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128화 (128/211)
  • #128. 미천하니 거리낄 것이 없다.

    설양훈이 쓰러지고 얼마 안 가, 노승환과 따로 만났다.

    할 말이 있어서였다.

    “노 사장님이 인사권도 행사하세요.”

    “제가 말입니까?”

    “저는 탁고대신을 셋으로 나누는 게, 뭐, 나름 이해는 가지만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요? 저는, 나름 괜찮은 방편이었다 봅니다.”

    “예, 뭐 한 명이 독식하는 건 위험하죠. 전횡을 하다 먹고 나르면, 그 피해는 스카이피아의 금지옥엽들이 볼 테니까요.”

    이건 보는 관점이 갈릴 수 있었다.

    나는 설양훈의 방식이 마음에 안 들지만 노승환은 그렇지 않은 모양.

    탁고대신의 예를 볼 때, 탁고를 받은 사람들이 여간한 유학자 충성파가 아닌 이상은 죄다 찬탈을 하던가, 찬탈을 의심받아 척결을 당하더라고.

    그런 예가 역사에 있으므로 세 사람에게 힘을 분산해 나눠준 것은 전례에 따른 혜안이라 볼 수도 있었다.

    “잘 안배하신 것으로 봅니다. 오원술이도 우직한 사람이고, 선생은 기략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런데 세 탁고대신이라는 건 근본적으로 믿음을 나눠 준 것이라, 저는 그 믿음을 사람들이 불신할 것이라 생각하는 편입니다.”

    “믿음을 나눠줬다…… 라.”

    믿음을 나눠 줄 수밖에 없는 사정은 이해하지만 그 덕에 끗발은 약할 수밖에 없다.

    “선택받은 자는 유일해야 존귀한 겁니다.”

    “으음.”

    “그러므로 인사권은 노 사장님께서 행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임원급들은 잘 몰라요. 출근해도 그냥 사원들 이야기나 들어주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면 선생은 대안이 있습니까? 믿음이 나눠진 상황에 대해?”

    “있습니다.”

    그게 문제라 인식하지만 대안을 낼 게 아니었다면 말도 안 했다.

    “어떤?”

    “결국 그것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 문젭니다. 탁고대신이 셋으로 나눠져 있다 보니 구심이 약하죠. 그러면 이 셋에 명확한 상하관계를 성립하던가. 아니면 이들을 보증해 줄 종친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참 대답에 막힘이 없네요.”

    “아리따운 여인이 흥칫뿡 하면 막힙니다.”

    누가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요.”

    “사주를 보다 보면 제가 말하는 주도권을 놓치는 순간, 손님들이 신뢰하지 않습니다. 내 운명을 두고 우물쭈물하는 자를 누가 믿겠습니까. 그런 뭐, 일종의 직업병입니다.”

    “그래요?”

    “수전증이거나 대머리인 이발사한테 머리카락을 맡기실 수 있겠습니까. 미래를 쥐고 있는 역술인이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몰라도 아는 척해야 돼요.”

    “선생은 영업을 해도 정말 잘하실 거 같고.”

    “과찬이십니다.”

    노승환 사장하고는 딸 이야기를 하면서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는데.

    이렇게 대화를 길게 나눠본 것은 드물었다.

    지금 보면 호랑이 부사장이던 노승환 사장도 영락없는 할아버지다.

    * * *

    노승환은 인사 총괄 상무의 ‘믿음이 나눠져 파괴력이 약하다.’는 의견을 처음엔 동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계속해서 그 말을 곱씹고 있던 중이다.

    설 회장이란 거대한 구심점이 사라지고, 그의 유명이 될지도 모를 당부와 인사 조치를 받았으나, 그 막대한 권위가 꿈처럼 사라지자 설양훈이 멀쩡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도전들이 이어졌다.

    탁고대신?

    그건 정말 왕조시대에서나 있을 법한 로망이었을 뿐이었다.

    설양훈, 노승환 자신, 오원술까지 그 자리의 네 명 중 유일하게 그 새파란 젊은 놈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다.

    “그 어린놈이 뭘 알겠습니까. 인사권이 없는 사장, 그거 허수아비라고 하는 겁니다. 사장님이 쥐셔야지요.”

    회의가 끝나고도 노승환에게 직소하는 직원들이 있었다.

    노승환은 인사 총괄 상무를 보호하는 입장으로 의견을 냈으나, 노승환 체제에 순응하고 노승환과 기존에 인연이 깊었던 이사들까지 반발하고 있었다.

    노승환은 그들의 말속 숨은 뜻을 뻔히 눈치챘으나, 말의 명분이 ‘노승환을 위하여’였으므로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못했다.

    ‘이건 날 호구로 본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귀신같이 역학관계를 알아챈다.

    회장이 없으니 은퇴할 나이를 역행해 기업에 알 박은 노인과 새파란 애송이가 약한 고리라는 것을 알고 파고든다.

    늙은 사장이야 그렇다 쳐도 새파란 애송이가 쥔 권한이 너무 크다.

    현재를 결정하는 자리가 아닌, 미래를 결정하는 자리에 그가 있다.

    그 자리를 자신들이 쥔다면?

    오래 못 있을 노 사장의 은퇴와 더불어 기업의 명줄을 휘어잡는 것이다.

    노승환은 그 애송이의 말이 자꾸 귓가와 머리에 맴돌았다.

    선택받은 자는 유일해야 존귀하다.

    그리고 기왕 권한을 나눌 것이라면 명백한 상하관계 성립이 필요하다.

    * * *

    노승환 사장의 전화가 왔다.

    요 근래 자주 오는 전화다.

    탁고를 같이 받은 사람들로서 당연히 대화를 많이 한다.

    생판 몰랐던 오원술 이사와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그래요……? 뭐 임원들은 사주 보러 온 양반이 없으니까.”

    임원들이 나에 대한 반발이 심하다고 한다.

    내 강점은 스카이피아 사원들과 안면과 사주를 트고 친해졌다는 것과 이어서 후계자감 여럿에게 줄을 댔다는 것 정도이다.

    그러나 임원진 중에서는 이태현을 제외하면 내게 사주를 본 사람이 없다.

    내게 사주를 본 사람들은 그래도 내가 말을 잘하고 뭐라도 할 놈이라는 것을 인정해 주는 편이다.

    그런데 그런 절차가 없었다면?

    거기다 사주 보러 안 오기로 유명한 화이트칼라의 최고봉인 대기업의 임원들이라면?

    반발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그냥 출근해서 막무가내로 권력 행사를 하면 불식될 일이긴 한데요. 안 그래도 두 자리 정도 짜르거나 좌천을 시켜야 해서.”

    무리수지만 그냥 패악질을 벌이는 방법이 있다.

    욕받이만 자처하면 어려울 일이 없다.

    선대의 유명이 있고 이를 뒷받침할 자금이 있고, 그 자금에 꼬이는 후계자들이 있다.

    진영 하나를 딱 정해놓고 비집고 들어가서 비상한 숙청을 가하면, 내게 악명은 남을지언정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명분이 되겠습니까?]

    “이건 명분 필요 없어요. 상황이 비상한 게 명분이 됩니다. 회장의 유명으로 위력 행사만 하면 됩니다. 이런 건 회장직, 사장직을 오래 할 사람에게나 명분이 해당하지, 저 같은 비정규 임원 외부 고문이면 차기 후계자 비호만 있으면 전혀 상관없습니다.”

    몇 가지 임팩트 있는 등장을 구상하고 있다.

    은겸이 손잡고 임원진 회의 나가기, 설민혁과 같이 출근하기, 은겸이, 유겸이랑 같이 임원진 회의 나가기.

    이 친구들로는 끗발이 안 될 거 같으니까, 회장 세 딸들 중 한둘을 끼고 밀고 들어갈 구상을 하고는 있는데, 그런 다음 지금 찍어둔 사람 한둘 해임 및 좌천 건의로 밀어내면 된다.

    “권력은 행사함으로써 드러나는 겁니다. 집행해 줄 사장님과 그 집행으로 이득을 볼 사람만 명확히 정하고 들어가면 아무 문제 없어요.”

    이건 오히려 노승환이 노심초사하길래 내가 달래고 있었다.

    이 아저씨랑 요즘 이야기하면 재밌다. 같이 일하기 시작하면서 처음엔 날 좀 철부지 느낌으로 가르쳐주려 그러다가 지금은 응원하고 걱정하는 투로 바뀌었다.

    나는 여기서 사주강화술의 지지자 운 등을 통해 비상식적인 힘으로 돌파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니 재밌어서 두근거리는데, 뭐, 모를 테니 어쩔 수 없겠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사주쟁이의 장점은 제 앞길이 어느 정도 보인다는 겁니다. 그 정도 앞날을 추측도 못 하고, 단지 치기로 뛰어들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어요. 아? 예, 예.”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계룡선사 대안론이오? 그래요?”

    나 대신 계룡선사를 한 번 시험해보자.

    혹은 계룡선사로 하여금 날 검증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회장 유명을 받들어야 한다는 노승환으로 이어지는 충성, 설정환 사후 이합집산하여 계파가 다른 엘리트 화이트칼라 임원들.

    이들의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점치는 실력을 보겠대요? 참 나, 회사에 도움 되는 걸로요? 뭐가 도움 되는데요?”

    황당하네, 웃긴다.

    난 그 아저씨 명승선생님 깐 거 말고는 나름 존중하고 있는데 싸움을 붙이려 드네.

    말 그대로 역술인을 기업의 중진 고명대신에 쓸 것이면 몇십 년을 보필한 계룡선사가 되는 게 맞고.

    그 양반 틀린 말은 안 한다.

    사주강화술이란 초월적인 뭔가를 짐작 못 하다 뿐이지.

    다만 계룡선사와 사이가 낭랑한 건 아니다.

    “계룡선사라, 상대가 안 좋네요?”

    [괜찮겠습니까?]

    단, 어쨌건 계룡선사면 상대하기가 난감한 인간이다.

    일단 실력이 나보다 좋다.

    거기다 그쪽은 내 사주를 알고 나는 계룡선사 사주 모른다.

    한 마디로 저쪽이 병력도 많고 전투력도 강한데, 이쪽의 정보까지 죄다 털린 셈이니 이길 방도가 없다.

    학위운을 사주에 투자해서 좀 더 사주 지식의 전문가가 되는 경우가 있겠으나.

    사주에 안 투자하고 싶다.

    지금도 그깟 사주 한다고, 뭐 하는 새낀데 우리들 목줄을 쥐냐고 반란이 났다잖아.

    학위운 7레벨은 아랍권의 인문 문화 환경 섭생 전문이나 페르시아어 등 노승환이 말하는 ‘기깔난 신입사원’ 그 이상으로 보일 기술에 투자하거나 서울권 주요대학 학사 학위 등으로 학력 세탁용으로 활용 예정이다.

    고로 계룡선사가 진짜 덤비면 꺾을 방법이 요원하니…….

    “그럼 피해야겠네요. 안 합니다.”

    [예?]

    “질 수도 있는 싸움을 왜 하나요. 아니, 그걸 넘어 누구 맘대로 붙인답니까.”

    [질 수 있는 싸움은…… 피한다?]

    기대하던 게 아닌가?

    상관없다. 원래 싸움은 붙이는 쪽에 악의가 있는 것이다.

    “그냥 싸움을 안 합니다. 사주는 사람을 갈라놓는 게 아니라 화합시키기 위한 학문이고 저도 싸우려고 배운 거 아닙니다.”

    욕 안 처먹으려고 배우다 보니 어느새 화합의 학문이 되어 있더라.

    정확히는 ‘절 갈구지 마세요, 좋은 말만 드려요.’였지만.

    “근데, 대전료도 안 내고 쌈 붙이려고 한 사람들은 괘씸하네요.”

    [그 친구들을 상대로 괘씸하다 할 수 있는 패기가…….]

    “노승환 사장님도 날 못 자르고 내가 인사이동, 보직 이동, 징계, 해임, 채용 다 할 수 있는데 왜 회장 전권 대리인이 임원들 따위한테 쫄아야 하죠? 그거 제안한 사람 누굽니까? 반드시 보복한다고 말해 주세요.”

    [그래도 가능하면 선생이 저한테 편하게 대하듯이 이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합니다.]

    “저는 말이죠. 현재로선 성균관 자제들이 있는 조정에 왕가의 여인네들에게 총애받아 국정을 좌지우지할 권한을 얻은 요승의 입장입니다.”

    [핫핫핫, 비유가 참 찰떡같습니다. 볼 때부터 느꼈지만 우리 미영이도 이 정도는 말을 했었는데.]

    글 쓰는 자들은 생각이 많아, 머릿속으로 품은 말이 많은 편이다.

    입으로 잘 내지 못할 뿐.

    “그럼 요망하게 해줘야지, 내가 뭐하러 명분을 취하겠습니까. 저는 미천하니 거리낄 것도 없습니다.”

    요승 드립 치니까, 신돈이 생각나서 한 마디 질렀다.

    [허, 하아, 이야, 하하하! 이거 패기가…….]

    노승환이 그 말을 듣고 배 잡고 웃는 것 같아 살짝 민망해 한 수 물렀다.

    말만 패기 있게 한 거지, 실제로 그럴 생각은 없다.

    “에이, 말만 이렇게 했지 막상 어른들인 임원 양반들 만나면 예의 차릴 거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전 사주를 욕먹으려고 배운 적이 없어요.”

    욕먹으려고 배우는 기술은 흔치가 않다.

    오히려 사주는 그 욕 먹는 기술인 쪽이지.

    그나저나 노승환 이 양반도 꽤 웃으며 귀담아듣네.

    언제나 하는 쓸데없는 좋은 말 남겨볼까.

    “근본은 음양이고 화목한 다섯 가족입니다. 그러니 부끄러움이나 알게 해주고 꾸짖어 주면 족합니다.”

    [허.]

    허~ 하고 한참 말이 없던 노승환의 목소리가 수화기로 들려왔다.

    [미안합니다, 내가 잠시 생각을 할 게 있어서.]

    “괜찮습니다.”

    [이제 그 잠행 마치고 회사로 나오세요.]

    이건 탁고를 받은 이후부터 쭉 생각해 오던 일이다.

    노승환이 지속적으로 권하기도 했고.

    “물론입니다. 단지 더 기일을 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준비하고 있는 게 있어서요.”

    [지금 들으니, 내가 오히려 전권을 선생한테 맡기고 싶군요.]

    “예?”

    이건 섣불리 받아칠 말이 나오지 않았다.

    농담인가?

    [허투루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요 근래, 선생이 말했던 나눠진 믿음에 대해 생각을 좀 해 봤어요.]

    “아아, 전 그거 뭐, 제 얘기가 옳은 건 아닌 거 같던데요. 오히려 사장님 말씀이…….”

    [오원술이한테도 얘길 해 보겠습니다. 회장님의 의중은…….]

    노승환은 한참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후계를 우리 셋에게 나눈 게 아니었어요. 선생을 보좌할, 경험 있는 두 노인을 붙인 겁니다.]

    노승환의 평가는 자못 진지했다.

    원래도 진중한 편인 양반이었지만, 더 진지해서 무섭다.

    “그나마 인사는 제가 깝을 좀 치는데요, 회사 사업 유지 이런 건 당연히 못 합니다.”

    [돕겠습니다. 나는 그것이, 내가 키워오고 몸담아 온 이 회사와 날 발탁하고 키워 주고 지금까지 찾아준 회장님께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이 듭니다.]

    너무 진지해서 여기엔 반박을 못 했다.

    ‘탁고대신들의 상하관계 성립’은 내가 밑바닥에서 기겠다, 혹은 나는 막중한 회사 일은 안 하고 꿀 빨고 있을 테니 열심히 하세요, 였는데 이게 그렇게 흘러가지가 않았다.

    <경쟁자의 칭송>

    당신은 당신과 자리와 권력을 두고 다투던 이의 진심 어린 굴종과 칭송을 얻어냈습니다.

    칭찬은 근본적으로 당신의 자존감을 더해주나, 세대가 다른 이의 진지한 평가에는 연륜이란 강력한 설득력이 존재합니다.

    비겁운 포인트가 상승합니다.

    비겁운 탭의 모든 운을 올릴 수 있습니다!

    “이 영감님은 또 왜 이런데. 아직도 부하운 개판인가?”

    믿음이 나눠진다 드립은 내가 깝치는 게 부담스러워서 한 소리인데.

    그것이 이렇게 돌아왔다.

    점차 안팎으로 사람들의 칭찬이 늘어나고 있었다.

    내가 진짜 잘하나? 확신이 들지 않는데도 그렇다.

    이건 강화술 빨, 종교운 빨이라고 할 수밖에 없나.

    그래도, 계룡선사와는 부딪힐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종교운은 믿는 것이 다른 자와의 화합을 약속해주진 않는다.

    내가 순교 당하거나 상대를 순교시키는 걸 약조해주지.

    “군자인 척하는 소인이니…… 지금 망신당해서 약점거리를 줄 이유는 없지.”

    철학관 문을 당분간 안 열 생각이다.

    점술 능력을 시험하러 오는 자들이 있을 것 같은 촉이 들어, 분쟁을 회피…….

    “음.”

    아니, 재밌는 생각이 하나 나서 누군가에게 연락을 남겼다.

    * * *

    “선사님?”

    “아, 이민준 씨 반갑네요.”

    가짜 부적 써 주니까, 꽝 될 로또를 주고 간 이민준과 마주쳤다.

    지주회사 천지인은 스카이피아 빌딩에 같이 있다.

    사실상 한 회사니까.

    “오, 기억하시네요?”

    “꽤 충격적인 사연이라 잊혀지질 않던데요?”

    “하하하,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저 스카이피아 계약직 됐네요.”

    “아, 정말요? 오, 축하드려요.”

    “계약직인걸요. 그것도 낙하산이에요.”

    “아, 그래도 아마 정규직 전환이 걸려 있을 겁니다. 일 X 같은 거 빼곤 괜찮아요. 돈 많이 주고요. 모르는 거 있으면 31층 사무실이거든요. 올라오세요.”

    출근길에 이민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찰나인데, 비슷한 출근 시간에…….

    “어? 그, 저.”

    “안녕하세요.”

    “아, 아하, 웬일이…….”

    지나치던 김형기도 마주했다.

    운동은 열심히 해서 양복이 언밸런스하다. 터질 거 같네.

    나를 보고 놀라는 그에게 사원증을 흔들어주었다.

    이곳에는 한두 번 만났지만 내가 인생을 편들어 준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마주했는데, 아는 척은 하지 않기로 한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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