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150화 (150/211)

#150. 위험한 초대.

스카이피아의 노승환 사장 겸 회장 대리는 백산시공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이어 서산 태안 보령 등 서해안권에서 건설시공을 담당하던 새 시공사를 선정했다.

하청을 오래 독점적으로 맡아 온 백산시공만큼의 안정성은 없지만.

백산시공은 스카이피아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줬기 때문에 가능한 재무 지표였고.

그럼에도 이번에 조사하니 빚으로 점철된 회계에 임금 단가는 최저가 외국인 노동자 일용직으로 채워져 있었고.

임금산정에도 부정이 있었다.

“이걸 다 알면서 쉬쉬했다고요? 아니, 스카이피아가 갑인데, 왜 갑질을 안 해요?”

노승환의 이마 주름이 깊어졌다.

“갑질이란 신조어가 가진 파급력이 큽니다. 선생도 기업의 임원진이니까, 언급 자체는 자제하는 편이 좋겠어요.”

쓴 지 한참 된 단어로 아는데 신조어라네.

노승환은 10년 쉬어서 그럴 수 있다. 나이도 먹었고.

“아, 그것도 그렇겠네요.”

노승환의 말이 일리가 있어 수긍했다.

나이 든 신하의 사리는 처세는 귀감이 될 만하다.

갑질과 사이다란 단어는 마음속에 몹시 깊이 인지하고 있는 것이라.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데 노승환은 그 단어 자체의 파급력을 우려했다.

내가 여전히 집착하는 소설업계에서 친숙한 단어가 기업집단의 최상위층에서는 불편한 단어였다.

“그래도.”

“예?”

“회장님 눈치를 봐 미뤘지만 벼르고 있었습니다. 뻔히 단가며 대금이며 다 아는데, 대놓고 뻥튀기를…….”

하지만 생각보다 백산시공에 대한 스카이피아 임직원들의 인식은 좋지 않았다.

“그러게요. 스카이피아에서 단가를 후려치라고 해도 모자랄 판국에 배짱 장사를 했네요.”

오롯이 회장 조카가 맡아 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특혜가 있었던 것이다.

다른 시공사나 하청들이 갑으로 받들어 모시고.

심지어 대전 충청 지역에서는 경제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대기업집단이라 정치권에서도 올려치기를 하는 기업인데.

일개 하청이 을질을 했으니 민심이 안 좋을 만했다.

단지 십수 년간 그리해 왔고, 다른 하청을 검토한 적도 없으니 뭐가 있겠거니 하고 다들 적응을 해 놔서 그리된 것이다.

“해 먹는 관행을 모르지는 않습니다만 너무 과하게 해 먹었지요. 설 회장님 다음 리더십이라면 분명 쳐내고 갈 만한 회사였습니다.”

경영이 깨끗한 것도 아니었고.

설인훈 아들 설종호는 월 수억 원의 월급을 수령 받았고, 설종호의 동생도 나와 비슷한 나이인데 이사로서 억대를 받고 있었으며.

이어 설인훈 보좌관 출신 등등이 받아먹는 돈이 많았다.

말만 업체지 사실상 설인훈 캐시 카우였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잘된 거군요.”

“그 뒤에 있는 설인훈 의원이 충청 포럼을 통해 개입하면 골치 아파지기는 할 것인데.”

“스카이피아는 지방선거 끝나기 전까진 안전할 겁니다. 저 살던 동네는 스카이피아 체급의 50분의 1도 안 되는 부실 중소기업도 기업 없는 동네라고 살려야 한다며 도민이 하나 되어 고민하고 있습니다.”

“……뭐가 없기는 없죠.”

“대전 세종 충청이 거기보단 체급이 훨 낫지만 서울에 비하면 공무원들 직장 땡겨 온 것 말고는 마땅한 게 없는 것도 현실이니까. 말 그대로 못 건드린다고 봅니다.”

“그래요?”

“충청 포럼을 위시한 지역 정치인들과 유지들이 공격을 펼친다? 꼬우니까 서울 간다고 하면 어쩔 거냐고 묻고 싶네요.”

지방 사람으로 살다 보니까 느끼는 건데.

중소기업 공장 하나만 어디로 이전한다고 해도 지역민들 반발과 정치권 압력이 거칠다.

대전 세종 충청이 전북보다야 신세가 낫다지만.

서울에 비하면 한창 뒤떨어지는 것도 사실이고 지역 일자리 문제와 직결되어 있어 더더욱 그렇다.

이루지 못한 대망론을 품고 사는 곳에서 그런 무리수를 둘 정치인은 없다고 본다.

이어 총수였던 설양훈도 양대 정치 세력에게 줄을 다 대는 처신으로 심기를 건드린 적이 없었으며.

무엇보다 대기업을 길들인다는 상징성이 매우 약해 정치적으로 효험 보기도 어렵다.

고로 정치 쪽으로 건드린다면 그 정치가가 오버하는 것이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입니다.”

“이어 아직 그룹의 총수도 결정되지 않아 기존 사원들이 현상 유지만 하고 있는 기업이니 권력이 개입해 길들여 봤자 의미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킹이 되어야, 그리하겠죠.”

또한 현재는 지도체계가 과도적이므로 정치권이 회사를 제압하려 옭아매 봐야 별 소용이 없다.

지배 가문인 회장이 큰 집에 안 가려고 부하들을 총알받이로 쓰다가 안 되면 사정기관 맛, 큰 집 맛 한 번 보고 뱉어지기 마련인데.

현재는 월급쟁이 사장과 임원들이 어거지로 꾸려 나가는 회사니까.

“저는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돌아가신 설정환 전 회장님도 추진하려던 일이었으니까요.”

“아, 진짜요?”

“뭐, 업체를 갈아치운다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걸 제 손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진짜가 아니라 스카이피아에 있어서 좋을 것 없는 빨대였으므로.

설 회장이 뒤를 봐준다는 확신만 없었으면 누구나 회사와 실적을 위한다면 갈아 치우든가 공개 입찰 경쟁을 더 투명하게 했겠지.

“다음은 하은 재단 출연금을 끊어야겠는데요.”

“재단 출연금까지요? 거기는 설재영 사모님이 있는.”

“사학비리에 이어 터질 게 많을 겁니다.”

“설마 그 기사?”

노승환은 목소리를 낮췄다.

“어, 사장님도 보셨군요.”

난리가 안 날 수가 없었다.

무슨 드라마 서술한 듯 연예면 기사 같아서 클릭 수도 많았고.

돈 많은 재벌가 회장이 그렇게까지 됐다는 소재가 너무 자극적이라.

지역에서만 난리가 난 게 아니라, 이에 덩달아 허윤식도 전국지 급에서 기사를 까서 지방지 기자의 단순 망상이나 오보가 아님을 증명해 줬다.

익명으로 적었지만 대전 충청 세종 대형 건설사 중에 차기 회장이던 큰아들이 죽은 회사 스카이피아밖에 없으니 뒤집힐 수밖에.

이득 보는 놈이 범인이다, 에 입각하여 추리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설마, 선생이 퍼뜨린 소문입니까? 설정환 회장이…….”

“그렇진 않고 사주로 본 바 병으로 돌아가실 분이 아니라서 저는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실제로도 그러신 듯합니다. 기사만 보면 의구심이 드네요.”

능청스럽게 피해갔다.

뭐, 기자를 만나는 등의 일련의 행위를 알고 있으니 노승환도 짐작하고 있을 것이나.

굳이 파 본 적은 없는 모양이다.

“이런…….”

“왜 그러십니까?”

노승환 등 다른 임원과 간부들도 예의주시하는 일이다.

뭐, 안 그럴 수가 없지.

“나는 회사 자체에 타격이 클 사안이라 생각을 해서, 묻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아, 그렇죠. 형제의 난으로 소문났던 것도 몇 년 전 일인데.”

노승환이 회사의 봉합을 위해서 반대하면 골치 아프다.

“그치만……. 설민혁 군이 아니라 선생이 하시는 일이라면 토를 달 생각이 없습니다. 틀린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아하하, 그렇습니까?”

“모르겠군요. 나는 선생을 처음 본 날이 자꾸 기억에 납니다. 밥 안 주고 길들이던 마누라도 미영이도 심지어 설 회장님도 그러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옹고집이긴 했다.

“그러니 기략이라 생각하고 믿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 사장과도 사주로 새긴 인연이 깊게 배겨 있었다.

* * *

“음악 하냐?”

소녀보살이 대전에 도착했다.

특별히 마중 나왔다. 호텔로 모실 거라.

안 그래도 수능 마치고 놀러 온다고 해서 오라고 했으나.

정확히는 일 때문에 온 것이다.

내가 계룡 선사 짬 처리를 맡겼고 그 덕에 대전의 장생학숙 분원에서 사주강화술을 녹인 사주 강의를 한다는 모양이다.

그래서 숙소를 그 근방인 스카이피아 호텔로 잡아줬다.

짬 처리 내가 시킨 거니까.

등짝에는 음악 하는 학생마냥 뭘 짊어지고 다니는데.

뭐가 들었는지 알 것 같다.

음악을 구현하는 물건보단, 살생을 구현하는 물건이 들어 있겠다.

“의를 행하는 검이 들어 있다.”

“방울은 떼고 다니니 다행이네.”

도검도 범법행위지마는 감추고 다니는 묘미를 참교육 이후 깨달은 것 같은데.

방울은 범법행위는 아닌데 오질나게 딸랑거리므로 예외다.

저 소리를 들을 때마다 과오를 정말 뉘우치는 것도 아니고.

“원래 없었다.”

“뭔 소리?”

알 거 같았지만 물어봤다.

“아니, 쌍방울 레이더스의 고장이었다!”

“그게 있을 때 태어나…긴 했겠네.”

엄한 예시를 들어 궤변까지 들먹이네.

배우면 잘할 녀석이었던 거 같아 뿌듯하다.

나도 대전 은행동 중앙로에서 삼보일배 시위까지 불러일으켜 모셨던 나이 든 야구 감독 아저씨가 거기서 감독 잘했다고 해서 알고 있다.

그때 광주 연고 야구팀 감독하던 볼 빨간 아저씨 사인볼이 집에 있기도 했고.

“수능은 어때 잘 쳤냐.”

“대학은 어째, 여기 괜찮냐?”

“지거국 갈 정도는 되는 모양이네, 야, 되면 집 가까운데 다녀.”

“이 나이에 대학은 무슨 대학이냐. 그냥 공부한 김에 쳐 본 거다.”

만학도 나이라서 하는 소리겠다만.

어려서 그런다는 소리로도 들린다.

“너 젊어졌다?”

“원래도 젊었다만. 눈치채는구나. 물론 더 젊어졌다.”

“자신감은 어디서 함양해 온 거?”

“남자운!”

“오오, 몇 레벨인데?”

많이 올렸나, 얜 좀 누구 만났으면 좋겠는데.

“2!”

“…….”

아, 첩실이거나. 첩실 취급받는 2픽 남자운으로 남편이 오래 붙어살지 않는 운명 말이지?

퀘스트 받아 올리는 게 낫겠다 싶은데, 남자운 퀘스트는 명승 선생님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그 양반하고 내가 남자운 어떻게 올리는지 퀘스트로 알아낼 이유가 뭔가?

여자운이면 모를까.

“뭐, 너 사주가 외모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으니까. 이해는 하는데.”

그런 레벨이면 관점을 연애로 잡아야 한다.

미모나 자식운을 통해 남자가 그나마 오래 참게 해야 하는 것.

“다른 건 안 물어보나? 응?”

소녀보살은 가슴을 쫙 펴고 말한다.

안 펴진다.

일부러 시선 안 두고 있다.

비쩍 마른 몸인데 어째 밸런스가 좋아진 것 같네.

내뱉는 운이 강한 녀석이라 그런지 골반은 의외로 예전부터 발달해 있었다.

내뱉는 운이 너무 세서 살 같은 게 안 붙어서 그렇지.

골격은 타고난 모양새다.

그나저나 레벨을 더 올렸나 봐. 지난 번에 볼때보다 더.

“그래서 인기는 좀 생기디? 시선깨나 끌겠는데.”

“애들 말고는 다들 고개를 푹 숙이더군. 너처럼 당당히 바라보는 남자가 처음이다.”

“……너 교복 입고 다니잖아?

“응.”

그러면 당연히 눈 깔아야지.

경찰청 신원조회로 나이 듣지 않았으면 나도 똑같았을 것이다.

* * *

“아이고, 반갑습니다.”

회사에서 정기상 교수가 웃으며 다가왔다.

내게 감정이 좋을 리 없을 텐데 웃는다.

내가 먼저 웃으며 대할 생각이었는데, 선수를 뺏겼네.

“이야, 진짜 귀감이 가는 어른이십니다. 반갑게 맞아주시니 제가 다 마음이 편하네요.”

더 큰 칭찬의 말로 돌려줬다.

“그럼 계약 해지 건을 재고해 주시겠습니까? 시간 남았어요.”

잘 파고 들어오네.

그 능청에 맞게 나도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어, 생각해 볼게요.”

“그러시다면 더 웃고 다녀야죠. 하하하. 그런 거 아니고 진짜로 반가워서 그렇습니다.”

교육자들은 여간하면 자리가 보장되어 있어 타인에게 아쉬운 티를 잘 내지 않는다.

본디 설파하는 직종이라, 위를 대하기보다 아랫사람을 대하는데 특화되어 있고.

사람을 아랫사람으로 만드는 경향도 엿보이며 총체적으로 그런 사주이다.

나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아마 재물운만 조금 더 통했으면 월급에서 십일조 내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다만 오롯이 대학교수에 이르러서는 그 경향성이 도드라지지 않았다.

대학교수진들의 사주를 많이 입수한 건 아니지만.

사람을 사주로 ‘교육자 사주’라고 분류할 수 있는데 교수들은 아닌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윗사람을 대하는데 트인 처세의 신이 많다.

“마침 드릴 말씀이 있어서 안 그래도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반갑게 맞이해주시니 염치 불구 재고도 한 번 요청드려 봅니다. 물론 제가 설 의원님과 자주 교류하기는 하나 긴밀하게 지냈다고 그러시는 건 아쉬운 결정이라 여깁니다.”

능글맞게 물고 늘어지는 능력이 내게도 감탄스럽다.

무슨 조선 시대 왕이 말하는 ‘파벌을 형성하여 조정을 분열했다.’ 등의 죄목으로 짤린 것이라 여기는 모양일세.

근데 그거 맞다.

억울하면 세습되는 기업에 다니면 안 되지.

“아이 죄송해요. 저도 뭐 이게 다 제 뜻이겠어요? 뭘 안다고.”

내가 짤랐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아 미루어 핑계를 댔다.

“사주 꽤 아시지 않습니까?”

“그거 뭐 책이나 몇 권 읽고 군인들 사주나 봐주던 수준이죠.”

그 군인들 중에 아버지 많은 오지랖 아저씨 있을 줄은 몰랐지만.

“설 의원님이 한번 모시고 싶다고 하는데, 저랑 같이 가시겠습니까.”

“아, 저랑요?”

“이사님도 충청 지역의 기린아시라 충청 포럼 등에서 유력하신 분들과 교류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왜 충청인이죠?

뭐, 충남 지역 인재에 해당하기는 한다.

졸업학교가 충청에 있으니까.

“이야, 그래요? 그러면 말씀드려 주세요. 일전에 오셨던 철학관 문을 열어놓을 테니까 오시면 상담을 받겠습니다.”

“시간 충분히 내실 수 있지 않아요? 아산이면 멀지도 않은데.”

아, 나더러 오라고?

장소와 시간을 결정할 권한을 왜 주나.

그러면 일단 그 뜻대로 말려드는 것이다.

나는 은겸이 아버지 문제와는 관계없이 그냥 설양훈이 전권을 줘서 사주로 그럴싸한 소리만 하면서 깝치고 다녀도 된다.

뭐, 어떻게 막을 건데?

책임질 필요 없는 권리만 쥔 상태인데 꿀릴 것이 없다.

“가기는 좀 바빠서요. 요즘 뭐, 이상한 기사 나와서 역술인이 개별적으로 만난다는 것도 조금 그렇고요.”

몽니를 부렸다. 어쩌나 보게.

“아, 그 기사…….”

정기상이 목소리를 낮추고 내게 속삭였다.

“알고 계시는 게 있다고 합니다. 누가 설정환 회장님 그렇게 만들었는지.”

낚네?

역시 그 기사 때문에 이러는 거였어.

솔직히 솔깃했지만…….

누가 봐도 정보를 빌미로 날 휘두르려는 속셈이다.

순수했으면 정기상을 통해 누군지 제보를 미리 하고, 자긴 아니다 억울하다 했겠지.

“저는 아는데요.”

“예에?”

“그리고 제가 형제나 가족을 권력에 힘입어 살해하는 사주를 알거든요. 그 사람이 만나자고 오라고 하면 꺼려할 거 같네요.”

정기상이 되레 놀란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봐요?

“누가……?”

정은이.

제대로 낚여 팔딱대 보라고 대답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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