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장모도 울리는
구예련은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란다.
“어, 어머, 그, 아, 아하, 네, 어머,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약간의 긴장감은 있는데, 그냥 좀 어려운 손님을 맞았다, 정도이다.
“봐아, 내가 마중 나가서 그런다고 했잖아.”
“너 또 나가 놀 궁리하는 줄 알았지, 정말 반가워요.”
유겸이한테 미간 찡그리다가 날 보고 환하게 웃는다.
아주 전형적인 ‘모르는 사람한테만 잘해 주는 스타일’이다.
사람의 한 반절 정도는 저러는 듯싶다.
너무 흔해서 사주로 맞힐 수는 있지만 분류하기는 싫을 지경.
굳이 사주로 끼워 맞추자면 가족운은 낮고, 자아운이 높은 사람이 저러하다고 보면 거의 무조건 맞는다.
원인은 강력한 자아로 인하여 자기 영역이 확고해서 영역에 함께 사는 가까운 사람에게는 스트레스를 방출하는 것이 근본이나.
인구의 반절 이상이 저런 면모가 있다 여겨지므로.
묘사를 다양하게 패턴을 10개가량 뽑아 놓고, 사람들마다 조금씩 말을 교묘하게 하는 편.
“이 더운 나알?”
“넌 조용히 있어. 아유, 참 나이 안 같고 그러네요. 진짜 유겸이 애인인 줄 알았어요, 어디서 고등학생을 만나나 그래서 혼내려고.”
“으에.”
설유겸은 입을 쩍 벌리고 엄마를 흘겨본다.
내 덕에 혼은 안 나겠네.
“식사 안 하셨죠. 우리 밥 같이 먹죠.”
“막내는?”
“엄마 밥 좋아는 하니? 아줌마한테 챙겨 주라고 해야지. 어서 가요.”
“아, 네, 알겠습니다.”
나는 말을 아꼈다.
사람이 좀 더 파악되면 깝쳐도 늦지 않다.
내가 질문을 받아야 하는 처지다.
“아휴, 제가 인상이 좀 센데 너무 무서워하지 마시고, 무슨 무속인이냐고도 하고, 호호호.”
“뭐야, 엄마 이상해…….”
모녀가 만담하는 게 재밌기도 하고.
“차는 한 대로 갈까요?”
“끌고 갈래.”
“그러면 어디에 타고 가실까요.”
차 잘 모르지만 고급져 보이는 세단이 있었다.
이 무슨 바로 나오는 선택지냐.
“어머님 차 타겠습니다.”
“어머, 어서 타요. 운전 조심해라.”
“푸우우우.”
유겸이가 입을 쭉 내밀고 부르르르 떤다.
어머니가 탄 세단에 올라탔다.
기사님 같은 분이 계실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고 직접 운전하신다.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그랬을까요? 쉬운 자리는 아닌데 급작스럽지 않으세요?”
“어른을 만나는 일을 꺼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전방 주시하고 말씀하시다가 내 쪽을 슬쩍 본다.
사연 많지, 보편적으로 젊은이들보다 돈 많지.
꺼려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래요? 그래서 아버님 맘을 꽉 사로잡으셨을까?”
“은겸이 덕분이죠.”
“우리 둘째랑도 친하게 지내시던데.”
무심코 진심을 말하는 버릇이 있으시구먼.
은겸이 이야기를 하려는데 유겸이 쪽으로 몰아간다.
“모두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아입니다.”
“그래요? 애가 장난이 심하고 짓궂은데.”
“모두와 친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것은 관심을 갈구하기 때문입니다.”
“관심받으려고 하는 짓일까요.”
“저는 조금 보이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한테도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모양새가요.”
“튀는 짓을 많이 하죠.”
“그게 해소되어야, 어디 시집보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지.”
마침 신호가 걸리긴 했는데 물끄러미 보신다.
사람들하고 주로 친해지는 방식이 사주인바, 강점으로 몰아가는 게 좋다.
어차피 캐릭터도 알려져 있고.
사주쟁이 캐릭터를 활용하지 않으면 초면인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 소재가 풍부하지 않다.
대화는 친분의 근본이다.
“유겸이 사주도 보셨다고 했지, 참. 저도 사주 한 번 볼까요?”
“안 보셔도 알 수 있습니다.”
“그게 생년월일시 필요하고 그런다고.”
“사주 교본에서나 나올 법한, 나라를 뒤흔들 미인의 사주로 보고 있거든요.”
“긴장 좀 풀리셨나 봐요? 아줌마가 어딜 봐서 미인이겠어요.”
“미인인 따님들의 근본부터 숭상하는 것이죠.”
“그래요? 이게 그 마누라가 예쁘면?”
“특히 막내가 많이 닮았던데요, 누나들이 껌벅 죽는 거 보면.”
“그쵸, 그쵸.”
흔한 딸 칭찬 대신 필살기 썼다, 아들 칭찬.
40대 후반이나 이목구비가 워낙 또렷하신 분이다.
딱 주름만 가리면 20대로도 보일 어머님인지라, 우회 칭찬으로 접근해야 한다.
잘 아시는 듯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설유겸과 다시 마주했다.
“엄마가 운전 더 잘해요?”
“차가 승차감은 좀 낫네요.”
살짝 불만이 있어 보이는데, 뭐 달래 줄 의무까지 있나.
“우리 딸 운전 연습이라도 시키게 많이 써먹어 줘요, 자주 오시고. 대전이면 KTX 타면 한 시간?”
“서울에 집 생길 것 같습니다.”
“가까이도 사네, 아예 오지 그래요?”
이쯤에서는 엄마가 시켜주는 소개팅 느낌이 나는데.
“아, 당장은 대전에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은겸이 있으니까요? 근데 걔가 워낙에 무심해서, 유겸이가 오히려 여자애답고.”
은겸이한테 내기 걸어 뜯어낸 애교 영상 있다.
이거 보면 그런 말이 안 나올 텐데.
무척 친근하게 잘 대해 주시지만 진심은 보인다.
구예련의 목적은 시아버지가 주신다는 재산으로 자식들 다 잘됐으면 좋겠는데.
은겸이는 잘하면 그룹을 먹겠다 싶어, 제약이 걸리질 않길 바라고.
유겸이는 공부 안 하고 엄한 짓 하니까는 차라리 일찍 가문의 자산 관리인이 될 사람에게 보내 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보인다.
“으에에, 아닌데.”
나름 행동의 목적이 자식들을 위해서 하는 것 같지마는.
차별이 안 보이지는 않는다.
저기서 설유겸의 반응이 절실하게 드러난다.
‘엄마가 날 위하는 것 같기는 한데, 언니보단 못하다.’
세상은 절대적 총량보다 불공정에 민감하다.
그나마 절대적인 총량에 대해서 딸이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이 정도 티격태격이 아니고 거의 관계 파탄 났다.
‘엄마가 해 준 게 있는데!’와, ‘엄마가 뭘 해 줬어?’의 평행선이 되니까.
‘엄마가 해 준 게 있는데!’, ‘엄마가 해 주긴 했어.’인 경우 이런 모녀 관계가 성립한다.
웃으며 티격태격하는 것도 듣고 식사도 하는데, 구예련이 운을 띄운다.
“뭐, 듣고 오셨겠고 사주 선생님도 그런 생각을 아예 안 하신 것은 아닐 거예요. 제 딸들을 진지하게 생각 안 했으면 그건 그거 나름 화가 나고요. 그치만 막 그런 건 생각 안 하셔도 돼요.”
“그런 거라면……?”
“허락을 안 한다고 하면 막 무릎을 꿇어야 하고 뭐 그런 게 있잖아요? 저는 물을 쫙 끼얹고. 그런 걸 막 상상을 했는데 너무 재수 없는 거 있죠? 저도 사실 막 잘사는 집은 아니었고.”
두서가 좀 없지만 뭔 말씀인지는 알아들었다.
‘총각, 긴장 풀어’다.
근데 어머니도 긴장하신 거 같은데.
“네, 하하.”
“그래도 유겸이가 좀 더 결혼을 하고 싶어하고, 은겸이는 지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 데다 영 여자다운 그게 없으니까. 은겸이랑 막 아주 깊은 그게 아니라면야.”
깊은 그건 모르시는군.
살짝 유겸이 눈치 봤는데 눈썹을 들썩인다.
그런 걸 말하면 좀 그렇지.
설양훈은 깊은 관계로 짐작은 하는 모양인데, 그 영감은 젊을 적 히피 문화에도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헤어지고 만나면 상관없다는 투다.
“어, 유겸이 나이가 어린데 시집보내고 싶으세요? 저는 이런 애교 있는 어린 딸이 있으면 시집보내기가 싫을 거 같은데요.”
“뭐, 자기가 일찍 결혼해서 집 나가고 싶다니깐. 엄마가 미운가 보죠.”
“응, 미워.”
엄마와 딸이라.
저 난리를 피우는 건 일단 애정이 있다는 뜻이고.
딸이 아주 크게 반항하지 않는 것은 그 애정이 깝깝하지만 익숙해졌든가 공감은 간다는 뜻이겠다.
이러면 엄마와 딸 모두 띄워 주되.
엄마의 모순을 파고 들어가는 게 효과가 가장 좋다.
난 구예련 님을 구워삶을 목적이 있으니까.
“아휴, 밉다네요. 저희 궁합이 안 좋나요?”
“유겸이가 제일 잘 맞는 딸일 것 같은데요.”
“그래요?”
“말도 안 돼.”
“너는 엄마 그렇게 창피를 줘야 재밌니?”
티격태격, 티키타카가 잘되네.
내가 보기에는 자식 중에 유일하게 유겸이하고만 저렇게 친구처럼 지낼 수 있을 거 같은데.
“다른 자식들하고 이렇게까지 대화 잘 안 되지 않나요? 막내도 슬슬 말 안 듣고.”
아직 애겠지만 초등학교는 들어간 남자애다.
남자애들은 학교 사회에 돌입하게 되면 남자애들끼리의 또래 문화에 익숙해지니까, 아직 애 같아도 남자인 티 낸다.
그러면 딸 키울 때와 전혀 다른 무뚝뚝한 맛에 아줌마들의 한탄이 슬슬 맘카페에 보인다.
거기서부터, 사춘기부터는 이제 엄마들의 평생동안 준 애정이 돌아오지 않는 히로인이 되는 것.
은겸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고.
“그렇지만 이 녀석만큼 말을 안 듣는 녀석도 없는걸요. 누가 일찍 데려갔으면 좋겠어요. 자기는 좋다고 하는데.”
“은겸이는 아주 간혹 듬직한 한두 마디 말고는 딱 방문 닫고 들어가서 제 할 일만 하는 딸이잖아요.”
“무심한 면이 없는 건 아닌데.”
앞서서 은겸이를 냉정하다고 깎아내린 게 돌아오죠?
말은 항상 부메랑으로 활용된다.
“사주 이야기를 조금 해도 될까요.”
“아, 물론이죠. 듣고 싶어요. 정말 용하시다고 많이 들어서.”
“사주학의 일반론에 의하자면 여성에게 자식은 자랑이자, 성과이고 표현입니다.”
“어머, 그래요?”
여성의 자식운은 식상운, 식복과 화술, 행동과 표현의 운세와 연계되어 있다.
자식이 있는 여자는 발언권이 강해진다.
사회든, 가정에서든.
“은겸이의 진로를 보고 알았습니다. 어머니의 꿈을 이뤄 주고 싶다 하던 딸이었고 그걸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뭐, 현재는 아버지의 꿈을 찾아갔습니다만.”
“그럴 만한 아이였어요.”
“언니가 그 말 건넸을 때 되게 감동 먹었다고 했었어요. 근데 난 혼내더라, 공부나 하라고.”
“엄마가 언제 그랬어!?”
원래 혼내는 쪽은 기억 안 나는 법이죠.
“자식은 그렇게 엄마의 표현과 소원이 외면에 드러난 존잽니다. 특히 딸은 더더욱이오. 아들에겐 이상향의 남성상, 딸에게는 내가 못 했던 것을 이루는 성공담을 보고 싶어들 하십니다. 성과니까요.”
“지금은 사 주는 옷도 안 입고.”
“요새 누가 그런 옷을 입어.”
때론 옷 입혀 보고 싶은 인형이 되기도 한다.
그 기대치의 괴리가 주로 딸과의 간극을 만든다.
“그러니까, 어머님은 현재 자기혐오의 정서에 젖어 계신 겁니다.”
“······예?”
“딸한테 말하는 결혼이나 하라는 말은 결코 본심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잔소리용으로 활용하고 있죠.”
“네에? 엄마가 맨날 빨리 졸업하고 시집이나 가라 그랬는데?”
유겸이가 격하게 반응한다.
“거기다 남편 가문 쪽이 이렇게나 돈이 많으면 부인의 역할은 전통적인 것에 한정됩니다. 아무리 본인이 잘나고, 끼가 있어도 말이죠. 그런 삶을 또 사셨고요.”
“······.”
“그렇기 때문에 딸에게도 자신과 다른 길을 강요하시는 것입니다. 다만 둘째에겐 그 길이 잘 와닿지 않으니 나처럼이나 살아라, 하고 계신 거고요.”
“제가 그러고·…… 있었다고요?”
“고로 별 볼일 없는 서민 자식인 저한테 오히려 더 관대합니다. 배경이 없는 집안 남자에겐 오히려 딸들이 떵떵거릴 수 있을 것이거든요.”
“그거 엄마가 자주 하던 말·…….”
사모님이지만, 구예련은 보편적인 며느리의 삶을 살았다.
오히려 요즘 아주머니들보다 더 전통적인 여성상이다.
이 정도 전통적 여성상을 찾으려면 구예련 나이대 아줌마들보다 더 위로 올라가야 한다.
별수가 없다.
시댁과 남편이 재력이 이렇게 많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을이다.
돈이 아주 많은 집단인 재벌, 족벌 집단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 재벌 족벌 집단의 수장에 맞는 격식을 요구받기 마련이고.
본인도 그것을 납득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은 아무리 끼가 있어도 그걸 묻어 버리는 것이 사회의 압력이다.
“근데 그러면, 유겸이 시집가기 힘듭니다.”
“왜죠?”
“어머니가 더 사랑해 주셔야 합니다. 딸을요.”
“으에에에에, 에베베베. 필요 없어요.”
“필요 없니?”
“사람이 줄 수 있는 애정엔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이건 자식에게도 작용하는데요.”
“애정에 한계…….”
“성과를 이룰 거 같은 딸과, 성과를 가지고 태어난 것 같은 아들에 비해 그 중간에 낀 딸에겐 애정을 모두 주시진 않은 것 같습니다.”
“에휴, 얘는 좀 그렇게 느끼는 모양인데 정말 그런 걸까요?”
“예, 그래서 유겸 양은 본질적인 결핍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아버지라도 있다면 아버지 쪽에서 응원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
이 말에는 설유겸도 태클을 걸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듣고 있다.
“이러면 받지 못한 애정을 다른 곳에 추구합니다. 특히 이성에 추구하고 이성에 추구하는 만큼 그게 충족되지 않으면 사랑하고픈 욕망이 티가 납니다.”
“어머, 얘가 그리는 그림이.”
“아, 하지 마아아.”
야한 그림 그리나 보군.
유겸 씨, 본인이 귀에 손을 대고 그렇게 질러도 남들은 다 듣습니다.
“그러나 여인이 욕망과 애정 결핍에 못 이겨 남자를 만나면 결과가 그리 긍정적이지 않음은 세상의 수많은 연애 실패담이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음, 그렇죠.”
“거기에 받지 못한 애정을 누구한텐 주겠다는 의지가 강해서 아이에 대한 욕망도 강하고요. 이러면 어릴 적 사고 칠 확률이 높습니다.”
“그게 결혼하고 싶은 것처럼 보인 건가요? 어, 나는…….”
설유겸이 대신 하는 반박이 있었지만 건너뛰었다.
“즉, 애정을 공평하게 받지 못한 탓에, 사랑을 꿈꾸는 소녀가 됐고 그 덕에 더 자꾸 어긋나 보이니 거기다 더한 족쇄를 걸려 하시는 게 현재의 어머님입니다.”
“아…….”
구예련은 점차 목이 메기 시작한다.
이번엔 설유겸을 보며 한마디 더 했다.
“애교나 말 표현 없이는 언니나 동생만큼의 관심을 못 받았을 것이라 적극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는데 그걸로 더 혼이 나는 딜레마에 빠졌던 겁니다. 나름의 어필과 생존이 더 눈에 박힌.”
전통적 여성상으로 살던 구예련에게 더 안 좋게 보였을 가망이 있다.
사모님 삶이 싫은 건 아니겠지만 내심 하던 연기 등에 미련이 있었을 것이니까.
사람은 포기한 것에 집착을 심하게 품으니까.
그러니 설은겸이 아빠가 죽기 전까진 엄마 꿈 이뤄 주겠다는 생각을 가졌었겠지.
“그래서 행동에 모순이 보이십니다. 시집이나 가! 하면서, 연애 등 전반적인 행동에 대한 통제를 하고 있으신 것이요. 그러면 애정이 거짓말이거나, 시집가란 말이 통제용입니다.”
장모님 되실 분일지도 모를 구예련 님, 눈이 이미 빨개져 있다.
결정타를 드렸다.
“이딴 식으로 굴면 널 버리겠다, 그 뜻이죠.”
“읍."
끝내 아줌마, 입을 가리며 운다.
울릴 생각까지는 아니었다만.
감정이 메말랐다고 말하는 70 노모와 50살 딸이 부둥켜안고 울게 하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다.
‘못 해 준 딸.’ 이거 유서 깊은 울음 코드다.
청소년 수련회의 감정 동요시키기와도 흡사하다.
아줌마 전문 사주철학관 한 보람 있네.
“아, 엄마, 엄마아. 그러지 마.”
거기다 울음은 전염된다.
설유겸이 자리 박차고 일어나서 부둥켜안고 눈물을 글썽인다.
어디선가는 들은 인생을, 사주에 살짝 빗대어서 사람 사이의 갈등을 집어내면 울릴 수 있고.
울리면 그 사람의 가장 밑바닥의 감정을 본 것이다.
“그러면서 관심을 가지면 뭐 합니까, 이러면 엄마는 너 버리고 갈 거야. 그걸 어른이 된 딸한테 하면 안 되죠.”
“죄송합니다, 그게.”
“아니요. 저한테 죄송할 일이 아니에요. 딸한테도 미안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울던 모녀가 고개를 치켜들고 나를 빤히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 새들 같네. 이목구비가 서로 닮고 아줌마가 나이 아주 많아 보이진 않아서.
“그냥 딸을 더 아껴 주시면 되는 겁니다.”
이 한마디엔 또르르가 아니라, 곡소리가 나온다.
사람들이 그 소리에 흘깃함에도 멈추질 않는다.
오히려 울음에서는 사람들이 뭔 일 있나 보다 하면서 자기 할 일들을 한다.
감정은 결국 이성을 약하게 하고, 이성에 감춘 부끄러운 속내를 드러내게 만든다.
그리고 그 감정의 깊은 것을 끌어낸 역술인은 결국 그 사람의 속마음을 쥔 것이므로.
그 사람이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들며.
믿는 자는 내 의견을 받아들인다.
더 나아가 명령을 수행하기도 한다만.
그것까지 하면 진짜 교주로 진화할 거 같아서.
그리고 모녀는 차 몰고 왔는데 술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