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122화 (122/211)
  • #122. 같은 사주의 다른 인생.

    나와 같은 사주라…….

    사주가 같은 사람이 같은 인생을 사는 경우가 별로 없으니 사주가 미신이라 취급당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 업계 현실이다.

    사주로는 뭉뚱그려서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고 말할 수야 있지만…….

    조선 영조 임금이 사주가 똑같은 노인을 찾았는데 벌을 키우는 노인이었다고 한다.

    사주가 같은데 ‘나는 왜 왕이고, 쟤는 왜 벌이나 키우냐?’고 왕이 묻자 점쟁이가 말하기를 ‘왕은 만백성을, 저 노인은 수만의 벌을 굽어살피는 운명이라 사주가 같다’고 했고, 왕은 그 해석이 기분이 좋았는지 점쟁이에게 상을 내렸다고 한다.

    이 예시엔 내가 일갈할 수 있다.

    X발, 왕이랑 양봉업자가 같냐?

    그런 식으로 따지면 벼들의 아비인 농부도 왕이지.

    그러니, 저 일화는 한 마디로 점쟁이가 입을 털어 왕을 구워삶아 상을 받았다가 교훈이지, 사주가 같다고 사람이 같지는 않다가 교훈이 아니다.

    다만 나는 저 일화에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반례를 집어낼 수 있다.

    ‘노인’과 ‘왕이 고작 기분이 좋아 점쟁이한테 상을 내린 사사로운 권력 남용’에서 보듯, 영조임금은 늙어서 노망 기가 있었고 같은 사주의 사람이면 영조임금과 동갑이니.

    환갑만 넘어도 장수하던 저 시절의 ‘오래 살 사주’는 영조임금과 벌치기 노인 둘에게 들어맞았던 것이다.

    ……여기서 끊으면 딱 그럴싸한 일화다.

    영조와 양봉 노인 말고 딴 사람 없냐? 는 당연한 의구심은 숨기고.

    ‘사주는 일정한 경향성을 띠고 있다.’라고 우기기 좋은 그런 일화.

    “이 사주는 글을 씁니다.”

    “오…….”

    다른 건 몰라도 김예빈의 채팅 치는 능력에서 감이 온다.

    최소 학창 시절에 백일장 상은 받아 봤고.

    오타에 민감한 것에서 볼 때 언어 관련해서 소양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연애와 관련된 욕망이 가득한 글을 쓸 확률이 높습니다. 설사 아직 시작은 못 했더라도 이와 같은 글들을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 그게 왜 그럴까요?”

    도서나 글을 읽는 계층인 건 확신이 든다.

    “활동을 하고픈 욕망이 가득하나, 세상에 대한 확신과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배워서 세상을 알고자 합니다.”

    “와, 진짜다.”

    김예빈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입이 스르륵 열리다가 두 손으로 가린다.

    일단 냅다 세상에 들이밀어 부딪히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을 간접 체험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이건 음양으로 갈라서 냅다 세상에 들이미는 자들을 양적인 기운이 있다고 표현하면 맞고.

    세상을 간접 체험하면서 천천히 접근하고자 하는 자들을 음하다고 표현하면 맞는다.

    사주가 아니라 저런 사람들이 있으니, 저들을 음양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이다.

    고로 이지선다인데, 몇 가지 힌트만 가져도 이 이지선다는 맞추기 쉬우니.

    ‘배워서 세상을 알고자 한다.’라고 포장을 했다.

    그러면 그럴싸하게 들린다.

    “배워서 세상을 알고자 하는 자는 누군가가 세상을 전달하기 위해 만든 매체를 좋아합니다. 그렇기에 대중매체에 친숙하고.”

    끄덕끄덕끄덕.

    김예빈은 고개 끄덕이면서 잘 듣는다.

    “언어적 능력이 발달한 사주이므로 글과 책에 적성이 맞습니다. 대중매체도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인데 위의 사주는 다양한 대중매체를 다 좋아하지만.”

    TV며 게임이며 만화며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

    학부모 단체 정도?

    즉, 뻔한 말이다.

    하지만 이 뻔한 말을 꺼내는 건, 그나마 사회적으로 인식이 괜찮은 서적과 관련한 적성을 캐내기 위해서다.

    “주로 책에 친숙해서 잡다하게 아는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아는 것이 많아 더욱 세상이 두렵습니다.”

    “아는 것은 힘이라고들 하던데, 어떤 일이든 경험이나 지식이 있는 사람이 더 두려움이 없이 다가가지 않나요?”

    제법?

    이 정도 반박을 가하는 사람도 흔치는 않다.

    고개를 저으며 논지를 이어갔다.

    “왜냐면 위 사주는 해석을 자의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자아를 타고나서 내 맘대로 해석하고 생각합니다. 그게 나름의 정답입니다.”

    “오…….”

    “문제는 그 정답이 정답인지 확신이 없습니다. 생각이 깊습니다. 생각이 깊어 학창 시절 칠판에 아주 기상천외하고 재밌는 답을 적었겠지만 그게 재밌을까? 하던 사람이지요.”

    “와, 그건 진짜 있었던 일이네요.”

    김예빈은 박수를 한 번 짧게 치고 계속 몰두한다.

    “그러면 자신의 진면목을 감추고, 겉으로는 표준을 추구하는 성격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겉으로는 쫓습니다. 뭐, 공무원 시험이라거나.”

    뭔가 하고 싶은 욕망은 가득하지만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 사회의 압력을 수용하고자 하는 능력은 나보다 좋다.

    “평범한 삶은 누구나 바라는 거잖아요?”

    “그러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평범한 삶이라도 살고 싶다 생각은 들지만 평범한 삶 그 이상을 꿈꿉니다. 그러면 그 성격에 괴리가 드러나므로 공부가 손에 잘 잡히지 않지요.”

    공무원 수험생인데 알바 잠깐 해서 번 돈으로 산 코인이나 주식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전업투자 하고 싶은데, 그거 하면 망할 거 같고 책상에 진득하게 앉아서 공부하기엔 얼마 올랐는가 아른거리는?

    “꿈도 크게 꿀수록 좋고.”

    “꿈만 꾸지 못합니다. 비성수기 인생이라, 인생이 항시 불안하지요. 언제 성수기가 다시 오나? 싶어서요. 그러면 극단적인 안정성 추구 패턴이 드러납니다. 비성수기를 견딜 안정된 직종에 대한 욕망.”

    “있죠, 그런 거.”

    “그럼에도 성수기를 맞을 만한 대박에 대한 도전, 시간이 덜 들 것 같은 예술 문화 활동에 대한 욕망도 가득합니다.”

    “와, 이걸 아세요?”

    “이 사주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하는 욕심쟁이가 됩니다.”

    “미쳤다, 미쳤어. 진짜 잘 보시네.”

    이거 내가 미친 듯이 연구한 내 사주다.

    사주는 기본적으로 거의 다가 ‘내’ 운명이 궁금해서 빠져든다.

    나야 ‘신선한 소재의 무협’으로 입문한 것이지만 알고 나니 나 역시도 내 사주를 가지고 연구를 많이 했다.

    김예빈에게 원래의 내 꿈을 이야기했다.

    “안정적인 공무원에 붙어서 겸업 허락을 받아 소설 등의 활동을 하며 대박을 노리는 인생, 저는 손님이 그걸 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현실과 꿈을 다 잡으려는 인생 말이죠.”

    그 두 가지를 모두 욕심내는 그릇 하나는 큰 인간.

    그러나 그 두 가지를 모두 쥘 수 있는 삶이 흔하지 않다.

    오히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다 놓치는 그런 삶이 떠오른다.

    산불 방호원 때까지의 내가 그랬다.

    교사 될 길 끊어 버리고, 글은 안 풀리던.

    “저 사주 꽤 봤거든요. 그런데…… 이렇게까지는 말씀을 안 하시던데.”

    “저는 이 사주랑 똑같은 사주를 봤거든요, 남자이긴 한데.”

    “아, 진짜요?”

    “그 사람이 털어놓은 인생대로 읊어드리는 겁니다.”

    “그분 사주는 어땠는데요?”

    “손님이랑 같습니다. 다만 소설을 쓰는 작가였는데, 줄줄이 망해서 그 길을 마무리 지으려 하고 있었죠.”

    “그래서 지금은요? 그분 어떻게 됐다고 소식 같은 건요?”

    “제가 재밌다, 잘 봤다, 다음 권이 궁금하다고 해 드렸는데, 지금은 책을 다시 내셨고, 증쇄도 찍으시고 게임 관련 시나리오도 적으셨더라고요. 인터뷰도 하시는 걸 봤습니다.”

    내 최고의 은인인 명승 선생님이 하듯 말했다.

    “우와…… 인터뷰.”

    “그러니, 가져오십시오.”

    “뭘……?”

    “뭐라도 만들어 낸 게 있지 않습니까? 쓰신 글이라거나?”

    “으, 저는 아니에요. 사주가 똑같다고 인생이 똑같을까요? 설마요.”

    “연예계에 완전히 똑같은 사주를 타고 난 두 여자 연예인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운명은 어땠을까요?”

    “어, 어땠는데요?”

    완전히 똑같은 두 여자 연예인의 사주가 업계에 소문이 돈다.

    한 분은 이혼 후 생을 마감했고, 한 분은 이혼만 했다.

    이혼한 것은 같으므로 이혼할 사주는 말이 된다.

    생명과는 관계가 없지만 이 사주에선 이혼의 보편성은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분들만 있는 게 아니지 않아요? 다 이혼해요?”

    하지만 표본이 고작 그 둘이므로 밀기에 논거가 약하다.

    그래서 내가 경험하며 얻은 논지를 꺼냈다.

    “쌍둥이가 같은 인생을 살까요, 아닐까요? 그들은 사주가 완전히 똑같은데.”

    “절대 아니라고 봐요.”

    김예빈은 줏대 있게 외치며 고개를 저었다.

    사주가 완전히 같은 사람의 사주는 보기 어려울 것 같지만, 의외로 종종 있는 일이다.

    그냥 간단하게 쌍둥이를 손님으로 만나면 된다.

    그런데 사주를 사기 취급할 수 있는 ‘쌍둥이들은 사주가 같은데 왜 인생을 다르게 사나요?’의 사례에서는…….

    “의외로 인생을 다르게 사는 경우가 더 이례적입니다.”

    “예? 왜…… 요?”

    “결국 그들은 사회에 굴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왜죠?”

    “한날한시에 죽거나 한 이성을 좋아하거나 등은 잘 없어 운명이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만 사주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진로, 직업에선 흡사한 길을 택합니다.”

    쌍둥이 손님을 보면서 어느 정도 내린 결론이 있다.

    쌍둥이 손님들은 자신들이 반드시 쌍둥이임을 밝힌다.

    내가 쌍둥이였어도 사주 보러 가면 그리 말했을 것이다. 재밌잖아.

    뭐, 손님의 비중이 중장년 여성층과 군인층에 국한되어 아주 유의미한 표본이라 볼 수는 없지만.

    열 명 봤다.

    군인층에서는 두 명을 봤는데 아득바득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 하나, 옆 부대 부사관인데 형이 장교 전역했다는 사람 하나.

    이어 대다수인 중장년, 노년 여성층에서는 죄다 ‘그러고 보니 비슷비슷하네요.’라고 수긍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 여성도 한 명 봤는데…… 여긴 진짜 앙숙.

    즉 어린 나이의 쌍둥이와 나이 있는 쌍둥이의 간극이 있다.

    “사람의 행동은 건강과 기질이 발현시키고, 건강과 기질을 구축하는 신체는 유전자 지도에 그대로 설계도가 있는 데다, 사주보다 수저론이 더 맞거든요.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냥 형제여도 크게 특이한 삶을 사는 경우가 드뭅니다.”

    “저 학교 다닐 때 아는 쌍둥이가 있었는데 정말 하나같이 안 맞는다고 하던걸요?”

    “어릴 적의 쌍둥이들은 서로가 자아를 찾아서 차별화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얼굴만 같지, 성격과 성향이 차이 나는 경우가 생기지요. 그러나 인생을 증명한 어른들부터는 다릅니다.”

    쌍둥이들도 나이 들면 집에서 벗어나고 각기 살길 찾는데.

    그때부턴 신세가 비슷비슷하다.

    그깟 자아가 무슨 소용이냐.

    ‘이놈의 험한 세상에 적응하려면 맞춰 살아야지.’ 하면서 체념하니까.

    사주에 부합하는 인생의 항로가 흡사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누구나 현실에 적응하고 살기 때문에 쌍둥이는 현실을 살던 부모의 길처럼, 그리고 가장 가까운 생의 표본인 형제자매의 길을 좇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사주로도 비슷한 해석을 낼 수 있죠.”

    여기서는 논거 강화를 위해서 예시를 사회적 물의 때문에 나도 알게 된 배구 자매라거나, 프로게이머 형제라거나, 폴란드의 대통령과 총리 형제 등을 댄다.

    김예빈은 다 모르는 눈치이긴 한데, 고개는 끄덕인다.

    “각기 꿈을 찾아 자아를 더 표현하고픈 같은 사주의 쌍둥이가 없지 않겠지만 중년이 되면 그것도 어느덧 흘러간 꿈이 되고 둘은 비슷한 방향을 가게 됩니다.”

    “나이가 먹으면 그리된다는 건가요.”

    “네, 즉 그깟 사주보다 사람들을 거의 다 비슷한 사주처럼 묶어 내어 버리는 현실과 사회의 체계가 더 무섭고요.”

    누구나 서민으로 묶어서 팍팍한 인생으로 만드는 세상이 더 무섭다.

    “결국 현실을 이겨 낼 수 없을 때 찾는 것이 사주인 것입니다.”

    김예빈은 백수일 가능성을 높이 친다.

    평일에 안산에서 대전까지 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게 아니면 교사 정도, 근데 방학은 끝났을 거 같은 시기라.

    집에 가산이 어느 정도는 있는 백수구나 싶다.

    “그 저랑 사주 같은 분은 성공을 했나요?”

    “그렇게까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현실보다 꿈을 먼저 성취한 사람은 되었죠.”

    “작가가 꿈이셨던 분이신가 보군요.”

    “반면 손님은 현실이 꿈이 되어 버린 사람이 아닐까 싶네요. 아주 평범한 삶조차 꿈처럼 멀어진 사람.”

    “……!”

    “그리고 그 원인은 꿈에 정신이 팔렸었던 적이 있었기에 이도 저도 거머쥐지 못한 거겠죠.”

    “아…….”

    “현실로 가십시오.”

    김예빈은 책상 위에 올려 둔 손가락을 다그닥다그닥거린다.

    무의식적으로 타지 치는 것 같다.

    그러더니 김예빈은 이내 속내를 털어놓는다.

    “저는 방송작가를 하다가 관두고, 지금은 말씀대로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에요. 예, 뭐가 꿈이고, 뭐가 현실인지 알겠어요. 그런데 벌써 두 번이나 떨어져서.”

    “그렇다면 현실도 꿈이 되어 버렸네요. 아주 평범한 삶조차 꿈처럼 멀어진 사람.”

    “아…….”

    그 말에 공감했는지 김예빈은 공감하면서도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보편적인 삶에도 맞출 수 없어진 세상 속에서 사주의 개성이라는 건 발휘되지 않는다.

    세상은 결국 아마 못사는 서민의 팍팍한 사주와 왕과 왕족의 사주로 재편될 것 같다.

    그럼 언제 태어나든 부모만 서민이면 보편적으로 ‘같은 사주’가 되고 말 것이다.

    디테일하게 어떻게 인생을 말아먹냐만 사주로 구분 가능하겠지.

    그 전에 출세해야 한다.

    마침 사주강화술의 필요조건이 완료됐는지 LED가 켜진다.

    슬쩍 확인해 봤다.

    <친구운 LV6>

    당신은 친구와 친구를 친구로 만들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어주는 남녀는 연인이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레벨업을 확인하고.

    먼 걸음 하신 고마운 걸어 다니는 친구운 김예빈 씨에게 응원의 한 마디를 남겼다.

    “어차피 현실도 꿈이라면, 더 큰 꿈을 찾아가십시오. 응원하겠습니다.”

    “응원이오? 갑자기?”

    “같은 사주였던 남자분도 제가 그분의 글을 읽고 재미있었다는 것 한 마디로 자신감을 되찾고 다시금 일하실 수 있었습니다.”

    “제 글은 보지도 않으시고?”

    “사주도 이렇게 다 맞히는데 글솜씨를 못 맞힐 건 무엇입니까?”

    “어, 그러네.”

    “저는 확신할 테니, 기대에 맞게 열심히 해 주시면 됩니다.”

    스승의 응원으로 예까지 오른 사주니까, 잘될 것이리라 믿어 보기로 했다.

    * * *

    “선생님.”

    설민혁 어머니, 석영인 씨의 방문이 있었다.

    “네, 어서 오십시오.”

    아줌마 미소가 그득하네, 요새 행복하신 모양이다.

    내가 보기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아줌마 인생은 꽤 크게 바뀐 것 같다.

    의절한 아들 되돌려놓고, 좋아 보이는 짝 마련해 주니까.

    만면에 미소가 싱글벙글이다.

    “이걸 참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걱정하는 표정이 아닌 거 같은데, 좋은 소식 아닌가요?”

    “그래 보이세요?”

    “네, 그래 보입니다.”

    석영인은 입을 가리고 한참 호호호 웃다가 말했다.

    “그게, 음. 선생님이 말씀하시던 대로 될 것 같아요.”

    “민혁이 결혼이야 뭐, 의원님 딸이랑 하기로 한 거 같고. 어머님 쪽 경사인가 보네요?”

    설민혁은 뭐, 근래엔 경사랄 일이 없다.

    그냥 사람 되고 있다 정도?

    윗사람들은 남자의 여색을 밝힘에 관대한 편이다.

    그거 가지고 뭐라 하는 사람들은 속깨나 썩을 설민혁 장인하고, 그냥 설민혁을 까면 재밌으니까 뭐라 하는 나 말고는 없는 모양이다.

    “회장님께서…….”

    그래도 말씀하시긴 부끄러운지 말을 흐리는데.

    ‘회장님께서’ 대사를 들은 다음 알아챌 수 있었다.

    “자네, 내 집이 비었는데 들어와 살림이라도 해 주겠는가? 뭐 이런 식의 말씀을 하셨나 봐요?”

    “비슷하게 말씀하셨네요.”

    어…….

    내가 석영인 씨한테 설양훈 회장에게 결혼해 달라 요청을 하라고는 했지마는 그런 요청을 먼저 할 사람은 절대 아니다.

    이건 회장이 먼저 꺼낸 이야기일 것이다.

    “오, 축하드려요.”

    생각은 다르게 하고 있었지만 일단 웃으며 축하부터 드렸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제가 그때 이후로…….”

    석영인 씨는 내 말대로 사회운동을 좀 했다.

    사회운동이 정치적으로 권력층 견제 역할 외에도 좋아 보이는 일들도 하니까.

    사람이 조금은 나아졌다.

    거기다 설양훈도 늘그막에 외로워서 그런지 사람 달고 여행 가는 걸 일삼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석영인 씨한테 ‘자네는 장기 좀 둘 줄 아는가?’ 묻기도 했다고.

    이 신호는 두 가지 정도로 해석이 된다.

    일단 설민혁 쪽에 뭐라도 챙겨줄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설양훈은 평생 여자에게 아쉬운 소리 한마디 할 필요 없었던 사람이다.

    ‘그 시절’ 보정을 안 해도 절대 갑이다.

    즉, 사람에게 변화가 생겼다는 뜻인데…… 그 나이에?

    심상치 않은 징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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