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82화 (82/211)

#82. 업계 포상

오영화는 내 무릎에 올린 손이 점점 위로 올라온다.

술 많이 자셨나, 왜 이래?

“……예?”

“야한 말씀을 자꾸 하세요? 사주 보신다면서.”

“왜 야하죠? 의사가 진료 거부 못 하잖아요. 인기 있는 의사 선생님 되시겠다라고 덕담하는 이야긴데.”

“그럴 의도로 하신 거예요?”

“네, 그런 운명인데 배움에 뜻을 두고 이겨 내어 사람은 많이 찾고 돈도 많이 버는 직종을 찾으신 겁니다.”

“그러면, 저는 어쨌건 누군가 자꾸 벗고 들어오는 것을 맞이할 사주였다. 이거죠?”

분위기 묘해서 아닌데요, 하려다가 전공을 속이는 거라 못 했다.

“포용력이 강하고 본질적 외로움이 있으니, 찾아 주는 것을 기쁘게 여깁니다. 미모가 있어 많이 찾고요, 그러면 성애에 가감이 없습니다.”

“정답이네요.”

“…….”

사주는 딴 건 몰라도 ‘음탕하다’ 하나는 기똥차게 잘 맞춘다.

“복채 드려야겠다. 근데 지갑이 방에 있네요.”

내가 당황한 척하기는 하지만, 이런 경우 몇 차례 있었다.

가게를 차리고 일할 때야 아니지마는.

오픈톡으로 영업을 할 때는 가능하면 내 능력을 십분 발휘하기 위해 대면으로 유도하고.

여성의 경우 사주에서 기미가 보여서 당신 음란하다고 하면 ‘이걸 어떻게 알았지?’ 하면서 취향을 토로하곤 한다.

역술인이 남자니까 숨기는 비중이 높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맞추면 장벽이 허물어진 듯 이야기들을 하신다.

특히 아줌마들.

“방이오? 아닐 거 같은데요.”

“네에? 어, 갑자기? 무슨 뜻?”

“옷을 벗으셔야 나올 거 같네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 주책이다’ 싶은 사회적 합의가 없는 연령대.

그러니까 젊은 여자와 말하다 보면 좀 위험해진다.

남자가 이런 취향을 알고 맞춰 줄 수 있을까? 이런 취향을 들키면 날 어떻게 볼까?

이런 고민을 듣게 되는 것이다.

어찌됐건 나는 서비스직의 입장이라, 여간하면 안 맞춰 주려고 하는데.

그걸 너무 좋아하면서 해 달라는 취향 커밍아웃하시는 분들이 있고.

야설 쓰던 기력이 있어 나름 호응할 수 있는데, 호응하기 시작하면?

전개 생략 후~

잠자리였습니다.

이렇게 만나니까 전개가 맨날 일단 하고 손을 잡는 쪽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빌드 업이 오픈톡으로 만난 ‘사주를 볼 줄 알면서 입으로 야설 쓰는 불상의 돈 잘 못 버는 남자 역술인’이다 보니.

취향은 잘 맞추나 연인으로의 발전이 잘 안 되기도 하고.

“왜 그럴까요?”

“유럽 여행 소매치기라고 치면 연관 검색어가 한두 개가 아니고요. 여성들 같은 경우는 그래서 지퍼 팬티라고 속옷에 여권이나 비상금을 숨길 수 있는 기능성 속옷을 입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거든요.”

“진짜 예리하시다.”

음.

사실 오만 생각이 다 들고, 심지어 계략이 아닌가 생각도 들지만 사주 믿겠다.

그럴 만한 사주고, 내 레벨도 올라서 그럴 만 하다.

레벨이 오르기 전에도 잘만 하면 하룻밤 지낼 분들은 만났다.

근데….

설은겸 안 취했다.

왜 아까부터 취한 척인지 모르겠는데 일단 주량은 그때 바에서 체크했고.

맥주병에 젓가락으로 실로폰질 할 때부터 들었는데 병에 술들이 남아 있다.

그러니까 음색이 틀리지.

한 병을 굳이 다 마시지 않고 독일 맥주 이거저거 맛만 보고 있었다는 거.

음식 중 제일 아까워할 게 없는 게 술이니 그건 상관없지만.

엎드린 것도 어색하다.

학교에서 엎드려 울거나 자 본 적이 없나 봐, 진짜 불편하게 저러네.

숨소리도 새근새근, 드르렁도 아니고 불규칙하다.

뭔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숨소리 멎고.

그렇게 종합적으로 볼 때, 설은겸 안 취했고 듣고 있다.

그런데 ‘네!’ 하면 미친놈이지.

이런 눈치만 100단 앞에서 취한 척을 하나.

아 근데 놀리고도 싶고….

“그럼 복채 받으러 들어가면 바지춤부터 푸셔야겠네요?”

“그러게요.”

“저도 바다로 태어나서 말이죠.”

“물이 많으신 거겠네요.”

“그럼요. 시트를 갈아 달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푸흐흐흐흐, 아 재밌어요.”

“그래서 섞이기도 잘 섞이고 흥건하죠.”

“아하하하.”

설은겸 옆에 있던 젓가락 하나가 툭 떨어진다.

술 취해 본 사람 관측을 별로 해 본 적이 없구만, 연기를 할거면 와르르 무너지면서 와장창 하는 게 좋았을 건데.

“그렇게 사주로 보니 제안이 맘에 듭니다, 가볍게 만나는 거 좋죠. 저 말고도 누군가는 달려들 것이고 품어 주실 테니 너는 언제든지 오라, 그 생각이 있으신 분이라.”

“놀랐어요, 그걸 어떻게 맞추지? 하고요.”

“평소엔 티를 안 내죠, 바다는 고요하니까요. 그러면 이제 소개팅 앱이나 오픈톡 같은 거에서….”

“거기서 이야기 잘하고 관심 가져 주면 좋죠.”

여기까지 분위기 조성했으면 됐다.

“어 근데요.”

“음?”

“그럴 분이라는 걸 알아서 정말 아쉽긴 한데, 어 하필 오늘 손을 내밀어 주는 분이 있어서요.”

혹시 듣고 있나 싶어, 눈을 흘긴 뒤 대답했다.

설은겸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우와 그랬어요?”

오영화는 크게 아쉬워하거나 놀란 기색도 없다.

음탕한데 성취가 좋아 자존감이 높고, 먹고살 길에 문제가 없으면 남자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달려들 사내는 많으므로 그냥 하루하루 간택하면 된다.

“그게 마음에 걸려서 선뜻 발은 안 떨어지네요. 가벼운 만남 같아서 죄의식 같은 건 없는데, 그냥 그게 그래요.”

“귀여우시다.”

“뭐 까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까이면 그땐 제가 묵으시는 방 앞에서 똑똑하면서 침 꿀꺽 삼키고 기다릴게요. 허엉엉 울면서 안기고 그래도 돼요?”

“그래요. 그러면 복채는?”

“그때 주세요. 주시는 게 보고 싶네요.”

“귀여워서 기다려 볼게요.”

오영화는 내 양 무릎을 쓰다듬다가 들어갔다.

사주대로라고 본다면 언제든 받아 주는 게 장점이다.

돈도 많고 인기도 많고 욕망에도 진솔해서 쉽고.

그러면서 굳이 틱틱대는 명도 아닌 그저 독점 의식이 없는 여성인데.

저 독점 의식 하나가 모자라 아마 시집가긴 힘들겠다.

오영화 씨가 먼저 들어가고 숨죽이고 듣고 있었을 설은겸을 좀 괴롭혀 보기로 했다.

“은겸 씨 일어나아, 가서 자야지.”

몇 번 흔들어 봤다.

안 들은 척하려면 잠에 푹 취한 척해야지?

“깊게 잠들었나 보네.”

일단 여신처럼 기른 긴 생머리가 옆으로 삐져나온 것을 꼬아서 묶었다.

그래도 안 일어나니, 볼 한번 지그시 눌러봤다.

“으, 으음.”

아, 이거 귀여워서 중독되네.

몹시 치욕스러운 표정일 때 괴롭혀 보고 싶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 * *

다음 날은 함부르크로 넘어간다.

함부르크에서 하루 묵은 뒤엔 덴마크에서의 일정이 좀 있다.

그 일정이 끝나고 스톡홀름으로 간 뒤 스톡홀름에서는 설양훈이 타고 싶다는 야간열차를 끊고 북극으로 쭉 내달려 북위 65도선 이후 북극권에서 오로라를 볼 때까지 대기한다는 다소 무식한 계획이다.

그 전에 개신교의 시초가 된 성지 비텐베르크로 당일치기 순례를 가고 있었다.

설은겸도 같이 따라오고 있다.

기차를 타고 풍경을 보고 있는데 한참 말 없던 설은겸이 이야길 꺼낸다.

“선사님.”

“네.”

윗 창문이 살짝 열려서 바람이 들어오는데 열차 밖 풍경을 보며 머리카락이 날리는 옆모습이 보기에 어여뻐서 딱히 말 안 해도 괜찮았다.

“가볍게 만나는 거 좋아하세요?”

“뭘요?”

“그 이성을 만날 때 말예요.”

“어 아뇨?”

“그으래요?”

아닐 거라 생각하고 묻고 있군, 마음 속에 답이 있구만.

그러냐고 묻느냐면 아니다, 근원이 따로 있지.

“그냥 성관계를 좋아하는 건데요.”

“으악 미쳤어요? 누가 듣….”

“독일인데요, 그 단어 아니면 알아듣겠습니까.”

그러니까 스자로 끝나는 말로 안 했지.

“그, 그렇긴 하겠네…요.”

상황에 맞게 이야길 하셔야지.

묻어 두고 미쳤다고 했으니 트집 한번 잡아 놀려 봐야겠다.

“그러니 그냥 제게 미쳤다고 호도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만 지시면 됩니다.”

“무슨 책임을요?”

“책임에 따르는 보상이 필요하죠.”

“무슨 보상?”

“소원권?”

“그 말을 하고?”

“소원이 예측되니 쉽겠네요.”

“그럼 책임 안 질래요. 독일이라 할 얘기가 아니라 그냥 실례예요. 저 들으라고 한 소리라면.”

“그러면 받을 권한은 없으니, 그냥 소원만 맘 속으로 빌고 있을게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손을 합장하며 설은겸 앞에서 빌었다.

“저한테 비는 거예요?”

“소원 이뤄 주실 사람 앞에서 빌죠, 누구한테 빌겠어요.”

“큽, 푸하핫. 아이 장난 그만 치시고요. 뭐 그런 걸 빌어요?”

웃는 거 봤으면 됐다.

어느덧 도착, 비텐베르크 구시가를 돌아다녔다.

<성지순례 – 개신교의 시초>

당신은 종교개혁의 시발점인 비텐베르크에 왔습니다.

종교운 레벨 상승까지 남은 성지는 2곳입니다.

이제 로마나 메카, 예루살렘, 바라나시를 찍기만 하면 종교/신념을 레벨 하나를 더 받는다.

이슬람교인이면 메카만 찍어서 ‘하지’칭호를 얻으면 되는데, 돈까스 못 먹어서 안 할 생각.

메카는 관광으로 가긴 어려우니, 로마와 예루살렘이 좋겠다.

“종교개혁이 있었던 곳이네요, 이런 의미 있는 곳 방문하는 거 좋아하시는구나.”

장난은 실컷 치고 왔는데 막상 와서는 이곳의 성당스러운 교회들을 방문하며 진지하게 명상하고 있자 설은겸이 오해한다.

사주강화술에서 예배나 찬양 같은 건 몰라도 상념 같은 건 가지라고 해서 하는 거지만, 뭐.

“그런 편이죠.”

“이럴 때 보면 정말 진지하신데 장난이 심하시단 말야.”

“진심을 표현하는 못난 방법이라 미안합니다.”

“어머.”

“부끄럽잖아요.”

그것만 대답하고 그냥 쭉 걸었다.

설은겸은 쭈구리인 양 따라온다, 그러다 한마디 한다.

“진지하신 거 좋아요.”

“그거 잘은 못하니까, 이제 돌아가죠.”

“어 더 하실 말씀 같은 건… 없어요?”

그냥 웃고 말았다.

뭔 말을 할 것처럼 예고 날렸더니.

뭔가 말을 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정말 낚이셨네.

다시 기차 타러 돌아가는 길에 설은겸이 물었다.

“물, 그러니까 바다끼리는 사람들이 잘 섞이나 봐요?”

그냥 다 들었다고 말을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어 안 섞여요.”

“응?”

“어 아마 덴마크를 거쳐서 갈 건데, 거기엔 정말 섞이지 않는 바다가 있어요. 보면 알아요.”

“아 진짜요?”

“같이 가요, 나도 있다고만 들었으니까. 보고 싶네.”

손을 내미니 설은겸이 잡는다.

“어, 네….”

“으음.”

“근데 같이 가는 것을 손을 잡으면서 이야기해야 돼요?”

“좋아서요.”

“…뭐 제가 먼저 잡으라고 했었으니까, 근데 정말로 안 섞이나요?”

“궁합론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물과 물이 만나면 축축하고 눅눅하고 음습하죠. 한쪽이 부족하면야 공급이 되는 거겠지만 둘 다 바다면 그렇진 않아요.”

“바다와 바다는 궁합이 안 좋다는 이야기죠?”

“그렇죠.”

“그러면 바다와 저는 어때요?”

이런 질문은 좋아한다.

사주를 빌미로 말을 할 수 있어야, 내게 전문성이 더 있어 보이지.

“건설, 부동산 재벌의 정체성 아래에 강한 끼가 숨겨져 있는데 그 끼를 식혀야 재물과 권좌에 다다를 수 있어서 물 오면 아주 좋죠.”

“끼를 식혀라….”

“끼는 좋은데 은겸 양은 사주에 그게 도움이 크진 않네요. 자존감이 강하고 본성은 속내를 숨길 수 있어서 말이죠. 할아버지나 가족 앞에서는 냉랭한 척하다가 혼자 거울 앞에서 볼에 검지 손가락 찌르고 거울 보며 이쁜 짓 하던 소녀 같아요.”

“…….”

“그거 아마 꽁꽁 감춰 놓고 살 것 같은데 그래서 아마 어찌 됐건 배우는 어려웠을 겁니다. 할 수 있는 연기가 한정되어 있을 테니까.”

설은겸은 한 대 맞은 표정이었다.

이건 설양훈 증언과 사주를 조합해 유추한 결론이다.

“소름 돋아…, 어쩜 하는 말마다….”

“운명이 이끌었다고 봐야죠.”

“그런 기질을 살릴 방법은 있나요?”

“연애하거나, 연예하면 좋아집니다.”

“몰아가신다?”

라임을 맞춘 건데 뒷말은 안 들었나 보네.

“태초의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는 사람을 거울과 자기 자신으로 한정시키지 않고 누군가로 확장시키면 남의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것에 문제점을 느끼지 않거든요.”

“흐~으음 이상한 의도가 읽히는데요.”

그럼에도 손은 놓지 않는다.

“그래도 엄마와 목욕탕 가기, 여동생한테 등 밀게 시키기 같은 이벤트도 잘 안 하지 않았을까, 특히 둘째 여동생이랑은 막 절친하진 않고.”

“그건… 그렇네요.”

그 나이에 친한 자매가 얼마나 많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러니 지금은 그다지 솔직하지 못한 겁니다. 그러면 끼를 죽이고 목표만 향해 가는 게 좋죠.”

“끼를 죽이는 데 선생님이 필요한 건가요?”

그딴 게 어딨나.

궁합론도 커플들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서 하는 소리다.

바다와 바다가 만나면 일반적으로 좋다고는 안 하지마는 물 진탕에 그 변태성을 서로가 알기에 찐득한 관계가 되는 것이고.

나와 설은겸도 사람 간의 궁합은 좋은 편이지만 끼를 펼치고 싶은데 내가 강압하면 부담스러워질 것이다.

다만 궁합을 지금까지 봐 오면서 느낀 진리 하나를 말했다.

“아뇨 남녀는 본디 육체적 소통이 원활하면 함께 있는 것에 마땅한 불리함이 없습니다.”

“변태….”

그러면 손을 놓으셔도 됩니다.

“그래서 끼를 살리는 쪽도 저는 좋아합니다. 귀엽잖아요. 샤샤샤 그게 본질이에요.”

“으, 으 그건 그만해요. 안 할래요.”

이제야 손을 놓네.

변태보다 자기 부끄러운 게 싫은 거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보고 싶네요.”

“뭘요? 그거 안 해요.”

“어릴 적에 거울만 보고 연습하던 이쁜 짓이오. 어디 안 보여 준.”

“아….”

설은겸은 한참 대답이 없었다.

여기서 대화가 끊겼구나 하고 휴대폰 만지는데 뒤늦게 설은겸이 말했다.

“그래요.”

“해 보려고?”

설은겸은 자기 볼에 손가락을 살짝 댄다.

그때 전화가 왔다.

번호가 모르는 번호라 어딘가 했는데, 설 회장 목소리다.

[선생.]

“아, 어르신 예, 재밌게 보내고 계십니까?”

[하나만 묻겠습니다. 사주 혹은 점술로 봐 주세요.]

진지해서 장난 안 걸고 대답했다.

“예.”

[나아가야 할 때입니까, 그쳐야 하는 때입니까?]

“뜻대로 하셔도 될 때입니다.”

[음, 제3의 답변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이 양반 마냥 무조건 잘한다, 잘한다 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아마 나아가는 길이겠죠.”

[그래요?]

“이미 먼 길을 오셨고 목적지에 있습니다. 그러면 앞날을 걱정하지 마시고 하고자 하는 것을 누리십시오.”

[좋습니다.]

여행 도중 무슨 말인가 했는데.

얼마 안 가 알게 되었다.

* * *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본 듯한 호텔에 짐을 풀었다.

이제 쭉 이동하여 북극권으로 가 오로라를 대기하는 일정만 남았다.

여기서 설양훈 일행과 호텔에서 합류했다.

“은겸이.”

“할아버지이….”

설은겸은 반가워하지도 않고 눈을 흘긴다.

같이 가자고 해 놓고 공항까지만 오고 뚝 떨어져 다녔으니까.

설양훈은 그저 웃은 뒤 팔을 뻗어 건물 내부를 가리켰다.

“여긴 어떠냐?”

“뭐가 어떤데요?”

“이거 이제 할아비 거다.”

뭔 말 하나 했는데, 듣자니 호텔 이야기였다.

뒷북으로 놀랐다.

“예에!?”

“아, 아아, 그래도 생각보다 비싸진 않았을 거 같은데요. 오래되어서.”

“그래 네 말대로다.”

나는 화들짝 놀랐는데 설은겸은 그렇구나~ 정도다.

확실히 맡는 공기의 층이 다르긴 한 모양이다.

“여행하신다면서 결국 비즈니스 하러 오셨네요.”

“여행하러 온 것 맞습니다. 단지, 쇼핑을 같이 했을 뿐이지요.”

쇼핑으로 호텔을 사네, 이야 이건….

스카이피아는 부동산과 건설 기반으로 커서 그런지, 설씨가가 현금이 많기로 유명했다.

이 사람들 앞에서 깝 깨나 쳤는데, 풀 죽네.

생각보다 비싸지 않을 뿐, 19세기 말 그 당시 유럽풍의 인테리어를 한껏 살린 호텔은 묵히면 묵힐수록 문화재가 될 것 같고.

역 접근성도 좋은 편이었다.

“선생의 운세가 호텔, 접객업을 하기 좋다고 나오지 않습니까?”

“정치와 언론, 저술과 강연, 의외로 관료에 더 특화되어 있습니다만 못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어때 둘은 많이, 친해졌나?”

민망해서 대답은 안 했다.

설은겸도 마찬가지인지 슬쩍 날 쳐다본 다음 고개를 돌렸다.

설양훈은 피식 웃더니 말했다.

“이곳을 둘이 맺어지면 선물로 줄까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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