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등산 후 남녀
계룡 선사는 진지하게 내 여복의 수준을 가지고 고민한다.
“설유겸 양과는 이런 말을 하긴 무엇하나 음란지합이 있으니…….”
나도 알고 있는 이야기다.
‘음란’이란 뜻에서 보이겠지만 과거엔 연애결혼을 말하고 현재엔 이성적 끌림에 의한 만남을 말하는 사주 용어다.
결혼은 현실이고 연애에도 심지어 경제력을 토대로 짝이 형성되는 세상이나, 저 합이 있으면 남성과 여성으로서 만나기는 만난다.
경제력이 비슷하면 결혼까지 성사되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깊은 내연관계는 되나 진척이 없다.
사주강화술을 배제한 내 사주만 갖고 논한다면 설유겸과는 열애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그리 보는 것이다.
“은겸이 만나는데 말이죠. 그건 설명이 됩니까?”
“남녀의 일은 긴밀하니 사주가 맞히지 못하는 영역도 있기 마련이지요.”
내 여복과 내 사주의 상관관계는 내가 묻기는 했지만 그걸 애써 푸는 것은 현실도피 같다.
믿기 어려운 광경이겠다.
“아니오, 여복이 애초에 낮아 말씀대로 부가 귀를 낳은 집안의 여식들이 아무리 아버지운이 비어 남자운이 낮다 한들. 치기 어린 장난감에서 그쳤을 명입니다만 그래 보이십니까?”
내 여복은 나조차 인정하는 것으로.
대운이 안 왔으면 2레벨 여자운으로 정말 안남미로 밥하는 외국인 며느리와 살며 처가에 지참금 해외 송금하는 인생이었을 것이나.
다행히 29세에 대운강화가 59세까지 들어오므로 여자운 4레벨로 간신히 연애결혼은 가능하다.
다만 처가가 우리 집보다 못살고 경제적 능력이 낮은 부인을 만날 가능성이 높았다.
‘대운강화’ 즉 운빨로 한 결혼인바.
이성을 만나는 능력에 확신과 자신감이 없으나 욕망은 강하여 들어온 부인이 몹시 귀하니.
처에 대해 관심이 지대한 애처가가 될 운수였다.
나도 내 인생을 미루어 그리 추측했고, 사주 보는 술사들도 그리 본다.
“허.”
그걸 계룡 선사도 알 것이란 말이지.
4레벨 여자운에나 적합할 인물이 어찌하여 9레벨급에서 노는지 사주로는 설명이 고약스럽다.
“요는 제 사주와 인생이 이렇게나 부합하지 않는데, 그런 제가 사주를 업으로 삼아 이 자리에 올랐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그래요, 사주에 비해 인생이 과하게 잘 풀리셨지요, 특히 여자운은. 그러니 하고 싶은 말은 그게, 그 명승이 줬다는 그 힘을 통해서다?”
한 번 더 보여 줘?
신체 관련 운세는 티가 나는 것이기만 하면 사람을 현혹시키는 방식으로 써먹을 수 있다.
체모 기능은 특수효과로 ‘삭발 시 머리가 빠르게 자랍니다.’도 있어서 이걸 해도 된다.
다만 체모 기능이 딱히 당장 절실하지는 않아서 레벨업을 할 생각은 없다.
모발뿐 아니라 온갖 게 다 자란다고 하는데 이건 피부미용 운세와 상극이다.
애써 좋게 만든 피부 다 덮잖은가.
“그냥 보신 사주가 틀렸다고 말씀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저는 제 신념에 따라 맞게 봤다고 생각하네요. 틀렸다 한들, 그것은 사주를 벗어난 선생이 대단한 것이지요. 허.”
그래도 계룡 선사는 방금 전 피부미용 레벨을 올려 신체의 흉진 게 사라지는 현상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런 경우를 맞이하면 사람이 놀라기도 하겠지만 이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는 현실을 자각하고 속임수로 의심을 먼저 할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럼에도 자기가 본 사주는 끝까지 맞단다.
맞긴 맞다.
그 사주와 맞지 않는 말도 안 되는 결과가 눈앞에 있을 뿐이지.
“어쨌든 틀리셨잖아요?”
“뭐,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선생의 잘된 원인을 사주에서 혹은 인생에서 꼽자면 하나가 있습니다.”
“어떤……?”
“선생이 지적 종교적인 권위를 통해 구축하는 경우이지요. 권위자는 설령 여복이건 돈복이 있건 없건 그것을 취했습니다.”
이 아저씨는 명성이 있을 만하다.
“그게 저 정도 배워서 가능한 거라고 보십니까?”
하지만 무시하는 명승의 하수인 정도로 여긴 상황에서 그리 올려 칠 수는 없을 것…….
“배움이나 종교를 뒤에 업지 않은 타고난 권위자라고 한다면 가능하지요. 권위를 활용할 줄 아는, 그런 명입니다. 그 자리에만 간다면 말이지요.”
이 양반이 자기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온갖 것을 다 가져다 대며 날 띄우네.
“그런 권위는 남들을 뛰어넘는 용기나, 사람과 사람을 잇는 중재력 등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인데, 그런 게 제게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다고밖에는 할 수 없지요. 제가 아는 한에서는 말이지요.”
“아니오.”
“으음?”
앞서 보여 줬던 데였던 손등과 팔을 내밀어 계룡 선사에게 보였다.
커플이 사주 보러 오면 한 명을 몰래 뒤로 불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쓰다 보니 커피 자국 화상이 남아 있었던 그 팔이다.
이어 스마트폰으로 이게 스르륵 사라지는 영상도 재생했다.
그 손등에서 연상이 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성흔이 있었던 양, 있었다 사라져 버리는 말도 안 되는 광경이.
“그 권위는 때로는 신비가, 때로는 가진 초월적인 힘이 부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 앗…….”
반복되어 재생되는 기적이 계룡 선사의 시선을 빼앗는다.
반복되는 영상, 음성, 소리, 동작에 몰두시킨 뒤, 그 사람이 가장 원할 것 같은 소망이 아주 작은 조건으로 이뤄질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확언을 준다.
“선사, 사주 그 이상의 힘. 궁금하지 않습니까?”
계룡 선사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신념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자, 이런 자들이 오히려 더 고작 한 번의 기적에 더욱 쉽게 무너졌다.
사주강화술이 바로 그 타고나지 않았음에도 가질 수 있는 권위다.
* * *
‘명승 선생님을 만나고 오십시오.’
약을 제대로 팔아 계룡 선사를 명승 선생님을 찾아가 최대 용서를 빌게끔 유도했다.
사주강화술은 계룡 선사도 충분히 전수받을 만하였으나.
전승은 당연히 안 해줬다. 뭐 이쁘다고.
그렇게 계룡 선사와의 대담을 마치고 남은 시간엔 산에 올랐다.
나 혼자 올라도 되는데 설씨 자매가 따라온다.
“헥, 헥.”
그리고 나는 운장산 불다람쥐 시절 다져진 산악적응력이 십분 발휘되어 압도적인 등반 능력을 보였다.
1년 반 가까이 됐는데 아직 안 죽었구먼.
“유겸이, 많이 힘들어? 언니가 물 줄까?”
은겸이는 요즘 거의 연기의 수준으로 각오하고 유겸이 애정으로 패고 있다.
20년간 묵은 한이 생각보다 큰가 봐.
그리고 당연히 설유겸은 몸서리를 친다.
“아, 아저씨, 언니한테 미움 사는 법 알려 주세요.”
“언니를 좋아한다면서 왜 그런 짓을 알려 달라고 하죠?”
“아, 아니 그, 적당해야죠!?”
“유겸이 왜 자꾸 그래, 언니는 서운해.”
과하게 발휘하고 있기는 하군.
저 모습이 본래의 모습이라고 보지만 잘 감춰 왔던 것도 사실이니.
‘언니는 서운해.’ 들은 설유겸은 고양이가 털을 날 세우듯 몸서리를 치더니.
나를 툭 친다.
“이 아저씨 뺏으면 미워할 거야? 아 제발, 원래대로 좀 해 줘.”
“……너무해.”
위험수위를 넘은 발언 같다?
실언이긴 했는지 은겸이도 더는 애정 공세를 하지는 않고 산을 오른다.
은겸이 너무하단 말을 남기고 제쳐서 먼저 빠른 걸음으로 오르자 유겸이가 당황한다.
“아, 그게 언니…….”
삐진 척 같기도 한데?
감정을 가지고 놀 줄 알면 설은겸은 무서울 것이다.
감정을 정치에 영악하게 활용하기에 이미 충분한 지적 능력이 있고 또 그래도 옹호할 지지층이 탄탄히 있다.
“아, 언니이.”
설은겸이 휙휙 지나가는 것을 유겸이가 따라가는데.
운동 거의 안 한 설유겸이 따라잡기에 설은겸의 속도는 여간한 게 아니다.
두 여자한테 발걸음 맞춰서 등산하고 있었는데 이거 누구 발에 맞춰야 하나.
“흠.”
뭔가 처신 잘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설은겸을 믿는다.
등산에서 뒤처진 동료를 돌보는 일을 그르다고 말할 사람이 아니다.
대의를 보는 아이니까.
근데 그렇다고 덥석 그럴 수는 없다.
대의를 보는 것과 감정이 상하는 건 다른 문제지.
감정이 상해도 대의는 볼 수 있을 테니까.
언니한테 미안하긴 한지, 햄스트링 부여잡고 절뚝이며 걷는 설유겸을 보고 고개 한 번 끄덕여 준 다음, 은겸이를 따라잡았다.
“토라졌어요?”
매서운 표정으로 앞만 보고 걷던 설은겸은 날 보더니, 표정 풀고 배시시 웃었다.
“속았어요? 아녜요.”
표정 쓰는 기술을 전공한 이답게, 매우 자연스럽다.
“삐진 척하면서 애태우고 더 놀리면 울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동생 울리는 나쁜 언니 되라고요?”
별로 화가 나진 않은 모양이다.
여기선 저 둘 사이에서 중재하기보다는 은겸이의 판단에 맡기는 게 낫다고 여겨 내가 먼저 산에 올랐다.
<등산>
산은 지상에서 가장 하늘과 맞닿은 곳입니다. 천공을 바라보는 등반 의지는 당신의 하늘을 향한 갈망을 충족시키며 건강을 채웁니다.
인성운 10포인트, 재성운이 10포인트 오릅니다.
상당히 포인트를 많이 준다.
산불관리원 퀘스트 보상이 무슨 후계자 선정 다툼급으로 운을 많이 퍼 줬다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럴 만하다, 정산되는 게 많네.
<영산 순례>
각기 다른 지기를 가진 산의 다섯 산의 정상에서 호연지기를 드러내십시오. 땅에서 솟아나 하늘을 찌르는 산악의 기상은 사내에겐 강건함을, 여인에겐 강건한 배필을 찾을 단초가 될 것이며 산야에서 내려보는 세상은 거머쥔 영토와 같을 것입니다.
중원의 오악(五岳). 태산, 황산, 형산, 화산, 항산이 기본이나.
산악의 기운이 강한 반도에서라면 해발 500미터 이상의 어떤 산이어도 좋습니다.
자아운, 여자운, 주거운 LV1 중 택 1 수령 가능.
이건 명승 선생님의 선물 받을 조건을 수행하러 왔는데, 추가 퀘스트가 터졌다.
죄다 마음에 드는 운들이라 달성하면 고민될 것 같다.
“이럴 거면 마속도 왕 시켜 주지 그랬나.”
괜한 소리를 한마디 했지만, 산이 도움됐다.
산 정상에 오른 것도 뿌듯하고 산하를 내려보는 것도 삼국지 게임 천하통일하고 천하를 아울러 내려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산과 강과 도시가 보이니까.
이어 나한테는 뒤처졌던 은겸이도 정상을 밟았다.
“다 왔다. 후, 하, 뭐 이렇게 빨라요?”
“산 사나이올시다. 자, 야호 한마디.”
“그건, 싫어.”
정상에서 설유겸을 한참 기다렸는데 늦다.
내려다보니 아직도 헥헥대며 등반 중에 앉아 쉬다, 앉아 쉬다 하고 있다.
이어 한참 뒤에야 설유겸도 정상을 밟았는데, 설은겸이 휙 하고 먼저 내려가 버린다.
“아, 아 언니이이.”
“미워.”
그리고 밉다는 대사 한 마디를 치고 휙 하산해 버리는데.
에이, 저건 과했다.
그 대사는 안 하고 휙 지나치는 게 더 유겸이 쫄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 언니, 언니이.”
정상을 즐길 새도 없이 언니가 내려가 버리니 당황하다가 한숨 쉬길래, 한마디 했다.
“언니가 잘해 주는 게 낫지 않아요?”
“아니 그게…… 하아, 아저씨.”
“네?”
“뭐, 진짜 나도 언니 껴안고 막 그래야 돼요? 그거 너무 그런데.”
“잘할 건데요. 왜?”
“못 하겠으니까 이러는 거잖아요.”
절 빤히 보는 이유는요?
뭔가 안기 연습용으로 날 쓰라고 던져보고 싶긴 했지만 능청으로 대했다.
“연습을 하세요. 여기 노송한테라도.”
“인간 인형 필요한데요? 여기서 지원자 구합니다.”
“정상 구경하고 사진 찍고 내려갑시다. 빨리 내려가 뒤따라 잡고 뒤에서 와락 백허그로 붙들면 좀 나을 거라고 봅니다.”
“그래야 돼요?”
“안 그러면요?”
하산은 유겸이와 맞춰서 내려갔다.
애도 아니고 하니 알아서 내려올 것이라 여겨 미리 달려 은겸이한테 합류할 생각이었는데, 유겸이 다리가 후달리는 게 그냥 육안으로도 보인다.
“다, 다리 너무 떨려요.”
산불관리 첫날에 내가 다리가 저랬다.
“근육이 놀란 건데, 더 걸으면 나을 겁니다.”
은겸이는 적당히 기다리면서 하산하는 듯 보였으나, 너무 늦자 어느덧 보이질 않는다.
이래서는 제시한 백허그 전략이고 뭐고 필요가 없잖아.
간신히 하산하고 국립공원 입구 쪽에 다다랐다.
그리고 입산하는 곳, 쉼터 벤치에 설유겸은 뻗었다.
“아, 아 거기 오르막길은 도저히 못 가겠어요. 좀만 쉬고 갈게요. 먼저 가 계세요.”
숙소로 돌아가려면 더 내려가 평지로 나간 다음 다시 오르막을 조금 올라야 하는데.
쉬겠다니 그리 놔뒀다.
여기서는 절도 있고, 얼마 안 가 상점가도 있고, 어른이니까.
숙소로 돌아오니 한옥 펜션 외부에 있는 욕실에서 씻는 소리 들린다.
미리 왔네.
욕실은 두 곳 있어서 나도 씻고 나왔다.
내려오면서는 땀이 식었지만 올라갈 때 이미 꽤 흘려서.
물 칠 비누칠 머리 감기 세트 하고 나오면 끝나는데 은겸이는 좀 걸린다.
씻는 데 시간 차이가 좀 나더라고.
“아궁이는 못 쓰겠고.”
아궁이는 장식으로 있어서 내버려 뒀고 저녁은 고기 구울 겸, 마당에 있는 화덕에 불피울 궁리 중이었다.
“뭐 하고 계세요.”
“아, 불 한번 피워 보려고……. 속옷 안 했네?”
설은겸은 티 한 장에, 돌핀 팬츠를 입고 나왔는데 각선미는 물론이거니와 도드라진 그게 먼저 눈에 띈다.
“막 씻고 나온 거니까.”
문제는 이게 그 신호라서…….
그리고 나도 어느덧 길들여져서 버튼처럼 무심코 누르게 된다.
“앗.”
“안 하고 나오면 뭐라고 했죠?”
“…….”
설은겸은 흘기더니 갑자기 내 오른쪽 어깨를 밀친다.
“유겸이만 부축해서 내려오더라? 나도 힘들었거든?”
난감한 질문이었지만 되레 뻔뻔하게 대답했다.
이상하게 말을 한마디도 안 지면 더 좋아하더라고.
“질투해 보라고?”
그 말과 함께 설은겸은 날 노려봤다.
그와 별개로 은겸의 하의가 주르르 내려간다.
그 말린 옷은 흙에 닿기 전에 다리에서 빠져나와 내가 앉아 있던 평상에 놓인다.
이어 날 밀쳐서 눕혀 버린다.
버틸 수야 있지만 그냥 그대로 당해 줬다.
신호대로 응해 주는 것 같은데, 격하다.
이렇게 적나라하게 자주 보여 주지는 않는다.
불을 꺼 달라거나 눈을 감아 달라거나 한다고.
“아, 그런데 여기 너무 바깥.”
그냥 고개를 젓고 내가 합체한 옷들을 분리시킨다.
은겸이가 말 한 마디 안 하면서 이러면, 내가 당하는 쪽인 포지션에서 그곳만 성난 채 얌전히 있어야 한다.
은겸이는 어째서 여동생 키워드로 야해지지……?
물론 거부한 적이 없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많은 부부를 보며 느낀 것이다.
모름지기 사내로 이 땅을 밟았다면 여인이 원할 때는 준비되어야 한다.
다른 건 둘째 치고 그게 안 되면 밀린다.
아니, 진다.
벌써부터 지면서 살면 쓰나.
그러려고 사주강화술 단련한 거 아니니까.
이어 양은 음을 찌르는 존재로 능동적인 것이 이치에 맞다.
둘 다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바라보는 눈은 떼지 않았다.
한옥의 평상은 참 묘한 공간이었다.
프라이빗하지만 담장이 낮아 지나가는 사람은 보인다.
고지대에 있어서 누가 굳이 찾아와 넌지시 볼 것 같지도 않으나.
누군가가 지나치다 흘깃할 것 같은 긴장감이 있었다.
땀은 씻어냈으나 다시 격한 움직임과 입김에 더워졌다.
은겸도 그리 느꼈는지 한 오라기 걸쳤던 티셔츠를 마저 벗어 던졌다.
“아 그거.”
말렸지만 들을 생각 없이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거기엔 앞서 살포시 눌렀던 그곳이 언제 눌렀다는 양. 원상복구 그 이상으로 돋아 있었다.
꽉 안고 있어서 보이지는 않지만 은겸은 살갗끼리 모두 닿은 안기는 자세를 좋아했다.
혹시 낮은 담장에서 그래도 누가 스쳐 지나가다 볼까 봐.
은겸이가 바깥을 보지 못하게 자세를 돌렸다.
티라도 입었을 때는 그냥 겹쳐져서 부비대는 자세였겠지만 티를 벗으니 몸이 모두 노출된다.
누군가 지나치다가 보더라도 은겸은 뒤만 보이게끔.
내 얼굴은 팔려도 되지만 얜 아니지.
허리는 서로 마구 들썩였지만 은겸이 어깨에 고개를 둔 나는 긴 머리가 찰랑거리며 가린 날개뼈와 척추가 이어지는 등의 라인을 살폈다.
보고 싶었거든.
그러다 대문과 낮은 담장의 바깥에 인기척을 봤다.
숨네.
하지만 은겸의 지금의 기세는 절대 놔줄 생각이 없는 껴안음이라 포기하고 맡겼다.
꼭 이런 상황이면 황급히 수습(?)하고 이불 덮고 그러던데, 왜 그래야 하지? 싶기도 하고.
* * *
은겸이 다시 씻으러 들어갔다.
방바닥이 아니라 평상부터 저기까진 흙바닥이라, 흘러도 상관없지 싶은데.
그사이 적당히 추스르고 대문 열고 담장 봤다.
역시 쪼그려 앉은 누군가가 있었다.
형광색 등산재킷을 입어서 눈에 안 띌 수가.
“뭐 하세요?”
“으아아아아.”
짝, 짝.
놀라 하던 설유겸이 괴성을 지르며 돌진해서 내 팔뚝을 몇 대 손바닥으로 후려친다.
“아, 아!? 왜 그래요?”
“미, 미, 미 미쳤어, 미쳐. 둘 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