드시 잡아먹습니다. 아니, 민혁이도 예사 놈은 아니니 느끼겠지요. 내가 위험하다. 반드시 여길 것입니다.”

“허……?”

“그보다 대가 훨씬 센 큰딸이 지금 감옥에 갈 처지에 놓였지 않습니까.”

“내가 직접 칼을 휘둘러야 될 법한 일을 선생이 하신 것이지요.”

“민혁이는 오히려 더……. 목줄 그 자체를 쥐고 있으니. 저는 어쩌면 화근이 될 것입니다.”

설양훈도 뭔가 짚이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보좌한다는 건 뭡니까?”

“어르신은 그릇이 훨씬 크며 노회함에 쌓인 인생의 업적을 제가 제칠 수가 없습니다. 그저 손녀들을 좀 더 사랑해 줄 수 있는 것에서 우위가 있을 뿐이죠. 고로 어르신은 주군으로 세워 모실 수 있습니다. 그 권위를 범접할 수가 없거든요.”

“그래요? 어쩔 도리가 없군요. 선생이 그리 말한다면야.”

“예, 그동안 심려를 끼친 점…….”

설양훈이 내 말을 뚝 끊었다.

“나는 그게 싫으니, 선생이 더 원하는 걸 줘서 붙들어 놔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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