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착한 말 난봉꾼.
“아이 몇 살이에요? 무지하게 어려 보이는데.”
“스물이오.”
“아하하하, 어머머머머, 아이고, 내 아들이 장난으로 여자 만날 나이는 아닌데.”
설유겸 보면서 울 엄마 표정이 반응이 두 가지다.
아이고, 한국인 아가씨네 싶다가, 아, 나이 듣고는 장가는 당분간 못 보내겠네, 싶은 느낌?
시골양반들이라 꽉 막혔어…….
서울서 보면 시골이지만 그래도 도청 소재지인데.
혼인율이 낮아지지만 그나마 여자애들이 결혼을 내 나이 때 하는 편인데.
아들 가진 엄마들 앞에선 자랑할 게 없었는지, 딸 가진 엄마들하고만 주로 친하게 지내서.
결혼적령기 나이를 되게 낮게 보는 편이다.
“저희 집도 결혼 빨리했으면 좋겠다고들 그래요.”
유사연애 중이라서 그런가 보다 했다.
부모님이 짓궂어서 나도 짓궂게 대하는 편인데, 나중에 걔 말고 걔 언니 데려왔다고 해 보지 뭐.
어떻게 반응하시나 보게.
“아유, 이렇게 젊고 예쁜데 더 만나 봐야지. 내가 다 말리고 싶네. 호호호.”
‘결혼 빨리했으면 좋겠다’란 유겸이 발언에 몹시 찰지게 반응하네.
“좋은 사람 보일 때 빨리 가는 게 좋겠다 싶어서요. 이보다 좋은 사람 못 볼 것도 같고.”
……연기에 도가 텄네.
실제로 그 끼는 유겸이가 더 타고났다.
표현운이 다르거든.
연기 시장의 대다수는 사랑 연기이고, 사랑 연기가 아니어도 맹렬한 감정 표출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은데.
절제됨이 보이는 은겸이는 아마 이룰 수 없는 운명이었을 수도 있다.
“대학은 그래도 나오는 게.”
“저 대학 안 갔어요.”
“아휴, 그래요? 그러면 뭐, 빨리 결혼하는 게 좋을 수도 있고 요새는 애들 다 키우고 만학으로 다니기도 하니까는, 호호호.”
아……. 엄마.
견적 다 뽑았구먼.
대학생이면 그냥 철없어서 사귀는 것이겠다 싶다가.
고졸에 사회물 먹어서 고생하는 아가씨인가 보다, 그러면 사회 진출이 이른 만큼 모은 자산이 있을 것이고 일에 지쳐 결혼도 빠르다. 등등.
사회적인 처지를 다 파악하고 대단히 좋아한다.
저, 사람 보고 견적서 뽑는 건 내가 물려받은 거다.
“허이구야, 야 거 뭐 건설사 다니는 거 맞는가 벼.”
“왜 안 믿고 그러는데요?”
“네가 뭐 건설사 취업하려면 땅 보고 다니는 거 밖에 기술이 더 있겄냐. 뭘 보고 뽑아? 글 쓴다고 문돌이에다가 선생한다고 교육학 배웠는데 건설사서 뽑아 주겄냐.”
이 양반들은 아들에 대한 객관화가 너무 잘 되어 있어.
“지역인재.”
“아, 그냐? 충남대 보낸 보람 있네. 느 엄마가 저건 뭣헌다고 전북대 안 가고 글로 가서. 외지에서 돈 쓴다고.”
엄마가 뱀의 머리 무지하게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인서울이 하위권은 됐을 건데, 가겠다고 했으면 벌어서 다니라고 뭐라 하셨을 것이다.
그릇이 작아…….
“등록금 내가 내지 않았나?”
“그러게 말이다.”
“그리고 사주도 기술인데요.”
한참 아버지와 함께 은근히 엄마 까고 있는데 안 듣는다.
나도 딱히 대놓고 잡아보지는 않은 유겸이 손 꼭 붙들고 당부하기를.
“애가 효자 아니니까, 남편이 연금도 나오고 그래요.”
엄마 뇌절 좀…….
지극정성 효자 아닌 걸 왜 파는 거야?
즉슨 내가 효자 아니니까.
시댁에 시어머니한테 사주로 갑질하는 놈이니까. 그런 갈등 없다.
는 어필에.
아버지한테 딜 튀기기까지 하시는 고도의 정치 발언이다.
연금은 부모 노후를 자식이 고민할 필요 없는 신랑감이다 어필이고.
미치겠네.
“아, 가요. 가, 여자 친구랑 둘이 있게. 쓰잘 데 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어 그려, 가게.”
“혼자 살면 뭐, 반찬 같은 거 모자라고 그러면 연락해요. 내가 보내줄게.”
“이 여편네가 주책이여 적당히 좀 하지.”
와, 울 아빠 여편네, 주책 소리 하고도 암 소리 안 들어.
아버지가 과감한 투자로 돈을 좀 만져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이건 정확히는 엄마 기분이 매우 좋다는 반증이다.
“아유, 참 예뻐라. 전주도 한 번 오고.”
진짜 끝까지 손 잘 안 놓는다.
그래도 둘이 있으라는 느낌으로 부모님이 후딱 피해 준 편이다.
유겸이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꺄르르 웃는다.
“푸흐흐흐흐, 아하하하하하.”
“울 엄마가 웃겨? 아, 웃기긴 하지.”
“아저씨네 집도 결혼시키고 싶어 난리 났구나. 그렇구나.”
“유겸 양 집은 전통적이라 그런 거고요. 유산 수성을 해야 하니. 우리 집은 뭐.”
“요즘 결혼 적령 남성 나이 만 33~34세라고 나오거든요. 아저씨 정도면 거기에 비해서 4~5살 어리구만.”
“어, 그건 음란하기 그지없어서 성적 에너지가 야설 쓰는 걸로 튀어나온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야설이오?”
어, 유겸이한테는 이야기를 안 했나?
은겸이는 안다.
그 이상을 하는 판국에 굳이 꼭꼭 숨기는 것도 이상하고.
물론 구예련을 비롯한 그 집 가족들에게는 떳떳이 밝히지는 않았다.
설양훈도 알기는 아는 모양이지만 손녀나 며느리한테는 그냥 글을 좀 쓰는 친구인데 글을 눈여겨보고 뽑았다.
등등으로 말하고 있는 모양새고.
사주로 이름을 날려서 그런지 내 옛글을 굳이 찾아 읽지는 않더라.
야설 쓰는 정체성으로 받을 공격을 우려해서 사주인 활동, 비정규직 활동으로 여러 정체성을 만들어 놨고.
그걸로도 평가받고 있어서 상관없기는 하지만.
“예, 이거저거 적어 놨지요.”
“어떻게 썼길래……. 나 볼래요.”
“직접 입으로 읊으면서 낭독하면 읽으라고 드릴랍니다. 나 퇴원하고.”
“……그럴게요. 줘 봐요. 어떻게 휴대폰으로 보나?”
엥? 안 보여주겠다는 소린데 이걸 이렇게 받아?
“글에는 욕망이 가득 묻어나기 마련이니까, 그걸 그대로 해 줄 분만 읽었으면 좋겠네요.”
“아저씨 언니 없다고 드립이 세졌는데요?”
“성탄전야에 방으로 부르니까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긴 했습니다?”
언니 없는 타이밍에 사는 곳 초대를 한 건 설유겸이라 충분히 물이 타진다.
“그러게, 그러기로 했는데 병원에서 이러고 있네요. 케이크 같이 먹을 셈이었는데.”
“이상한 건 아니라고 했으니까, 할 말이 있는 건 여기서 말해도 되지 않아요?”
“거절 안 한다고 약속하면 할게요.”
“안 합니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대하자 당황해한다.
“뭔 줄 알고요?”
“지금 보면 저한테 나쁜 짓을 할 거 같지는 않으니까. 뭐든 좋을 거 같은데요. 울면서 슬퍼해 주고, 아픈데 부축해 주고, 심심한데 옆에 있어 주잖아요. 예쁜 짓만 했는데, 예쁜 짓 하겠죠.”
칭찬받을 행동을 한 것 같다고 본인도 인식하고 있을 테니.
최대한으로 칭찬했다.
“……그 없으니까. 없는 동안은…….”
“언니?”
대명사로만 언급되는 은겸이.
“그. 아, 아니에요. 말 안 할래요. 이게 아저씨가 다쳐서 그렇잖아요? 내가 선물이랑 주려고 그랬는데 이제 없다.”
“그래요? 그러면 뭐, 당장은 안 되겠지만 올해 지나기 전에 다시 갈게요. 그럼 되죠?”
“그 몸으로요? 올해 며칠 남았다고.”
“그 생각이 날 낫게 할 겁니다.”
“……무슨 생각을.”
“초대받아서 같이 연말 케이크 나눠 먹는 상상이오?”
“전치 12주라고, 수술받고도 한참 있어야 한다면서요?”
“무척 기대되는, 그리고 날 예뻐해서 예쁜 짓만 하는 분의 기대에 맞춰서 며칠 내로 회복해 보일게요. 유겸이 업고도 뛰어다닐 정도로.”
“뭐야…….”
“기적이 일어날 정도로 간절히 원한다는 게 증명되겠죠?”
선을 못 넘을 거 같은, 본인도 넘을 수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유사 연애 놀이를 하고 있는 철 안 든 어린애 같지만.
본인이 의식하는 상대가 없을 때 시도하며 점차 여자 친구 행세를 하며 다니는 것부터는 도발이 선을 넘었다.
도발 수위가 높아지면 그에 걸맞게 돌려줘야지.
“남녀가 상대에게 서로 바라는 게 뭔지 아십니까?”
“아저씨가 바라는 건 뭔지 알 거 같은데요.”
야한 짓으로 몰겠지?
이럴 땐 맞장구 안 친다.
목적을 갖고 말하는데 만담으로 빠져버릴 테니.
“부모에 이은 기댈 곳과 편입니다.”
“저격이죠? 내 사주.”
고개 슬쩍 젓고 논지를 계속 펼쳤다.
“어미의 사랑은 맹목적입니다. 사주에 어머니운이 강한 사람은 어미의 관심에 이어 참견을 받지요.”
“내 얘기 같은데…….”
“이유는 뭐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라는 인식도 있겠지만, 여성이 남성보다 더 관계 지향적이라 내 편에 대한 관용이 대단한 편입니다.”
내 편에 대한 관용은 다른 편에 대한 배타성으로 드러나지만.
무지성 좋은 말 중이라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어머니’ 하면 일단 좋은 이미지 다 가져다 붙여서 이야기를 해야 신파가 되는 법이다.
“으어…… 관용이 어딨지? 울 엄마한테.”
“큰딸과 막내한테 대부분 유겸이한텐 남은 것만.”
“응, 응, 그렇죠.”
“뭐, 불만이 있어 그렇게 말하겠지만 유겸이가 죄를 저질렀을 때 면회를 올 사람이 아마 어머니 외에 있을까요? 내 자식은 그랬을 리 없다고 말할 분이 누가 또 있을까요.”
“……그러게요.”
큰일 할 거 같은 은겸이는 아까울 것 같다.
이 감성을 할아버지와 엄마가 동시에 공유한 것 덕에.
살짝 못 미더운 둘째에게 ‘너나 시집가라.’ 식으로 평강공주마냥 인식시킨 게 애당초…….
그 감정이 있는 유겸이한테 막 먹힐 말은 아닌 것 같지마는.
그렇다손 쳐도 부추길 생각이었다.
“사람은 살면서 어미 외에 맹목적인 내 편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혈통으로 타고나서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가지고 난 것이라.”
자주 써먹는 ‘편’의 논리를 썼다.
이상한 사람에게 빠져들어 맹목적인 사람들에게 ‘당신 잘못은 아니다.’ 하면서 상담해 줄 때 쓰는 이야긴데.
편의 논리는 인간사 어디에 짜 맞춰도 얼추 말이 되므로 사주의 육친론, 즉 가족과 운세를 같이 보는 논리와 섞어 사용하곤 한다.
“남성은 특히 힘듭니다. 남성사회는 서열로 형성되며 서열에는 경쟁이 수반됩니다. 이어 서열 사회는 감정 표현을 제거해서 서열로 형성되지 않는 친구 집단에서도 서로를 위하는 것 같지 않거든요.”
“막내가 벌써부터 그런 거 같기는 해요.”
“그래서 여성이 내 편이길 바랍니다. 선천적이고 맹목적인 어머니는 아니지만, 후천적이고 맹목적인 애정을 받는다면 남자는 자신이 살아 온 인생에 확신을 얻거든요.”
애인 없는 남자들에게 주로 써먹는, 작년까지만 해도 나한테 했던 말이다.
후천적으로 여인의 맹목적인 애정을 받아 본 사내는 그 포부와 그릇이 훨씬 크다.
낳지도 않은 여자가 편들어 준다는 것은 재산이건, 외모건, 성격이건 자부심을 가질 만한 요소니까.
“아하, 그러니까 무조건 아저씨 편을 들어 드려라 그건가요?”
“여성의 편이 되어 그녀들의 무궁한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그 남자는 이미 타인에게 공감을 살 만한 감각의 남자라는 게 증명이 된 겁니다. 이러면 편들 사람들이 넘치죠.”
“……뭐야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야?”
사주강화술과 네 행동.
“네 언니와, 엄마가 심지어 할아버지까지 편들고 있다는 자신감.”
“그러네.”
“당신은 언니와 엄마에게도 공감 받고 싶지 않습니까?”
“응……. 근데, 그게 될까요?”
“저는 되는 거 같아 보이는 게 신기하죠?”
“그러게요.”
은겸이 위상이 덧씌워진 것이라고 보지만.
“저는 당신 아버지의 발자취를 좇고 있거든요.”
“어…….”
감정의 동요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아버지 언급을 일부러 하지 않았다.
아빠도 가족으로 충분히 편이 된다.
고의적으로 배제하고 남자의 서열 사회 들먹이면서 마치 안 그런 양 약을 쳤을 뿐.
아버지들이 표현이 없다 보니 엄마에 비교해서 내 편 같은 느낌이 덜 드는 일반론을 이용했는데.
빈자리가 말해 준다. 아버지가 딱히 편들지 않았을 뿐, 자식의 든든한 축이었음을.
“아버지 또한 딸들에겐 두말할 필요 없는 긴요한 편이겠죠. 아버지를 잃어 두 딸은 한 명의 축과 편을 잃은 것이 되었고, 특히 어머니의 관심이 모자랐던 유겸이가 타격이 컸을 겁니다.”
“…….”
“저는 직업적인 입장에서 타인의 인생을 공감하고 긍정해 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직업의 입장에서 대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진심으로 긍정하기 어려운 사연들에 시큰둥해졌죠.”
“그랬어요?”
“한데 설정환 님의 사연은 무척 강렬했고 그만한 아버지가 빈 두 딸에게 짙은 연민이 느껴져 진심으로 공감하게 됐고.”
“연민…….”
“지금은 이러고 있죠.”
공로 부각.
“거기다 그 공감에 은겸이가 워낙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반응해 줘서 학습 효과가 생겼네요. 무척 기뻤습니다. 나는 공감을 주지만 상대에게선 공감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러지 않았으니까요.”
“언니는 그랬나 보네요. 그랬구나.”
침체되고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편과 공감의 이야기로 빙 돌린 결론을 말했다.
“그러니, 유겸 양에게도 그만큼의 관심이 돌아오길 바랍니다.”
“네에? 이, 이게 뭔 말이래!?”
무슨 말은, 은겸이처럼 하라는 거 돌려 말하는 거지.
난봉꾼은 하고는 싶으나 솔직히 확신이 없었다.
‘상대가 덤벼서 마지못해 그랬다.’는 의롭진 않아도 핑계는 되지만.
‘내가 먼저 들이댔다.’에서는 명분을 잃으니까.
명분론을 상실하는 행위를 의식하고 하기가 힘들다.
그게 천성이니까.
한데…….
해도 될 것 같다.
특) 당신은 12레벨을 넘은 인성운(종교/사상/신념/도덕)의 효과로 고결한 자아와 이를 따르는 사람을 얻게 됩니다.
<자아운 LV10> +2(종교, 사상 12레벨 이상 효과)
당신은 당신의 선택이 아무리 명분 없고 멋대로 한 행동이라 할지라도 인생의 선택이 반 이상 긍정적으로 풀리며, 그 행동이 악이어서 옳지 않다 하더라도 세상의 반 이상의 사람이 당신의 행동을 긍정합니다.
종교/사상/신념/도덕운이 자존감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운에 시너지효과로 보탬을 주고 있었다.
어떤 행동을 하건 내가 꿈꾸던 긍정적인 효과가 날 확률이 반절인 것이다.
그뿐 아니라.
<친구운 LV7> +1(종교, 사상 12레벨 이상 효과)
당신은 친분이 쌓인 자들과 틀어지지 않습니다. 당신의 친화력은 당신이 실망시킨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에게 당신의 긍정적인 면모를 보게 하여 당신을 보면 웃고 즐기며 어깨동무를 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이거 오른 거 보고 감명 받았다.
나는 이제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미움을 사지 않는다는 뜻이다.
종교운이 순교 직전으로 몰아넣었지만.
종교/사상은 기본적으로 나의 지원군이다.
그것도 학문이나 어머니, 주거 등의 실질적으로 지원해 주는 권리와 관계없는 어쩌면…….
진짜 신과 같은 강력한 무형의 후원자의 가호다.
마치 ‘신의 가호가 있으므로 내가 하는 일은 옳게 되는.’
그런 운이 올라 있었다.
“……아, 더워.”
설유겸은 연신 손부채질이다.
그냥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바라만 보며 웃었다.
“왜 말을 안 해요?”
“대답 기다리고 있는데요.”
“뭐, 뭐야.”
“…….”
본인이 강하게 들이대 놓고 막상 내가 들이대면 말만 긴요하게 하고 매번 부끄럼타는 것을 볼 때, 슬쩍 빠지는 핑계를 댈 거 같다.
그 핑계 삼을 만한 대사는 내 입에서 나온 말을 트집 잡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말꼬리 잡는 것 이상으로 입씨름 이기는 방법이 흔치 않으니까.
그럼…… 할 말이라는 게 얼추 짐작이 간다. 힌트 줬으니까.
기다리고 있자니 유겸이가 수습하려 든다.
“진짜, 진짜 그러면 아저씨 말대로 이번 달 내로 다 나으면, 그럴게요. 어떻게든 좋아요. 그러니까 빨리 나아요. 정말요.”
예상대로 피해 가는 발언으로 무마하려 드네.
걱정스런 말투로 진심으로 그랬으면 좋겠다는 양 말하면서.
응, 뼈 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