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133화 (133/211)
  • #133. 옛 복지제도.

    대전이면 반군 세력 불법점유 영토 빼고는 나라의 딱 중간이다.

    그런데도 멀어서 고생했다.

    철도로 서울이 한 시간, 부산이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말이지.

    설유겸이 물었다.

    “절 보자고 해요?”

    “그런 건 아니고 증인이 필요해서.”

    “증인?”

    “다른 건 몰라도 할아버지가 이 작은아빠한테는 절대 뭐 주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그 서울 집, 유겸이한테 남기실 거. 그것도 빚을 지워 몰수하셨더만요.”

    “아, 아 맞아요. 사촌 동생이 진짜…….”

    성북동 저택 앞에서 본 아이 말이구먼.

    “그래서 함부로 접촉하기 꺼려집니다. 저는 설 회장님의 유명을 지키는 사람이라, 회장님 둘째 아들에게 호의적인 시각을 보이는 것을 꺼립니다. 그러니 그런 뒷말에 증언으로 절 지켜 줬으면 합니다.”

    “아하, 그러려고 날 데려온 거구나?”

    “사실 차 셔틀로 데려온 건데, 탈 것 제공이라고 하면 정 없으니까 갖다 붙이는 소립니다.”

    “……야.”

    내가 좀 이거저거 다 걱정하는 편이라 별걸 다 보험을 들어 두기는 하는데.

    설양훈도 쓰러진 마당에 이건 몰래 와도 큰 문제야 없었다.

    근데 멀고 차 없고, 본인이 시켜 달라고 했으니까 활용했다.

    “아무튼 같이 들어갈래요?”

    “으, 음 아니, 아니에요. 괜찮아요.”

    교도소라는 것부터가 꺼려지는지 설유겸은 차를 두고 대기하겠다고 했다.

    나도 내 발로 찾아와 들어가는 게 좀 뭐한데, 쟤는 오죽하겠나.

    “어, 근데 그러다 뭐, 그 두부 먹다 나온 전과자를 마주한다거나 그 전과자들을 기다리고 있던 어깨들이 나오셨습니까, 형님! 하면서 희롱을 한다거나.”

    “거, 겁주지 말라구요.”

    뭐, 교도대 있으니 상관없겠지.

    말 그대로 그냥 겁 준 거다.

    <면회>

    당신은 국가, 기관의 통제에 의해 붙들려 있는 사람을 만납니다. 이를 통해 반면교사를 얻는다면 당신은 사회의 규범에 저항할 힘과 자유를 얻습니다.

    교도소 면회를 오는 것도 뭐가 오르기는 하는구먼.

    사주에서 분류하기 힘든 것이 교도관과 재소자의 사주다.

    교도소라.

    사주강화술의 함정 카드, 고난/책무 운세가 강한 사람들이 여기 있다.

    인생의 자유의지를 속박당하는 운수인데, 한국은 남성들에 한해서 이 운세는 다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 운이 강한 사람들은 규칙과 규범이 많은 군 생활 적응력이 높다.

    즉슨, 통제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란 것이다.

    이러한 통제가 정말 싫다면 실수로 잘못을 저질러도 다신 이런 데 안 오게 조심하며 살아갈 건데, 방에 익숙해진 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면, 전과를 적립하고 자주 드나들게 된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군대 교도소랑 다를 게 뭐냐는 장병들의 호소는 사주학으론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오르는 건 아니겠지?”

    ―관성운의 고난/책무운에 포인트가 적립됩니다.

    ……이 메시지 안 뜨길 바라고 있다.

    자유의지와 표현 의지인 비겁운과 식상운만 올라라 제발.

    교도소 대충 흘겨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와중.

    그리고 설윤환이 나왔다.

    수의를 입은 그는 하얀 머리와 깎지 않은 수염이 너저분하고 과하게 늙어 설양훈 나이로 보일 정도였다.

    주름이 무척 많다.

    육체노동을 시키나 싶지만, 돈 많던 부자들이 감옥 들어가면 피폐해지더라고.

    “처음 뵙습니다. 어려 보이시네요. 여기 오면 귀염깨나 받으시겠습니다.”

    “도발부터 하시네.”

    “제 딴에는 칭찬입니다.”

    “소위 범털이라고 하던데, 그렇게 지내시진 못하나 보죠?”

    “혜영이가 영치금은 조금 넣어줬습니다만.”

    설양훈은 둘째를 단순히 집어넣은 게 아니라 철저히 파멸시켰다.

    너무하다 싶은 느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들도 독살한 제갈각, 뒤주에 넣고 죽인 영조, 아들 패 죽인 이반 뇌제.

    이런 사람들 생각하면 행복한 줄 알아야.

    “왜 자꾸 그런 편지를 보내신 겁니까? 마타도어란 말은 아시겠죠?”

    “아버지는 예전부터 선생님 같은 분들을 아꼈습니다. 대전에 그 유명하신 선생님이 계셨어요.”

    “계룡선사 말이십니까?”

    “아니오, 더 나이 드신 분이셨습니다. 어릴 적에 저희 형제들 점을 쳐주신 분인데 그, 박 대통령이 흉살을 당할 것이라 예측을 하셨던 분인가.”

    “어, 아십니까? 도계 선생?”

    대전에 유명한 선생님이라고 한다면 도계 선생이었겠다.

    김재규의 운명을 예언하신 걸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3대 역술인 하면 3분 꼽는데 그 양반들이다.

    자강, 도계, 제산.

    제산 선생은 박정희의 운명을 예언했고, 또 마지막을 짐작했다가 코렁탕도 드셨다고 하는 양반으로 그 가문은 업계와 연관이 깊다(?).

    아마 명승선생님이나 계룡선사 같은 양반들도 공부 자체는 그 양반들이 남긴 유산으로 했을 것이라, 알게 모르게 나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특히 설양훈은 그 시절 사람인 바, 도계를 알고 있었으며 만난 이야기도 해 줬었다.

    다만 설윤환은 헷갈리는 모양이었다.

    도계와 제산은 성이 박씨에 이름도 흡사하다.

    심지어 박씨가문 관련 예언에서도 전설이 비슷해서 헷갈릴 수 있다.

    “아무튼 이런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바쁜 시간 모셨습니다.”

    설윤환은 초면에 만난 사람들끼리 서로를 알아보며 하는 탐색의 대사를 뚝 끊었다.

    면회 시간이 길지는 않으니 별수 없겠지.

    “아, 영치금이라도 넣어 드려요?”

    하지만 겸연쩍은 소리를 하며 말을 돌렸다.

    설윤환의 사주는 입수했지만, 사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이 철창 안에 있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판단 가능하다.

    이미 그 판단은 판사가 내려놨으니 사주로도 쉽다.

    “것보다 정환이 부하들이 갖고 있던 제 돈이 있습니다.”

    정환이?

    김병용마냥 친구도 아닌데 남 앞에서 이름을 막 부르네?

    “정환이라뇨, 그래도 형인데.”

    “사주로 보시지 않았습니까?”

    “사주로 뭘 보죠?”

    “……눈치채셨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설윤환이 묻는다.

    사주 본 경험을 토대로 하는 이야기라, 나 말고도 누가 사주로 눈치를 채서 알려 줬나?

    설정환을 30년간 의심하며 제대로 된 자식 취급을 안 해 줬다는 것은 설양훈에겐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다.

    그래서인지 설혜영, 설윤영도 그걸 모르는 눈치였다.

    단순히 가족사이자 치부이므로 말을 안 했을 수야 있지만.

    묻어두고 싶어 했던 것이 보인다.

    다만 그럼에도 설양훈은 완전히 공개하지는 않은 유언장에다가.

    ‘유전자 검사지를 첨부해 놨습니다. 내가 아들로 이렇게 인정을 해 놨지만 그걸 부정할 놈이 있어서 잡음이 나지 말라고. 이건 선생한테만 말하는 겁니다.’

    ‘아니, 왜…….’

    ‘요즘 애들처럼 말하자면 쪽팔리니까요.’

    ‘그거 요즘 애들 아닌데…….’

    자신의 쪽팔림을 감수하고 박제를 해 뒀다고 들었다.

    말라리아로 열이 잠깐 내렸을 때 말한 대담 녹취라서 나만 갖고 있다.

    설양훈은 장남네에 승계하든가, 현실적으로 애들 나이가 어려 그게 불가능하면 최소한 많은 재산이 돌아가게끔 많은 안배를 해 뒀다.

    근데 설윤환은 그걸 모르는 모양이네.

    보내는 편지 내용이 누가 봐도 설정환 수상하지? 나는 알고 있다?

    이를 자랑하는 것이었고.

    설양훈도 모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야 나한테 편지 보내는 행동이 이해가 간다.

    설양훈의 비밀 최측근이니까.

    한 마디로 비선인 나한테 ‘설정환은 친자가 아닙니다. 아버지, 나 꺼내 주고 회사도 줘요.’라고 전달을 맡길 창구로 괴편지를 날린 것이다.

    그런데 어떡하나.

    “푸학.”

    그렇게 놀리진 않았지만 웃음으로 비웃어주었다.

    “왜 그러시죠?”

    “그거 설정환 님이, 설 회장님 친아들이 아니다. 그 이야기죠?”

    “과연 예리하시네요.”

    “친아들 맞는데요.”

    “예?”

    정보 업데이트가 늦다.

    설윤환이 누굴 깔아놨길래, 날 눈치채고 편지를 보내오나 했는데.

    어느 정도 위치인지 대강 짐작이 간다.

    “사주로 설 전 회장이 설양훈 회장 친아들 아니라고 한 사람 누굽니까? 어째서 그딴 결론을 냈대요?”

    “20년 전쯤에 다른 역술인 분이 저만이 회장님 아들이라고 하신 분이 있었습니다만.”

    그러면 도계 선생은 아니구먼.

    타계하신 게 나 태어나기도 전이니까.

    어떤 사짜길래, 계룡선사인가?

    “그거 쉬운데요. 자식운이 없는데, 옆에 닮은 상대적으로 어린 남자가 돌아다니면 이놈 말고는 자식운이 없다. 식으로 말할 수 있죠.”

    “그……래요?”

    나 같으면 그렇게 판단했을 것이다.

    “예, 자식운 없으십니다.”

    “그러면 친자식이 없다. 뭐, 그런 식의 해석이 나오는 거 아닙니까?”

    “사주에선 그냥 자기 제껴 버릴 놈이 자식이거나, 자기보다 일찍 죽을 놈이거나, 워낙에 한미한 어미를 둬서 얼자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게 할 수 없는 놈인 경우에 자식운 없다고 통칭합니다.”

    “제 동생들이 있는데도요?”

    여동생들 이야기하는 거지?

    “사주학은 농경시대 고전 학문입니다. 보는 기준도 농사짓는 역법으로 추산해 24절기로 보지요.”

    “무슨 말씀을?”

    “그리고 남자의 자식운은 곧 사회성입니다.”

    “사회?”

    “사용자로 있어 보셨으니 알 겁니다. 처자가 있는 유부남 사원과 홀로 지내는 노총각 사원, 어느 쪽이 더 절실해 보이는지.”

    “이해가 갑니다.”

    “고대에도 그랬습니다. 처자가 있는 남자는 정착하여 정주민이 되기 마련이며 그로 인해 그 사회에서 순종하며 살아가는 체제 순응자였고, 처자가 없이 떠도는 남자는 부랑아거나 남의 처와 딸을 탐내는 약탈자의 입장에 섰으니까요.”

    “아니, 왜 갑자기 이런 말씀을…….”

    시간 없어 보이는 건 알겠는데, 상관없다.

    지금 하는 말을 보아하니 머저리 같은 소리나 지껄일 것 같다.

    사주고 뭐고 필요 없다.

    설윤환의 상황과 현상, 사람들의 공통적인 증언이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설정환 이야기를 하는 순간, 설윤환에 대한 영양가가 느껴지질 않는다.

    혹시 뭐, 아주 대단한 거라도 감춘 줄 알았더니.

    대단한 것이긴 하나, 내가 파헤쳐 알게 된 거라서 상관없는 이야기다.

    고로 시간 없게 만들어서 가진 용건과 할 말 다 털어놓게 내 할 말만 늘어놨다.

    그런 다음 면회 시간 종료로 대답 안 하면 되지.

    더 갑갑해 봐라.

    “이어 고대 농경사회에서 노인의 복지는 자식이 맡았습니다. 그러므로 1차 산업인 농사 등에 적합한 아들을 두는 것을 자식운이라 본 겁니다.”

    “동생들도 자식운이 아니었다?”

    그래도 마땅히 대화할 상대가 없어서였는지 듣기는 잘 듣는다.

    “고로 2~30여 년 전의 사주면 아직도 고전에 입각한 사주 감평이 많아서 세 따님을 자식운으로 치지 않았겠지요.”

    고서에는 자식운이 없는 사주라고 예시를 놓고 ‘이 사람은 딸만 있었다.’는 서술이 있는데.

    요즘은 안 맞다.

    이제는 노년의 부모가 사회안전망을 제공받게끔 사회에 이바지할 후손을 자식운으로 본다.

    사회안전망, 즉 돈 주는 나라나 직장과 자식운은 그 근간이 같으니까.

    “그런 면에서 설양훈 회장은 자식운이 없죠. 사회 체계에 순응하여 노인 복지…는 둘째치고 효도를 제공할 자식들이 없으니까. 특히 감옥에 집어넣으려 했다는 둘째는 자식이라 칭할 명분 자체가 없습니다.”

    “……그건 사실이니 부정 않겠습니다.”

    “보통의 부모는 자식이 살인자여도 그를 감싸고, 자식도 여간해선 부모를 손절하지 못하는데. 돈이 무섭지요.”

    사실 여자 좋아하고 내연녀들과 궁궐 같은 생활을 한 것 치고 자손 생산도 부진한 편이다.

    뭐, 영리한 사람이고 원치 않은 임신을 장가들기도 전에 했던 사람이라 교훈이 있었겠지.

    “근데 고작 그 사주를 믿고 지금 이러시는 겁니까?”

    “그렇지만은 않고 믿을 만한 증거가 있습니다.”

    솔직히 아버지가 수긍하고 인정한 아들이면 정말 피가 안 섞였다고 해도 아무 상관없지 싶은데, 설윤환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설양훈이 장남을 높이 쳤어도, 설윤환에게 기업 주려고 후계자 수업 쌓고 서울 집도 준 건 사실이라, 아버지의 갑작스런 변화에 배신감을 느껴서 이리되었을 가능성.

    높이 본다.

    “설 회장님이 쓰러졌다는 소문은 들으셨지요?”

    “예, 들었습니다.”

    “유언장 내용을 일부 공개하셨습니다.”

    “그것도 들었습니다만…….”

    “못 들으신 게 있을 겁니다. 저한테만 말씀하신 거라서.”

    “예?”

    설양훈 회장의 전언을 읊어줬다.

    이건 세 명의 탁고한 인물들 중 나만 따로 불러 남긴 말이다.

    “행여, 아니 반드시 내 큰아들 정환이에 대해서 허튼소리를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인데, 내가 아들로 받아들였으면 그것을 법적으로건 제도적으로 무엇보다…….”

    “아, 알고 계셨다고요? 아버지가요?”

    한참 말하는데 끊는다.

    다급해 죽겠는 모양이네.

    초읽기인 사람을 붙들어놓고 사주를 말하는 건 효과가 크지.

    “동생이 아는데, 아비가 모를 리가요? 아니, 아빠가 아니까, 아들들이 알았겠지. 설마 사주 보는 사람 말 한 마디 믿고 그러셨을 리는 없고. 이 정보는…….”

    “그게 왜 그러시는지?”

    생각해보니 무섭네.

    누군가 이 사실을 흘렸다, 역정보로.

    그리고 그 흘린 사람이 설양훈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설양훈일 것이다.

    장남이 친아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차남은 아는데 아버지는 모른다?

    그게 말이 되냐?

    이건 아버지가 모른 척을 하며 속인 것이다.

    자리 빼앗긴 능력 딸리는 차남이 미쳐 날뛸 명분.

    와, 늙은 여우.

    너무 대박으로 날뛰어서 안 볼 수준이 되어버린 게 문제겠지만.

    당시에 장남 승계를 위해 차남을 쳐내는 것엔 예리하게 적중한 꾀였다.

    “이쯤 되면, 오히려 설 회장님이 이용한 것 같네요.”

    “무슨……?”

    “그 떡밥을 물어 핏줄 트집을 잡을 사람을 소탕할 명분이오.”

    “그 사람이 누굽니까?”

    눈빛으로 가리킨 뒤 말했다.

    “예, 소탕되어 있잖아요?”

    소탕되어 갇혀 있기까지 했다.

    “그런데, 당신한테 아버지가 왜 그런 걸 이야기를 합니까?”

    “제가 그 사주보고 맞혔거든요.”

    “진짭니까?”

    “허리 되게 아프시잖아요. 저 사주 괜찮게 봅니다?”

    이어 설윤환의 사주 몇 가지를 힌트로 던졌다.

    당연히 잘 먹히고, 알려지지 않은 건강운.

    사무직에서 좋은 의자 잘 앉아 있다가 이런 곳에 있으면 가장 먼저 허리부터 나간다.

    그리고 설양훈도 허리 안 좋아서 아예 등을 째고 시술을 받았다.

    유전일 수 있다.

    허리 이야기를 들은 설윤환은 면회 시간이 초조해지자 다짜고짜 외쳤다.

    “아니, 그렇다면 저도 좀 도와주십시오. 아버지는 쓰러지셔서 더는 백이 안 되지 않습니까? 저도 도와 드리겠습니다. 제가 회사만 먹으면.”

    아니, 수의 입은 죄수가 무슨 회사야.

    형이 몇 년이 더 남았는데.

    “출소 몇 년 더 남지 않으셨나요?”

    “아버지가 쓰러지셨으니 가능합니다. 저희 스카이피아는 충청에 있고 큰 선거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중원에 있는 저희 회사 잡으려고 들 겁니다. 정치권에서, 거기서 줄 수 있는 선물이 제 사면일 가능성이 높아요.”

    아, 장밋빛 청사진을 그려놨나 보다.

    저희 회사라니.

    그리고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앞으로 설윤환 사면 운동을 벌이는 사람이 범인이다.

    “그럼 더 안 됩니다.”

    “예?”

    “나 같으면 여기서 아버지가 깨어나실 때까지 죗값 달게 받겠다고 말하겠네.”

    원인은 결국 효와 충이다.

    군부(君父)에게 충성하지 않고 그 뜻을 따를 생각이 없으니 여기까지 전락한 것이다.

    나 꺼내달라가 먼저가 아니라, 아버지 걱정을 지극히 했으면 내가 동정심이 들었을 것이다.

    ‘영감 너무했네.’ 하면서.

    허나 아버지 쓰러진 김에 방 나가서 회사 흔들 생각만 가득하다.

    “아니, 저는 억울합니다. 죄가.”

    “법으로 죄 맞고요. 불효 또한 죄입니다. 사주 믿던 시절엔 그 불효 당한 아비가 봐달라고 사정을 해도 사또가 곤장을 때렸어요.”

    때마침 면회 시간이 끝났다.

    드라마처럼 붙들어서 데려가지는 않는데 재촉하고 벨 울린다.

    “그거, 아버지가 날 먼저 버린 거 아닙니까, 내가 뭘 그리.”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내가 미워도 지금 나 말고 누가 이끌 수 있겠습니까, 예?”

    “그렇죠, 혈통 좋죠, 민혁이만 거지였으면 안 그랬을 겁니다.”

    “그 종년의 자식들이…….”

    설윤환은 설민혁 이야길 듣자 격앙되어서 언성을 높였는데, 듣기 거북하다.

    그럼에도 거기다 웃으며 한 마디 던졌다.

    “아저씨도 자식운이 좋으십니다.”

    “……예?”

    “자식운은 사회안전망, 즉 직장이나 공동체에 안정감 있는 사내로 보여질 명분입니다. 고대 노인의 복지는 자식이 담당하기도 했고, 그 복지 담당할 자식만을 자식운으로 쳤고 요즘엔 아예 연금이, 정확히는 연금 나오는 좋은 직장이 복지 담당하는 나라가 자식이다는 격한 학설도 있네요.”

    자식운은 남자에겐 사회와 직장을 말하는 관성운과 한 탭이다.

    “그렇군요. 이걸 갑자기 왜.”

    “아저씨 밥도 나라가 주고 있잖아요.”

    “……!”

    “아동복지를 제공했던 아버지에 대한 복지를 수행할 생각은 없이, 콩 가득 든 나랏밥과 철창에 위임하려 했을 때부터 당신은 자식운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놓고, 자식의 권리는 받길 원하네요.”

    “이, 이 무슨.”

    “자식들이 최소한의 복지로 이런 데 보내 드리면 자식 원망 안 하시겠죠.”

    더 할 말은 없었다.

    아버지의 모략에 속았다 한들, 선을 넘은 것은 용서받기 어려운 일이다.

    아니, 그걸 넘어 멍청하다.

    권력과 명분을 쥔 아버지를 그렇게 들이받아?

    그럼 패배하면 이리될 줄 알고 패배자로서의 본분을 다하며 때를 기다려야지.

    그래도 난 혈통 확실한 자식이야, 이러고 있네.

    할 말은 없는지 째려보는데 웃으며 한 마디 더 남겼다.

    “그리고, 아저씨가 과연 방에서 나올 사주일까요?”

    설윤환에겐 설정환을 보내버리기엔 충분한 동기요인이 있다.

    지금까진 동기만 있다고 봤는데, 수족처럼 움직이는 자들 등 수단도 있어 보인다.

    여기다 녹음 다 떠놨다.

    이걸 설정환 충성파로 자금을 지키던 이태현에게 들려주면 그가 어디에 충성하는지 진심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어 이태현 자금을 온전히 전부 설윤환한테 공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그런 한심함이 그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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