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85화 (85/211)
  • #85. 주모가 되고 싶던 아가씨

    “……저를요?”

    직원을 여럿 알지만, 사주 몇 번 봐 줬다고 써먹기에는 좀.

    거기다 고민을 주로 토로하러 오다 보니 상태들이 썩 좋은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주철학관에 인생 자랑을 하러 오지는 않잖은가.

    거기다 알음알음 내 직책을 아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별로인 듯싶다.

    그래서 간추리니까, 두 명이 나오는데.

    황당하지만 괜찮을 거 같아서 연락을 넣었다.

    그중 한 명은 지금 전주 가서 문자 그대로 뺑이 치고 있으니 후 순위로 미뤘다.

    “응, 너를요.”

    “지금 되게 황당한 거 알죠?”

    “왜 황당하죠? 사실상 백수잖아요. 일 같이 해 보게요.”

    “여름에 주류 수입 브랜드 만들려고 했는데.”

    천지인 그룹은 주로 두 개의 회사로 돌아간다.

    ‘하늘로 오르는 계단을 만듭니다.’ 건설사 스카이피아.

    ‘땅의 기반을 다집니다.’ 호서부동산투자개발.

    그리고 기타 호텔 사업 등등 몇몇 사업이 있으나 가장 돈 많이 버는 회사는 저 두 곳이다.

    설양훈은 천지인이니까.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교.’로 주류 회사를 출범 시킬 계획이다.

    그리고 이 주류 회사를 이끌 사람으로 설민혁이나 설은겸을 생각해 두고 있었다.

    주류 회사를 통하여 상속을 우회할 방법까지 구상해 놓은 듯했다.

    상속으로 우회를 못하더라도 이 회사로 한 명은 챙겨 주겠다는 의도는 읽힌다.

    설민혁, 설은겸 둘 다 주요 계열사에서 중진으로 일한 경력은 없으므로 청년 스타트업인 양, 주류 회사로 시작할 모양인데.

    그 첫 경쟁이 된 양조장 인수 경쟁에서 분명히 밀린 사람이 있다.

    “술도 잘 못 먹고.”

    “잘 마시는데?”

    “아랫배가 잡힌다고 그랬던 거 같은데.”

    “지금은 안 잡히거든요?”

    “잡아 봐도 되나요?”

    “그건 죽어도 안 돼, 차라리 봐요.”

    알면서 놀리는 것이긴 하다.

    설은겸은 11자형 복근 있는 탄탄한 몸매로 관리를 제법 빡세게 했다.

    스웨덴 북부에 있을 때 목격했다.

    여행 중에서도 운동을 딱히 안 쉬더라고, 그때 한 말이 ‘술배 나올까 봐요.’라서.

    ‘그런 적 있나 보네’하면서 잡는 트집이었다.

    “근데 그 일 정말 하실 수 있겠어요? 스스로도 졌다고 느꼈잖아요?”

    “그러니 만회해야죠.”

    둘 다 인수는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직원들과 인수된 양조업자들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좋은 놈이 있었다.

    간을 술에 절여 가며 친한 척을 한 놈.

    그리고 영어로 또박또박 말 잘하고 야무지게 대했는데 차갑다 소리를 들은 사람.

    눈앞에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두 반응을 설양훈이 전달해 줬을 때, 승패가 갈린 느낌이 있었다.

    ‘술을 먹이는 것도 참 걱정되는 일이지요.’

    설양훈이 넌지시 건넨 한마디가 무슨 뜻인지 모르진 않았다.

    회장이 자기 식구들이니 겸양을 떠는 척 둘 다 깎아내리긴 했으나.

    설민혁은 한심하지만 희한한 재주는 있네, 이랬지만 설은겸은 그냥 걱정했다.

    그리고 설은겸조차 이를 인정했다.

    “선사님.”

    “왜요?”

    “같이 서울 가요.”

    무슨 역제안이지?

    서울이면 설은겸 본가 저택이 있는 곳이다.

    “가족들 소개해 주려고?”

    “아…. 어, 음. 껴안기 좋은 남자라고 소개하기는 좀 그런데.”

    설은겸에게 불리길 닉네임이 껴안기 좋은 남자 됐다.

    무슨 곰인형인 줄 아나.

    그래도 저게 거의 최상급의 표현일 거라 냅뒀다.

    “그건 저도 부담이니까 괜찮고, 그러면 왜?

    “그, 남대문 수입 주류 상가에 가보고 싶어서요.”

    “음, 그게 그냥 술을 저랑 같이 사고 그런 김에 서울도 구경시켜 주는 거라면 같이 갈게요.”

    “겸사겸사?”

    “근데, 주류 관련 공부를 더 해서 나아지겠다 그런 생각이라면 버리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설은겸은 조주기능사 자격증도 있는 등 꽤 준비를 열심히 했다.

    설민혁은?

    그냥 술 먹고 놀았다.

    그럼에도 밀린다.

    “왜…?”

    “제가 보기엔 아무리 술에 도통한다 해도, 그냥 술을 미친 듯이 잘 먹으며 사람 자체가 주정뱅이인 자를 이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아.”

    본인도 알면서 저런다.

    “나 진짜 잘했다고 그랬는데, 같이 가신 분들은 칭찬해 줬는데.”

    “설민혁에게는 가히 찬사가 있었죠.”

    “나라의 차이가 있었던 거 아니었을까요?”

    영국, 스코틀랜드 사람하고 프랑스 남부 사람의 성향이 다를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인정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설은겸도 장점은 있었다.

    “외국인들도 뒤돌아 보게 만들 만국 공통에 통할 미모의 아가씨와 머리털 고민을 해야 하는 주정뱅이 아저씨, 이건 베이스가 그 아리따운 아가씨가 너무 좋은데요? 주취로 주사를 부리는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런가요?”

    “그럼에도 평이 좋았다면, 그건 이성을 놓은 그 친구의 상태가 생각보다 사람들의 호감을 산다는 근거죠.”

    “나는 왜, 그게 안 돼요?”

    그냥 상대와 과제가 영 안 좋았다고 보지만,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고 한다면….

    “원인은 상냥함을 말이나 표정으로 표현 못 하는 강력한 자존감.”

    “으음.”

    “그리고 그거 솔직히 말하면 못 고칩니다. 그러니 주류 사업 관련 그만했으면 싶어요.”

    “사주로 말씀하시는 거죠?”

    이건 그냥 현상으로도 읽히는 것이지만, 설은겸은 나한테는 진솔하게 속내를 말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듯하니.

    그렇다고 답했다.

    “네, 공주로 태어난 팔자인데, 주막의 주모를 하려고 덤비는 형국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요?”

    “아….”

    “왜 하냐? 경쟁자가 몰락한 귀족이라 한탄하며 술을 잔뜩 먹는데, 귀족의 자태와 주정뱅이의 모습이 다 있어요.”

    “그런가요?”

    “사람들이 보면 이 사람 신기한 거죠, 두 계층을 아우르는 뭔가를 갖고 있어서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 겁니다. 주정뱅이인데도 말이죠.”

    사실 그건 어쩌면 교묘한 균형 감각이라고도 생각하는데, 의도하고 한 거라고까진 생각이 안 들어서 묘하다.

    미친 짓을 하는데 밉거나 불쌍해 보이지 않는 느낌.

    “그것 때문에 사람이 막 모이니까, 나도 주모를 하면 사람이 모이겠지? 하는 거죠. 근데, 그걸 그저 막걸리를 더 열심히 연구하면 될까요?”

    “…….”

    “주모에게서 느껴지는 능청이나 스웩이 나오질 않고요. 사실 그런 게 나온다고 하면, 세간의 시선이 곧지도 않습니다.”

    “왜….”

    “유흥은 술과 이성을 통칭하는 겁니다. 만약, 그런 끼를 갖추면 세상은 당신을 어떻게 볼까요?”

    주모의 모습이나 역전 앞의 할머니 모습이면 상관 없을 것이나,

    설은겸은 그게 아니다.

    “그래서 저는 고급화 전략으로….”

    변명이다, 무리수를 두네.

    공부 및 시장조사를 해서 알고 있을 텐데.

    “시장조사를 해 보셨으리라 생각하는데, 비싼 술은 허세입니다.”

    “아….”

    “누구 앞에서 허세를 부리려고 비싼 술들을 마실까요? 그 비싼 술보다 세상엔 맛있는 음료가 더 많은데요. 콜라 하나가 그 세상의 많은 술들을 다 압살할걸요?”

    “칵테일에 많이 들어가긴 하죠.”

    “그래서 그 비싼 술들이 주로 어디에서 소비될 거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와인이 고급진 느낌을 주죠? 와인은 뭐 할 때 마시죠? 편의점에서 테이블 놓고 깡 와인 하시는 분 봤나요?”

    대답을 못 하겠지.

    고급화 전략도 웃긴 게 아마 비싼 술들도 유흥에서 소비될 것이다.

    그것도 어디서 기사 봤다.

    “포기하라는 말씀 같네요?”

    “예 포기하라는 말 맞아요.”

    설은겸은 그것만은 내키지 않는 표정이다.

    “그게 안 되는 거 아시잖아요?”

    “다른 방법 알려 주려고 이러잖아요.”

    “선사님이랑 같이 일하는 게요?”

    “네.”

    “그러면 뭐가 되는데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네에?”

    “은겸 씨는 본인만의 이야기가 없거든요.”

    “정말 없어요?”

    “아예 없진 않은데, 그 이야기를 남들에게 할 수 없고 그 이야기의 담론이 너무 무거워요.”

    만나면 무거운 주제만 꺼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 만나기가 편할까?

    설은겸은 충격적인 사건 말고는 자기 소개서가 심심한 사람에 속한다.

    굴곡이 없었으니까.

    “그 사람은 이야깃거리가 많아요?”

    물 타는군.

    이야깃거리에서 설은겸은 설민혁의 상대가 안 된다.

    “많죠, 나는 엄마가 첩이야, 이걸로 시작만 해도 애잔한데요.”

    “궁금해지긴 하네요. 나는 엄마가 첩이야로 시작하는 사연이면.”

    “그리고 여자를 너무 좋아해서 이성과의 푸닥거리도 엄청나게 많죠. 세상 사람들은요, 연애에 관심이 너무 많아요.”

    “연애하면 된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설은겸은 눈을 반쯤 내리 감으며 나를 흘겨보았다.

    당연하게 끄덕였다.

    “예, 그러니까, 저랑 일해요.”

    “그러면 되는 거예요?”

    “저는 내 속마음은 안 털어놔도 다른 사람이 속마음을 가져다 바치게 만드는 기술자라서.”

    “윽….”

    설은겸 얼굴이 빨개졌다.

    뭔 생각했는지 알겠다.

    “선사님 비서…로 일하면, 사주를 해야 된다는 이야기 아닌가요? 재미는 있지만…. 그건 선사님 영역을 빼앗고 싶진 않은걸요.”

    “아뇨, 그냥 나랑 있어요.”

    “…무슨 의도예요?”

    “사람을 만나야 이야기가 생기는 건데, 저랑 만나면 파생되는 이야기가 있을 거예요. 들을 이야기도 많을 것이고.”

    “세상 사람들은 연애에 관심이 많으니까?”

    그 대사만 기억 나는가 봐.

    “어 그렇게 말하자면, 그냥 옆에 두고 싶고 술 적당히 마셨으면 좋겠다 싶어서 그래요.”

    “그걸 왜….”

    “옆에는 그냥도 두고 싶은 거고, 술은 걱정되니까 그러는 거지.”

    설은겸은 몹시 부끄러워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 그만 왜 그래요?”

    “말하면 끌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설은겸의 마음을 돌릴 강력한 동기 요인이 있지만 말 안 했다.

    그냥 비서가 되어 달라고 했다.

    어떻게 반응하나 보게.

    나도 시험할 거다.

    “그냥 제가 주정뱅이나, 뭐 그런 식으로 보일까 봐 그게 걱정되어서 그러시는 건가요?”

    “네, 그것도 싫어요.”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그렇게 안 보이면 되는 거잖아요.”

    “제 태도 보시면 느껴지지 않아요?”

    “무슨?”

    “처음엔 응원했죠? 잘해 보라 둘 다 해라, 등등으로.”

    “그러셨었죠.”

    “이게 그래도 남이니까, 해 보고 싶은 걸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는데요. 어 이젠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당신이 그런 오해라도 혹시 받을까, 다들 염려할 겁니다.”

    말하다 보니 괜히 진지해져서 쪽팔리니까, 뭉뚱그려서 말했다.

    나는 아닌 양.

    그냥 설양훈이 손녀가 술 배우려는 걸 말로는 응원한다 밀어준다 하지만 썩 좋아하진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게 나았으려나?

    “…아.”

    근데 알아들은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건 원래 하기 힘든 말입니다. 좋은 사람의 실망하고 화낼 표정을 보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

    “헤.”

    설은겸인 피식 웃다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양팔을 내민다.

    무슨 신호인지 알 것 같다.

    일어나서 다가가 주니 또 그냥 꽉 붙든다.

    머리 쓰다듬기 좋다.

    내 손이 좀 더 내려가도 될 거 같지만, 그건 확실히 말 안 하니까 좀 그렇고.

    안아 줘 포즈 참 귀엽다.

    “…믿을게요.”

    그거면 됐다.

    내가 자신에게 안 좋은 일을 시킬 리 없다는 확신.

    * * *

    “그래서, 정확히 뭐예요, 특임 고문의 비서면?”

    “업무는 제 비서로 대리인이고요. 제 임기가 일단 2년인데 뭐 회장님이 계속 연장하게 계약을 해 놨고, 마찬가지로 2년 정도 고용을 보장해 드립니다. 일은 뭐 평소엔 재택근무 하시고.”

    “네.”

    “스카이피아 임원 회의에서 특별 상임 고문 대리인으로 출석해서 거기 앉아서 이야기 듣고 오고 그러면 돼요.”

    “임원 회의 참석이라고요?”

    임원 회의 참석이 주는 파괴력을 설은겸도 느낀 모양이다.

    “거기서 저 대신 의견을 피력하셔도 됩니다. 어떤 의견을 말하던, 그건 내가 기업에 대한 고견을 말한 것으로 하세요.”

    “그런 자리면 그냥 선사님이 나가셔도 되지 않아요?”

    “어, 회장 손녀를 비서 겸 대리인으로 쓰는 미친놈이고 싶어서요.”

    난 말마따나 저렇게 되니까, 사주 말고는 쥐뿔도 없지만 회장 일가를 부리는 급으로 인지될 것이고.

    설은겸은 어쨌거나, 비정규직인 보좌로 시작해 사장과 임원들의 의사 결정의 장을 참관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같은 노비여도 궐 안 노비가 더 권력의 핵심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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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건 고민 좀 해 보고.

    * * *

    임원 회의실은 컴퓨터 및 화상 시스템이 구비가 되어 있었다.

    원하기만 한다면 화상 참석으로도 가능은 한 것.

    특임 고문 사무실에서도 화상회의 참가 충분히 가능은 한데, 그러고 싶진 않고.

    “어르신.”

    “무슨 일로 아침부터 이렇게 버선발로 뛰어왔나요.”

    “그 오늘 임원진 회의 화상으로 참여 좀 해 주시면 안될까요?”

    노승환 체제 이후 설양훈은 행동을 조금씩 줄여 나가는 식으로 힘을 싣고 있어.

    차로 10여 분 거리의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오, 혹시 경영에 관심이 있었나요?”

    “따로 관심이 있는 게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뭐 켜 달라고 하지요.”

    설양훈은 흔쾌히 회의에 참석해 주었다.

    우선은 회장은 안 나오고, 회의실 화상만 보이게 이쪽의 캠은 껐다.

    “에잉!?”

    회장이 화상으로 지켜보고 모인 임원진 회의에는 ‘특별 상임 고문 대리’ 자격으로 입회한 설은겸이 있었다.

    좀 얼어있는 듯한 굳은 표정이 귀엽다.

    설양훈 놀라는 것도 웃기네.

    “은겸이가 저기엔 왜 있는 겁니까? 노승환이가 불렀나요?”

    임원진 회의에는 머리 센 어른들밖에 없었는데 젊은 여자아이가 있는 건 시선을 산다.

    나이 든 양반들이 죄다 흘깃하고 난리 났다.

    개중에 임원 한 명이 벌떡 일어나 설은겸에게 다가가 90도로 인사한다.

    설은겸을 아는 모양.

    그 임원을 필두로 한 명씩 다 폴더 인사를 건넨다.

    비정규직인 특별 상임 고문실 비서 겸 대리, 겸 운전원 직책인데 임원진들의 90도 인사를 받는 희한한 상황인 것이다.

    물론 희한할 것도 없었다.

    수천억의 지분을 가진 그룹 가문의 후손, 말 그대로 공주다.

    노승환만 인사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도 표정이 놀라 있다.

    “제 비서인데요.”

    “허, 허허허허.”

    설양훈도 예상 못한 듯 웃기만 하고 있었다.

    설은겸은 나름 주눅 들지 않고 회의에 참여했다.

    뭐 별말은 하지 않았지만 관심사는 설은겸이었다.

    설은겸도 어려워하고 있었지만 임원진들은 더 어려워하고 있었다.

    “겸연쩍으니 나는 오늘은 듣기만 할게요.”

    설양훈은 화상으로 잠깐 얼굴만 보여 줬다가 다시 캠을 끄며 적당히 잘 빠졌다.

    끄는 건 물론 설양훈이 앉은 큼지막한 의자 뒤에 숨어서 손만 뻗어 내가 했다.

    [밖에선 말이 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용기 있게 참석해 주신 은겸 양한테 박수 한번 드립시다.]

    와, 싸바싸바 잘하네.

    임원진들의 아부가 장난이 아니다.

    배우고 싶을 지경.

    “아야.”

    “이거야 원 하하하. 이거 아주 내가 골 때리는 친구를 만났어, 어떻게 하는지 계속 보고 있어요.”

    설양훈이 날 꿀밤 한 대 쥐어 박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사이 회장의 자리에서 회의를 지켜봤다.

    의자에 앉진 않고, 혹시 바로 들어오면 트집 잡힐까 봐.

    “은겸이 잘하네.”

    발언권을 얻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누가 특임 고문이냐? 등의 질문을 재치 있게 잘 받아 넘기고 있었다.

    속마음을 드러내기도 싫고 자기 이야기를 하기도 싫다면, 속마음을 자기들이 알아서 가져다 바치는 쪽에서 일하면 된다.

    그게 되는 사람이라, 그동안 그렇게 안 하고 살았던 것인데.

    그걸 굳이 이상한 삼촌과 경쟁하려고 비슷해져야 하나 생각하며 고민하다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권력자면 그런 거 안 하고 살아도 된다.

    [아버님을 저희가 지켜 드리질 못해서 죄송합니다.]

    [잘 나오셨습니다. 큰일부터 맡으셔야죠.]

    지금 화상회의에서 보이듯 밑에서 알아서 그 나팔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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