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97화 (97/211)

#97. 성전 건축을 받으려면

[아 존나 친한 척하더라 진짜.]

설민혁에게서 볼멘소리가 섞인 연락이 왔다.

설민혁은 아직 전주에 있다.

“그냥 친하게 지내.”

[이거 그 영감 유언장 말해서 그런 거 아니냐?]

“그렇게 직접적으론 얘기 안 했다. 사과하라고만 했지.”

설혜영과 설민혁은 대승적이고 공식적인 사과나 화해는 없었던 것 같으나.

티격태격하며 지내는 남매 사이로는 발전했다.

막 서로 등 돌리고 얼굴 안 보고 지낼 것 같았는데.

경선 때 캠프에서 보니 30~40대 누나 동생이 아니라 매일 티격대는 사춘기 누나 동생마냥 그러더라고.

설혜영은 친한 척을 했고 설민혁은 틱틱대지만 그걸 거부하지는 않았다.

이건 설민혁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끌어안은 것이다.

“아무튼 네가 잘했다. 너네 누나도 사람이면 열 살 어린 동생이 그러는데 창피한 줄 알겠지.”

[이야 내가 잘하고는 있나 보네, 요새 칭찬한다 너?]

“프랑스 가서 술 오지게 처먹고 온 뒤부터 사람이 좀 나아지긴 했다. 진짜로.”

직원들과 그곳 사람들 그리고 아버지한테 인정받고, 김병용한테 맞다가 인정받다가 하면서 조금씩 변해 가는 모습은 보인다.

[아이고 선생 영광입니다.]

“그냥 거짓말로도 할 수 있는 한마디 사과보다 행동이 중요할 수도 있는 거니까. 좀 더 잘 지내 봐.”

[그러냐?]

“용서는 나중에 하던가 말던가 해, 그건 네 아량에 달렸다. 아량을 보여 줘서 그래도 가족은 챙기고 용서하는 대인이 되던가, 아니면 적은 철저히 탄압하고 가만 놔두지 않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이 되던가.”

[오, 뒤가 더 멋있는데.]

“그래도….”

[앙?]

“너희 아버지 살아 계실 때는 지금처럼 지내라, 그게 내가 하라고 했던 효도다.”

그냥 으레 하던 좋은 말을 했는데….

묘한 좋은 일로 돌아왔다.

* * *

“어 장기가 세팅이 안 되어 있네요?”

설양훈은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내가 오니 의자를 돌려서 날 맞이한다.

“혜영이가 민혁이와도 그럭저럭 잘 지내는 모양입니다.”

설민혁과 설혜영이 나름 잘 지내는 것을 말하나 보군.

“자제분들이 붙임성은 타고 난 모양입니다.”

“그게 그렇게 쉽게 붙임성으로 해결될 것이었을까요?”

“어, 둘 다 관심과 애정이 고프신 분들이라서요.”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애교와 붙임성이 있다.

“그래요?”

“애정을 받아도 받아도 부족한 사람하고 받은 적이 없어서 받는 관심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사람이므로 서로가 관심을 보인다면 애초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 둘을 붙여 놓고 잘 지내게 만든 것엔 분명한 공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이고 뭐 그래요, 칭찬해 주시려면 하세요.”

“잘해 주셨습니다. 가정의 화목만큼 제가 더 보고 싶은 광경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이건 그냥 설혜영을 선거에 이용한 건데, 설 회장은 그걸 가지고 칭찬하고 있네.

분에 넘치는 칭찬이지만 둘을 화해시키려고 시도한 것은 사실이고.

설민혁이 내 말을 좀 듣고 설혜영의 전향적 자세를 만든 것도 사실이니.

“거기다 김병용이도 선생을 이번에도 말도 못 할 정도로 칭찬하더군요. 선생 덕에 당락이 갈렸다고 하더군요.”

“그건, 예 좀 잘한 거 같습니다. 제가 봐도요.”

마냥 칭찬 듣기도 민망해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거기다 민혁이와 김병용이 쪽과 결합도 도와주셨다고.”

“그거야 민혁이가 잘한 거죠.”

“민혁이를 그렇게 띄워 주는 발언으로 사리실 필요 없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몰아간 것도 민혁이 놈을 단념시킨 것도 선생의 공입니다.”

김아미를 꼬신 것까지 내 덕이긴 어렵지만 칭찬하는 의도가 있어 보이니까 그냥 끄덕였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니까.

“요새 말 잘 듣네요. 철 좀 드는 것 같습니다.”

“그리되면, 결국 줄을 하나 저희 가문에 대어 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문의 일뿐 아니라 정치까지…. 이야, 이거 참.”

설양훈은 한창 몸둘 바를 모르게 칭찬하다가 뜬금없는 화두를 던졌다.

“선생, 어학을 좀 배울 생각이 없습니까? 선생은 문인의 기질이 있어서 어학을…. 최소한 글을 읽는 것에는 소질이 있을 거 같은데.”

“영어 같은 걸 말씀하십니까? 안 그래도 하나 배우고 있는 게 있어서.”

“그래요, 계속 배우는 건 중요하지요. 어떤 것을?”

“아랍어 좀 잘합니다.”

“…예에? 아랍어를요?”

설양훈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전공이 그게 아니었던 것으로 아는데.”

“아 그게, 한창 IS 테러로 난리일 때 유럽 여행을 가서 혹시나 테러리스트가 붙잡아 놓고 죽이려 들면 무슬림인 척 위장하려고 꾸란을 열심히 외워서요.”

“…정말입니까?”

학위운으로 올린 건데, 그렇게 설명할 수는 없으니 스토리를 하나 만들어 붙였다.

‘교육학 전공자인 야설 쓰는 역술인이 아랍어(?)를 잘함.’

듣기만 해도 뭐지? 싶은 느낌이다.

지금 보니 이게 더 뜬금없긴 하네.

“그렇다면 이슬람 은행을 아십니까?”

“아 그건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아마 이슬람 금융권은 이자를 주는 행위를 금지해서 좀 다른 방식으로 금융을 굴리는 걸로 압니다. 배워 볼게요. 안 그래도 그런 전문 단어나 개념 궁금했는데.”

“…허허, 나는 참 오늘 선생을 보니 참 하늘이 묘한 인연을 내려 줬다 생각이 들어요.”

“무슨 하늘에까지 정당성을 부여하십니까? 그냥 어르신이 사람을 이끄는 매력이 있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에이 무슨, 돈이겠지요.”

내가 봐도 돈이긴 한데, 그걸 곧이곧대로 말하면 쓰나.

설양훈도 아부는 싫어하는 척하면서 좋아한다.

“사람의 인품과 매력이 돈을 끌어모으는 것이니, 돈으로 국한시키실 필요 없습니다. 그걸로 돈을 모으고 돈이 다시 사람을 모은 것입니다.”

“하하하하하 말씀을 정말 잘한단 말이지요. 내가 이런 자식이 있었다면 뒷걱정이 없었을 것인데.”

“그런 자식이 되게끔 만들어 보겠습니다.”

설양훈은 한창 껄껄 웃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선생한테 제가 원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부하직원입니다, 말씀하시면 부당한 게 아니면 뭐든 따릅니다.”

“세간에서는 충성을 말하지만, 나는 그걸 말하는 사람들을 믿지 않아요.”

충성이구만.

“뭔가 저를 확고하게 믿고 싶으신데, 제가 뭔가가 부족한 것이고요. 충성을 믿지 않는다고 하시는 것을 보면 매번 하시던 그 이야길 하실 거 같습니다?”

충성을 믿지 않고 가족과 혈육을 믿는다, 뭐 이런 요량의 이야기일 것이다.

장기 둘 때마다 비슷한 소리를 한다.

나도 지금도 믿지만, 더 믿고 싶은데 더 믿게 해 달라 이런 말도 하고.

“눈치가 하여간 100단이야….”

“은겸이랑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근데 아직 저나 은겸이나 둘 다 어려서 관계를 확고하게 다지기엔.”

“그렇지요, 굉장히 이르다고 생각은 들고 상대들이 아마 옹고집이거나 그것까지는 생각을 못 할지도 모릅니다.”

“결혼하자 하기는 이릅니다. 일부터 배워야 하는데.”

“은겸이야 그렇지요. 그럼에도 은겸이를 자꾸 말하는 것은 그나마 선생과 가장 긴밀하기 때문인 것이고, 내가 둘을 더 떠볼 겁니다.”

“재수한다는 동생은 좀 그렇죠. 얼굴도 몰라요. 근데….”

한 명은 짐작 가는 사람은 있는데 말은 안 했다.

영감이 다른 건 모르겠는데 가문의 여식들과 엮는 것에는 조급함이 느껴진다.

“나이가 좀 많아요. 아랍어 쪽을 공부한다고 하니, 아마 무함마드의 행적도 알겠지요.”

무함마드와 카디자 이야기구먼.

무함마드는 25세로 당시로서는 노총각으로 늙어 가다 나이가 한창 많은 40살의 두 번 다녀온 돈 많은 부인 카디자와 결혼했다.

“…아, 아시나 보군요. 하긴 자식을 아는 데는.”

“아비만 한 자가 없다. 선생이 자주 하시던 말이시지요.”

말 끊기 먼저 시전…. 참 발전하는 할배야.

“제 철부지가 이미 이혼장에 도장을 찍은 모양입니다.”

설혜영은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나 본데 그냥 설양훈이 알면서 말을 안 한 것이었다.

아마 설혜영한테 날 보낼 때, 감안하고 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새 사위 찾으시나 보군요.”

“손녀한텐 권하지만, 딸한텐 시킬 수 있어요. 아직 봐 줄 법하지 않습니까.”

아버지 앞에서 아들은 좀 비하해도 되나, 딸은 비하하면 안 된다.

어머니 앞에서 딸은 좀 비하해도 되나, 아들은 비하하면 안 된다.

성별이 다른 자식에겐 자기 자신의 Ver 2.0이 아닐 것이라는 기대치가 있는 편이더라고.

같은 성별의 자식이면 ‘에휴 저거 하는 짓이 나랑 똑같네.’ 싶은 심리가 부모들에게 있는 모양.

고로 내색하지 않았다.

“뭐, 자식을 가질 수 있는 여인이면 마다하지 않습니다.”

“……여인을 마다하지 않는다더니.”

이 주제 안 좋아.

어쨌거나 어른이 좋게 봐서 가문의 여식을 줘서 가문으로 들이고 싶다는데 극구 거부하는 건 영 모양새가 안 나니까.

현명하게 빠져나갈 방법이 마땅치가 않다.

“그러지 마십시오. 다리를 놔 주시는 것이야 감사합니다만 재물과 그룹 승계를 빌미로 강권을 하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거기다 설양훈이 막 말빨로 나를 제압하질 못하는데….

이 주제에서는 명분이 앞서니까, 이걸 빌미로 놀리는 듯한 느낌도 든다.

“하긴, 그런 것은 싫어했지요.”

“운은 띄우지 마십시오. 제가 해 볼 테니.”

“그래요, 그게 되면 제가 우리 가문의 명운을 작게나마 선생에게 맡겨 볼까 합니다.”

“……예?”

뭐 이렇게 심각한 이야기를 갑자기 하나.

“내가 선생의 사주를 몰래몰래 본단 말이지요.”

“물어보시라니까요, 사실대로 말씀드릴 건데.”

몰래 본다는 걸 말하면 그게 몰래 보는 게 아니잖아.

“선생은 우리 가족의 화목을 되찾아 준 사람입니다. 선생이 있다면 내가 없어도 이 집의 줏대를 제대로 세워 줄 거란 기대가 들어요.”

“근데 손녀사위 삼으면 그거 안 되는데요? 어른들이라.”

“하하하, 사주로 그렇게 사람을 쥐고 흔들면서 뭐가 안 됩니까. 아니 내가 보기엔 그게 사주도 아니에요.”

“나름 사주에 입각해서 봐 드리고 있습니다.”

“사주가 암시하는 세상의 이야기와 보편성을 쥐고, 그것을 역술인 것처럼 활용하고 있으신 것이지요.”

나름 분석이 되나 보군.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 파악할 수밖에 없다.

“사주로도 꽤 맞춥니다. 건강운 같은 거.”

“계룡선사가 선생을 사주를 헛배웠다고 불편해합니다. 그치만 평은 나쁘지 않아요. 큰 바다를 호수처럼 담아 마르지 않게 잘 지키는 명이라 수성에 분명한 공로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인물이란 소리네.

“그리고 사주를 본다는 좀 특이한 정신과 의사 선생이 있어요, 그 양반이 말하길 사주의 도그마에 치우치지 않는 개방성을 가진 인물로 안정감과 수용성이 모두 있다고 합니다.”

이형탁 교수면 얼추 날 알기는 할 텐데, 호사가들의 평이 좋구만, 내가 그런 인물일 줄이야?

근데 사주강화술 덕에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사용료를 받고 쓰게 하는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이 건물을 선생이 맡게 할 생각이에요.”

“언제나 그렇지만 그냥 주시면 받으나, 그런 조건이 걸리면 안 받을 겁니다.”

설양훈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반드시 조건부가 필요합니다. 손녀사위가 되건 사위가 되건 우리 설씨가 사람으로 들어오세요. 나는 내 딸도 내 손녀들도 어디 딸린다고 생각 안 합니다.”

“그런 의도를 가지고 사랑하고 싶지는 않은데요.”

“미인 그 자체에 의도는 갖고 있을 것이라고 저 두 분 모두가 말하더군요. 점잖은 척을 할 뿐이지.”

“…….”

이 양반들 용하네, 진짜.

“늙은이는 다급한 법입니다. 그리고 선생이 꽤 많은 돈을 벌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재물운과 여자운은 같이 온다 했다지요?”

“욕망이 지나쳐 재물을 거머쥐면 색을 밝힐 것이란 우려는 안 하던가요?”

설양훈은 피식 웃었다.

“내 인생을 보고도 이 늙은이가 그런 걸 신경 쓸 사람으로 보입니까?”

그건 그렇네, 그냥 고개 끄덕였다.

“딸이나 손녀의 자식은 무조건 내 핏줄입니다. 남자에게 자식과 책임을 같이 주면 일에 충실해진다고 하지요?”

설양훈은 내가 주로 하던 사주의 격언으로 옭아맨다.

* * *

회사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상대인 노승환 사장을 만나 있었던 일을 말했다.

“그거….”

“아시는 게 있으세요?”

노승환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귓속말로 말했다.

“그거 단순한 건물이 아닙니다. 아부다비 토후국의 대형 빌딩이고, 그 이슬람권 은행이 건물을 임대하는 식으로 설 회장님 돈을 예금으로 받아 둔 것이지요.”

이슬람 은행은 돈을 맡기거나 빌려주면, 이자를 주지 않는다.

대신에 이자만큼의 물건을 사 주거나.

혹은 돈을 빌려준 사람의 어떠한 물건을 이용하고 그 사용료를 대신 이자처럼 지급한다.

그것은 주로 건물이나, 항공기의 몇 년 임대이기도 하다.

아부다비와 알 아인, 오만에 스카이피아가 지은 건물이 몇 채 있다고 들었다.

그게 난 석유 부자들이 건물을 의뢰해 짓고 구매한 건 줄 알았는데.

여전히 스카이피아 소유이고, 그저 어떤 막대한 돈에 대해서 아랍인들이 그 건물을 임대해 사용료를 지급하는 식으로 빌려 쓰는 것이라는 걸.

지금 알게 됐다.

“예에?”

한마디로 이슬람 은행이 이자를 주는 대신 빌딩 임대료를 줄 정도로 막대한 예금이라는 것이다.

준다는 건 그저 건물이 아닐 수도 있었다.

“설마 그거, 비자금과 검은돈이라고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말씀하진 마시고, 그 동네에선 세금을 다 문 돈일 겁니다, 뭐…. 단지 한국에 들여와서 그걸 후손에게 주려면 한 반절은 나라에 내야 하는 돈이긴 하지요.”

스카이피아는 사전 승계로 설정환에게 증여하면서 꽤 세금을 냈고, 그가 갑자기 사망함으로 아버지가 상속세를 또 냈다.

어찌됐건 일단 돈은 다 낸 셈이다.

다만 해외 건설을 하면서 수주한 자금 등이 어딘가에 잠자고 있다는 소문은 파다했는데….

“그러면….”

“그걸 받을 사람이 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결정하게 되겠죠. 검다 희다를 지금 논할 자금은 아니나, 선생이 후계자 중 한 명을 민다면…. 그 사람을 가장 차기 회장에 가깝게 밀 수 있는 돈은 될 것입니다.”

설양훈의 말대로 정말 가문의 일원이 되지 않고는 주는 사람도, 가진 사람도 불안할 자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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