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154화 (154/211)
  • #154. 불신자를 믿게 하라.

    일단 웃으며 이효인을 앉게 했다.

    “커피 한 잔?”

    “아, 제가 타 올까요?”

    “아니오. 제가 내려 드릴게요.”

    상사이긴 한데, 입사 몇 개월 차인 신입이라서 대우하고 있다.

    주 업무는 사실 농땡이 겸, 비서인 은겸이랑 헛짓이지만.

    그래도 대전 명승철학관에서 사주 봐줬던 사원들이 찾아오면 상담 겸 커피도 마신다.

    술도 좀 옆에서 연구한 사람이 있어 배워 두었으므로 술도 한 잔씩 선물하고 있고.

    단골로는 다시 해외 영업팀에 발령이 난 이민준과 나를 체크하러 들어오는 정기상 아저씨, 노승환 사장 등이 있다.

    박효성은 괜히 사주 본 이야기 퍼져나가지 말라고 오지 말라고 했고.

    정기상은 넉살이 좋아서 동태를 살필 겸 온다고 본인이 스스로 그리 말하고 찾아오곤 했다.

    “어, 냄새 좋네요.”

    냄새라고 표현하네, 어휘가 고급지지 않다.

    굳이 트집 잡을 건 아니지만 누군가의 소개로 간 커피숍이면 커피 향이 좋다고 말을 하는 편이다.

    향기와 냄새는 냄새가 크게 나쁜 단어가 아님에도 차이가 있다.

    커피, 술 등을 수식할 때는 특히 차이가 난다.

    ‘술 빚는 향기.’와 ‘어우, 술 냄새.’에는 장소와 상황의 차이가 존재하니까.

    몸가짐이나 매무새는 나름 반듯한 데다가 사주 믿지 않는다는 말.

    그리고 얼핏 짐작하는 정체까지 따지고 보면…….

    도출되는 결론이 하나 있다.

    이 결론부터 박고 파고들 예정이다.

    “맛도 좋을 겁니다.”

    커피 사부님의 커피 머신과 배합비가 좋아서 커피가 무척 호평을 받는 편이다.

    정기상 왈 커피가 맛있어서 온다고.

    그게 감시지, 이 양반아.

    “어, 맛있다.”

    “이거 다크초콜릿인데 의외로 잘 어울립니다. 커피가 가진 쓴 향이 카카오 쓴 향을 잡고 초콜릿 단맛을 느낄 수 있게 해 줘요.”

    “와, 진짜네요.”

    “더 드셔도 됩니다.”

    “살찌는데.”

    “저녁 굶으세요.”

    안 믿는 사람의 경우는 사주를 들먹이면 안 된다.

    편하게 분위기 조성부터 해야 하고, 그 분위기 조성에는 먹는 게 제일이다.

    군에서도 기어이 말꼬투리 잡고 사주 안 맞는다고 틱틱대는 놈들이 있을 때는 복채로 냉동 사달라 정면 돌파해서 좋은 결과 얻었다.

    “진짜 더 먹어도 될까요?”

    “예, 다 드셔도 돼요. 준비한 겁니다. 이효인 씨 대접하려고요.”

    “그럼 한 개만 더.”

    올해 아부 탈리브 센터랑 독일 쪽 다녀오면서 초콜릿은 아프리카나 알파벳 아닌가 했던 생각이 사라졌다.

    거기다 은겸이, 유겸이가 좋은 초콜릿이나 과자는 잘 알더라고.

    그나저나 잘 먹네.

    인사 총괄자가 갑자기 잘해주면 무서워들 하던데.

    “제가 뭐, 사주로 일을 한다는 것은 들으셨겠죠?”

    “은겸 씨가 말씀하시긴 해요.”

    이효인은 고졸 회계 경리 사원 입사로 회사 정규직 중에서는 가장 연소하다.

    비정규직으로 확장하면 비서 겸업인 설은겸이 있겠다.

    그 덕에 근무처가 다른 편임에도 밥 같이 먹는 사이로 무슨 ‘다른 반 친구’ 같다고 은겸이가 말하곤 했다.

    사내 식당이 현장 파견 나갔다 온 작업복 아저씨들이 많아서 소수의 여사원들이 뭔가 뭉쳐서 먹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이긴 했다.

    “이런저런 일을 하지만 주로 사원들 멘탈, 개인적인 리스크 관리 업무를 주로 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정기 상담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걸 사주로 상담을 하신다 이거죠?”

    “그렇습니다.”

    팔을 얌전히 모아 책상 아래로 내리고 있는데, 바구니의 초콜릿을 하나 까서 더 권했다.

    “아니, 아니, 괜찮은데요.”

    “더 드셔도 됩니다. 자.”

    은겸이었으면 입에다가 넣어줬을 건데.

    그러진 않으니까 손에다 쥐어 직접 먹게 권했다.

    “아, 감사합니다. 친절하시네요.”

    “다들 친절하시지 않나요?”

    땀내 나는 아저씨들이 작업복이나 샤워하고 와서 나시 티만 입고 밥 먹는 회사에서 젊은 여직원이면 호의가 넘칠 것인데.

    선뜻 대답을 안 하는군.

    탐색이 끝났고 대충 견적 나온다.

    “그 사주라는 거, 생일로 보는 거일 텐데 인사과 자료에 나와 있지 않아요? 사원 생일 기념 케이크랑 오고 그러던데.”

    인사과 자료라.

    군에서도 주로 의심당하던 패턴이다.

    업무 보니까 권한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주로도 충분히 길을 좁혀 맞힐 수 있는데.

    굳이 미리 생일과 입사 시 낸 자기소개서 등을 보면서 맞혀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자소설을 보면서 그걸 그 사람 인생이라고 믿는 건 곤란하지.

    “그렇다면 이미 제가 인생을 다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시지 않나요?”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근데, 어, 아니다.”

    젊은 여성이 사주에 대해 부정적인 경우면 기독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신교건 가톨릭이건 사주 등의 점복학에 적대적이다? 그 정도까지는 보기 어렵다.

    일단 ‘사주를 보러 왔으니까.’ 부정적인 생각을 품지 않는 분들만 보게 되는 것이겠다만.

    그 수가 생각보다 많다.

    나도 일단 무속신앙과 사주명리학은 다르다고 일차적으로 설득하고 그게 아니면.

    신이 그 정도로 용서 안 하실 분이 아니라는 논리로 손님들에게 면죄부를 준다.

    이효인 같은 경우는 딱히 볼 생각이 없었는데, 상사가 사주 본다고 해서 불려와서 억지로 봐야 하는 경우니까.

    일 때문인 것이다.

    방송에서 사주 보는 기획으로 방송을 하는데, 호응도나 리액션이 낮은 연예인들이 있다.

    나는 그걸 보고 ‘아, 저 사람 종교 쪽 관련이 있나 보다.’ 했는데.

    실제로 종교인 가문인 경우를 좀 봤는데 그와 흡사하다.

    그러면, 사주 티를 안 내는 식으로 접근해야겠네.

    “눈치 없다는 소리 자주 듣지 않나요?”

    이효인은 화들짝 놀란다.

    “앗, 혹시 누가 그런 이야길 하시던가요?”

    필살기 중 하나지.

    신입이거나, 어리거나, 주류 성별과 괴리되어 있거나 등등.

    이질적인 존재가 사람들의 집단에 끼어들었을 경우 일을 잘한다 해도 무조건 처음에 눈치 없다고 까이게 되어 있다.

    특히 이효인은 아직도 회사에서 이질적인 존재로 남아 있을 것이므로 2년 차임에도 그런 소리를 들을 것이다.

    스카이피아의 주류인 남성 집단사회를 모른다는 말이 ‘눈치 없다.’로 귀결될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눈치가 떨어지는 사주입니다. 원인은 사주에 지원군이 어설프게 많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런 설명 안 해 주고 사주로 몰았다.

    “지원군이 어설프게 많다니요?”

    “사주 상 당신은 종교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원군이라는 것은 도회지에서 일요일마다 모이는 교인일 가능성이 높지요.”

    “아…….”

    이것도 뻔한 말이다.

    사주를 과학적인 신념으로 비토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다수가 종교적 신념을 가졌기에 공격을 하는 것이다.

    원인은?

    과학을 그렇게 파고든 사람이 흔치 않다.

    그럼에도 덤벼드는 이과 감성 넘치는 이들이 없지는 않았는데 그들이 내게 발렸다.

    이유는?

    과학이 사주를 상대해 준 적이 없다.

    종교는 다수의 교인에게 줘 터질까 봐 못 건드린다면, 사주명리학은 건드릴 필요가 있나? 싶어서 안 건드리는 것에 가깝지만.

    좌우지간 유명 과학자가 이에 대해 제대로 규정해 준 것이 딱히 없으므로.

    덤비는 놈들이 자기만의 논리를 짜서 덤벼야 하는데, 스스로 논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

    반대로 사주는 과학의 공격이 있을 것임을 예상하고 궤변을 섞어서 논리를 마련해 놓았으므로 ‘이성적인 비토자’를 농락하기가 더 쉽다.

    “왜 그런 사주인 거죠? 아니, 근거가 어디에 있어요?”

    “종교인들의 사회, 즉, 자가 집단 내에서는 최소한도로 갈등을 억제하는 편입니다. 갈등은 대부분 외부에 소요하지요. 교리와 신이라는 구심점이 있는바, 재물이 얽히지 않으면 갈등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양해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잘해 줍니다.”

    종교가 오히려 예언과 인간사 길흉화복에서 영역이 겹치니까.

    공세할 거리를 궤변이나 왜곡으로 만들어 놓은 편이라. 상대가 까다롭다.

    고로 이효인 같은 종교적인 비토자는 풍파를 피해가듯 사주를 보는 편이다.

    “아…….”

    “고로 종교 사회에 익숙한 인물은 상대의 속내를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교인 사회도 돈이 얽히면 타락해서 치열한 견제와 눈치가 있다고 보지만.

    그 근간이 돈보다는 평화와 안녕, 자선에 가치가 있으므로, 불신자 제외, 따돌림이 흔하게 발생하지는 않는다고 믿겠다.

    뭣보다 종교 집단이 사회에서 가장 가파르게 노령화되고 있기 때문에 젊은 유망주의 가치는 더더욱 높아서.

    애가 눈치가 없고 그래도 수긍하고 웃고 인사하는 교인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즉, 종교적 운세가 발달한 사주이므로 눈치가 발달하지 않았고 그로 인한 내적 고통과 갈등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와, 아…….”

    내 편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은 사회에서도 자신이 둥지 속에 보호받는 줄 알고 있다.

    그래서 종교운이 포함된 인성운이 강한 사주가 눈치 발달이 더뎌 갑갑하단 소리를 좀 많이 먹는 편이다.

    “회사는 경쟁 속에 재물을 쟁취하는 사회라 종교집단에서의 사람을 대하는 논리가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네, 네, 맞아요. 그런 거 같아요.”

    “다만 이 정도로 눈치가 발달하지 않으려면 다른 사회와의 접촉면이 적었다는 이야기로 초년의 인생의 대부분을 교회와 접해 있었을 가능성을 높이 봅니다.”

    “그, 그런가요?”

    일단 닥치고 사주 본다는 상사 앞에서 ‘나 사주 안 믿는데요.’부터가.

    신념 있고 수그릴 줄 모른다는 근거다.

    “이 경우 가족과의 연분이 특히 옅고 종교와의 연분이 매우 짙은 것으로 판단되니 종교 위탁 교육을 받지 않았나 싶네요. 부모보다 어쩌면 목사님이 더 연분이 깊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제 이야기를 들으셨어요? 아니, 누가 알려 줬나요? 제가 이력서에 아니, 이력서에도……. 그 자기소개…… 아, 거기도.”

    “모릅니다. 저는 사주 보는 사람으로서 타인의 운명을 맞히는데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손님이 직업이나 이런 걸 먼저 말하면 말씀 못 하게 합니다.”

    당연히 들었지.

    나는 이효인 사주를 봐서 이 사람을 놀래키고 그 사람의 추앙을 받으며 지갑을 열게 하기보다는.

    이 사람을 사주로 현혹시켜 활용할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그럼 쓸 수 있는 수단 다 써야지 않겠나?

    사전 조사가 되는 위치인데 안 쓸 이유가 있나?

    “안 보신 거라고…… 요?”

    “불쾌하네요. 왜 제가 봤을 거라 생각하죠? 눈치 없다는 인사팀 문서 같은 건 없고요. 제가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걸 판단합니까.”

    거짓말을 하고 있지만 불같이 화를 냈다.

    지금 나는 손님 맞는 자영업자 아니다.

    사주로 상근병 자살 맞췄다는 병장한테 용기 내 간짬뽕 한 봉 바치며 찾아온 이등병 대하듯 겁주고 사주보는 게 불가능한 위치로 보이는가?

    “그, 그게.”

    이효인이 미련했다.

    본인이 그걸 캐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의심을 하나?

    권위를 이용한 사주 감평을 요새는 주로 하고 있다.

    그럴 만한 위치니까.

    그래도 장사하면서 많이 서비스 업자의 마인드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는데 하려면 못할 것이 없어서 종종 쓴다.

    목적성을 띤 사주니 뭐.

    “믿기지 않은가 보니, 사주뿐 아니라 그냥 이효인 씨 행색에서도 포착이 가능하다고 말씀드리죠.”

    그래도 너무 화내면 나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품을 수 있으니 화낼 만한 대사에만 화내고 침착하게 대했다.

    “어, 어떻게요?”

    “일단 사주 본다는 상사 앞에서 저 사주에 관심 없다는 걸 피력하는 것에서부터?”

    “아, 앗, 죄송합니다. 진짜 죄송합니다.”

    뭉갤 수 있는 위치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물었으니.

    눈치가 없긴 없네.

    나는 사전 정보가 있으면 어떻게든 캐릭터를 뒤집어씌워서 사주 보는 이가 스스로 ‘내가 그렇구나.’ 깨닫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종교운와 관련된 운세가 강하다면 아버지 운이 낮습니다.”

    “……아버지 운이오?”

    아, 아버지 운? 이라고 굳이 되묻는 걸 보니.

    여기선 ‘하나님 아버지가 있는데요’ 혹은 ‘엄마도 없는데요.’가 나올 가능성이 높겠다.

    엄마가 살아 계신지 버렸는지까지는 내가 모르지.

    사주도 모르는데.

    “사실 종교 위탁 교육을 받았을 법한 사주에서 느낌이 오는데, 부모가 신앙이 너무 강해 자식을 맡겼을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이 사주는 부모가 없거나 약해 종교시설에서 큰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인데요.”

    딱 생일 정도만 알고 있다.

    생일은 이달의 생일자라고 사내 알림판에 종이로 갱신을 하더라고.

    태어난 시간은 묻지도 않았다.

    부모가 멀쩡하지 않으니 모를 가능성이 높아 물어 봤자였고.

    그냥도 이렇게 파헤칠 수 있는데 사주 보는 본인도 원하지 않는데 노가다 12배 하고 싶진 않았거든.

    “아, 아아…….”

    종교 위탁 교육부터는 인사과 자료로도 못 본다.

    어느 시설 생활했던 청년이 그걸 이력서와 자소서에 적겠나.

    고아는 사람들이 가엽게는 여기지만 일 잘할 사람인가? 에 대해서는 편견이 있다.

    부모가 없는 인생도 보편성을 상실하고 태어난 것이라서.

    그나마 외골수지만 잘 대해주는 목사와 교인들을 만나긴 한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남자 어른에 대한 갈망이 존재합니다. 가령 목사님이라거나 회사에서 잘해 주시는 상사라거나.”

    “남자 어른이오? 왜?”

    “교회는 전반적으로 여초입니다. 여자 어른은 충분히 겪으셨겠지요.”

    할매들, 아지매들이 많더라고.

    “아, 이건 소문 들으신 거죠?”

    이효인도 이태현 염문설을 꺼내 들었다.

    여기선 말이 통할 것이라 보고 곧장 이태현의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이태현 씨 사주를 볼 때 이렇게 봤습니다. 재관다신약.”

    “그게 뭐죠?”

    “감당할 수 없는 재물과 여자와 자식을 짊어지는 사주요. 여자와 재물이 마구 덤벼 감당이 불가능한 남자입니다.”

    “하긴, 아저씨들치고는 괜찮게 생기셨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 욕망이 많이 떨어졌더군요. 젊을 적과 달리.”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죠?”

    한창때의 바람둥이로 자식과 여자 전부를 온전히 감당 못 하는, 혹은 못 했을 사주의 한 번 갔다 온 아저씨와.

    부모 없는 사주의 여자애가 이상한 관계없이 어울린다면?

    이 두 조건이 주어졌을 때 쓸 수 있는 시나리오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즉, 두 분이 세간에 내연관계로 의심을 받았겠지만 저는 사주로 내연녀가 아닐 가능성을 높이 봅니다.”

    “아, 정말 제가 그거 때문에……. 와, 이사님은 알아주시네요, 그쵸? 저 그런 애 아니죠? 내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 그러니 남편도 탐하지 말라고 하셨단 말이에요.”

    이효인은 이제야 속사포로 분통을 터뜨린다.

    사주로 구제해 준 것 같나 보네.

    “예, 사주 상 이효인 씨는 그런 사주가 아니므로 그런 소문을 믿지 않습니다.”

    “엄청 신기하다.”

    지 좋은 말을 해 주니까 신기해 하누.

    뭐, 사주가 자길 불지옥으로 처넣을 것 같다고 경계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는데.

    보통 이렇게 현생에 빠진 고뇌를 구제하면 경계심을 푸는 편이다.

    신념이 강해도 종교도 현재의 안녕을 위해 믿는 것이고, 사주와 예언도 현재와 미래의 안녕을 위해 찾는 것이니까.

    “그런데 왜 그런 아저씨가 이십 대 아가씨한테 잘해 줄까요? 저는 그 의도를 이효인 씨가 알고 있을 거 같은데.”

    “함 어떻게 해 보려고 그러는 거 아닐까요?”

    이효인에게 집적거리는 아저씨들 좀 있다는 설은겸의 증언이었다.

    은겸이한테도 그랬다는 양반이 있는데, 설양훈 손녀란 소리 듣고는 무릎 꿇고 사죄했다고.

    “그래 보였습니까. 그 아저씨?”

    “신사처럼 대해 주시지만 언제고 그러실 수 있지 않을까, 의심하고는 있었어요.”

    “다른 가능성은 없겠습니까?”

    “어떤?”

    “가령, 이효인 양 아버지라거나?”

    “……네?”

    뜸을 들인 다음 대답했다.

    “저는 두 분이 부녀지간의 사주라 의심하고 있어서 지금 뫼신 겁니다.”

    이런 개인의 사생활은 주워들어 알게 되었다기보다.

    ‘사주’로 보니 알았다고 말하는 게 낫다.

    그편이 내 권위를 훨씬 상승시키고 신비함을 배가시키며.

    뒷정보로 사람을 캐낸다는 사실을 감추고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식은 아비를 알 권리가 있다. 그게 어머니운 1레벨, 태어나며 갖는 권리의 시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