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장군의 딸
손님이 누굴 좀 닮았는데….
“안녕하십니까.”
~까아?
인사부터가 범상치가 않았다.
좀 많이 이상하다, 체대 여자애들 캠퍼스 구보할 때나 듣던 말투다.
그놈의 다나까가 뭐가 좋다고 군기를 대학에서도 잡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가만있자….
어깨도 설혜영마냥 넓고 머리는 약간 긴 편인데, 매번 묶어 올리는 티가 머리에서 난다.
머리카락에 계층이 나눠져 있다.
묶는 부분이 눌려 있는 것이다.
내가 여자 머리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거 펴는 게 고데기라고 하지 않나.
여동생 생일 선물 한번 사 준 적 있는 거 같은데.
외모에 크게 관심이 없거나 관심을 피력할 수 없는 직종.
머리를 묶거나 혹은 모자 등을 거의 상시 착용해야 하는 직종이라는 뜻이다.
단언컨대, 군인 같다.
“어, 혹시 김씨세요?”
“맞습니다.”
20퍼의 확률을 뚫었군, 이상하게 낯이 익어서 찍었다.
“군인이시죠?”
“아 보이십니까?”
이건 관찰력이고 지랄이고 컨셉충 아니면 다 군인이라고 보겠는데요.
아는 논두렁 말고는 사회에서 다나까 쓰는 사람을 군인 말곤 못 봤다.
이름을 잘못 지었다는 큰딸이라고 생각이 든다.
“김아미 씨?”
“아, 저 보신 적 있으십니까?”
김병용 큰딸 맞는 모양.
세 악마 중에 제일 말 안 듣는 믿음직한 딸이라고 했다.
“아빠를 많이는 안 닮아 다행이세요.”
“아닙니다.”
외모는 모르겠고 기질은 닮은 모양이다.
외모도 왠지 떠오르기는 하는데,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게 다행이다.
“일반인 말투를 쓰실 생각이 없으신가 봐요.”
“죄송합니다. 아버지가 너무 대단하셔서 집에서도 좀… 그랬습니다.”
“이젠 전역하셨잖아요.”
“그래서 더 그렇습니다.”
다나까 쓰는 부녀라니 이 무슨 혼종이냐.
“어울리시네요. 부모 팔자를 자식은 닮기 마련입니다.”
“그렇습니까?”
“고전 사주학엔 가업을 이을 팔자라고 하는 경우가 있었고 현대사회에 이르러 많은 직업의 범주가 생겼지만, 결국 부모랑 비슷비슷한 일을 하는 게 자식이더라고요.”
“아 제가 가업을 이을 팔자인 겁니까?”
“누가 봐도 그렇잖아요? 요샌 다시 이런 사주가 느네요?”
“이런 사주가 뭔지 궁금합니다.”
“이건 사실 대다수가 가업을 잇는 전통 사회였기에 나온 사주인데.”
고전 사주학 중에 ‘가업을 잇지 않는 사주’라는 게 있다.
이건 한국 사회가 도시화 산업화가 되면서 의미 없는 사주 감평법이 되었다.
농사꾼 자식이 공단의 노동자나 도시권의 화이트칼라로 변해서 죄다 가업을 잇지 않는 사주가 된 것이다.
그런데 도시화 이후의 세대들은 오히려 가업을 잇는 사주가 점차 맞아 드는 추세다.
그런 거 보면 사주라는 것도 사회가 안정이 되어 있어야 맞는 모양.
“연예인 자식들이 연예인 하고, 야구 선수들 자식들이 야구 선수를 하고 공무원 자식들이 공무원을 하고 그러더군요.”
부모의 살아가는 모델은 자식도 흡사한 길로 이끈다.
그 길만 바르면야, 자식도 어느 정도는 바르게 클 것이다.
자식운과 직장운은 그래서 같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사주라는 것은 세상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십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거친 사회의 변동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죠. 여군 사주라는 게 사주학이 생길 때 있었겠습니까.”
“그렇겠습니다.”
“사주의 근간에 동양의 철학인 유불선이 다 들어 있어서요. 세상의 안정을 목표로 할 수밖에 없고….”
“아, 어려 보이시는데 정말 도사님 같으십니다.”
젊고 배운 사람들 같으면 문자 써야 된다.
“무엇보다 세상의 신분이 고착화되어 가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세상은 안정되면 다시금 사회 유지를 위해 신분을 가를 거라서요.”
나는 가업을 잇는 사주가 맞는 세상이 오는 거 같다.
못살 팔자 그대로 못살고, 잘사는 집 그대로 잘살면서 그렇게 태어났으니 그렇게 살아라.
네 부모가 그러니, 너 역시 그렇게 살라고 하는 세상.
“가업을 잇는 사주는 그걸 말합니다. 신분 대물림이오.”
이미 그 세상이 온 것 같지만.
내가 낮은 신분인데 그런 세상이면 끔찍하니까, 아니라고 발악하고 발버둥은 쳐 볼 생각이다.
“그리고 신분이 대물림되었다는 현상을 이미 봤으니까, 그 손님의 사주도 짐작이 가는데요, 약간 튀네요. 이건 아버지가 말씀을 워낙 잘해서 그런가.”
“튄다는 말씀이십니까?”
“그 일반인 코스프레를 전혀 안 하시는데요. 말투도 그렇고 머리도 안 펴셨고, 차라리 묶으시지, 묶었다가 다시 펴신 건가?”
머리는 감으신 거 같은데, 자다 일어나서 나왔나.
저거 신기해서 참 자꾸 시선이 간다.
“이런 곳을 처음 와 봅니다. 그래서 그런가 봅니다. 저도 막 친구들 앞에서는 이렇게는 말을 안 하는데.”
“어, 설마 그게 귀엽다고 말하는 이상한 놈이 있었다던가.”
“아, 아니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나는 사실 이분이 여기 온 것 하나만으로도 뭔가 머릿속에 비상하게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재밌는 거 하나를 포착했다.
난감할 이야길 계속했는데, 표정 관리가 너무 잘된다.
“기질을 잘 감추네요? 천상 군인이신 모양.”
“아 제 기질이 어떻길래 그러십니까?”
“제가 한 1,000명 넘게 사주를 군인만 봤걸랑요. 자기 의견이 거센 사람은 그저 사병 혹은 단기 복무에서 그치지 군에서 버티질 못하더군요.”
“의견이 아예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견이 없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의견을 감추는 사람이 따로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습니까?”
“그거 못하는 사람 말씀드렸지만 일 잘하고, 말 잘하고, 전투력이 있어도 군인은 오래 못 합니다. 특전사 출신에서는 조금 봤네요.”
부사관, 조교 및 교관에서는 말 잘하고 개기는 사람들도 몇 포착되는 편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집단에 완전히 비슷비슷한 사주의 사람들만 있는 것도 말은 안 되지 않나.
그런데 비중은 확실히 낮은 편.
일반 직장만 봐도 예스맨이 그렇게 많은데 개인의 다양성 존중 따위는 집어치운 군에서 ‘위를 거스르는 사주.’, ‘내 의견이 확고한 사주.’ 등이 버틸 수가 있겠나.
“근데 그걸 머리로 인식하고 하는 행동입니다. 마음이 그렇지 않네요. 집에서도 예스, 예스만 하지 않을 것이고 누구에게나 예스라고 말하진 않습니다.”
“그건… 어떻게 보시는 겁니까?”
“제 의견에는 뭔가 반박을 하고 싶으신 게 보이니까요. 일터에서만 잘 감추는 성향을 갖고 있으신 겁니다. 천상 군인이시죠.”
김병용 딸이면 내가 어느 정도는 용하다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 양반이 동네방네 소문을 잘 내는 편이라.
“그렇습니까?”
“나이가 저랑 아마 같을 건데.”
“그렇습니다.”
“대위쯤 되셨겠네요.”
“예.”
“육사라고 들었거든요, 진급 고민은 중령부터 하실 거 같고 그래도 아빠 백이 든든하니까, 아주 직장 트러블이 심할 것 같지도 않으실 듯합니다. 갈굼이라거나.”
육사는 중령까지는 거의 프리패스라고 들었다.
“다들 잘해 주십니다.”
“……예, 예.”
뭐, 그렇게밖에 말을 못할 이유가 있음은 이해합니다.
“결론은 이거 진짜 말해 보고 싶었는데 잘됐네요.”
“어떤 결론이십니까.”
“대위님이 고민을 가지실 만한 일은 세 가지 정도인데 그중 하나는 아마 부하를 통솔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아… 맞습니다.”
“간부 분들 사주를 많이 봤는데 이런 고민은 있지만 저는 병사의 입장으로 사주를 본 것이라 잘 토로하지 않는 고민이십니다.”
“어떻게 그게 보이십니까?”
말 듣는 경우가 더 흔치가 않을 거 같은데?
나는 여자 간부 밑에서 지휘를 받은 적은 없기는 한데.
병사들이 안 깔보는 게 더 이상하다.
남고 공고를 간 대가 안 센 여선생님 같은 느낌.
김아미는 눈만 조금 커졌다, 표정 관리는 여전히 잘된다.
“맞습니다. 아, 그게….”
“자, 차차 말씀드리고 사주를 받아 볼까 합니다. 주세요.”
신왕관왕이구먼. 군인스럽다.
개인의 성취와 사회의 성취가 같은 사람.
비유하자면 워라벨로서 인생을 챙기지만 직장에서도 높이 오르는 사람?
그것도 잘 될 군인, 전통으로 따지면 정경부인의 격.
혹은 왕비 사주도 이와 비슷하다.
“이야 군인으로도 잘될 거 같고, 왕비나 영부인도 될 것도 같은 명이네요. 사주가 단순한데, 단순 명쾌하게 존귀해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다소 얼어 있는 무뚝뚝한 표정이었는데, 좋은 말을 들음에는 미소를 짓는다.
칭찬엔 반응한다 이거겠다.
“강한 기질을 잘 감추고 사회에 맞춰 사는 사람입니다. 사회의 압박에 스스로를 상실하고 사회의 기대에 자신을 맞춰 투영하고 사는 예스맨이 아니라, 자신의 기질과 의견을 감추고 나아갈 때와 용퇴할 때를 아는 사람이죠.”
“되게 좋은 말씀 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직장에 넣으면 직장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지만 거기서도 자신의 가치를 찾는 사람입니다.”
군은 의견이 없는 자와, 의견을 감추는 자가 공존하는 구조인데.
의견을 감추는 자이다.
“근데, 문제는 그래서 수하를 통제하는 데 힘이 듭니다.”
“아, 그렇습니까, 많이 느껴집니다.”
…그거, 쉽다고 느끼는 간부 없던데요.
자기가 잘한다고 느끼는 간부는 있는데, 쉽다고는 생각 안 한다.
“예, 의견을 감추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내면에서 우러난 복종을 하지 않고, 그 복종심을 잘 강요하지 못합니다. 진심이 아니니까요.”
“아….”
“다만 오히려 윗선은 그걸 더 좋게 봅니다. 그냥 줏대도 의견도 없어서 휘둘리는 사람보다는 의견이 있는데 굽힌다는 사실이 그 윗사람의 권위와 자존감을 훨씬 더 충만시켜 주거든요.”
“그렇게들 말씀을 하십니다.”
“예, 윗사람도 아랫사람 의견을 듣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니까요. 의견 말해 봐 할 때는 제안을 잘하십니다.”
이렇게 말하지만 이빨이고.
남초 집단일 수밖에 없는 군에서 뻔히 통솔 힘든 거 겪겠구나….
사이즈 나오고.
그걸 그냥 사주 탓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이러면 부당한 명령을 전달한다는 자각이 있어서, 명령을 관철시키는 일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의견이 없는 자들은 윗선에 책임을 전적으로 전가하면서 명령을 수행하므로 고민이 덜하죠.”
“제가 생각하는 그대로 말씀하십니다.”
“그건, 진솔하게 설명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부하이지만 양해를 구한다 식으로요.”
“그렇게 해 본 적이 있지만 혼이 좀 났습니다.”
간부들을 이런 말로 자주 떠봤는데, 리더십에 대한 생각 정도는 조금씩은 갖고 있다.
사병한테 말 안 한다는 거 거짓말이다.
조금만 파면 나름 털어놓는 편이다.
그리고 사주는 비슷해도 조금씩 가치관이 다른 게 엿보여 재미있다.
개같이 굴려야 한다는 거의 동일하지만.
풀어 줘야 한다, 모범을 보여야 한다, 계층을 확고히 나눠서 ‘난 간부고 넌 사병이야’ 여야 한다 등등 생각이 나름 다 다르다.
여기서 간부끼리의 갈등이 발발하곤 한다.
김아미도 그것은 겪었던 모양.
“사례 하나를 말씀드릴게요. 군 생활할 때 전역하시고 군 장병들 강연하시던 강사분이 하던 강연인데.”
“예.”
“분명 군 생활하면서 납득 못 할 명령 같은 게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유사시 너희더러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죽으라고 떠밀어야 할지도 모른다. 거기서 너희들이 생존권의 입장에서 당연하게 죽기 싫다 반항하면?”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군 생활 도중 있을지 모를 간부들의 부당한 명령은 너희들의 무조건적인 복종을 이끌어 내려는 수단일지도 모른다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냥 유닛을 움직이는 게임만 조금 해 봐도 알 수 있는 것이겠다.
게이머로서의 판단으로 어떤 일부 유닛은 희생시켜야 할 때, 그 게임 유닛이 반항하는 상황은 골 때릴 것이다.
문제는 그러니 전시 소모품인 너희들에게 의미 없는 뺑이를 평소에 시켜도 감당하라는 이야긴데.
전형적인 간부의 입장이다.
“저는 좀 그렇게 느끼기도 합니다.”
이 양반도 간부 맞네.
바로 반박했다.
“제 느낌은 옘병 X까는 소리 하네, 전란 때와 평화 때의 분위기 자체를 못 읽는 머저리들을 군에 데려왔다면 그건 윗대가리가 감당할 일이고, 스스로에게 충실한 사람을 국가와 공동체라는 큰 대의를 위함이 결국 자신을 위한 길임을 납득을 시킬 노력을 해야지 그런 고민 없이 개소리를 하네? 라고 느꼈습니다.”
김아미는 놀란다.
너무 진심으로 들렸겠지.
“그런 병사들을 설득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오.”
“예?”
“저런 말을 해야 됩니다. 너희는 소모품이고 평소에도 그리 부릴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요. 중간에서 어설프게 너희를 이해한다 이런 거 안 먹힌다고 봅니다.”
“부정적인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저야 저렇듯 공감하지 않았지만 저 말대로 따르는 간부들이, 선임들이 있더군요.”
병사 중에도 순응하는 자들은 분명 존재한다.
체제에 적응을 잘한다는 뜻이겠지.
그들만 잡고 그들만 열성화시킨다면 통솔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체제에 적응이 되어 가는 자들은 보통은 상병장일 것이고.
“약간의 명분과 그 명분에 공감할 적당한 소수만 틀어쥐어도 통솔은 어렵지 않습니다, 군은 또 그렇게 구조가 짜여 있어요. 영악하게요.”
대위면 그래도 소대도 한번 맡아 봤을 것이고, 중대장도 하고 있을 것인데.
이런 고민을 분대장도 안 한 사병 출신한테 털어놓는 게 우습지만.
많이 듣던 고민이고.
그 덕에 간부들 약점도 잡아서 군 생활했다.
나만큼 간부들한테 밥, 술, PX 얻어먹은 병사도 없을 것이다.
“사주 보는 게 아니라 지휘관 상담받는 것 같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한테 묻는 게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싶지만 예.”
“아버지는 그런 말씀 안 하십니다.”
기왕 이 길 갔으면 알려 주지는 새침하게 그러고 앉았나.
“그리고 두 번째, 이거는 짐작 가는 게 하나 있네요.”
“어떤 걸 짐작하십니까?”
“결혼, 연애 문제입니다.”
“아, 앗, 그게 보이십니까?”
신왕관왕은 훌륭한 군인의 명이기도 한데, 여성의 경우엔 ‘정경부인에 이르렀다’고 고서에 적혀 있기도 하다.
의견이 강하지만 맞춰 주기도 잘하는 면모가 공존하는 사람이다.
그 두 가지 모두가 안 된다는 보장도 없다.
이 양반을 정경부인의 격으로 만들어 줄 돈 많은 놈.
왠지 누군가가 자꾸 떠오르는 데다가….
왜 하필, 사주 보러 여기로 왔을까?
그걸 사주로 설명하지 않고, 김아미의 헤어 상태를 보며 시나리오를 써 보기로 했다.
“머리카락.”
“예?”
“저는 그냥 묶고 나오시면 나왔지, 그 머리의 굴곡을 그대로 두시는 분은 거의 못 봤습니다. 누구한테 잘 보이냐고 말하는 아주머니들조차도요.”
“이건….”
“그런 것치고 정복입니다. 단정하고 매무새가 있어요, 심지어 다림질에 각까지 잡혀 있네.”
이런 사람이 옷엔 각을 내는데, 머리에 각을 내고 다니는 게 참 보면서부터 이해가 안 가서 계속 흘끔거렸다.
“아, 아. 그렇습니다.”
“머리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 옷에는 신경 쓴다? 이건 그 머리에 대해 마음을 녹일 만한 존재에게 칭찬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밖에 해석이 안 됩니다.”
“……!”
표정 관리 드디어 안 되네.
“어떤 경우가 있냐면, 콩깍지가 쓰였고 용납을 받은 겁니다. 뭐 주로 하는 대사는 이런 눌린 머리도 귀엽다. 이런 여자 처음이다. 아니었을까.”
솔직히 사랑의 힘 말고는 해석 불가능한 행동이다.
사주철학관 가려고 평상시처럼 머리 묶어 놓고 챙기는데,
안 묶은 게 좋고 머리 눌린 자국까지 괜찮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 말에 괜히 기분 좋아 실웃음 짓다, ‘한번 풀어 보자!’ 하면서 나오지 않았을까?
안 그래도 사주 보러 오는 젊은이의 주된 고민은 사랑인데, 생각이 날 테고.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런 칭찬은 말도 안 되는 것이지 않습니까, 관리를 잘 안 한다를 반전하는 칭찬이오?”
그 남자가 스킬이 좋다.
이건 직업적 특성으로 나타나는 그 여자에게 어쩔 수 없는 콤플렉스였을 가능성이 있다.
맨날 전투모 아니면 방탄 헬멧 쓰고, 묶어야 해서 머리가 눌린 신세였을 테니.
그걸 파고든 것이다.
“그걸 칭찬으로 욱여넣어서 설레게 할 만한 여자 만나는 괴물을 하나 압니다. 외모가 상당하고 돈도 많으며 이성 홀리는 재주까지 있는.”
여자를 많이 알아서 그런 걸 세심하게 볼 줄 안다고는 말 안 했다.
그 어린애 정리를 했다면야 딱히 잘못은 아니니.
그리고 그 괴물, 김병용 집에서 지낸다는데 알 만하다.
“거기다 그의 앞에서 머리를 푼 적이 있었던 거고요?”
“이걸, 이걸 어떻게 보시는 대로 다 아시는 겁니까?”
이건 그냥 ‘시나리오 쓰고 있네, 미친 새끼가?’하면 내가 ‘죄송합니다.’했을 텐데 맞나 보네.
설민혁 사주의 인간과 김아미 사주의 인간이 마주쳐서 저런 헤어스타일을 자아냈을 개연성 있는 스토리를 한번 짜 봤다.
“그래서 설민혁을 죽여 드려요? 아니면 그 집 부모님 한번 만나실래요?”
“그, 살려 주셨으면 합니다.”
이미 누군가가 죽이고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