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김치 싸대기.
기념관으로 설재영 끌고 와서 뭐 하나 적게 했다.
눈이 꽤 오네, 기우제 능력 재밌긴 하다.
“이거 쓰십쇼.”
“이건?”
“고용계약서.”
“무슨?”
“잔말 말고 쓰세요.”
안 그래도 스카이피아 정사원이신 설정환 기념관과 추모 공원 관리인 아저씨가 정년이 됐다.
고로 그 양반 퇴직한 이후, 설재영을 관리인, 즉 묘지기로 쓸 예정이다.
5년 계약.
닥치고 쓰게 할랬는데 읽네.
신체 포기 각서라도 되는 줄 알았나 보다.
“여, 여기서 일하라고요?”
“아니 뭐, 감방 가는 것보다 낫지 않아요? 다른 건 몰라도 탄원이랑 법무팀 지원은 스카이피아 차원으로 나갈 겁니다. 돈은 모르겠고.”
“…….”
한 5년간 이 추모관 쓸고 닦고 하다 보면 맘이라도 달라지겠지.
조성을 잘해 놨고 사실 여기 계속 있고, 업적 자랑 듣고 있자면 설정환 아저씨가 위인처럼 느껴질 거 같다.
권력자들이 조상 미화하는 기념관 세우는 게 왠지 알 것도 같다.
“이 정도는 해야 용서를 하죠. 매일 비석 갈고닦고 스카이피아와 설정환 회장 업적 영상물 꼬박꼬박 보십쇼. 성우가 더빙한 거 외우고.”
“아니, 그래요. 오빠라고요.”
“짜증 냅니까?”
내가 으름장 못 놓는 줄 아나.
설양훈 아직 안 일어났으므로 스카이피아를 전부 움직이는 전권 대리인이다.
귀책배우자로 이혼소송 위자료가 수십 수백억대로 추산되는데 그거 댈 수 있을까? 지금 상황에.
“아, 아니…….”
“설양훈 회장이 평소 아꼈기 때문에 여기서 그치는 겁니다. 생각 같아선 차로 들이박았어요.”
“후…… 예, 그러죠.”
“한숨 좀 집어 삼키지, 듣기 싫은데.”
설재영은 입 꾹 닫고 결국 계약서 적었다.
“됐습니다, 가세요. 그리고 원래 주기로 했던 합의금은 부치시고. 그러면 저는 합의해 드리고 처벌 불원서 넣을 겁니다.”
“합의금을?”
“안 줄라고요? 모피 코트랑 차 팔고…….”
기사님 월급 아끼면 되겠네, 라는 말은 안 했다.
그 기사님 직장은……. 설민혁도 이제 기사 붙이고 다닐 때 됐지.
“설정환 회장 모해위증 무고 사건 관련해서 사과한 게 합의 조건인데 그게 새어 나가길 바랍니까? 돈 받았으니 합의 봐줬다가 가장 적합하잖아요. 이것도 범죄야, 아줌마.”
아줌마, 아줌마 계속하는데 기분 나쁘라고 하는 거 맞다.
중장년 여성에겐 무조건 어머님, 누님, 누구 어머님이지.
“됐으니까 가요. 법정에서나 봅시다.”
근로계약서 작성시킨 뒤 내쫓았다.
나도 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 보내야지.
따로 추모할 시간 줬고, 당연하지만 그들이 딱히 용서하지도 않았다.
“와, 진짜 눈 많이 온다.”
산이라고 말하기는 민망한데 약간의 고지대라 반대쪽 하늘이 보이고, 카메라에도 들어온다.
유겸이가 산 유튜버들 쓰는 동영상 촬영 가능 카메라가 화질이 좋게 찍히는데 그냥 스마트폰 카메라로만 해도.
여기는 눈 오는데 저쪽 하늘은 쨍한 기상이변이 느껴진다.
한국의 겨울은 건조해서 간혹 눈이 오기는 하지만, 강수량 강설량이 적고 해가 높고 맑은 편이다.
미세 먼지만 없다면 말이다.
그래서 사진이 된다.
나도 내가 기원한 눈구름이지만 사진은 신기해서 찍는다.
“쌓인다.”
그나저나 유겸이 저거 SD카드는 비웠겠지?
SD카드 교체를 안 했다면 아마 저기 저장된 거…….
뒤의 남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설유겸 온몸이 거울에 비치는 광경이 드러난다.
저거 보고 내가 큰일 날 짓이다 싶어서 데리고 살아야지 한 건데.
조마조마하네.
“다들 울더니 신났네요.”
“안 울었어요.”
“응, 안 울었다.”
“뭘 울어요.”
이 사람들이…….
세 사람이면 호랑이도 만든다더니.
영상 촬영은 유겸이 시켰지만 녹취는 나도 했다.
조금이라도 더 괘씸하게 굴면 마저 보내 버려야 하니까.
그래도 단체로 안 울었다니까.
그나마 은겸이가 다가와 내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좋은 날인데 왜 울어요, 웃지.”
“제일 먼저 울……. 어.”
은겸이 놀리려다가 뒷목부터 등짝이 오싹해서 화들짝 놀랐다.
“아하하하하.”
“어, 안 차갑나 봐.”
그 나이들 먹고 옷에 눈 넣는 장난이냐.
“뭐, 이 나이 먹고 이런 장난을.”
“이 나이는요?”
“…….”
내가 이 자리에서 눈 털어 내기 위해 옷을 벗길 바라나?
3살 더 어리다고 정당성을 얻은 줄 아는 모양인데, 쫓아가서 자빠뜨릴까.
“죽었어.”
“으아아아아.”
한낮임에도 눈이 소복하게 쌓여서 어깨 붙들고 안다리 걸어 둘 다 고꾸라뜨렸다.
나름 검은 옷들 정장이지마는 겉으로는 벤치 코트를 입어서 잘 구른다.
그렇게 두 자매를 차례로 고꾸라뜨렸는데 차갑다며 끼약! 하고 일어난 유겸이와 달리.
설은겸은 그대로 눈밭에 누워 날 빤히 바라본다.
두꺼운 털 소재의 치마와 기모 스타킹 신은 다리가 쭉 뻗어 있다.
“헤.”
아이고야. 착한 생각.
“왜 고개 돌려요?”
“뭐, 나중에 말해 줄게.”
다 있으니까, 칭찬하기 뭐하다.
이렇게 어머니와 자매들까지 있을 때는 한 사람 지칭해 달콤하게 말하는 것보다 어머니만 칭찬하는 게 정답이다.
설은겸은 안 일어나면서 자기 배에 양손을 올리고 눈을 꼭 감은 채 말했다.
“왜 갑자기 여기만 눈이 올까요?”
“어, 그러게요.”
내가 기적을 불렀다고 뻔뻔하게 말하고는 싶지만.
진짜 믿을까 봐 안 하겠다.
“아빠가 보내 주신 거 같아요.”
“그럴 겁니다.”
그러다 살짝 팔 뻗는데, 본인도 눈치 보이는 건 아는지 이내 어설프게 손을 다시 오므린다.
피식 웃으면서 그 손을 잡아 끌어올려 일으켰다.
“아유, 선생님 이리 오세요.”
“예? 예.”
아까 구예련 무서웠다. 이목구비와 화장이 모두 강인해 보이시는데 눈빛이 어우.
그런데 지금은 아까 그 무서운 사모님 어디 가셨나 싶을 정도로 서글서글하시다.
눈매가 이렇게 올라갔다가 내려올 수도 있는 모양이군.
“아휴, 참.”
내 손 잡고 손등 계속 쓰다듬으시는데, 그거 말고 뭐 안 하시다.
“고마워요. 정말.”
“아니오, 뭘요.”
민망해 한 손으로는 뒤통수를 긁었다.
“저 여편네 뭐 그래요. 잘못 있을 테니 감옥도 보내고 망한 꼴 보는 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습니까?”
“근데, 여기서 무릎 꿇리고 죄송합니다. 올케 소리 끌어낼 수 있을 줄은 저는 상상을 못 했네요. 그게 더 어렵지 않나 생각도 들고.”
그건 그렇다.
겸연쩍은 양 겸손을 떨었지만 사실 기대하고 있던 감사 인사다.
왜 굳이 이벤트를 벌이고 설재영 갈굼까지 했겠는가.
이 사람들한테 마음의 빚을 덜어주고, 잘 보이기 위해서다.
“저 여편네한텐 남편도 암말도 못 했거든요. 분명히 동생인데, 오히려 어려워하고.”
“독한 거 보셨잖아요. 그럴 만하죠.”
“우리도 못 한 걸 선생님이 정말 다 해 주셨네요. 저 여편네 짓 같았는데 시아버지도 계시고 워낙 서슬이 시퍼레서. 참.”
고개를 끄덕였다.
장난치던 은겸이, 유겸이는 은겸이가 오히려 눈 쌓아 뭐 만들고 있고.
유겸이는 아버지 비석에 쌓이는 눈 쓸어 내고 있었다.
“눈 처음 본 애들 같네요.”
“그건, 지들이 시크한 척 그게 뭐, 흙 묻어서 더럽고 자동차 위에만 있고 우리 나이에 눈사람 만들어요? 했었는데.”
“어른인 척들을 했다?”
“뭐 저도 사모님인 척해야 해서.”
“애들이 배운 거네요. 그럼, 저게 폼이 나는구나 하면서요.”
“애들이, 저렇게 우는 것도 저렇게 웃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은겸이는 특히 괜히 애 아빠 유서를 봐 가지고.”
“예, 오늘따라 감정 표현도 좋고, 장난도 많이 치고 둘이 막 은근 내외하는 거 있었는데 그러지도 않네요. 보기 좋다. 예쁘네요.”
“그래요? 누가 더 예뻐요?”
이 무슨 흑우 백우냐.
정답은 은겸이일 건데, 질문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사주 상 감각이 발달하면 꾸밈이 좋으니 미모가 좋고.
미모가 좋으면 애정 전선의 선봉에 있으므로 연애 도사에 연애 세포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이어 자식을 아는 이는 부모만 한 이가 없으니.
여기선 사실을 장난이나 궤변처럼 피해 가는 답이 좋겠다.
“어머니가 예쁘십니다. 아휴, 어머님 닮은 따님 둘 다 주시죠.”
“푸흐흐흐, 엉큼해라.”
한 대 맞았다.
궤변에 너무 진심을 담았나?
“진지합니다.”
기왕 커밍아웃한 김에 한 번 더 강조했다.
농담이라도 예방주사처럼 사전 언급해 두면 사람들의 심리적 저항감이 내려가기 마련이다.
남자 친구 있는 걸 모르던 상황에서 ‘나 임신했어.’와.
남자 친구랑 할 말 있어, 라고 말한 다음 하는 선언은 충격의 농도가 엄연히 다르다.
“애들 아빠면 회사에 전화해서 시멘트랑 중장비 준비하라고 했을 거 같은데.”
“그런 말씀 들으신 적 있나 봐요?”
“초등학교 때 유겸이 좋다고 따라다니던 남자애 있을 때 그 말 하더라고요.”
애잖아요……. 과하셨네.
그래도 그 에피소드 하나로 알겠다. 얼마나 아껴 줬는지는.
상대가 진짜 나 같은 도적놈도 아니고 초등학생 어린애면 웃어넘길 일인데 진지 빨았다는 이야기 아닌가.
뭐, 딸바보의 흔한 진심은 담겼는데 농담으로 표현한 말이었겠지.
그런 걸 할 사람이었다면 죽을 리도 없다.
감옥 보내려는 것들 오히려 콘크리트에 담갔을 테니.
“은겸이는요?”
구예련이 귀에다 속삭인다.
“애들이 무섭다고 울었어요.”
“아, 엄마!”
물론 다 들린다.
은겸이 반박 이후에 구예련은 목소리를 더 낮게 낮춘다.
“근데 우리 선생님, 진심 같다?”
“일전 말씀대로 유겸이가 좀 그게 있는 거 같다는 게 느껴져서요. 저도 혹시 싶죠.”
“그쵸? 사주대로야.”
“아, 다른 분한테 사주 보셨다고 하셨죠?”
“그 다른 분은 이 총각이 말씨가 좋고 여자엔 진심인데 일단 주변 여자들을 노려서 절대 안 놔준다고. 여복이 많진 않은데 여자는 좋아하고 우리 애들이랑 잘 맞는데.”
“제법 잘 보는데요. 우리 애들이랑.”
우리 애 ‘들’을 강조하자, 너털웃음이다.
“어머, 진짠가 봐. 좋다는 여자마다 안 한다더니.”
제법 용하다만.
남자는 겉으로는 아닌 체해도 죽음 직전에도 양손의 꽃인 상황을 여간해서 탈피하려 들지 않는 본성이 있으니.
그냥 뭐 그것만 통찰해도 할 수 있는 말이겠다.
전 여친, 현 여친 모두 쌍방 임신시키고 목맸던 상근 후임 건규가 그랬다.
“둘 다 예쁘지 않으면 어머니께 드렸던 칭찬은 거짓말이 되거든요. 그래서 이 악물고 욕심낼 겁니다.”
“남편이면 정말 중장비 준비했겠는데, 저는 물은 좀 흔하고 김치 한 대로 봐 드릴게요.”
김치싸대기 한 방이면 대가가 싸군.
농담처럼 말씀하시는 것 같지만, ‘봐 드린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설사 저게 진심이 아니더라도, 저 한 마디는 되새길 만하다. ‘그리 말씀하시지 않았냐?’며 반격을 할 수 있으니까.
그러면 그깟 싸대기 상관없다.
“감당할 만합니다. 맛깔나게 양복과 백의를 입을게요.”
“아휴, 우리 막내가 누나들 이런 거 알면서 그 아저씨 혼내 주겠다고 하면 좋겠다.”
“누나들이 막냇동생을 통해 출혈 경쟁을 해 왔기 때문에, 요즘엔 부담스러워서 둘 다 꺼려 하며 별생각 없어 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가, 이젠 선생님한테 둘 다 그러네.”
어디서 보고 온 사주를 빗대어 말씀하시기는 하는데.
그건 자기 의견을 뒤로 감추고 말하기 위한 트릭임이 틀림없다.
* * *
어머님이 사는 밥 한 끼 얻어먹었다.
세 명이 다 쌈싸 주는 상황은 어색해서, 울 엄마도 나 어릴 적에도 그렇게 안 했는데.
그리고 곧장 서울로 올라가신다고.
“쉬다 가시지.”
“아녜요. 막내 혼자 있으니까. 얼른 가야죠.”
“나랑 있기 싫어서 그런다.”
설유겸이 전세 낸 스카이피아 VIP실에서 쉬고 가면 좋을 거 같다고 권하기는 했는데.
그냥 가신다고.
뭐, 그림이 이상한 게 몇 개 있긴 있지.
“그치, 우리 둘째가 엄마랑 있기 싫어하지, 엄마 없을 때 이상한 짓 많이 하고 싶으니까?”
“응, 진짜 이상한 짓 많이 할 거다.”
“그래, 대학교 갔으면 벌써 2학년 나이인데 어른이지.”
“작년에도 어른이었는데요.”
“재수생 어른 아니다.”
“그마안.”
엄마랑 유겸이가 티격태격대기는 하는데.
다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진심으로 싸우는 거 같지 않은 느낌.
특히 중재하던 은겸이는 정말 마음의 큰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잘 웃는다.
표정이 별로 없던 은겸이가 웃기 시작하니까.
엄마고, 동생이고 같이 웃고 장난치기 시작해서 내가 다 보기 흐뭇하다.
가족의 자리가 비고, 웃음이 비면 가족은 총체적으로 무너진다.
유서를 직접 본 은겸이는 더욱이 그럴 수밖에.
구예련이 차에 타기 전에 다시 한번 내 손을 잡는다.
인사를 먼저 건넸다.
“살펴 가십시오.”
“정말 고마워요. 아휴 뭘 더 해 줘야 할지 모르겠네. 돈은 아버님이 많이 주셨고 애들은…….”
“그냥 그런 마음만 가지고 계셔도 충분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주시는 눈빛이나 기대가 저는 좋습니다.”
“말 예쁘게 하는 거 봐.”
“아닙니다. 잘 키워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아이구, 선……. 아니, 사위이 갈게요.”
저 호칭 내가 쓰지 말라고 했는데 쓰시네.
40대 어머님이다. 장모나 시어머니로 인식될 수 있는 호칭을 일부러 피했다.
진짜 기분 좋으신 모양. 내 볼 꼬집고 가셨다.
공을 세운 만큼 리액션이 날아와서 나도 기분 좋군.
그리고 어머니 가자마자, 은겸이가 팔 꽉 잡고 안 놔준다.
밖에서 사람 있을 때는 좀 조심하더만 그렇지도 않네.
거기다 팔 잡고 빤히 바라보기만 한다.
“고마운 거 말로 해도 되는데.”
“많이 해서…… 매번 해서, 그리고 어떻게 더 고마워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겨우 그걸로 되나 싶어서.”
“겨우가 아니라서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 죽으라면 죽을 거니까.”
은겸이 표현이 가장 격하다.
의뢰자이고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죽으라면 죽겠다는 말 벌써 아버지 추모관에 이어 두 번째인데, 거의 충성맹세를 하더라고.
사실 나도 나름 뿌듯하고 뽕 차서 감사의 인사와 표현, 넓게는 보답을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셋이 다 나한테 고마워해도 보답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있고.
서로가 그 보답을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드러내진 않았는데.
은겸이는 나와 붙어 있을 명분이 충만해서 이미 ‘고마워서 해 주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길 많이 나눴다.
“저는 그저 고용해 주신 설양훈 회장님 손녀분들이 가진 원한과 회사에 대한 두려움을 풀어, 두 분 모두 회사를 이끌어갈 주역으로 거듭나게끔 트라우마 치료의 차원으로…….”
“내가 칵테일 해 줄게요. 유겸이도 와.”
내 잡소리 잘 끊네.
……가만 유겸이까지?
“나? 어, 나는, 나중에.”
“왜?”
“아, 아까 언니가 넣은 눈에 흙이랑 들어가서 찝찝하거든?”
유겸이는 엄마와 언니가 있어서 장난치는 거 말곤 많이 사리는데.
뒷짐 진 내 손바닥에 뭘 쓰고 가고, 앞서 식당에서 화장실쯤에서 마주쳤을 때 롱패딩 속 셔츠의 속단추 하나 풀고 메롱 했다.
그래도 엄마 앞에서는 자제하다가 가자마자 강한 포옹에 엉겨 붙는 은겸이 슬쩍 보는 표정이 묘해서.
내가 붙들었다.
“같이 가요.”
“엥? 눈치 없게 내가 왜요?”
“고맙다면서요.”
“……뭐야, 고마운 거랑 이게 무슨 상관인데요?”
유겸은 말만 그럴 뿐 내 손을 한참 놓질 않았다.
그리고 그냥 내가 이끄는 그대로 따라온다.
유겸이에도 내게 꼭 보답하겠다고 남긴 장문의 메시지로 띄운 편지가 있었다.
유겸이는 겨울이어도 긴장하거나 흥분할 때 손바닥에 땀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