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운명을 휘두르는 자리.
예를 지키되, 권한은 행사한다.
예만 지키고 아무것도 안 하면 그냥 예의 바른 청년, 호구, 바보다.
성진경은 불안한 눈빛이었다.
“부르신 이유가……?”
“아, 이태현 중동사업부 총괄이사님이 장기 병가를 가셔서 사업 진행이 느리다고 들었거든요.”
중동사업부 관련해서는 나도 주워들은 게 많다.
관심을 안 둘 수가 없는 분야니까.
중동사업부는 정확히는 아부 탈리브 센터에 실제로 파견 나가 있는 사원들이 힘이 센 편인데, 이태현, 성진경, 박효성 모두 갔다 온 적이 있어 발언권이 있다.
기량이 원숙하고 국내에서도 활약상이 있어 저들이 중동사업부인 해외 영업 2팀을 잘 굴리고 있다.
“그, 그렇습니까?”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냥 사주보다가 우연찮게 회장님네 사주 좀 맞췄다가 이렇게 된 낙하산이니까.”
“그래도 그럴 수야…….”
호칭이나 존댓말 논쟁으로 길게 갈 생각은 없었다.
손님이라 생각하니까 상호존중이 기본이다.
“에이, 알겠습니다. 그러세요.”
“그, 그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뭐, 다른 것보다 제가 성 부장님 사주를 입수 했거든요, 개인적으로.”
생일은 알아냈는데 성진경 인생, 12분할 해서 시간 맞추느라 고생했다.
인생을 아니까, 그 인생을 토대로 사주를 재구성하긴 했는데, 그건 그냥 사주강화술 쌓으려고 하는 거고 파헤쳐도 된다.
인생 알면, 사주로 파고들 이유가 없다.
사주를 통해 상대의 인생의 깊은 사연을 하나 캐치해 내어 상대를 신뢰시키고 신뢰시킨 상대와의 믿음을 매개로 내 뜻을 관철시킨다.
이 공식을 쓰는데, 현재는 해답지를 보고 답과 공식을 다 알고, 방정식의 빈칸에 숫자만 적는 요식행위 중이므로 ‘해답지 안 봤어요.’라고 들리게끔 그럴싸하게 말하는 게 관건이다.
“예?”
“업무가 황당하지만, 사원들 사주나 이런 걸 봐주고 적성에 맞는 인사 배치 등등을 해달라는 유명이 있어서 말이죠. 설양훈 회장님께서 이런 걸 워낙에 좋아하기도 하셨고.”
“예, 예. 그랬다고 들었습니다.”
“어, 우선 대단히 이성적으로 방종한 면모가 드러나서 그와 관련해 주의를 좀 드리려고 합니다.”
“아, 아, 아아, 그것이 제 이야기를 좀 들으신 모양인데.”
사주를 공격용으로는 잘 쓰지 않지만 공격용으로 더 유효하다.
사주는 인간의 보편성을 따르기 때문에 90퍼의 서민은 팍팍하므로 사실 제대로 찝어 내면 안 좋은 소리밖에 없다.
그 90퍼 중에 나름 내세를 믿으며 인생 안녕을 찾아 정신승리 잘하고 살거나 중산층에 가까운 삶을 사는 30퍼 정도 더 뗀다 쳐도, 한 60퍼의 인간은 재수 없다를 상정하고 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심지어 오복 중에 두 가지 복은 ‘내 복’인데, 나머지 복은 힘이 약하면 복이 아니게 작용하는 운들로 5분의 2만 지원 세력, 5분의 3은 기본적으로 적대 세력 혹은 사냥감이다.
즉, 그냥 사주 시작부터 6대 4의 법칙으로 6은 재수 없는 것.
그걸 장사해야 하니까, 어거지로 ‘좋다, 괜찮다’로 만드는 게 역술인들의 난제인데, 작가 경력이 있어서 그걸 잘하는 게 내 장점이다.
그걸 반대로 쓰면?
모든 것을 나쁘게 몰아가는 것도 그걸로 겁을 주는 것도 그걸로 겁을 줘서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도 모두 가능하다.
효과는 실제로 이게 더 큰데, 불행과 공포를 팔면 사주 보는 이를 더 철석같이 믿고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나는 이걸 세상은 아수라장이라고 보는 불교식 사주 감평, 무당식 사주 감평으로 보아 선호하진 않으나, 안 써먹지, 못 써먹는 건 아니다.
“어, 이민준 씨한테 듣긴 들었습니다. 다만 저는 것과 관련해서 청교도처럼 굴 생각은 없습니다. 외기러기이시기도 하고.”
“아, 그것도 들으셨습니까. 뭐, 젊은 친구들은 조금 이해를 못 하는 거 같기도 한데, 그게 정말이지 일을 하다 보면…….”
변명은 무시하고 내 할 말을 했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속내를 남에게 털어놓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예?”
“그 깊은 사연이 약점이 될 수 있고, 사연이라는 건 무릇 감정을 이끌어 내는 데 감정에 치우친 남성은 남성 사회에서 집단과 논외 된 존재, 뭐랄까, 계집애 취급을 받아 온 게 사실입니다. 우는 남자애더러 고추 떨어진다, 하던 것처럼 말이죠.”
“아, 어, 음, 말씀에 수긍이 갑니다.”
존대는 잘하는 편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감정이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연대하고 싶은 의식이 있고 나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을 찾고 싶은 욕구가 있지요.”
“…….”
대답이 없는 모습이 웃긴다.
성진경이면 해외 영업 2팀 스캔들의 중심이다.
같은 생각만으로 연대한 게 아닌 수준의 연대 의식을 가진 것.
“그런 이들의 특성이 무엇으로 드러나냐면 남성의 공통적 관심사인 여자와 사람의 이성을 억누르는 술에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서열화된 동물이다 보니 서로 약한 것을 꺼내어 놓고 공유하며 연대하는 건 같은 처지에 있던 학창 시절이 마지막인 바 그렇습니다.”
“학창 시절 친구들이 길게 가긴 하더군요. 별걸 다 알고.”
세상은 사람의 급을 가르는데, 급이 갈린 상황에서 약점을 드러내면?
사회에서는 그대로 물어뜯긴다.
고교 친구가 오래 남는다는 속설은 그래서 그렇다.
급이 덜 갈려서 서로 약점들을 속속들이 아니 친근할 수밖에.
“그러므로 술과 여자를 좋아한다, 그것에서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이죠. 유흥 쪽에서 유명하고 실제로도 그러하며 사주로도 그러한 성 부장님에겐 털어놓을 수 없는 속내가 있다고 봅니다. 결핍이오.”
“어려운 단어 쓰시네요. 결핍이라.”
“그 결핍을 혹시 이용하는 자들이 있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배후를 물었다.
이번엔 사주 배합이 거의 없다.
그저 ‘왜 그러는지 이해하겠다, 그러니 네 배후를 말해라.’이다.
“아, 아, 그건…….”
“아, 그냥 단순 섹스중독입니다. 인정하시면, 그런 결핍 없다고 묻을게요.”
“예에?”
“제가 사회적으로 유흥이 왜 발생하냐에 대해 길게 나름의 면죄부를 드리긴 했지만 그냥 못 말릴 섹스중독인 경우도 있습니다.”
“결핍은 그렇지 않고……. 저는 말씀하신 대로 그냥 방종하다, 여자를 밝힌다. 그쪽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미친.
보통 이렇게 몰면 ‘저는 어디가 외로워서 그랬다.’라고 자신을 정당화하며 변명하는데 반응 색다르네?
그 결핍을 채워 준 연대하는 자들에 대해 변명 삼아 토로하길 바랐기에 몰고 간 것이다만.
뭐, 상관없지.
“섹스중독은 결핍이 없어서 그런다고 생각하십니까?”
“…….”
물론 유도한 가불기다.
섹스중독인 경우가 뭔가 결핍은 더 많다.
“뭔가 알고 물어본다는 생각을 안 하시고 회피하시면 재미없죠. 제가 좋게 좋게, 아유 이러셔서 그러셨구나. 사연 듣고 경감해 드리려고 하는데.”
공격용으로 쓰겠다고 마음먹고 오긴 했는데.
간만에 상하관계 느낌이 나네?
실제로도 상하관계이긴 하다.
군 생활 중후반에 깨달은 소위 ‘갈굼 사주.’ 같다.
상대를 손님이나 어려운 상대로 보지 않고, 아랫것으로 보고 지르는 사주 감평이다.
“경감이라니요?”
“누가 봐도 뭘 감추고 있잖습니까. 켕기는 거.”
“왜……?”
“누가 유흥가에 가는 거 트집 잡는데 일 때문이라 변명 안 하고 섹스중독이라 간다! 이렇게 말을 합니까? 저희 초면이에요?”
“…….”
성진경은 침묵으로 의혹을 주로 회피한다.
“그래서 그런 친구들이랑 노는구나 하며 이해하려고 하는데, ”
“그런 친구들이오? 뭘 말씀하시는 건지.”
“남자가 연대를 그걸로만 하겠습니까? 그냥 그건 상류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약점을 정말 하나도 노출시키면 안 되는 상류층 남자들이 즐기는 취미 겸 연대지. 고대엔 전장에서, 그리고 농사를 지으며 혹은 놀이를 하며 요즘엔 게임 등을 하며 연대 의식 충분히 키웁니다.”
본질이 학창 시절 여자애들하고 적극 어울리며 염문을 뿌리고, 그 시기부터 성적 방종을 일삼는 일진 애들의 기전과 다를 바가 별로 없다.
술, 담배 등의 금기로서 연대 의식을 갖기도 하지만 특히 그 시절에 이른 연애 시작하는 친구들이 그런 쪽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잦다.
학교 집단에서 차원에서 무력을 거머쥔 상류층 무리가 그렇게 놀 듯이, 사회에서도 권력과 재력을 거머쥔 무리가 그렇게 노는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 상류층 남자들이 누군지, 알고 싶은 겁니다.”
“저 그냥 부하직원들이나 데리고…….”
여기서 이런 변명을 하네.
“그리고 내규상, 유흥 접대 및 잦은 업소 출입 그거 징곈데 섹스중독 인정을 하셨다……. 이러면 참작이 안 되잖습니까. 사유도 섹스중독이네요. 치유 목적의 무급휴가 겸 병가 내드릴게요. 당분간 나오지 마세요.”
“아, 아니, 그건 아닙니다.”
“그럼 말씀하시는 것에 따라 다르겠네요.”
“뭘 아신다고 이러시는 겁니까?”
성진경은 언성이 높아졌고, 어리다고 무시하는 발언까지 나왔다.
그 높아진 언성을 바로 잠재울 수 있었다.
“이태현 자금을 모르고 지금 이러시는 거 아니잖아요?”
“…….”
“제가 다른 건 모르겠고 설민혁 씨하고는 좀 친합니다. 이쪽이 유흥가 쪽 정보에 빠삭해요. 말씀하십시오.”
정확히는 설민혁은 아니고, 7944호를 비롯한 그쪽 인맥이다.
다그쳤으나 성진경은 이에는 뻔뻔하게 답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뭐, 말 안 할 줄 알았다.
스카이피아 임원진인 기술고문 정기상 교수와 성진경 부장이 있던 술자리에 이태현 차 사고의 급발진 운전자가 배석해 있었다는 증언을 들은 참이다.
그 이상 파고든 건 없어서 증거는 없지만, 우연은 아닌 듯 하다.
“뭐, 대답 안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 직위는 박탈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어떤 근거로 그러시는 겁니까? 제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 모르니까, 말을 안 했다는 것만으로 이러셔도 되는 겁니까.”
나도 증거 없는 걸로 몰아세우진 않는다.
“아뇨, 섹스중독이오.”
“그걸로요? 제 개인의 성적 취향이나 가정 문제가 직장에서의 어떤…….”
다급해지니까, 말 빨리하는 거 봐.
“아니, 그거 말고요. 모찌라고 아시죠?”
“어, 억?”
‘모찌’는 해외 영업 2팀을 소위 연대시켜 준 그 문제의 여인이다.
현재는 박효성의 부인이고.
실명 알지만 7944호처럼 예명으로 통칭하고 있다.
“그게 보편적인 성생활입니까? 이 사실이 알려지거나 퍼져나가면 큰 물의를 빚고 회사에 피해를 입히실 겁니다.”
‘모찌’ 관련해 명분을 쥐자 성진경은 아무 말도 못 한다.
반년간 회사 내 정보 수집한 게 많아서 사주 보고 조금만 소문 조합하면 여기 사람들 털어내는 게 어렵지 않았다.
거기다 설 회장, 노승환 사장, 이태현 이사 등 회사 상류층들과의 교류로 고급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했으며, 이어 한밭 신문과 허윤식의 신문사 대전지부 등에서 캐낸 외부적 상황까지.
사실 성진경은 이렇게 판을 다 짜놓고 언제고 찍어낼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다만 키워낼 은겸이나 민혁이한테 찍어내는 공을 먹여 키울 생각이었는데.
설 회장이 그리되는 다급한 일이 터져, 내가 직접 하고 있는 것이다.
“중동으로 다시 가십시오.”
다만 알아본바 정규직 사원인 부장은 기본적으로 해고가 어렵다.
의자 치우고 그런 식으로 대응한다는데…….
그렇게까지 치졸하게는 못하겠고.
뭣보다 회유하지 않고 선을 긋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재고해 주십시오. 제가 다시 가기는…….”
“부인과 자식이 있는 지사로 보내 드릴까도 생각은 했는데…… 안 가시겠죠.”
“예?”
“그게 말입니다. 부장님께서 그런 중독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사주로 미루어 볼 때, 돈에 눈이 돌아갈 일이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돈…… 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하나, 오늘 오전에 부장님을 스쳤을 때 설씨가문 세습에 대한 분노 토로는 들었습니다. 이거 뭔가 못 가진 분의 토로 같았지만 몇 가지 힌트가 있더군요.”
“힌트가 있었다고요?”
“배신감이오.”
“예?”
“세습과 혈육에 부정적이 아니라 미모에 부정적인 언사를 보이더군요. 그러면 보편적이지 않게 여성을 외모가 아닌 마음가짐으로 본다는 뜻인데……. 왜 그럴까요?”
예쁜 걸 마다하는 사람은 남자를 찾기가 드물다.
그것도 한창나이의 어린 여자애한테 토로하는 분노가 어색했다.
이성에 대한 분노가 있다고 봤고, 그 대상은 아마, 누가 봐도 부인이겠지.
행동이 진짜 변태가 아니라면 딱 뭔가 여자에 배신당한 남자처럼 살고 있었다.
젊을 때나 찾아올 사랑의 열병 같지만 본디 욕망이 강하면 나이 들어도 소년 소녀처럼 살고 싶은 법이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읽혔습니다.”
“무엇이?”
“세습엔 부정적인데 설씨 가문 전체에 그 분노를 돌리지 않더군요.”
“…….”
“그냥 적당히 끊은 걸까요, 아니면 설씨가 어린이는 탐탁지 않지만 다른 누군가는 적합하다고 여기는 걸까요?”
“사주로 맞힐 수 있으십니까?”
“아뇨, 그냥 부장님 말에서만 들어도 누군지 알겠는데요. 사우디에서도 일하셨잖아요.”
“아, 그랬습니다.”
“사우디는 형제 세습제가 근래에 바뀌었죠.”
성진경은 형제 세습제에 침묵을 지키며 말을 못 한다.
내가 알고 말한다니까, 뭘 사주로 맞히래.
“진짜 저 그렇게 가야 하는 겁니까?”
“황당하지만 제가 그런 힘이 있네요? 그리고, 부장님은 명분을 퍼다 주셨고?”
내가 운명을 결정하는 입장인 게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나도 안 믿어지는데 오죽하겠나.
“이태현 관련 유언비어 살포 등 그를 제치면 누가 이사자리 보장한다고 접촉했는지 그걸 밝히면 일단 제가 불식시켜 드릴게요.”
“말씀을 드리면 남을 수 있겠습니까?”
“인사권 전권이라서 가능하긴 합니다. 저희 말곤 오늘 일 모르잖아요. 길게 시간 안 드립니다. 사흘 내로 말씀 주세요.”
성진경에게 시간을 짧게 줬다.
그사이 반격을 할 채비를 마치든가, 아니면 내 의견을 수용해서 떠나거나, 가져다 바치거나 할 것이다.
어느 경우이든 드러나게 되어 있다.
다음으로는 설 전 회장 급사 의혹 제기 및 공론화다.
* * *
<출근>
당신은 사회의 일원으로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합니다.
출근마다, 통합 관성운 2포인트, 근로소득운 0.5포인트를 부여하나 자아운이 0.5포인트씩 하락합니다.
“흠.”
인생의 진리를 또 하나 알려 주고 있다.
출근으로 사회성과 재물은 얻지만, 스스로의 자존감을 훼손한다는 메시지다.
이제 올릴 때가 된 모양이다.
내가 사는 삶은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사는 삶도 절대 틀린 길이 아니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이 무조건 옳은 길이다.
그 누구도 차마 갖지 못할 애매한 확신을 현실로 만드는, 사주의 주인공 그리고 사주강화술의 주인공.
‘자아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