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책략을 남기다.
노인네 손치고는 주름이나 핏줄이 없는 손이었는데.
그 손이 이제 비쩍 말라 주름이 많이 졌다.
정말 노인네 다 됐구먼.
“오늘 정기상 교수 집에 보냈습니다.”
“…….”
“아무래도 영감님 막냇동생이 두 아들 분을 싸움 붙이고 이득을 취한 것 같아요. 이건 제가 더 파헤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민혁이는 사외이사로 선임할까 싶어요. 뭐, 너무 낙하산 느낌이기는 한데, 상황이 비상해서 제가 욕 처먹고 그냥 밀 생각입니다.”
“…….”
“그리고 둘째 딸 설윤영 씨 이혼할지도 모른다는데 스카이피아에서 좀 키워 줄 필요가 있을 것 같고.”
“…….”
병실 바깥에서 문이 드르륵 열렸다.
밖에서 듣고 있던 설유겸이 들어온 것이다.
“아저씨가 더 손자 같아요.”
“그래 보입니까?”
들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일을 하면 설양훈에게 보고하는 의식을 거치고 있다.
의미가 없다면 없겠다마는, 제사보다는 나은 것 같다.
어쨌건 설양훈은 살아서 숨은 쉬고 있으니까.
신이나 귀신은 있을 수도 있다는 전향적인 자세이기는 하지만 신이나 조상이 사람과 후손이 방자하다고 귀신의 장난질을 벌이면 그게 무슨 신인가 싶다.
그런 건 소금이랑 팥 뿌려야 한다.
“듣기는 하시려나.”
“그럼요. 하다못해 화단의 화초도 좋은 말을 해주면 초록빛이 더 싱그럽게 어릴 건데요.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식물이라고 할 뻔했다가 우회했다.
윗사람들을 상대로 사주로 말을 붙이며 싸바싸바하는 법을 익혀 나온 덕에 실언을 잘 절제하는 편이다.
“그렇구나, 말을 진짜 잘하셔, 어쩜 그렇게 말을 잘하세요?”
“말을 하지 않으면 나 대신 다른 사람들이 혼이 나고, 그 혼난 사람들이 우리 2년간 정말 잘 지낼 수 있을 거 같다? 라고 하면 저절로 잘하게 됩니다.”
“그게 뭐야.”
탄약고 근무 2시간 서면서 사돈의 팔촌 사주까지 다 풀어서, 그게 다 중복이 없는 것처럼 패턴 다르게 꾸려내며 대사하기가 쉽지 않아.
“유겸 양도 한마디 하세요. 듣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부, 부끄럽다아.”
“저는 귀 막을게요.”
“아니, 그냥 할아버지한테 하는 것도 쫌, 쫌 그래요.”
“묘역에 몸을 뉘인 다음에 하는 그 어떠한 그리움도 위선입니다. 지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놓으세요.”
“어…….”
“또 후회할 일 남기지 마시고 한 마디, 적어도 글귀라도 남겨둬요. 돌아가신 뒤에는 전달되지 않는 거니까.”
“글귀…….”
설유겸은 목소리 톤이 차분해졌다.
“아니면 잘하는 그림도 좋고. 아, 그러고 보니 유겸이 하는 일 없죠?”
설유겸에게 그림을 권했다가 순간 오글거리는 이벤트 몇 개가 스쳐 지나갔다.
“네? 아, 아니 그래도 나름 그림 연습이랑은 하걸랑요?”
그거 말고는 논다는 이야기지.
말이 비서지 그냥 손녀의 할아버지 면회다.
그 말을 듣고 병상의 설양훈에게 한마디 더 했다.
“아, 그리고요. 둘째 손녀 유겸이가 아주 엉큼하더군요. 부모님과 회장님이 싸잡아 걱정하던 게 이해가 됩니다.”
“아, 아니에욧?!”
언성 높아지자 쉿! 제스쳐인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올리기를 시전하고 마저 읊조리듯 말했다.
“제가 잘 교정시켜서 사람 구실 하게 만들어 보겠습니다.”
“내가 사람이 아니야?”
놀리는 거지.
“조만간 동굴 안에 가둬 놓고 쑥과 마늘만 먹게 할 겁니다.”
“어, 그런 다음 키스해도 되죠?”
“…….”
침묵하며 눈을 반쯤 치켜뜨고 바라봐 주었다.
섹드립을 너무 못 치네.
곤란해 봐라! 하고 던진 거 느껴지는데, 너무 안 곤란해서 놀랐다.
설유겸은 절로 고개가 떨궈졌다.
몹시 민망해하는 게 느껴져서 출구전략을 줬다.
“그것만 먹는다고 사람이 되는 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웅녀는 하늘의 아들의 자손을 낳아서 사람으로 인정받은 겁니다. 사람을 낳을 수 있어야 사람 취급이죠.”
“와, 어쩜 이렇게 다 그런 식으로 몰아가지?”
“그만큼 세상의 모든 일화와 설화가 그리 해석될 여지를 가졌다는 것이고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사였다는 거겠죠.”
설유겸은 민망한지 화제를 돌렸다.
말발로 못 이길걸.
사주가 절대적이라 생각은 안 하는데 설유겸은 사주의 영향력이 짙은 여성이라.
느낀 대로 바로 표현하는 성질이 있어 그 허점을 포착하는 나한테 화술로는 안 된다.
“근데, 왜 출근 안 하세요?”
설 씨가 설민혁과 설윤영을 임원진 인사로 단행하고 8명의 재계약은 없다는 것을 통보한 것으로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출근 안 하고 있다.
‘행동에는 정반합이 있으니까요. 특히 해고, 계약 해지 등의 부정적인 조치를 내린 다음에 그 흉흉해진 분위기는 정면으로 맞는 게 아닙니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러세요.]
‘아, 수습은 제가 할 거니까, 혹시 이와 관련해서 이의 있는 사람들은 유성구 특임 고문 사무실로 오라고 해 주십시오.’
그럼에도 책임을 미루는 것처럼 보일까 봐.
꼬우면 오라고 선전포고는 날렸다.
이어 나머지 두 탁고 지도자들에게도 당근을 건넸다.
나머지 여섯 자리 중 두 자리씩 노승환과 오원술의 추천을 받기로 했다.
그 양반들은 사람 물갈이하는 거 보고 크게 놀랐다.
1년 계약으로 돌아가는 사내, 사외이사 자리라지만 그동안 이렇게 큰 인사변동은 없었다는 모양.
그거에 걱정하는 두 사람에게도 줄 게 필요했다.
자기 사람 심을 수 있는 자리들.
하지만 두 자리는 내 몫으로 비워 뒀다.
그 두 자리 중 하나는 사용할 곳이 있고, 나머지 하나는 나도 사람 심는 데 쓸 생각이다.
그리고 마침, 기다렸던 사람이 도착했다.
타이밍의 설윤영이라고 해도 될 정도일세.
“여기 계셨군요.”
“네, 여기 있었습니다.”
설윤영이 설 회장 묵는 병원으로 날 찾아왔다.
자주 방문하는 사람이라 장소를 알려 주자 흔쾌히 찾아왔다.
“일단 고맙다고 해야겠네요.”
이번 새 이사 선임 건으로 감사 인사를 건네는 것이겠다.
“별말씀을요. 그저 아버지의 뜻이니까, 아버지 뵙고 손 한 번 꼭 잡고 쓰다듬으신 다음 사랑한다, 한마디 남기고 오십시오.”
“……그래야 하나요?”
“네.”
단호하게 대답했다.
설윤영 아줌마가 그렇게라도 사는 것은 죄다 아버지 덕분이다.
동년배의 대다수의 아주머니들은 갱년기 즈음하여 이해 못 하는 남편한테 ‘이 여편네가 미쳤나.’ 소리나 듣고, 무관심 아들, 아줌마들 기준 발랑 까진 딸에 심지를 태우고 산다.
다만 그렇게까지 까고 들어갈 건 아니고.
까려면 빈틈을 주고 망언을 날려야 그거 하나 트집 잡아 갈구지.
설윤영은 나한테 약점을 노출시킨 뭔가가 없다.
남편 발라 버리려는 거?
그건 뭐, 저 나이 아줌마들의 보편적 정서라서.
“그러면 뭐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아서 불안한데요.”
“그래도 하십시오. 남의 아들딸들이 서로 아버지로 모시고 싶어 안달 났고 수십 살은 어린 남의 딸들은 아예 아버지가 아닌 지아비로 모시고 싶어 하는 분입니다.”
“후, 이거야 원, 죄다 옳은 소리만 하시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알겠어요.”
설윤영은 병실 면회를 들어갔다.
뭔 말을 하는지는 듣지 않았다.
설마하니 몸져누운 아버지한테 욕을 퍼붓지는 않겠지.
설유겸이 옆에 있어 평을 한다.
“와, 와아아, 고모가 아저씨한테 꼼짝을 못 하네요. 어떻게 한 거지.”
“고모는 왜요?”
“둘째 고모, 엄마가 제일 무서워했는데…….”
“그야, 사람과 사람 간에는 상성이 있으니까요.”
“아, 그래요? 아, 아아, 그래서, 그래서 그렇구나.”
“뭐가요?”
“저 갖고 노는 거.”
알고는 있었네?
그나저나 궁합론을 두어 번 설명은 해 줬는데.
‘상성’이라고 하니까. 알아듣네.
상성이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지는 않지 않나?
역시 게임 같은 걸 하고 있는 모양이다.
진솔함이 있지만 겉으로 보이는 체면치레를 신경 쓰는 편이라.
“제대로 갖고 놀았다고 하기엔 한 게 너무 없는데요.”
“제대로오? 어떻게 해야 제대론데요?”
“몸과 마음을 모두 농락한 것을 가지고 놀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몸까지!?”
설유겸은 자신의 가슴 위에 양팔을 X자로 교차시켜 얹었다.
팔을 얹어 둘 수 있는 게 놀랍다.
하지만 표정 변화 없이 물끄러미 ‘뭐 하는 병신 짓이지?’ 느낌으로 주시하니 살포시 팔을 내려놓는다.
서툴러…….
“상성 때문에 그렇게 되나요?”
“제가 잘은 안 믿는데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남녀의 경우는요.”
“왜에?”
“음란지합 설명은 드렸을 테고.”
“물과 불이 만나서 벌어지는 작용. 이라고 하셨다.”
“네 몸에서 나오는 물이 뜨거운 체온과 맞닿는 일, 혹은 체온이 습한 물에 닿는 일을 뜻합니다.”
“우와, 우와아, 또 그 소리 하신다아?”
목소리 톤만 들어도 재밌어하는구먼. 또라니.
“죄다 옛 사주 고서에 나오는 말이죠.”
사주 고서 팔아먹었다.
유교식으로 번안되어 들어 온 사주 고서로 미루어 볼 때, 성 엄숙주의는 전통문화의 산물로만 보면 유교가 억울해할 것 같아.
청교도의 금욕주의가 구한말에 선교로 유입되어 잘못 섞였다고 본다.
조상들은 남은 기록유산으로 미루어 보면 노골적이었고 해학적이었다.
대를 잇는 것을 최중요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음양조화와 색을 극렬히 거부했을 리가 있나?
끽해 봐야 경계하라, 정도였겠지.
나름 내 사상의 근간인데, 그 사상이 현실과 괴리되어 있어 파는데 양심이 소모되지 않는다.
“사주가 무슨 19금 소설 같잖아요.”
“음양의 균형을 맞추는 게 사주의 근본이라 음과 양의 존재가 만나 어우러지는 거 중요합니다. 강조하고 있잖아요?”
“참 모르겠네. 그 말씀이 정말 사주를 배운 게 그래서 그런 건지, 아니면 딴맘이 있는 건지.”
그럴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남자는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여성에게 기본적으로 호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어 반대로 여성은 주도해 줄 수 있는 남성을 바라는 경우가 보편적이죠.”
“꼭 그래요?”
“거의 그렇습니다. 그 근거로 공통의 이상형은 서로 잘생긴 남자, 예쁜 여자겠지만 여성의 이상형 중에는 독특한 게 하나 눈에 띕니다.”
“어떤?”
“존경할 수 있는 남자요.”
“아, 맞아. 진짜!”
남녀의 이상형을 꼽을 때, 신체적 성격적인 동기요인이 있고.
그건 남녀가 표현의 차이만 있을 뿐 거의 동일한 지점에서 수렴한다.
외모나 성격.
그런데 남녀의 차이가 나는 지점이 있는데 여성에겐 꽤 분포하는 ‘존경할 수 있는 남자.’다.
반대로 남성 이상형에는 ‘존경할 수 있는 여자.’는 딱히 없다.
어디선가 봤던 설문조사 문항인데 이런 예시에 자주 써먹는다.
“그리고 학창 시절에 봤겠지만 욕하고 놀리고 괴롭히는 남자애랑 사귀는 친구들 봤을 겁니다.”
“오오오오오, 소름.”
학교에선 꼭 눈에 띄는 커플이 그런 애들이더라.
남자애가 여자애 오질나게 괴롭히고 대놓고 까는데, 그럼에도 그 둘이 사귄다는 경우.
“고로 사주 상, 남자가 이기는 걸로 태어나면 궁합에 이득이 있는 편입니다. 특히 대화에서 드러납니다.”
“물불이면 되게 안 맞을 거 같은데.”
“그치만 결정적으로 불이 지니까.”
상성론에 깃든 숙명을 계속 되새기게 했다.
사랑은 가슴이 시켜서 하는 일이나 이성이 개입하지 않는 건 아니며 명분이 주어져야 왈칵 터져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 명분을 사주로 주고 있었다.
여자들 보통은 지속적으로 섹드립 안 치거든.
사주 보다 한두 번 이야기할 수야 있지만 이렇게 자주 나누면 그 결말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상성론을 설파하는 와중에 설윤영이 병실에서 나왔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설윤영은 식품회사의 예하 자회사를 하나 맡아 운영하고 있었는데.
실세는 아니었다.
그냥 처가에 돈 많은 마누라 이목을 돌리기 위해 던져 준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럼에 외부이자 친정에서 능력 증명할 기회를 얻은 것을 기뻐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마땅히 받으셨어야 할 자리입니다. 최대 주주 중 한 분이신데요.”
“언니도 있고, 민혁이도 있는데 저는 과분하죠.”
“그 둘보다 낫다고 여겨 민 겁니다. 잘해 주세요.”
“둘보다 낫다, 어째서 그렇게 보시죠? 사주가 그런가요?”
“예, 그냥 설 회장님 자손들 사주로 줄 세웠습니다.”
“사주에도 순위가 있나 보군요.”
사주도 점수로 기준 삼아 매기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단지 사주 보는 입장에서는 불편한 진실 같아서 잘 언급하지는 않는다.
사주부터 사람은 불공평하다는 것이 드러나는데 그걸 또 굳이 나눠야 하나 싶기도 하고.
“인생에 암암리에 고차와 계급이 있듯이, 사주에도 등급은 있고 충분히 매길 수 있습니다.”
“그래요? 누가 1등인가요?”
“사람으로서는 고 설정환 회장님이 가장 좋으신 분이셨습니다.”
“오빠 말고.”
설유겸이 뒤에 있으므로 립서비스 한 번 했다.
들어서 불쾌하지 않을 사람을 1위로 꼽는 게 가장 좋다.
죽거나 은퇴해서 다시는 증명해 보이지 않을 기린아나 유망주를 꼽으면 불리할 것이 없다.
듣는 이가 폄훼를 시도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요?”
“사주 보는 인사권자가 혈육 중 측근으로 두려 한다. 그 현상 자체에서 읽히는 정보가 있을 것입니다. 아, 누가 사주가 혹은 운이 좋구나, 라는 것을요.”
“민혁이 미시지 않으셨나요?”
“그건 사주와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회사에 오래 있었던 건 아니지만, 사내 분위기 자체가 굉장히 군대 행정반 같다고 느꼈습니다. 확실히 남자의 일이더군요.”
“그래서 의외예요. 제안엔 정말 놀랐습니다. 민혁이를 확실히 밀어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인사잖아요?”
“저는 설 회장님 자식이 물려받게끔 안배하되, 그중에 설정환 전 회장을 해할 목적을 가졌던 자식은 배제한다가 골자입니다.”
설민혁을 미는 건 맞지만, 그걸 다들 알고 있으니 내세울 필요는 없었다.
그놈은 나름의 장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약점이 너무 많아서 끼고 도는 게 불가능하다.
설윤영은 살포시 미소 지으며 날 본다. 저 말이 맘에 든 모양이군.
야심은 있다, 어쩌면 제1의 목표가 달성되면 스카이피아 접수할 생각을 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고마웁다 하시니, 세 가지 정도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세 가지나요?”
“작은 선의를 몇 배로 갚아 주실 분이라 생각합니다.”
“후훗, 그래요. 말씀해 보세요.”
권력자는 자연스러운 듯 아부를 하는 걸 좋아한다.
특히 ‘넌 관대할 것이다.’, ‘넌 공정할 것이다.’로 캐릭터를 붙여 기대하면 그에 맞춰 행동할 수도 있다.
권력자들 앞에서는 신하들이 그 사람을 그렇게 컨트롤 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 우선 설민혁의 보호자라는 포지션을 가지고 회사에서 활동하십시오. 특히.”
“특히?”
“설민혁에게 가장 우려되는 것이 품행과 이성 문제입니다. 이 건은 이성 가족, 첫째로 부인, 둘째로 형제자매가 옹호해 주는 것이 효과가 좋습니다.”
“뭐, 그 녀석이라면 혼을 내고 싶지만.”
“그 포지션이 아니면, 스카이피아의 그룹 문화를 봤을 때 이곳에서 사모님의 정치적 영향력을 미칠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그건, 뭐 알고 있으니까. 그다음은?”
자신의 포지션을 인식하고 있다는 게 설윤영의 장점이다.
“두 번째로 이번에 제가 임원진을 물갈이했는데 이로 인해 낭인이 될 사람들을 한두 명 주워서 구제해 주세요. 면담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음, 나한테도 힘이 있다는 걸 보여 주라 이거군요?”
잘 알아들으시니 좋군.
물론 설 회장 사망을 내심 바라는 불충한 자들을 찍어낸 것이다만.
능력주의 사회에서 불충이란 명분은 약하다.
그럼에 패자부활전을 줬고, 그 패자부활전 개최자를 설윤영으로 할 셈이다.
대회 개최자는 규칙과 시상을 하면서 그 권위를 보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백산시공과의 입찰 계약을 갱신하지 마시고 공개 입찰 경쟁을 시키십시오. 이어 가능한 한 백산시공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해 주십시오.”
“백산시공을요?”
백산시공은 설인훈의 아들 설종호가 맡아 운영하는 스카이피아의 하청 시공업체다.
일감 몰아주기와 건설시공업체 특성상 뒷돈이 많아 현금자산이 많다고 소문이 났고.
스카이피아 지분도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정기상 해임에 이은 두 번째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