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134화 (134/211)

#134. 사내 난입.

설윤환한테 내 정체를 그동안 누가 전달했을까?

사원들 사주를 꽤 보고 스카이피아 호텔에 자주 들락거리면서도 정체는 잘 숨겨 왔다.

사람들이 회장이 데리고 있는 역술인이라고 한다면, 딱 계룡선사 같은 관록이 붙어 보이는 아저씨를 생각하니까.

설은겸도 꽤 오래 착각하더라고.

그럼에도 정체가 샜다면 그건 설양훈의 측근에 있을 사람일 수밖에 없다.

단어가 좀 구식인데 색출부터 하자면…….

“비서 양반밖에 없다.”

설윤환이 나한테 편지할 수 있게끔 안배할 수 있는 사람은 설양훈 비서진 외엔 없다.

그 외에 굳이 찾자면 내가 알고 지내는 설씨가문 식구들 정도 있겠는데.

짐작 가는 건 설혜영 정도다.

설혜영은 욕망이 앞서 나름의 지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인물이라, 경계할 이유가 없고.

회사 사람들까지 차원을 넓히자면 첫 편지가 4월에 도착했으므로, 초기에 찾아오고 종종 찾아온 아저씨들 정도겠다.

고로 설양훈 측근 비서를 제어해야 한다.

명예회장실 비서도 인사권으로 갈아 치울 수야 있지만…….

킹의 최측근을 멋대로 갈 수야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인사 전권이 있다 한들, 왕이 가까이 두고 쓰는 인척들이나 비서들은 함부로 갈면 안 된다.

그건 권위에 대한 직접적 도전이다.

아무리 내가 설 회장한테 깝을 쳐도 권위를 흔들지는 않는 선을 지켰다.

뭐, 설양훈이 못 깨어난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

그건 뭐 깨어날 거라 생각하자.

사주로 따지면 설양훈 안 죽을 거 같다.

전주 명승철학관에서 일하면서 어르신들 사주 및 돌아가시는 경우를 본 적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사인을 사주 보고 찍으면 70퍼 이상 맞는다.

사람이 다양한 병과 사고로 죽을 것 같지만 설양훈 사주대로라면 죽는다면 폐병으로 죽을 것 같다.

이건 설 회장 건강운을 보는 사람이라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일 것이다.

고로 설양훈이 깨어나서도 인정할 만한 다른 인물을 추가로 임용해야겠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만한 인물로.

명예회장 비서는 어차피 근래엔 할 일이 병문안 및 병색 살피는 것 외에는 없다.

출소(?)하니, 유겸이 손 고이 모아서 깍지 끼고 배에 올린 다음 의자를 젖히고 자고 있다.

‘운전 연습하게 해 주세요!’라고 안 했으면 이 고생 안 했을 건데 조금 안쓰럽네.

깨우기 뭐해서 그냥 서성였다.

차에 미리 탑승하고 싶었는데, 문 꽉 잠그고 있다.

분위기에 쫄았구먼…….

기다리고 있자니 뒤늦게 잠에서 깬다.

“차 문 좀 열어 주세요.”

“다녀오셨어요. 흐아아아암.”

“뭐, 시간 좀 남았는데 관광이나 하고 갈까요?”

“네?”

“가는 길에 안동도 있겠다, 남쪽으로 좀 더 가면 경주도 있겠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기록된 마을들 가죠. 운전 제가 하죠.”

“전통적……. 그런 거 좋아하세요? 북촌도 그렇고.”

“사주쟁이인데 전통적인 걸 좋아하죠. 최첨단 4차산업 막 이런 이야기 하면 좋겠지만 그런 걸 잘 알지도 못하고.”

전통문화는 사주쟁이라면 안 좋아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근데 그럼 자고 가야 하는 거 아녜요?”

거, 운전 내가 한다니까, 야간 운전으로 가면 굳이 그럴 이유가?

“……방은 같이 쓰고?”

“끼야악! 야해.”

뭔, 끼야악이야.

살짝 뚱한 굳은 표정으로 쳐다보니 설유겸은 뜨악했는지 묻는다.

“그, 제가 이런 말씀 막 드리는 거 폐……가 될까요?”

안 되겠냐.

다만 진심이라면 그건 진지하게 대해 줄 참이다만.

“진심이면 폐가 아니고, 놀리는 거여도 뭐, 제가 한술 더 뜨니까 괜찮습니다.”

“어, 맞다, 왜 맨날 그렇게 받으세요? 그러니까 더 하게 되잖아요.”

쫄았을까 봐 위로해 줬더니 바로 물타기 소재로 삼는다.

“우리 둘 사이에는 언니라는 가교가 존재해서 그 언니가 더 소중할수록 상대가 못 받을 제안을 건네면서 상대를 시험할 수 있죠.”

“그 시험……만은 아닌데.”

시험이라기보다는 유사 연애 감정이라고 판단하지만 입 닫았다.

여자운과 도화살이 올라 그럴 수도 있지만 그걸 내 입으로 말하면 재수 없다.

저 집안은 능력 있고 떳떳한 맏딸 은겸이에 대해 이입하고픈 심리가 어머니한테도 있고 여동생한테도 있다.

어머니가 전통적인 것도 기댈 구석이었던 듬직한 아버지를 잃은 것도 원인일 것이다.

“뭐, 거절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걸 서로 이해하니까, 벼랑 끝 전술을 쓸 수 있는 겁니다. 거기서 먼저 기우는 쪽은 패배하는 것이죠. 나한테 패배해 보겠느냐 하면서 던지는데 그거 지기 싫어서 이러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고.”

저런 친구들한테 하지 말라고 냉정하게 끊으면 오히려 더 재미있어 하면서 놀린다.

관심을 얻고자 하는 발언이라, 관심을 안 주면 더 난리 치지 수그러들지 않는다.

고로 강력한 맞대응이 무대응보다 나은 방법이다.

“거절할 게 당연한 사람한테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던지면 놀리는 느낌이 들겠죠? 그러면 거절할 이야기를 듣는 쪽은 기분이 나쁠 것이고, 하는 쪽은 본디 여간 갑이 아닌 이상 미안할 겁니다.”

“아, 제가 지금 미안해서 그렇게 말씀드리는 거거든요. 그러셨구나.”

“그러니 같은 심정 느껴 보라고 저도 한술 더 뜨는 거죠. 지기는 싫으니까 더 강력하게 드라이브하는 거고.”

“우와, 뭔가 이해돼요. 막 더 소리치고 싶은 그런 느낌?”

“거기다 유겸 양은 은겸이와 혈연이 있고, 나는 혈연이 없으니 더 강한 표현을 할 수밖에 없는 점 양해해 주십시오.”

쌍방이 설은겸과 파탄 나면 손해를 보는 구조라 은겸이와의 관계를 놓고 외줄에서 벼랑 끝 전술이 가능하다.

설유겸은 내 연애를 박살 낼 수 있고.

나는 설유겸의 트집을 잡아 유산을 박탈할 수 있으니까.

물론 그건 말 안 했다.

설유겸이 제대로 인지를 못 하는 것 같다.

어려서 그런지 많이 순진하다.

피곤하다니 좌석 바꿔 타고 돌아가는 길 내비를 찍었다.

조수석에 탄 설유겸은 하품을 크게 내쉬더니 물었다.

“하암, 그런데요, 삼촌이랑은 무슨 말하셨어요.”

그걸 먼저 물어야 하지 않니?

“어, 유겸 양은 일 안 해 볼래요?”

“또 집안일이오?”

“아니, 그 할아버지 비서.”

“……아?”

“원래는 언니 시킬까 했는데.”

비서진에 깔 측근으로 설은겸 친위세력이자 어차피 백수일 아이를 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 * *

나는 자율출퇴근이다.

누가 제약하는 이가 없다.

임시임원회의 말고 정규임원회의 하는 날만 노승환이 나와 달라고 하는 편이었는데.

그래도 가능한 한 엉덩이 붙이고 있으려고는 하는 편이다.

다만 성진경의 최후통첩일에는 설윤환 면회를 다녀오느라 하루 뺐다.

“성진경이는 인사 조치했습니다.”

성진경은 끝내 좌천을 선택했다.

공론장에 오르면 유독 그에게서 많이 걸려드는 성적 방종이 다 드러날 것인데.

섹슈얼 이슈는 법리적 잘못에 비해 그 파괴력이 훨씬 큰바, 잘 선택했다.

물론 예상했던 일이다.

마지막 날인데 보고할 사람이 없다?

내 의견에 따를 것이었다면 적극적으로 날 찾는 티가 났을 것이라.

결국 그 누군가에게 의리 지킬 것이라 봤다.

“중동으로 보내시지 않은 조치는 잘하셨습니다.”

“그쪽 자금 관련 담당자인데, 되레 날개를 달아 줄 수도 있으니까요.”

집행 담당은 노승환인데 그가 중동전출 대신 다른 지사로의 자리를 마련해 보냈다.

성진경도 생각보다 반발 없이 순순히 받아들인 편이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인사 조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인사 조치를 반대한 사람이 누군지가 궁금합니다. 정기상 고문은 있을 것이고.”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예상외다, 정기상 교수만큼은 반대하리라 예상했다.

설씨 집구석 플레이어들 사주는 내가 다 갖고 있다.

권력을 앞둔 자들은 사주에서 내뿜는 기운이 있다.

설 회장 빼박인 설민혁, 여왕 격인 설윤영, 반드시 자기 사업을 성취할 설은겸.

이들이 왕좌엔 가깝고, 명예를 잃고 욕망으로 활동하는 설혜영, 나름 쟁취할 명이지만 운세가 40대에 고점을 찍고 하락세에 접어든 설윤환 등은 솔직히 어렵지 않나 싶다.

그런데 나와 긴밀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 이 왕좌와 권좌에 다다른 듯이 보이는 사주의 인물이 한 명 있다.

재물운 형 정치인으로 구분해서 정치에선 크게 발복을 안 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인데.

정치도 재물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양반이라 그리 봤다.

그 양반이 적극적으로 꽂은 사람이 정기상 교수이고.

정기상과 성진경은 7944호로부터 입수한 커넥션이 있었다.

그런데 보호를 안 하네, 꼬리 자르기인가.

“정기상 교수와 무슨 일이 있습니까?”

“무리를 지어 비상하게 행동하고, 그 파벌로 다른 회사를 이롭게 키워 주고 있습니다.”

“설인훈 의원과 그 아들을 말씀하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설양훈의 조카가 있다.

설인훈은 자산이 수십억 정도로 플레이어가 되기엔 부족한 돈을 갖고 있지만 그가 정치권에서 스카이피아 관련 규제를 막아 주는 등의 공을 세웠고, 그 공에 대한 보답으로 스카이피아에서는 설인훈의 아들이 운영하는 하청 사업체에 일감을 몰아 주고 있었다.

이 하청 시공업체는 일감 몰아 주기 등으로 현금이 꽤 많고.

설인훈 아들은 30대 중반으로 나름 사업체를 오래 이끌어 기업의 생리에 능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설민혁을 키우는 모델도 이런 식으로 의논되고 있다.

“뭐, 그룹에 많은 공을 세우신 분이고 기업을 연착륙을 시킬 수 있다고 봐서 선호하는 분들이 계십니다만 의문은 드는군요.”

“어떤 의문이 드십니까?”

“야심이 있으신지가 의문입니다. 다들 일을 하다 정치를 가서 명예를 드높이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그 자리까지 가서 다시 내려오는 사람이 흔치가 않아요.”

“수긍이 갑니다. 저도 그래서 확신은 못 하겠어요.”

보통 그렇게 돈을 가득 쥔 사람들이 자신의 기득권도 지킬 겸 정치 권력으로 나아가서, 그 권력의 맛에 물들어 잘 내려오지 않는다.

재물 가진 자들의 최종 종착역이니까.

그래서 거슬러서 다시 돈을 두고 논하는 쪽으로 올 것이라고는 일반적으로 예상하지 않는데.

“사주로 그게 보이지 않습니까?”

“예, 사주로 보입니다. 근데 전 사주보다 현상이나 전례를 믿는 편이라서 현상에 설득이 되네요.”

물론 사주가 주는 심증에 물증까지 몇 개 걸려들고 있어서 설인훈을 의심하고는 있지만.

너무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다.

사주로는 가히 욕심, 야심 덩어리로 나오는데 그게 다스려지는 인물로 위험하다.

스카이피아에서는 설인훈 의원이 2년여 뒤 재출마 안 하면 추대하자는 의견도 있는 편이다.

아들도 어리고, 손녀는 너무 어려서 안 된다는 기류가 있다.

노승환은 고개를 저었다.

“잘 보시는 편입니다. 지금 회사에 소문이 알음알음 납니다. 스카이피아에서만 100명 넘게 사주를 봤다고 들었는데요.”

“호서개발부동산이랑 스카이피아 호텔 등에서도 오긴 했지만 본사랑 천지인 지주회사만 따지면 그렇죠.”

“서길수 이사 소식은 이미 전해 드렸을 것이고.”

서길수는 건강검진에서 간경변이 발견되어 병가를 냈다.

듣자니 만성간염도 앓고 있었는데 딱히 치료를 안 받고 그냥 버티고 버티다가 간 섬유화가 진행되었다고.

나는 기껏해야 지방간이나 짐작했는데, 더 안 좋은 병에 걸렸고.

안 좋은 병이다 보니 맞히는 게 살짝 빗나갔음에도 오히려 더 임원진들에게 ‘예사 놈이 아니네.’ 평을 듣고 있는 모양이다.

이제야 사원 복지몰 명승철학관 관장과 연계를 알아낸 사람들도 있었고.

이에 대해 노승환이 치하하자 민망하여 겸양을 떨었다.

“아, 그냥 나이 든 분들은 뭉뚱그려 건강 어디가 안 좋다 하면 먹힙니다. 멀쩡한 게 오히려 더 신기하거든요.”

“나이 들면 다 아프죠. 그치만 부위를 집어 맞추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종합검진과 정밀검진은 다르잖아요.”

“그런가요? 음, 노승환 사장님은 해소 기침이 있으신 걸 보면 위염이나 폐병 조심해야 합니다. 사주로는 위, 식도 문제일 가능성이 있어요.”

노승환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날 본다.

“……안 그래도 위내시경에서 헬리코박터균이 나왔다고 해서 약을 먹는데, 이건 사주 아니지 않습니까?”

“사주하다 얻어진 관찰 능력입니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노출하고 있고요. 여기에 대화를 나눠 보면 운명을 퍼다 주죠.”

이미 맞춰놓고 풀어 준다고 보면 되겠다.

관찰부터 대화까지 하나의 판을 짜는 것이다.

“놀랍습니다. 인사 총괄실을 상담실 비슷하게 운영해 볼까도 생각 중이에요.”

“좋습니다. 그나마 전문이니까요.”

“말씀대로 충분히 젊은이도 고위직을 역임할 수 있다는 명분도 될 거 같네요.”

일전부터 설 회장에겐 했던 말이지만.

내가 잘 나대고 활약한다면, 설민혁이나 설은겸의 나이로 인한 페널티를 줄일 명분도 될 것이다.

―끼야아아아악.

음?

“들으셨습니까?”

“무슨?”

아, 참. 노승환 보청기 하지?

뭔가 되게 앙칼진 여자 비명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그게 이번 한 번만 들리는 게 아니라 계속 들린다.

“그러고 보니 뭐가 들리는 거 같기도 하고.”

“빌딩에는 방음 기술 못 넣나요.”

요즈음 스카이피아는 방음 아파트라고 브랜드 밀며 광고 중이다.

아예 안 나지는 않는데 90퍼센트까지 줄였다나?

안 살아 봐서 모르겠네.

뭔가 소리는 크지 않은데 앙칼져서 고주파처럼 들리는 느낌이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사장 비서실에서 긴급히 찾아왔다.

“사장님.”

“예, 무슨?”

“지금 어떤 여자분이 회사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습니다.”

“예?”

“뭔 일이랍니까.”

여자분 난동이라니까, 뭔가 안 갈 수가 없다.

난동이라는데 현 회사 사장인 노승환까지 가게 하는 것은 좀 그러하여 내가 한 번 내려가 보았다.

어떻게 회사 사무실까지 올라오나.

“이효인, 정은수, 누구야. 나와아! 같이 죽어.”

눈물 콧물로 범벅이 진 여자가 칼을 자기 목에 대고 고래고래 사람 부르고 있다.

경비들이 이미 왔지만 저 난리를 피우고 있으니 섣불리 제압하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저 여자가 낯이 익다.

저분 명승철학관 손님인데?

사주 코드명 ‘창고에 가둔 칼날.’

손이 하얀 간호사 집착녀, 강라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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