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돈복과 여복은 같다.
“아기···.”
“니가 아기지 뭐.”
“어떡하죠. 진지하게···.”
진지함이 지금 돌아오네.
의자 팔걸이에 다리를 끼우고 그러면 그러지 뭐 어떡하겠어.
설은겸은 걱정이 무척 많았다.
설은겸은 한 번 뭔가가 분출되면 격하고 강하게 표현하는 게 있다.
아픈 걸 꾹 참아 가며 안는 것을 풀지 말라고 명령하듯 애원하며 꽉 껴안고 놔주질 않기도 했고.
나는 분명 물어봤다.
그래 놓고, 이제야 걱정한다.
이건 내가 처음으로 경험할 때, 그래도 괜찮겠냐고 물으며 걱정하던 게 떠오른다.
그런 걱정들을 심하게 하게 되나 보다. 나나, 은겸이나.
“에휴, 이리 와.”
“우웅.”
이리 올 것까지도 없이 아직 나름 포개진 상태라 안기기만 하면 된다.
“그건 뭐, 원한다면 나랑 살고···. 아니면 낳아서 두고 가.”
“아?”
“큰일 하세요, 내가 기르지 뭐.”
“낳아만 줘?”
“어 내 운명은 바뀌었을 겁니다. 원래는 여편네와 오래 해로하기 힘든 명인데 그게 아니게 됐어요. 그런데 은겸이는 여전히 그건 아닙니다. 적당히 떨어져 있어야, 해로합니다.”
할 말이 마땅치 않을 때, 사주를 가져다 붙이면 얼추 명분이 된다.
그러니까, 사람을 상대할 때 역술인의 IP를 이용하면 그저 아무 말에 ‘사주’를 섞어 신빙성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사람을 믿게 만들 수 있다.
“왜에!?”
“꿈과 목적이 먼저인 사람이라서? 뭐 내가 목적이면 모르겠는데.”
그런 사람 아니었으면 싶지만, 사주로는 그런 사람이다.
목적만 보고 달리는 주인공 같은 사람의 사주?
나야 비술이 있어 이성과 함께 나름 욕망을 실현하고 사랑을 좇아도 되지만.
설은겸은 내가 확실한 동지가 되어 주지 않고 사랑만 갈구한다면 멈칫할 수도 있다.
<음양합일>
횟수당 재성운 3포인트, 자식운 1.5포인트를 부여합니다.
이성과의 육체적 결합은 사주학의 근간인 음양의 조화로서 모든 사주강화 포인트가 상승하며, 상대 이성이 가진 운과 태어난 속성에 따라 운이 추가로 오릅니다.
사주강화술에서 포인트를 올리는 행동 중에는 음양합일이 최고로 많이 오른다.
돈복과 여복은 함께인데,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동시에 오른다.
돈복이 높아 여자들이 쫓아오게 만드는 것도 되지만.
여복이 높아 돈이 쫓아오게 하는 것도 되는 것.
‘이성만 만나도 돈이 벌려.’
이런 걸 생각하면 내가 오히려 목적을 생각하고 이러는 거 아닌가 싶지만.
설은겸이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내 볼을 쓰다듬는다.
“지금은···. 목적 맞아요.”
목적이고 뭐고 필요 없이 좋다.
그러던 설은겸이 날 주먹으로 툭 친다.
“왜 때리는데.”
“왜 해 봤어요?”
“너보다 6년은 더 살았고, 유혹하는 거 마다 안 해서.”
“사주로 나랑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사주로 따지자면 이쯤에 여자친구 만날 수도 있겠다 생각은 했다.
사주강화술로 따지면 대운강화가 슬슬 들어올 때가 됐다.
이번 여름 생일 지나면 아마 자아와 화술에 내린 운세가 여자와 재물에 몰릴 것이다.
아버지 운도 같은 운에 있어서 그런지, 아버지도 기 펴더라고.
근데 이런 아리따운 아가씨랑 잘될 줄은 몰랐다.
“해 보고 싶다 생각은 했겠지만 정말 이렇게 될 줄 몰랐지.”
“해 보고 싶었다···?”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고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리면서 말을 돌렸다.
“지금은 괜찮아?”
“모르겠네요. 중간부터는 괜찮은 거 같기도 해서.”
“어 얼굴 되게 빨갛다.”
“아, 보지 마요.”
내 어깨에 턱을 올리면서 시선을 피해 버린다.
그러면 시선은 살갗에 둘 수밖에 없는데.
설은겸이 또 앙탈 부리듯이 말한다.
“사주 뻥이야.”
“어, 그렇지요.”
“유겸이랑···. 그, 그 오··· 빠랑 궁합 안 맞아.”
“오, 오오오오.”
박수 쳤다.
저것도 말 잘 안 하던 거다.
굳이 시키지는 않았는데, 선사님 선사님도 이상해서 시킬 만한 호칭이 뭐가 있나 하다가 가장 대중적인 걸 시켜 봤는데.
말 못 하더라고.
“은겸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사주 뻥이니까.”
“그러면 궁합도 뻥인가?”
“응 그것도 뻥이야.”
“우리 궁합 괜찮은데.”
“그건··· 뻥 아니야.”
그리 말하고 입을 뾰족 내밀고 있는 은겸이의 콧잔등과 입술을 살포시 눌렀다.
“근데 동생이랑 사이 안 좋아?”
“그냥, 뭐 나쁘진 않은데 좋지는 않아요.”
“너무 반대지?”
“응···.”
그러니까, 표현과 애교가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 사람들의 선망을 받지만 은근히 선 긋는 아이와.
평소에 표현과 애교를 겉으로 짓눌러서 선이 있어 보이는 여자가 다르다.
“둘째인데 엄마한테 더 예쁨받고.”
“응, 응.”
“어, 은겸이 걸 다 빼앗아, 돈을 준 게 이례적이지 그것도 아마 엄마가 주라고 해서 준 거 아닐까.”
“맞아!”
돈 많은 집안인데도 그런 게 있나 보군.
당연하지만 형제도 자원이 한정되어 있어야 다투고 뺏는다.
그리고 형제가 원하는 자원은 언제나 한정되어 있다.
설사 돈이 많더라도 부모의 관심이란 자원에서는 숙명적인 경쟁자에 가깝다.
“근데 내가 보기엔 은겸이가 가지고 싶은 티를 안 내서 억지로 양보 당한 경우가 많을 거 같은데.”
“···응 맞아.”
“귀여워라.”
시무룩해서 고개 끄덕이는 게 왜 이리 귀엽냐.
“별수 없어. 사주가 그래. 사주대로 사는 사람들이야.”
“그건 뻥 아니···네.”
“알았어, 걔랑 궁합 좋다는 것만 뻥이라고 하자.”
“응.”
열심히 끄덕거리는 거에 몸만 반응하고 있었는데, 마음이 다시 반응한다.
“그, 은겸이 귀여워서 그러는데.”
“응?”
“위로 올라가자.”
“아···.”
은겸이가 걷어찼던 것을 찾아왔다.
먼지가 묻어 있으니 계속 입히고 있지는 않는 것이 좋겠다.
흔적이 있었는데 놀리면 더 음란할 거 같지만, 그러진 않았다.
그걸 발목에 걸어 주고 입혀 올렸다.
“걷기 조금 아파요.”
“그러면 그냥 있을까.”
“으으응.”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면?”
“맘대로 해요.”
“어떻게 맘대로 할 건지 알면서?”
“근데···.”
“근데?”
“다 안기는 거 좋아···. 살 닿으면서 안기는 거 좋아.”
어떻게 이런 애교덩어리가 그걸 감추고 살았을까.
그 말을 듣고는 다시 안지 않고는 못 배길 수준으로 몸이 가라앉지 않아서.
사무실 말고, 집으로 올라갔다.
* * *
“그, 혹시 아버지 동생.”
“설윤환 씨?”
그래도 작은아빠일 텐데 호칭이 딱딱하다.
좋아할 수는 없는 사람이긴 하지.
“교도소 한 번 면회 갔다 올래요?”
“왜요?”
“이런 걸 자꾸 나한테 보내네.”
그동안 설윤환에게 온 두 통의 편지를 내밀었다.
괜히 신경도 안 쓰는 존재와 내통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으니 설은겸에게는 보여 주는 게 이득이라는 판단이다.
“어머···. 이걸 왜 선사님한테.”
“선사님 말고.”
호칭을 슬슬 다잡아야겠다.
아직도 착각하는 건지, 그냥 입에 붙은 건지는 모르겠는데.
저리 부르면 이상하다.
나도 손잡고 데리고 나가면서, 남들 시선도 한번 받아 보고 싶네.
“으···음, 안 돼요.”
“왜에?”
“아이 시키지 마요. 부끄러워 죽겠네.”
“그러니까 더 시키고 싶네.”
“안아 주면··· 할게요. 먼저 와요.”
“아이구, 그럽시다.”
먼저 가서 보듬어 주니까, 그제야 입을 연다.
“오빠아.”
“그 이 사주.”
“말하지 말고, 조금만 더 있어요.”
“아아.”
“더 꽈악···.”
살포시 손만 올렸더니 볼멘소리로 촉구해서 꽉 안아 줬다.
“그래 그래.”
“에헷 오빠아아.”
그렇게 꽉 껴안아 준 다음에야 용건을 꺼낼 수 있었다.
“아무리 봐도 돌아가신 분의 사주거든요.”
“네?”
사주만 보고 ‘죽은 사람 사주다.’
이렇게 말하는 건 신력이 있는 무당이나 가능하다.
그래도 확률을 높여 나가는 것은 가능하다.
일단 나이가 많을수록 사망확률이 높으니까, 그걸로 높이는 게 가능했고.
사주 자체가 우울감이 높았고 50대 중반 즈음하여 운이 끊겨 있었다.
거기다 나이로 보아 설정환 님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걸 토대로 설윤환이 보낸 사주는 형 설정환이 아닐까.
추측 중이었다.
“이걸 생일로 환산하면···. 이 생일 알아요?”
설은겸에겐 사주를 생일로 바꿔서 다시 보여 줬다.
설은겸은 아빠 생일임을 알아보고 치를 떨었다.
“···이 사람이 우리 아빠 사주를 왜.”
“어 그리고 얼마 전에는 이형탁 교수님을 봤거든요.”
“아 이형탁 교수님이오? 그분 저도 찾아가 봤었는데요.”
이형탁 교수와의 있었던 일도 조금 이야기했다.
설은겸한테는 정신과 의사는 그런 거 말 안 한다고 철벽 친 모양.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능력이 있기도 하지만.
설은겸은 타인의 진심을 끌어낼 화술이 모자랐다.
“그 아버지 사주가,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할아버지한테 맞을 매를 동생 대신 맞는 사주 같네요.”
“···아.”
사주가 세상의 공격을 형제 대신 맞고 있었다.
“그걸 어필하려고 보낸 거 같아요.”
“도발하네.”
설은겸은 화를 내며 특별할 건 없는 편지들을 보다가 폰으로 교도소가 어딘지 검색하다가 물었다.
“이걸 언제 이렇게 많이 조사했어요?”
이형탁 교수에게 들은 몇몇 힌트를 말하니 그리 묻는다.
“은겸이는 회사 먹어야 하니까? 내가 했지.”
“제가 그래도 알아보려 한 건데.”
“은겸이가 회사를 먹으면 확실해지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럴 경우엔 내가 밝혀 보려고.”
“고마워요, 나도 신경 막 쓰진 못하는 일인데···.”
“뭘요.”
“왜 이렇게 열심히 해요 근데에?”
짓궂게 웃으며 놀리는데, 되돌려 주는 게 어렵지 않다.
“그래야 장인어른 제사상에 술 올릴 자격이 되는 거니까.”
“···뭐야아.”
눈이 맞았는데 그 살포시 뜬 눈이 너무 매혹적이라 눈을 못 떼다가 그만.
어 이러다, 진짜 결혼하는 거 아니냐.
* * *
<횡재운 LV4>
당신은 약 만 달러가량의 수지를 일생에 한 번 맞이합니다, 일체의 노동으로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현재 내 횡재운은 4레벨로 천만 원 정도의 수지를 사행성, 그리고 투자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누가 그냥 주기도 하고.
“······아니 이거, 음.”
그리고 명승 선생님이 내 계좌로 3천만 원을 보내 줬다.
갑자기 돈이 3천이 들어왔다고 해서 화들짝 놀랐다.
통장에 메시지 10줄까지 찍히게 할 수 있는 모양인데.
500만 원씩 여섯 번 입금되어 있다.
<소여에게사주강화술을>
<전달해주셔서감사합니>
<재물을얻을밑천으로쓰>
<갚을필요없이쓰셔도됩>
<나는돈많으니걱정말고>
<계좌이체한도오백아놔>
이체만 여섯 번 하셨구나.
그거 한도 못 늘리시나.
이 양반 계좌이체 한도 500 못 늘려서 저렇게 부쳤을 거 생각하니까 헛웃음이 나온다.
500 정도 돌려드리려다가 주신 돈 뱉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하여.
좀 유치하지만 1004원을 부치면서 통장에 메시지 적었다.
<연락처좀주십쇼선생님>
밑천을 주시겠다고는 했는데, 재성운이 오른 걸로 다 된 줄 알았더니 진짜 주시네···.
이건 대가성이라 아마 횡재운으로 포함되지는 않을 것이다.
“흐음···.”
그동안 명승철학관에서 일하고 특임고문으로 일하면서 약 돈 4천 정도를 모아 놨다.
합치면 7천.
설 회장의 아부다비 자금을 받아 두면 이건 우스울 정도로 벌기야 하겠지만.
[뭐 둘 사이에 사랑의 결실 정도는 있어야지 않겠습니까? 갈라서면 끝인 세상입니다.]
[예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혈육이 있어야 남자는 더 진심이 됩니다.]
라고 말은 했어도 은겸이 나이는 불꽃같이 결혼해도 이르고.
아이를 갖는 건 다소 두려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건 회장의 독단이지 며느리나 그 집 식구들이 동의할 사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설 회장도 며느리랑 그 집 식구들 가엽다, 가엽다 하는 찰나고.
그래서 은근슬쩍 이혼한 설혜영을 들이미는 것이겠다.
‘돈 있는 집안의 나이 든 여식이 평범한 어린 남자를 만난다.’
이건 세간 사람들이 이해는 할 만한 결합이니까.
그리고 여복이 있으면 돈복이 굴러온다지만.
반대가 더 대중적인 세상이다.
세상은 마누라 돈으로 잘 먹고 잘 사는 남자의 값을 잘 쳐 주지 않는다.
“어떻게 버나.”
나는 아직 세상의 돈 버는 법을 근로소득 말고는 잘 모른다.
대중적인 건 주식이 생각나긴 하는데···.
주식은 회사에 대한 권리를 쥐는 것이라 인성운의 ‘주거운’ 탭에 같이 있다.
그걸로 큰돈을 버는 것은 횡재운에 적용이 된다.
주식은 올라서 판다 치면 재물인 것이고, 그러지 않다면 권리인 것이다.
재물을 위해 권리를 내다 파는 것과 다름없는 것.
우선 소녀보살에게 사주강화술을 전수하고 받은 포인트로 횡재운을 올렸다.
<횡재운 LV5>
당신은 약 만 달러가량의 수지를 일생에 몇 차례 맞이합니다, 노동의 대가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천만 원가량의 잭팟이 여러 차례 터지는 운을 갖췄다.
로또 1등이 되려면 횡재운이 레벨 9는 되어야 하고.
설 회장네만큼 돈을 쥐려면 12레벨은 되어야 한다.
올리려면?
“일단 많이 하고···.”
은겸이 옆에 잔다.
‘많이 하고’가 떠오르는 건, 재성운을 쌓아 올릴 플랜이다.
이불은 덮어 줬지만 뽀얀 다리와 뭔가 입지 않은 골반이 드러나 있다.
“으응, 몇 시간이나 잤어요.”
“해 졌네요.”
6월에 해 졌으면 시간이 오래됐다.
“가야겠네.”
“그 앞으로 계속 출근하세요.”
“···뭘 하려구.”
“알 테고 오늘은 자고 가든가.”
“헤헷.”
“음 왜 웃어요?”
설은겸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내 무릎에 양팔을 올리고 눈만 치켜뜨면서 날 바라봤다.
“내가 필요해진 거 같아서 너무 좋아요.”
“언제나 필요했는데요.”
“으응, 눈빛도 더 끈적해지고 내 앞에서 부르르 떨고.”
“가만, 내가 묘사해 볼까. 은겸이는 어땠더라.”
“으아아아 그거 하지 마아.”
내 입을 막으려고 달려드는데 그러다 보니 어쩌다 또 안기고 있다.
* * *
이태현을 다시 만나 추궁했다.
“아 그 정도 자금이라고요?”
이태현은 설정환이 조성한 해외자금을 관리하고 있는 게 맞았다.
근데 생각보다 비자금이라는 게 많지는 않다.
아부다비 아부 탈리브 센터에 붙잡힌 예금 추산액에 수십 분의 1 정도다.
이래서 설 회장이 그냥 놔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이 정도 돈이면 은겸이한테도 보탬이 되고 그 집안에도 도움이 된다.
“은겸이나, 은겸이 어머니한테 드려야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안 됩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이 돈을 설정환네로 돌려주라고 설득은 하고 있는데 이태현은 끝까지 버틴다.
“이건 전 회장님이···. 이 말씀을 드려도 될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들을 자격이 있으니까, 말씀해 주세요.”
그제는 농담이었는데 이제는 될 것도 같다.
“이 돈은 설 전 회장님이 동생인 설 본부장님이 출소하면 그 가족들이 먹고살라고 남기신 돈입니다.”
아.
이런 양반을 돌아가시게 한 인간은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